[김현회] 딸기우유와 빵으로 중원을 든든히 채울 수 있다니

강원 이근호
"니 아킨페프 알제? 내가 마. 군대 있을 때 월드컵에서 아킨페프한테 마. 막 골 넣고 그랬어." ⓒ강원FC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홈에서 평가전 두 경기를 치렀다. 콜롬비아를 상대로는 2-1 승리를 따냈고 세르비아전에서는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 두 경기를 통해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조금씩 굳어지고 있는 생각을 정리해 봤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다.

1. 이근호는 저평가된 선수다
나는 이근호를 대표팀 여러 공격수 후보군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평가전 두 경기를 통해 이근호는 듬직한 모습을 보여줬다. 가만 생각해 보니 우리가 지금껏 이근호를 너무 저평가한 것 아닌가 싶다. 전성기 대부분을 K리그와 J리그에서 보냈으니 유럽에서 뛰는 공격수들을 대표팀 주전 선수로 떠올릴 때 그를 머리 속에서 늘 배제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이번 두 경기에서 실력으로 보여줬다.

콜롬비아전에서는 전반 45분만을 뛰었음에도 가장 활약이 인상 깊었고 세르비아전에서는 손흥민과 여러 차례 좋은 호흡을 보여주기도 했다. 늘 대표팀에 고참 선수가 없다는 게 아쉬웠는데 이근호는 어느덧 고참이 됐고 기량도 정점이다. 이런 유형의 공격수가 대표팀에 있다는 건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저평가했던 이근호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이제 그를 훨씬 더 높게 평가할 시간이 왔다. 군대에 있을 때도 월드컵에 나가 막 골도 넣고 그랬던 분을 그냥 조금 잘하는 공격수 정도로 평가해 왔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2. 손흥민이 확실히 살아났다
얼마 전 칼럼을 통해 손흥민을 살리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2연전을 통해 손흥민도 변했고 대표팀도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두 골을 넣은 콜롬비아전보다 오히려 세르비아전의 활약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골이야 넣을 때도 있고 못 넣을 때도 있다. 콜롬비아전 때처럼 상대 다리 사이로 들어갈 때도 있다. 활약 한 번 없다가 두 번의 기회에서 두 골을 넣으면 움직임과 상관없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게 공격수다. 물론 손흥민의 콜롬비아전이 그랬다는 게 아니다.

손흥민이 세르비아전에서 보여준 활약은 그의 쓰임새에 대한 해답이다. 토트넘에서 보여줬던 바로 그 뒷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이 마침내 대표팀에서도 나왔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신태용 감독도 “손흥민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전술적으로 더 고민해 보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정답을 찾은 것 같다. 손흥민은 대표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선수다. 그런데 평가전 2연전에서 보여준 활약은 대단히 반갑다. 세르비아전에서 비록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 활약이라면 잔디를 마음껏 차도 누구도 건방지다고 말 못한다.

3. 손흥민은 세트피스를 전담하면 안 된다
손흥민의 활약은 대단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이 경기장 안에서 구르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오른발로 처리해야 할 세트피스 상황이면 여지 없이 손흥민이 공 앞으로 가 이를 처리하는데 이건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2연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아왔다. 손흥민이 전담 키커로서의 능력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대표팀에서 계속 킥을 도맡아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학창시절 제일 공 잘 차고 잘 노는 일진 친구가 코너킥 때마다 친구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코너킥을 차러 가는 느낌이 든다. 제일 잘하니까 누가 말리지 않는 느낌이다.

대표팀에는 기성용이라는 킥력 좋은 오른발잡이가 있다. 물론 몸싸움도 좋은 기성용을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 경합에 쓰고 싶은 생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트피스에서 손흥민이 연결한 공은 기성용뿐 아니라 다른 대표팀 선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협적인 세트피스를 본 기억이 최근에는 없다. 계속 손흥민이 오른발 세트피스를 전담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한국이 월드컵 무대에서 득점할 기회는 별로 없어 세트피스를 잘 살려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세트피스 능력이라면 월드컵에서 한국의 세트피스는 잠깐 화장실 가는 시간으로 생각해야 할 수도 있다.

전북 이재성
딸기우유와 빵으로 대표팀 중원을 든든히 채울 수 있다니. ⓒ전북현대

4. 이재성과 권창훈은 검증이 끝났다
늘 잘했던 선수들이다. K리그에서 이재성과 권창훈은 이미 검증이 끝나다 못해 최고 수준의 기량을 자랑했다. 하지만 대표팀에서는 지금껏 많은 걸 보여줄 시간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2연전 최고의 수확은 이재성과 권창훈이 대표팀에 안착했다는 점이다. 늘 대표팀에서 중원을 채우던 익숙한 얼굴들 사이에서 이재성과 권창훈은 주전으로 그라운드에 서도 될 능력을 입증했다. 이제는 대표팀 경쟁 정도가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 도전해야 할 정도로 이번 2연전을 통해 이 둘의 입지는 단단해졌다.

세르비아전 후반 막판 이재성과 권창훈을 동시에 뺄 때의 느낌은 신태용 감독이 ‘이제 기량을 다 점검했으니 좀 쉬라’는 것 같았다. 주전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마치 에이스를 쉬게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7개월 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이재성과 권창훈을 볼 가능성은 대단히 커진 것 같다. 외모로는 대단히 순해 보이는 이재성과 권창훈이 월드컵 무대에 서는 순간 상대팀에서는 ‘쟤네 뭐야’라고 놀라다가 기량을 보고 한 번 더 놀라는 순간이 오길 응원한다. 이재성의 별명은 ‘딸기우유’고 권창훈의 별명은 ‘빵훈이’다. 딸기우유와 빵으로 이렇게 중원을 든든히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5. 기성용의 수비 지역 발재간은 위험하다
기성용은 모두가 인정하는 한국 대표팀의 기둥이다. 그의 능력을 의심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부상으로 한 동안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지만 이번 2연전을 통해 복귀한 그는 더 물 오른 기량을 선보였다. 기성용이 없는 대표팀은 상상할 수 없다. 시야는 더 안정적으로 발전했고 듬직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누가 대표팀 감독이건 일단 선발 명단을 짤 때면 중원에 기성용부터 심어 놓고 시작하지 않을까. 내 FM2017에는 이런 선수가 없다.

하지만 이번 2연전에서 기성용이 몇 번 보여준 수비 지역에서의 발재간은 자칫 대표팀을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 상대 공격수의 압박을 발재간으로 빠져 나오는 멋진 장면을 몇 번 선보였고 이 장면이 나올 때마다 기성용의 여유에 감탄사를 내뱉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탈압박’은 대단히 멋지다. 하지만 위험 지역에서의 발재간은 호날두와 메시도 불안하다. 열 번 잘해도 한 번 실수하면 대단히 위험한 순간이 될 수 있다. 가급적이면 수비진에서의 볼처리는 더 간결했으면 좋겠다. 김영권이었으면 욕 먹었을 플레이다.

6. 염기훈은 조금씩 전성기를 벗어나고 있다
나는 염기훈의 대단한 팬이다. K리그에서 그의 플레이를 보고 감탄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가 대표팀에서 가진 기량만 다 보여주면 염기훈에게 모두가 반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르헨티나전 슈팅 한 번으로 비난 받을 선수도 아니다. K리그에서 그를 보면 ‘축구 도사 이런 거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올 시즌 들어 염기훈은 조금씩 전성기에서 내려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지금도 잘하는 선수지만 2년 전 ‘미친 듯이’ 잘할 때보다는 살짝 기세가 떨어져 보인다.

아쉽기도 하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1~2년 전에는 대표팀에서 많은 걸 보여주지 못하고 살짝 정점에서 내려올 때가 되니 대표팀의 부름을 받는다는 건 염기훈의 팬으로서 아쉽다. 이러다 또 한두 번 부진한 장면이 나오면 2010년 아르헨티나전과 지금의 모습만 보고 많은 이들이 염기훈을 평가할까봐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평가전 2연전을 통해 교체로 출전하며 많은 기회를 얻진 못했지만 치고 올라오는 젊은 선수들과의 경쟁이 험난할 것 같아 시간의 흐름이 야속하기도 하다. 물론 워낙 정신적으로 강한 선수이고 킥도 날카로우니 여전히 활용 가치는 충분할 것이라 믿는다.

수원 염기훈
염기훈은 과연 젊은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을까. ⓒ수원삼성

7. ‘겁 없는’ 신태용이 돌아왔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두 경기에서 신태용 감독의 모습을 보고는 꽤 실망을 했었다. 무모하리만큼 도전을 즐겼던 그가 수비적인 축구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신태용 감독이 언제 이리 ‘새가슴’이 됐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두 경기를 통해 신태용 감독의 겁 없는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한 점도 수확이다. 여론이 좋지 않아 비록 평가전임에도 경기 결과와 내용 모두 잡아야 하는 부담스러운 경기였다. 그런데 신태용 감독은 모험을 피하지 않았다.

콜롬비아전에서는 손흥민-이근호 투톱을 내세웠고 세르비아전에서는 성공적이었던 이전 경기는 모두 버리고 구자철을 최전방에 세웠다. 모든 전술이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마음대로, 해보고 싶은 건 눈치 보지 않고 해보는 신태용 감독 특유의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경기였다는 건 긍정적이다. 그래도 이 두 경기를 통해 내용과 결과 모두 나쁘지 않았으니 신태용 감독 체제가 훨씬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이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이렇게 신태용 감독은 남은 기간 동안 계속 전술 실험을 하며 오답을 하나씩 지워 나가면 된다.

8. 한국 축구는 욕을 먹어야 잘한다
욕을 먹으니 정신을 번쩍 차렸다. 잔소리를 해도 꿋꿋하게 성적이 바닥을 기면 잔소리도 포기하는 법인데 잔소리를 하면 또 성적이 나온다. 이게 한국 축구의 원동력인 것 같다.

2연전을 통해 얻은 게 많다. 콜롬비아전은 절실함이 보였고 세르비아전은 선수들이 신나게 뛰는 게 보였다. 경기 종료 후 그래도 밝은 표정을 짓는 선수들의 모습은 굉장히 오랜 만에 보는 것 같다. 물론 개선할 점도 많았던 경기였다. 장점은 더 취하고 단점은 빨리 고치자. 평가전을 더 치르다 보면 분명히 졸전도 펼쳐지겠지만 일희일비하지 말고 내년 6월 러시아만 보고 가자. 두 경기 동안 좋은 경기를 펼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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