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이 독일을 제압했다. 이번 월드컵 최대 이변이다. ⓒ 아시아축구연맹(AFC)

[스포츠니어스 | 명재영 기자] 바람이 불면 누구나 흔들린다. 하지만 위치에 따라 그 흔들림마저도 견뎌내야 할 때가 있다. 축구에서는 감독이 그런 자리다. 그 감독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신태용 감독이다.

타의로 결정되는 기구한 운명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월드컵 본선 진출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전임 감독의 경질로 인해 소방수로 투입된 그다. 성남일화에서의 사령탑을 내려놓은 이후 신태용 감독은 거취가 본인의 의지보다는 외부의 상황에 의해 주로 결정됐다. 2014년 8월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대표팀에 들어왔지만 이듬해 초 故 이광종 U-23 대표팀 감독이 지병 문제로 팀을 떠나면서 급하게 감독직을 맡았다.

신 감독은 올림픽대표팀을 의도치 않게 맡게 됐지만 나름대로 팀을 잘 꾸려나가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8강 진출의 성과를 냈다. 그 뒤 본래의 위치였던 슈틸리케호로 돌아가는 듯했지만 2016년 11월 U-20 대표팀으로 다시 자리를 옮긴다. 전임 안익수 감독이 성직 부진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또다시 소방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FIFA U-20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반년 앞둔 시점이었다. 그렇게 신 감독은 또 위치를 옮겼다.

지난 5월에 열렸던 U-20 월드컵은 다른 시기보다 주목을 많이 받았다. 국내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심과 달리 팀의 구성은 최상이 아니었다. 이승우, 백승호 등 크게 주목을 받는 일부 선수에 비해 전체적인 선수층은 프로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준프로 혹은 아마추어에 가까운 선수들로 국민적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U-20 월드컵은 결과적으로 실패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었다. 조별 리그를 통과했지만 16강에서 곧바로 탈락했기 때문이다. 대회에서의 전략 미스와 전술 운영에 다소 문제점을 드러냈지만 위기 상황을 추스른 점에 대해 박수를 보낸 이가 많았다. 그리고 운명의 7월이 됐다.

2014년 하반기부터 달려온 슈틸리케호는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실망스러운 성적이 이어지는 와중에 슈틸리케 감독의 태도가 계속 문제가 됐고 결국 경질로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로 홍명보 감독이라는 인재를 잃은 한국 축구는 같은 역할로 신태용 감독을 선택했다. 인생 목표였던 성인 국가대표팀 감독직마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맡게 된 것이다.

히딩크 소용돌이에는 '여우' 신태용도 소용없었다 ⓒ Wikimedia

히딩크 논란 속 ‘적폐’로 비난받다

급했던 불은 껐다. 2경기 0득점 2무승부라는 내용에 대해 문제를 삼는 이들도 있었지만, 결과만이 중요했던 상황이기에 시간이 흐르며 논란은 작아졌다.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의 결과를 위해 팀을 수습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목표였다. 여론도 100% 호의적은 아니었지만, 프로 때부터 쌓아온 그의 업적이 있었기에 ‘믿고 힘을 보태주자’는 응원이 많았다. 그때, 히딩크 감독이 나타났다. 히딩크 재단의 한 측근이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꺼내 들며 한국 축구는 히딩크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한국 축구의 영원한 영웅의 이름이 거론되자 여론이 들썩였다. ‘신태용은 히딩크에게 감독직을 양보해라’는 주장이 거세졌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모든 게 순리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히딩크라는 거대한 벽을 이겨내는 것이 신 감독의 우선 과제가 됐다. 공식 석상에서 자신을 ‘난 놈’으로 자평할 정도로 강했던 그였기에 이겨낼 수 있으리라 봤다. 하지만 요즘 모습을 보면 지금의 논란은 난 놈마저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럴 만도 하다. 대한축구협회의 자체적인 문제까지 불거지며 한순간에 적폐 세력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한때 협회와 먼 사이로 분류됐던 신 감독에게는 새옹지마(塞翁之馬) 그 자체다.

이대로는 미래가 어둡다

이 정도의 비난은 근래에 없었다. 본인의 축구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현실 속에 이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당장 그만둘 것이 아니면 힘들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방향 또한 엇나가면 안 된다. 그렇다면 지금 신태용호는 올바른 길로 향하고 있는가.

지난달 30일 축구회관에서 열린 11월 대표팀 명단 관련 기자회견을 봤을 때 ‘그렇다’고 하기가 다소 어렵다. 수비 전술과 이동국 발탁에 관한 신 감독의 언급이 가장 크게 느껴진다. 신 감독은 월드컵 본선을 위해서는 변형 스리백 전술이 필수라고 말했다. 강팀을 상대하기에 스리백 전술이 효과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지금 대표팀이 스리백 전술에 집착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여러 자리를 통해 “기본 ABC도 안되는 대표팀에서 고난도의 변형 스리백을 계속 언급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이야기를 했다. 핵심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축구에서 전술은 절대 배제할 수 없는 요소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이 아니다. 일정 수준의 팀이 됐을 때 빛을 발할 수 있다. 최근 신 감독의 발언을 겹쳐보면 변형 스리백이 집착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닌지 간혹 의심이 간다.

이동국에 대한 언급도 아쉬운 대목이다. 신 감독은 이동국에 대해 “이제는 아름답게 보내줘야 한다”고 했다. 많은 나이에 월드컵 부진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스스로 실력 문제가 아니라고 못 박은 것이다. 인사 문제로 수많은 비판을 받았던 홍명보 감독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이동국의 발탁 여부는 감독의 전적인 권한이므로 결과에 대한 책임만 지면 된다.

하지만 정체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국가대표팀은 오로지 실력과 태도만 보면 된다. 더 나아가면 감독이 추구하는 스타일에 부합하는지 정도가 고려할 요소다. 이 관점에서 이동국이 ‘강제 은퇴’를 당할 만한 상황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미 대표팀의 선발 기준이 흔들릴 경우 어떤 결과가 찾아오는지 몸소 겪어본 바 있다.

히딩크 소용돌이에는 '여우' 신태용도 소용없었다 ⓒ Wikimedia

사실 히딩크 논란이 발생했을 때 가장 우려가 된 점은 앞으로 신태용호의 모든 상황이 히딩크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히딩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게 분명했고 이를 신 감독이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 걱정이 사실이 된 것으로 보인다. 성남일화 시절 위풍당당했던 신 감독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 자리에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된 신 감독만 남았다.

쏟아지는 비난에 안타까우면서도 종종 그의 선택과 발언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어찌 됐든 신태용호는 2018년 6월 러시아에 간다. 지금 험난한 길을 가야 할 대표팀에는 2010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든 신 감독이 필요하다. 적어도 2017년 11월의 신 감독은 아니다.

hanno@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