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클래식 챔피언 전북은 갈 길 바쁜 울산을 꺾었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전북현대가 2017 K리그 클래식에서 우승을 확정지었다. 창단 후 5번째 우승인데 이 우승은 2009년부터 최근까지 이뤄낸 엄청난 성과다. 2009년과 2011년 K리그 우승을 차지한 전북은 2014년과 2015년에도 K리그 챔피언에 올랐지만 지난 시즌에는 심판 금품수수 사건으로 승점 9점 감점을 당해 우승컵을 FC서울에 내줘야 했다. 2년 만에 다시 우승컵을 되찾은 것이다. 전북은 이제 K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팀이 됐다. K리그 역사가 계속 되는 한 2010년대의 전북은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전북의 이번 우승이 주는 메시지를 정리해 봤다.

1. 누구 한 명의 성과가 아니다

수원삼성에는 조나탄이 있고 FC서울에는 데얀이 있다. 경남FC에는 말컹이 있다. 조나탄은 올 시즌 22골을 넣었고 데얀도 18골을 기록 중이다. 말컹은 K리그 챌린지에서 22골을 뽑아내며 괴력을 발휘했다. 물론 대단한 선수들이다. 하지만 올 시즌 전북을 이끈 단 한 명의 선수를 꼽으라면 다들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누구 한 명이 이끈 팀이 아니기 때문이다. ‘압도적 1강’ 전북에서 득점 상위권 5위에 단 한 명의 선수도 없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최다 득점자는 12골을 넣은 에두다. 강원FC 디에고와 득점수가 같다.

도움 순위 10위권 안에도 전북 선수는 단 한 명이다. 이재성이 9개의 도움으로 도움 랭킹 4위에 올라 있을 뿐이다. 승리를 책임지는 ‘에이스’ 한 명의 활약이 아니라 다양한 선수들이 다양한 골을 뽑아냈다는 점이 더 무시무시하다. 올 시즌 전북의 강점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김신욱이 10골, 이승기가 9골, 이동국이 8골이다. 전북 공격수들은 ‘십시일반’했다. 그런데도 올 시즌 최다 득점 2위인 수원보다도 9골이 더 많다. 이런 팀을 막기란 대단히 버겁다. 올 시즌 전북이 우승을 확정지었음에도 아이러니하게 리그 MVP로 강력히 떠오를만한 전북 선수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진짜 무서운 팀은 20골을 넣는 공격수 한 명을 보유한 팀이 아니라 10골을 넣는 공격수 3~4명이 있는 팀이다.

전북은 통산 5번째 우승을 확정지었다. ⓒ프로축구연맹

2. 앞으로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앞서 말한 것처럼 전북은 누구 한 명의 팀이 아니다. 단순히 비싼 선수를 한두 명 사와 한 시즌 농사를 짓는 팀의 차원을 넘어섰다. 전포지션에 걸쳐 짜임새가 있다. 한두 명이 부상으로 쓰러져도 무너지는 팀이 아니다. 데뷔 시즌부터 엄청난 활약을 선보인 중앙 수비수 김민재는 군대에 가거나 해외에 진출하지 않는 한 10년 넘게 전북 수비를 책임질 것이다. 조성환과 박원재, 장윤호, 한교원 등 1.3군급 선수들도 여전히 즐비하다. 이들이 작정하고 팀을 떠나지 않는 이상 전북의 엄청난 독주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전북의 약점을 꼽는다면 골키퍼 포지션이 다른 포지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 정도다.

홍정남이 올 시즌 골문을 지켰지만 리그 최강팀 주전 골키퍼로 나서기에는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은퇴를 선언한 에두를 대신할 공격수 한 명 정도 영입으로도 전북은 내년 시즌에도 여전한 우승 후보 1순위가 될 것이다. 전북이 또 다른 누군가를 영입한다면 그건 K리그 클래식 우승이 아니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한 준비일 것이다. 최강희 감독도 우승을 확정지은 뒤 “전북은 더 강한 팀이 되고 싶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더 경쟁력이 큰 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선수들을 지키기만 해도 ‘압도적 1강’인데 더 강해지려는 의지까지 있다면 그 누구도 전북을 쉽게 넘지 못할 것이다.

3. 노장의 중요성

이동국은 올 시즌 9골 5도움밖에(?) 하지 못했지만 그 이상의 존재다. 이제는 전북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가 됐다. 다른 팀 팬들은 죽도록 싫어하는 조성환도 36세의 나이로 중요한 순간마다 수비를 선보였다. 늘 전북은 노장과 신예의 조화를 갖춘 팀이었다. 골문이 부실할 때는 이미 전성기에서 기량이 떨어지고 있던 최은성을 데려와 적절히 기용했고 그는 이제 전북 골키퍼 코치로 팀에 기여하고 있다. 김상식도 마찬가지다. 김상식이 2009년 전북으로 이적했을 때의 나이가 33살이었다. 남들은 다 늙었다고 했지만 김상식은 전북에서 5시즌을 뛰며 세 번의 우승을 이끌어 냈고 지금도 코치로 활약 중이다. 전북은 늘 노장을 잘 활용했다.

노장까지는 아니지만 조재진의 예도 전북의 스타일을 잘 설명해준다. 전북이 명가로 발전한 건 2008년 조재진을 영입한 뒤부터였다. 당시 조재진은 유럽 진출을 노리다 일이 꼬이자 아쉬운 마음에 전북 유니폼을 입은 ‘이방인’이었을 뿐이다. 그는 2008년 전북 유니폼을 입고 31경기에 나서 10골 3도움을 기록하며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 게 활약의 전부다. 하지만 그는 이듬해 이적료 15억 원을 안기고 J리그로 떠났고 전북은 이 돈으로 에닝요와 진경선, 하대성을 영입할 수 있었다. 전북이 가장 잘 나가는 건 노장과 주춤한 선수들을 영입하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어린 선수들만을 대접하는 K리그 풍토에서 전북의 이런 선수단 운영은 더 돋보였다.

4. 위기에 강했다

전북이 우승을 예감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지난 8일 제주와의 원정경기가 우승의 분수령이었다. 상주와 대구, 수원삼성을 상대로 2무 1패에 머물며 제주가 턱밑까지 추격한 상황에서 전북은 제주 원정을 떠났다. 아마도 이 경기에서 제주가 전북을 잡았더라면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우승의 향방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북은 이 위기의 순간 원정경기에서 1-0 승리를 챙겼다. 후반 종료 직전 김진수의 골로 극적인 승리를 챙겼다. 그리고 지난 29일 다시 만난 제주에도 3-0으로 완승을 하며 제주의 추격 의지를 완벽히 꺾었다. 이 두 차례 전북-제주전은 챔피언결정전이라고 봐도 무방할 중요한 승부였다.

제주는 이 승점 6점짜리 경기 두 번을 놓쳤고 전북은 이 두 경기에서 승점을 6점이나 쌓으며 제주의 승점을 묶었다. 물론 이외에도 올 시즌 전북에는 몇 번 위기가 있었다. 특히 지난 5월 3일 홈에서 제주에 0-4 대패를 당한 경기는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전북은 8경기 연속 무패(5승 3무)를 이어가며 다시 살아났다. 특히나 제주전 4실점 이후 치른 6경기에서는 단 두 골만을 내줬다. 전북이 시즌을 두 경기가 남겨 놓고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이렇게 위기의 순간 흔들리지 않고 살아났고 승점 6점짜리 경기를 확실히 잡았기 때문이다. 위기에 강한 팀은 좋은 성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전북은 통산 5번째 우승을 확정지었다. ⓒ프로축구연맹

5. 다른 팀의 투자가 부족하다

전북의 독주는 2010년대 들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북에 박수를 보낼 만한 일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팀들의 투자가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전북이 계속 더 강해지는 동안 다른 K리그 클래식 빅클럽들은 지갑을 닫았고 근근이 운영을 이어가는 정도였다. 해외에서 돌아오는 선수들은 대부분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귀하는 이들뿐이지 구단이 야심차게 투자해 미래를 보고 데려온 선수들은 아니다. 반면 전북은 군 문제와는 별개로 유럽에서 실패를 맛본 김진수와 김보경 등을 영입했다. 이 정도 투자가 다른 팀에서는 사라졌다. 이런 투자와 의지의 차이가 결국 전북과 다른 팀들의 격차로 이어졌다. 다른 팀들이 투자하지 않는다면 전북과의 격차는 유지되거나 더 벌어질 것이다.

선수층이 탄탄한 전북의 K리그 독주를 다른 팀들이 막으려면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당분간은 그런 화끈한 투자를 할 팀은 없어 보인다. 전북이 애매하게 승리하거나 판정 혜택을 받은 듯한 경기를 펼치면 일부에서는 “전북이 혹시 또 심판에게 금품을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물론 의심은 자유지만 이런 불평을 쏟아내는 동시에 자기가 응원하는 팀에 “투자하라”는 목소리도 계속 내야 한다. 전북의 독주가 부정한 방법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앞으로도 전북은 절대 이길 수 없다. 참고로 전북은 지난 해 운영비로만 무려 453억 원을 썼다. 전북의 독주를 막기란 쉽지 않다. 부천이 K리그 클래식으로 올라오지 않는 한.

6. 전북 팬은 우승을 즐겨도 좋다

전북 팬들은 어느 순간부터 죄인 아닌 죄인이 됐다. 전북이 심판에게 금품을 건넸고 이후에도 심판 판정 혜택을 많이 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많기 때문이다. 프로축구연맹의 징계에서도 전북 선수들이 피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 물론 과거 잘못으로 승점 삭감을 당하는 등 반성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늘 반성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반성이 있다면 이번 우승은 충분히 즐겨도 좋다. 전북은 어차피 잘하면 잘한다고 욕을 먹고 못하면 못한다고 비아냥들을 게 뻔한데 이왕이면 잘해서 우승하는 게 더 낫지 않은가. 어차피 전북 팬이라면 과거 잘못에 대한 지적은 늘 안고 가야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우승까지 폄훼할 수는 없다.

분위기가 삭막한 건 사실이다. 전북 우승에 대해 축하를 보내거나 장점을 꼽은 기사를 쓰는 것만으로도 돌이 날아올 만큼 ‘反전북’ 정서가 커졌다. 하지만 다른 팀이 우승을 했어도 축하를 보내거나 우승 원동력을 꼽는 기사를 썼을 텐데 ‘反전북’ 정서 때문에 기사를 피하는 것도 비겁해 보인다. 어쩌겠나. 우승은 즐기되 과거 잘못은 안고 가야할 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난 시즌 인천유나이티드의 잔류에도 축하를 보냈고 경남FC의 K리그 챌린지 우승에도 “축하한다”고 자유롭게 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전북에는 이런 축하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승한 팀에 대한 축하는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전북의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우승을 축하한다. 이 순간 만큼은 전북 팬들이 이 우승을 마음껏 즐겨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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