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FC와 부산아이파크의 경기를 앞두고 故조진호 감독을 추모하기 위해 묵념이 진행되고 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수원=김현회 기자] 세상에서 가장 슬픈 축구 경기가 열렸다. 웃음과 즐거움이 가득차야 할 축구경기는 경기 시작 전부터 끝까지 침울했고 슬펐다. 이별의 연속이었던 경기였기 때문이다. 양쪽 감독대행 모두 경기 전부터 눈물을 쏟았고 팬들 역시 검은 색 바탕의 걸개를 내걸었다. 이런 경기는 처음이었다. 14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2017 K리그 챌린지 수원FC와 부산아이파크의 경기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맞대결이었다.

“지금도 믿을 수 없어요”

故조진호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첫 경기를 치른 부산아이파크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불과 일주일 전 경남과의 원정경기에서 대역전 우승 및 다이렉트 승격을 노릴 때와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일주일 만에 많은 게 바뀌었다. 지난 10일 故조진호 감독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 그 자리에는 고인 대신 이승엽 코치가 앉아야 했다. 경기 전부터 이승엽 코치는 착잡한 표정으로 몸을 푸는 선수들을 지켜봤다.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승엽 코치는 이 경기를 특별하게 준비하지 않았다. “원래 감독님이 하셨던 것처럼 하려고요.” 그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 미치겠네요.” 목에 메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숨을 고른 뒤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도 감독님이 옆에 계신 것 같아요. 잠도 자지 못하겠고 눈만 감으면 감독님 얼굴이 아른 거려요. 선수들 앞에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인데 선수들 얼굴만 봐도 다 알겠어요. 다들 저처럼 힘들어하고 감독님을 그리워하죠.”

이승엽 코치는 대화를 나누면서 몇 번이고 애써 눈물을 참았다. 경기 전 냉정함을 찾아야 하는 수장으로서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미 그의 마음은 고인을 생각하며 무너져 있었다. 선수들에게 故조진호 감독을 위해 따로 주문한 것도 없다. “선수들에게 따로 이야기할 게 없었어요. 저보다 선수들이 아마 더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더군다나 부산 선수들은 故조진호 감독의 발인을 함께하기 위해 빈소에서 밤을 지새우며 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부산 이승엽 코치는 故조진호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스포츠니어스

“거의 다 왔는데…” 이승엽 코치의 눈물

“감독님 가족 분들께서 그래도 선수들이 다가올 경기에 집중하셨으면 좋겠다면서 김해 화장장까지만 같이 하자고 하셨어요. 그 이후 유해 안치 때까지 선수단이 다 움직이면 경기에 지장이 있을까봐 배려해 주신 거죠.” 이승엽 코치는 대화 내내 울먹였다.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너무 상처가 크고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아요.” 누구보다도 유쾌하고 쾌활했던 故조진호 감독의 빈자리는 크게 느껴졌다. 몸을 푸는 선수단의 분위기도 차분했고 팬들 역시 차분하게 추모 걸개를 내걸고 경기를 준비했다.

이승엽 코치는 故조진호 감독을 많이 그리워했다. “경기 도중에는 경기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할 텐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아마 오늘 경기가 끝나면 감독님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아요. 그래도 오늘 경기에 또 최선을 다해야죠. 행님도, 아니 감독님도 그걸 원하실 테니까요. 올 시즌 같이 노력해서 꼭 K리그 클래식에 같이 가자고 했는데… 이제 거의 다 왔는데…” 경기가 시작되자 이승엽 코치는 故조진호 감독이 늘 수첩을 들고 앉아 있던 벤치는 비워놓은 채 바로 그 옆에 앉았다.

하지만 부산아이파크만 이별을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수원FC도 이 경기에 많은 슬픔이 묻어있었다. 무려 15년 동안 수원FC와 함께 했던 조종화 감독대행을 비롯해 수원FC 코치진이 이 경기를 끝으로 해임됐기 때문이다. 김대의 신임감독이 부임하면서 대대적인 개혁을 감행하려고 한 수원FC는 기존 코치진도 모두 물갈이하기로 했다. 조종화 코치를 비롯해 양종후 코치와 이승준 코치 등이 모두 팀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됐다. 코치진은 경기 사흘 전 구단으로부터 이같은 통보를 들어야 했다.

15년 머물던 팀 떠나는 조종화, 양종후 코치

지난 8월 조덕제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팀을 떠난 이후 팀을 이끌던 조종화 코치는 무려 15년 동안 이 팀에 헌신한 인물이었다. 2003년 내셔널리그 수원시청 축구단에 입단해 선수와 코치를 거쳐 감독대행까지 경험한 수원FC 역사의 산증인이다. 양종후 코치 역시 2003년부터 수원FC와 함께했다. 하지만 15년의 인연도 하루 아침에 끝이 나고 말았다. 조종화 코치의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저도 오늘 마지막 경기입니다. 이게 현실인가 싶네요. 막상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날이 되니 여기 하나 하나 다 추억이 묻은 곳이 앞으로도 많이 그리울 것 같아요.” 내셔널리그와 K리그 챌린지, K리그 클래식까지 수원FC가 이룬 모든 역사와 함께 했기에 더더욱 그랬다. 조종화 코치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저는 수원FC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요일별로 어떤 식사 메뉴가 나오는지까지도 다 알아요. 정든 곳을 떠나려니 마음이 착잡합니다. 구단에 발전이 있으려면 변화가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변화가 너무 없어도 구단 차원의 발전이 없잖아요.” 조종화 코치도 경기 시작 전 대화를 나누며 눈시울을 붉혔다.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은 터라 조종화 코치를 포함한 수원FC 코치진은 미래에 대한 계획도 정하지 못했다. “오늘 경기가 끝나면 일단 쉬어야죠. 시즌 도중 새로운 자리를 찾아볼 수도 없잖아요. 일단 팀을 떠난 뒤 쉬건 공부를 하건 할 생각입니다.” 그러면서도 조종화 코치는 선수들을 걱정했다. “오늘 신임감독이 위에서 지켜볼 텐데 이제 외국인 선수 재계약도 10월 안에 마무리해야 되거든요. 레이어가 지난 경기에서 머리를 다쳐 뺐는데 재계약 문제가 고민이에요.”

늘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조덕제 감독이 떠난 벤치를 지켰던 조종화 코치는 이날 검정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故조진호 감독에 대한 예의 때문이었지만 하필이면 양복을 차려 입은 날이 그의 수원FC 마지막 경기였으니 더 감정은 복잡미묘했다. “수원에 15년 동안 있던 저에게도 특별한 경기지만 진호형을 보내는 경기잖아요. 진호형하고는 올림픽 대표팀 시절부터도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이 있어요. 원래 이렇게 양복을 잘 안 입는데 마지막 예의를 표하기 위해 입었어요. 그런데 그날이 저도 팀을 떠나는 날이라니 뭔가 슬프네요. 부산도 분위기가 좋지 않지만 우리 분위기도 좋은 편이 아니라 아마 선수들이 부담을 많이 느낄 것 같아요.” 조종화 코치의 눈가도 이미 촉촉해져 있었다.

부산 이승엽 코치는 故조진호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스포츠니어스

이별이 가득했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축구경기

조종화 코치가 故조진호 감독 이야기를 꺼내며 그를 추억하는 동안 이승엽 코치는 조종화 코치 이야기를 했다. “같이 포항에 있었어요. 이번 경기를 끝으로 팀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쪽도 이별을 해야 하는 경기라 더 착잡하네요.” 조종화 코치는 작별을 아쉬워하면서도 새로운 감독이 수원FC를 잘 이끌어주길 바랐다. “김대의 감독은 저하고 대학교 동기에요. 아마 잘할 겁니다. 나가는 입장에서 제가 좋은 말을 많이 해주고 싶네요.” 경기 전부터 굉장히 슬픈 분위기 속에 준비했던 이 경기는 故조진호 감독을 추모하는 묵념을 한 뒤 차분하게 시작됐다.

경기 내내 축구경기의 박진감보다는 차분함과 슬픔이 감도는 경기가 진행됐다. 이날 후반 11분 페널티킥 골을 기록한 이정협과 부산 선수들은 부산 서포터스가 내건 故조진호 감독 사진으로 가 입을 맞추고 인사를 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경기가 끝난 뒤 이정협은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오열했다. “오늘 승리를 감독님과 감독님 유가족분들에게 마치고 싶어요. K리그 클래식에 가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감독님의 얼굴이 담긴 현수막을 보고 마음이 찡해졌어요. 많이 생각나고 그립습니다. 한 동안 부진했는데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 많이 다독여주셨거든요. 감독님이 떠나고 나서 골을 넣어 죄송한 마음입니다. 더 빨리 넣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이정협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이승엽 코치도 조진호 감독을 떠올리며 울먹였다. 고인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수원FC 조종화 코치도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머금었다. “죄송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드리고 싶은데 오늘은 제 감정이 너무 복받쳐 이야기를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감정을 다스리던 조종화 코치는 결국 짧은 인사만을 남긴 채 허리 숙여 인사를 한 뒤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이 경기는 이렇게 슬픔과 이별의 연속이었다.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주기 위한 축구가 또 이런 날에는 너무나도 슬프고 잔인하게 다가왔다.

누구나 이별을 한다. 만나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이별이 불쑥 찾아오는 건 참 견디기 어렵다. 이 경기가 그랬다. 늘 밝게 웃으며 그 자리를 지키던 한 감독은 하늘나라고 갔고 남은 이들은 그를 너무나도 그리워했다. 그리고 반대편 벤치를 지키던 한 지도자 역시 무려 15년이라는 세월을 헌신했지만 이 경기를 끝으로 작별해야 했다. 이승엽 코치는 故조진호 감독에게 “거의 다 왔는데…”라며 눈물을 흘렸고 조종화 코치는 “우리 또 언제 볼 수 있을까요”라며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축구경기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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