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컵 위해 350km 이상 달려온 사람들

이들은 우승컵을 위해 350km 이상을 달려왔다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우승컵을 들기 위해 먼 거리를 달려온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더 멀리서 온 사람들이 우승컵을 들었다. 네팔 이민자 축구대회에서 거제도에서 동두천까지 올라온 사람들이 대회 우승을 거뒀다.

10월 5일 추석 연휴, 동두천종합운동장에서 네팔 이민자 축구대회가 열렸다. 아침 7시부터 토너먼트 대회를 거친 두 팀이 저녁 5시경 결승전에서 만났다. 결승전이 열린 곳은 동두천이었는데 결승에 올라온 팀들의 출발 지역이 범상치 않다.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팀은 거제도에서, 흰색 유니폼을 입은 팀은 목포에서 올라왔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올라온 것이나 다름없다.

우승컵 들려고 거제에서 370km를 달려왔습니다 ⓒ 스포츠니어스
350km를 달려온 목포팀도 네팔 역사에 길이 남을 사진을 찍었다 ⓒ 스포츠니어스

최전방에서 열린 남부 더비

목포팀은 계속 주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렀기에 결승전 이전에도 지켜볼 수 있었다. 주장 완장을 찬 선수는 왜소증 때문인 듯 키가 매우 작았다. 최전방에서 황희찬처럼 저돌적인 스피드로 부지런히 뛰는 선수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은 수비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수비수들의 긴 역습 패스가 정확한 팀이었다. 그렇게 준준결승과 준결승전에서 무승부를 거둬 두 경기 모두 승부차기로 결승에 올라온 악착같은 팀이었다. 거제도 팀은 보조구장에서 경기를 치렀기에 지켜보지 못했다.

거제도팀도 결승까지 올라온 팀답게 우월한 체격과 빌드업으로 경기를 지배했다. 목포팀은 그래도 악착같이 버텼다. 실점 위기를 극복하면 바로 긴 패스로 상대 수비 뒷공간에 공을 뿌렸다. 그렇게 전반과 후반을 치렀다. 경기 종료 2분 전 거제도 팀의 13번 선수가 박스 안 헤더 경합에서 공을 따내며 결승골을 기록해 1-0으로 경기는 마무리됐다. 아침 7시부터 연달아 경기를 치른 두 팀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모두 그라운드 위에 쓰러졌다.

곧이어 시상식이 열렸고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거제도팀은 대회 우승을 즐겼다. 그런데 목포팀 선수들의 표정도 싱글벙글했다. 보통 결승전에서 아쉽게 패배하면 아쉬움에 못이겨 어두운 표정을 짓게 마련인데 상대 팀의 우승을 웃으면서 축하해줬다.

우승 시상식의 열기가 대단하다 ⓒ 스포츠니어스

너무 멀리서 온 거 아니에요?

경기를 끝까지 지켜본 거제도 동료들도 네팔 전통 타악기를 들고 그라운드 위에서 선수들과 기쁨을 함께했다. 결승골을 기록한 13번 선수를 인터뷰하려 했지만 한국어를 못한다고 해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동료를 불렀다.

인터뷰에 응해준 선수는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으로 질문에 응해줬다. 이미 대회의 피로는 잊은 듯했다. 우승 소감을 묻는 말에 다소 어색한 한국말로 “너무 기뻐요”라는 간단한 말 한마디만 해줬지만 이미 그 표정으로 그의 기분을 읽을 수 있었다.

거제도에서 동두천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370km. 대한민국 거의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올라와 우승컵을 들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먼 거리를 올라왔는데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대단하다고, 힘들지는 않냐고 물으니 “우린 어차피 외국에서 왔잖아요”라며 키득거렸다.

“우리 축구 열심히 했어요. 우리 해운 조선에 있어서 네팔 사람 많아요. 600명 정도 있어요. 같이 모여서 좋아요”라고 말하며 웃는 그에게 프로축구에서는 조심스러운 질문도 던졌다. “상금이 250만 원이라면서요? 그걸로 뭐 할거에요?”라고 물으니 “멀리에서 왔으니까 같이 모여서… 축제! 축제할 거에요”라며 기쁜 마음을 전달했다. 이어 “우리 원래 잘하는 팀이에요. 이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참가비도 많이 냈어요. 낸 만큼 얻어가요”라고 덧붙이며 한국어를 알아듣는 주변 동료들과 기자를 웃겼다.

우승을 기뻐하는 거제도팀 ⓒ 스포츠니어스

제발 목포 사람이면 광주 응원합시다

아깝게 우승컵을 놓친 목포 선수들에게도 다가갔다. 목포에서 동두천도 약 350km 떨어진 거리다. 멀리서 왔는데 우승을 놓쳐 아쉬울 법도 했다. 원래는 수차례 선방했지만 아쉽게 한 골을 실점한 골키퍼를 인터뷰하려 했다. 골키퍼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니 “저 말고 쟤가 한국어 잘해요”라며 다른 선수를 추천해줬다. 네팔 사람들 인터뷰, 쉽지 않다.

목포팀 선수는 신나는 듯한 말투로 인터뷰에 응해줬다. 거제도팀 선수가 표정으로 인터뷰를 해줬다면 목포팀 선수는 말투로 그의 기분을 읽을 수 있었다. 인터뷰에 응해준 펄산트 로호니 씨는 “졌지만 기분 너무 좋아요”라며 경기 소감을 와르르 쏟아냈다.

“우리 멀리서 왔어요. 계속 다섯 경기 했어요. 마지막엔 피곤했지만 열심히 뛰었어요. 마지막 2분 남기고 골 먹어서 졌지만 기분 너무 좋아. 선수들 너무 열심히 해줬어요. 이렇게 네팔 사람들 모이니까 기분도 너무 좋았어요. 2등 했지만 우승했다고 생각해요. 멀리서 와서 2등까지 했어요”

로호니 씨와 동료들은 평소 목포 공장에서 일한다고 전했다. 일이 고되고 힘들지만 동료들과 주말마다 모여서 연습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정말 경기를 잘했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우리 집도 없고 가족도 없어. 친구끼리 해요. 축구 때문에 주말마다 만날 수 있고 재밌게 놀아요. 마음이 너무 기뻐요. 주말마다 연습하고 같이 식사하고 너무 좋고 재밌게 지내고 있어요. 일도 힘들지만 행복하게 잘 지내요.”

로호니 씨가 말을 워낙 잘해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목포에서 혹시 K리그도 챙겨봐요?” 로호니 씨는 “K리그도 네팔 사람들이랑 같이 보러 가요. 광주FC 경기 봐요. 월드컵경기장에 주말마다 가요. 전라도라서 광주 좋아해요”라고 전했다. 그래서 더 물어봤다. “전북이랑 전남도 전라도잖아요?” 그러더니 로호니 씨는 “광주가 우리 동네 근처잖아요. 전북이랑 전남은 우리는 별로예요. 광주가 더 좋아요”라고 전했다. 로호니 씨, 네팔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인 것 같다.

나…나도 우승컵 한 번 만져보자… ⓒ 스포츠니어스

“언제 내려가냐”는 질문에 로호니 씨는 “오늘은 동대문 가서 상금으로 맛있게 먹고 놀 거에요. 다음 날 내려가요”라며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경기가 끝나고 시상식이 끝나니 시간은 7시를 훌쩍 넘었다. 동두천종합운동장의 조명도 하나 둘 씩 꺼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네팔 사람들은 집에 갈 생각이 없었다. 거제도로, 목포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인데 그 한순간이 아쉬워서 서로서로 기념사진을 찍고 웃고 떠들며 그 자리를 지켰다.

intaekd@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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