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호 추모④] 아무도 그 경기가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부산 조진호 감독
트레이닝복이 아닌 정장을 입은 고인의 마지막 경기 기자회견 모습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이번주는 상당히 바쁠 예정이었다.

지난 8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경남FC와 부산 아이파크의 경기 취재를 다녀왔다. K리그 챌린지 1위 팀과 2위 팀의 맞대결 답게 명승부가 펼쳐졌다. 덕분에 기사 아이템을 한아름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몸은 고생했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고생스러울텐데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걱정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던 <스포츠니어스> 기자들에게 “이런 경기 참 혼자 보기 아까웠다”는 자랑도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10일 아침, 친한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카톡이 왔다. “뉴스 봤어요? 믿겨지지가 않네” 그가 보내준 기사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부산 조진호 감독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당연히 오보라고 생각했다. 불과 며칠 전 인사를 나눴던 사람이었다. 믿을 수 없어 부산 구단에 전화를 걸었다. 구단 관계자의 말을 듣고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게 됐습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은 무너지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충격을 받았던 것일까.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두 팀의 경기를 곱씹으며 다시 한 번 진한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그토록 감동이었던 경기가 점점 자책과 후회로 가득한 한 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故조진호 감독의 마지막 경기가 다름아닌 바로 그 경기였기 때문이다.

언제나 유쾌했지만 미묘하게 달랐던 그날의 라커룸

부산의 홈 경기에 가면 故조진호 감독이 항상 건네는 인사가 있다. “아이고 이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하셨네요.”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장거리 여행으로 지친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든다. 경남과 부산이 맞붙은 이날은 부산의 원정 경기였지만 그는 사전 인터뷰에 참석한 내게 그렇게 인사를 건넸다.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던 故조진호 감독이었다. 그는 한창 취재진과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날 따라 故조진호 감독 세미 정장을 입고 있었다. 평소 그는 구단의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는다. 특히 원정에서 정장을 입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날은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랐다. 단지 중요한 경기였기 때문에 그렇게 입은 것일까? 아니면 당신도 모르게 마지막 경기를 준비했던 것일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故조진호 감독은 상대 팀 김종부 감독에 대한 칭찬을 했다. “김종부 감독님 모습 봤어요? 어휴 말끔하게 차려 입으시고 얼굴이 아주 좋으시더라구. 준비 잘 하시고 잘 주무셨나봐.” 1위의 여유에 부러움이 살짝 묻어난 말이었다. 그 역시 말끔했다. 하지만 약간 수척해 보였다. 당시에는 그저 우승에 대한 고민이 많은 승부사의 고뇌 정도로 생각했다.

故조진호 감독의 패션을 보며 과거 “잔디에 물을 많이 뿌려야 슬라이딩 세레머니를 한다. 물 없으면 바지에 구멍이 나서 안한다”는 것과 “경남이 지난 맞대결에서 잔디에 물을 안뿌리는 바람에 부산이 고생을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웃으면서 질문을 던졌다. “감독님, 오늘은 경남이 잔디에 물을 많이 뿌리던데요?” 그는 세리머니에 대한 이야기 대신 경기력에 대한 농담으로 응수했다. “거참, 뿌리지 않을 줄 알고 우리도 물 안뿌리고 훈련했는데 큰일났네.”

예상 외로 경남 추격에 대한 부담감은 조금 내려놓은 모습이었다. “이겨도 부산은 아직 경남과 승점 차가 남아있다”는 질문에 故조진호 감독은 “경남을 이기면 우승 확률은 반반이라고 본다”면서도 “거의 꺼져가는 불씨를 촛불 정도로 다시 살리는 수준이지”라면서 씩 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치열하게 경기를 준비했다. 항상 도전이라는 것을 가치 있게 여겼던 故조진호 감독이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걱정은 다른 곳에 있었다. 공격이었다. “우리 선수들이 정말 고군분투해서 열심히 해주고 있지만 결국 K리그 챌린지 우승을 위해서는 한 시즌에 20골 안팎을 책임질 수 있는 외국인 공격수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는 잠시 후 경기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한 기자가 “아드리아노가 그런 케이스냐”라고 묻자 얼굴이 활짝 밝아지며 “그렇지!”라고 외쳤다. 대전 이후 한 번도 같은 팀에서 함께하지 못한 아드리아노다. 하지만 그는 故조진호 감독의 자랑스러운 제자 중 하나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故조진호 감독 그 제자에게 큰 슬픔을 안겨줄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문제는 현재 부산에 아드리아노와 같은 선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정협이나 임상협 같은 선수들이 잘해주지만 우리는 말컹 같은 선수가 없네요. 대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레오를 데려왔는데 다리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어요. 남은 시즌에 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올 시즌 외국인 선수 운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니 “그건 그렇네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사전 기자회견이었다. 경기 후 기자회견보다 사전 기자회견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진행된다. 그 때 만일 내가 故조진호 감독이 평소에 심장약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적어도 건강은 괜찮으신지 물어봤다면 달라졌을까. 이미 지난 일이다. 하지만 후회는 지난 일을 돌이키고 싶을 때 드는 법이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백 번이고 돌렸을 것이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 잠시 잊혀져야 했던 고인

경기 중 故조진호 감독의 모습은 상대 팀 감독이었던 경남 김종부 감독과 상당히 달랐다. 김 감독은 중요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터치 라인 가까이에 나오지 않는다. 반면 故조진호 감독은 계속해서 터치 라인 근처에서 선수들을 지도했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감독이다. 아무래도 故조진호 감독에게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경기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제자들의 몸짓 하나에 드러나는 그의 감정은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간절했고 절박했다.

후반전에는 아예 겉옷을 벗고 선수들을 지도했다. 하지만 0-2 완패는 막을 수 없었다. 경남이 승리의 기쁨에 환호하는 동안 고인은 쓸쓸하게 퇴장했다. 경남이 우승할 가능성은 애초에 높다는 것을 故조진호 감독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감정을 다스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그날 원정 응원석에는 꽤 많은 팬들이 몰려왔다. 그들에게 미안했을 것이다. 故조진호 감독은 항상 ‘프로다움’을 강조했고 그렇기에 팬들을 아꼈다.

경남FC
경남의 기쁨이 그라운드를 덮는 동안 고인은 그의 마지막 경기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 프로축구연맹

이날 부산의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누가 잘못했다’고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투혼을 발휘했다. 하지만 경남을 이길 수는 없었다. 故조진호 감독도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무력함을 느낄 수도 있었고 자책감이 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낙천적이고 유쾌했던 고인이지만 패배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사실 이런 경기에서는 승장에게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다. 경기 종료 후 경남은 승리의 환희로 가득찼다. 항상 수줍게 웃는 정도로 감정을 표현했던 김종부 감독이 활짝 웃고 있었다. 말컹은 아예 관중석으로 뛰어 들었다. 조용히 퇴장하는 故조진호 감독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부산 구단 관계자나 팬들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경남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그가 혼자 짊어졌어야 할 고독함과 스트레스를 알아주지 못한 것 같아서.

지켜지지 못한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보자”는 약속

경기 후 故조진호 감독은 기자회견장에 평소보다 빨리 도착했다. 라커룸과 기자회견장이 가깝다는 것도 감안해야 하지만 그는 상당히 빨리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그가 기자회견에 종종 늦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렇다. 자리에 앉은 그는 전자시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경기 도중 체크를 위해 들고 다니는 시계인 것으로 보였다. 라커룸에 두고 올 법 하지만 故조진호 감독은 계속해서 그것을 손에 들고 있었다. 경기의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리에 앉은 그는 경기 후 소감을 밝히며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목이 약간 쉰 상태였다. 첫 마디는 “일단 경남에 진 것이 아니라 말컹에게 졌다”는 것이었다. 득점력의 차이가 경기 결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경남을 자극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부산의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이번 경기의 패인을 명확하게 분석한 한 마디였다. 결국 두 팀의 공격력 차이가 승패를 갈랐기 때문이었다.

분명 부산은 공격력의 부재로 패배했다. 하지만 그는 선수들의 능력 부족을 탓하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를 탓했고 “우리”라는 단어로 선수들이 짊어진 짐을 나눴다. “교체 타이밍도 너무 빨랐고 의지가 경남보다 조금 부족했던 것도 있다. 이런 부분은 내가 책임지도록 하겠다.” 일부에서는 책임이라는 단어를 두고 ‘우승 실패로 인한 사퇴 고민’이라는 자극적인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 자리에서 故조진호 감독의 말은 사퇴보다는 ‘패배에 대한 비판은 선수가 아닌 내게 해달라’의 뉘앙스가 강했다.

그래도 故조진호 감독은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1년 내내 그는 “경남을 따라잡겠다”는 말을 수없이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경남전은 그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게다가 고인의 축구는 공격적인 색깔이 강했다. 그런데 공격력의 부재로 패했다. 자존심도 상했을 법 하다. “골 결정력 보완은 계속 훈련을 해도 쉽게 개선이 안된다. 숙제로 남아있다”는 그의 말에는 고민이 가득해 보였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일어난 故조진호 감독은 자리에 앉아있던 취재진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그는 항상 기자회견이 끝나면 기자들과 악수를 했다. 고마움의 표시였을 것이다. 내게도 손을 내밀었다. “다음에 또 봐요”라는 故조진호 감독에게 나는 선뜻 “네”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내게 부산과 경남은 정말 큰 마음을 먹고 가야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플레이오프 때는 꼭 찾아뵙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는 “꼭 오세요”라고 다시 한 번 당부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 됐다. 아직까지 악수했던 감촉이 생생하고 주고 받았던 대화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벌써 그와 한 약속이 깨져버렸다. 다음 방문은 플레이오프가 될 것이라던 내 생각도 여지없이 빗나갔다. 나는 출장에서 돌아와서 이틀 후 다시 부산을 향했다. 그의 유쾌한 도전이 아닌 마지막 가는 길을 보기 위해서였다.

약 다섯 시간을 달려 빈소에 도착해 밥을 먹었다. 故조진호 감독이 사주는 마지막 밥이라 생각하며 꾸역꾸역 먹어치웠다. 영정 사진 속 그는 유난히 활짝 웃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 봤던 미소 그대로였다. 그래서 더 슬프다. 빈소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내온 근조 화환이 줄을 지어 놓여 있었다. 그만큼 그를 모든 사람을 사랑했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사람을 너무나 빨리 데려갔을까, 신을 향해 약간의 원망도 해본다.

과거 故조진호 감독은 내게 “축구도 충분히 인기 스포츠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롯데 자이언츠를 따라잡고 KBO리그를 따라잡고 싶다”는 소망을 넌지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마침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는 이적의 ‘걱정말아요 그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허망하게 떠났지만 적어도 내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해준 그에게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 당신 덕분에 후회 없이 꿈을 꾸었고 이제 당신의 염원을 이어받아 조금씩 새로운 꿈을 꾸어 보겠다고 말이다. 지금도 “이런 멋진 경기 보여줘서 고맙다”고 그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후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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