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호 추모③] 살얼음판 경쟁 속에서 더 빛난 인간미

중국전 관전한 조진호 감독

[스포츠니어스 | 명재영 기자] 별이 졌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비보다. 불과 이틀 전까지 그라운드에서 웃는 얼굴로 팬들을 맞이했던 그다. 감독으로서의 지휘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고 무엇보다 젊었기에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축구인이었다. 많은 이들이 조진호 감독의 부고 소식에 더욱 가슴 아파하는 것은 그의 ‘자상한’ 인품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적으로만 평가받는 살얼음판 경쟁 속에서 빛난 인간미였기에 슬픔이 배가 됐다.

#1 잊을 수 없는 ‘악동’ 아드리아노
‘아재’ 한국인 감독과 혈기왕성한 삼바 감성의 20대 브라질 선수의 조합을 상상해보자. 확연히 다른 문화 차이와 언어로 인한 소통의 단절로 서로에게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그랬다. 이미 출중한 기량을 인정받고 한국 무대로 건너온 수많은 브라질 선수로 위와 같은 문제로 ‘흑역사’를 남긴 채 다시 돌아갔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엄청난 기록을 남긴 채 중국 무대로 떠난 아드리아노 역시 마찬가지였다. 청소년 시절부터 고국에서 유망주로 평가돼 명문 구단을 포함해 팀을 여러 차례 옮겨 다녔다. 그리고 2011년 중국 땅을 밟으면서 아시아권에 이름을 처음 알렸다. 그러나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중국 특유의 문화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면서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조진호와 아드리아노
아드리아노는 평생 조진호 감독을 잊지 못할 것이다 ⓒ 조진호 감독 페이스북

잠깐 동안의 브라질 생활을 접고 K리그 챌린지의 대전시티즌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아드리아노는 아시아 무대에 두 번째 도전을 이어갔다. 그리고 만난 인물이 바로 조진호 감독이었다. 조진호 감독은 다른 감독과는 조금 달랐다. 불필요한 권위 의식을 내비치지 않았다. 비록 말은 직접 통하지 않지만 외국인 선수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가 그들을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모바일 메신저로 직접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자존감을 잃었던 아드리아노의 마음을 여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아드리아노는 깨어났고 그 끝은 모두 알다시피 해피엔딩이었다. 조진호 감독은 대전을 구단 역사에 남을 최강의 모습으로 팀을 K리그 클래식 무대로 끌어 올렸고 아드리아노는 그 과정에서 32경기에 출장해 27골 4도움이라는 초인적인 기록을 쌓았다. 비록 둘은 2015년 여름 조 감독이 대전을 떠나면서 이별했지만, SNS 등을 통해 서로를 계속 응원하며 외국인 선수와 한국인 감독 간의 좋은 사례를 만들어냈다. 아드리아노는 10일 스승의 부고 소식을 접한 뒤 본인의 SNS에 추모 글을 올리며 이국에서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

#2 영원히 남을 상위 스플릿행의 그 순간
조진호 감독은 첫 정식감독을 맡았던 대전에서 2014년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이듬해에는 승격 팀의 한계를 절감하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결국 5월 21일 K리그 클래식에서 단 1승만을 거둔 채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더 큰 무대로 도약하기에 앞서 구단 차원에서의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그렇게 잠시 휴식을 취한 조 감독은 2016시즌 직전 상주상무의 감독으로 K리그 무대에 다시 얼굴을 드러냈다. 상위권 전력이지만 군인 팀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상주와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던 조 감독의 조합에 관심이 모아졌다. 2014시즌의 대전과 마찬가지로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오직 전역만을 바라보며 몸을 사리는 병사 선수단을 하나로 묶는 데 성공한 것이 주효했다. 전술과 선수 관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조 감독은 상주를 상위 스플릿에 진출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재밌는 것은 상위 스플릿을 확정했던 지난해 10월 2일 전북현대전이 끝난 뒤 라커룸에서 찍은 단체 사진이다. 조 감독은 여타 감독과는 다르게 선수단의 앞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포즈를 취했고 이 사진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조진호 감독의 환호
이런 감독을 또 만날 수 있을까 ⓒ 조진호 감독 페이스북

선수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팬들 앞에서의 감정표현도 적극적이었던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조 감독은 부산으로 팀을 옮긴 후에도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며 많은 사진을 남겼다. 그 많은 사진 속에서 인간 조진호는 항상 웃고 있다. 그게 그의 진심이자 인간미였다.

#3 우리 선수들 잘했는데 비행기 타고 갑시다
조진호 감독은 2016시즌이 끝나고 부산아이파크의 사령탑을 잡으면서 스스로 다시 K리그 챌린지로 내려갔다. 남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부산의 부활을 직접 일궈내고 싶다는 조 감독의 의지는 강했다.

그리고 그는 결과로 보여줬다. 비록 2014시즌 대전과 같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경남FC에 가려졌지만 조 감독은 K리그 챌린지로의 강등 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던 부산을 재빨리 수습하며 K리그 클래식 무대로의 복귀를 준비했다. 특히 FA컵에서는 준결승까지 진출하며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라는 생각하지도 못한 꿈의 실현 단 두 발자국을 남겨두고 있다.

FA컵 도전의 백미는 지난 5월 17일에 열린 16강 FC서울전이었다. 홈에서 마주해도 버거운 상대를 머나먼 서울로 원정을 떠난 부산의 승리를 점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조 감독의 승부수는 적중했고 승부차기 끝에 거함을 침몰시키는 데 성공했다. 경기 후 에피소드의 제왕답게 조 감독은 선수단의 이동으로 또 한 번 이슈를 만들었다.

FA컵 서울 원정 부산 선수단
조진호 감독은 선수들의 기를 세워줄 수 있는 스승이자 지도자였다 ⓒ 부산아이파크 제공

FA컵 직후 주말에 있을 리그의 준비를 위해 서울전 경기 당일 부산으로 이동할 계획을 가세웠던 부산은 FA컵 경기가 연장전과 승부차기로 길어지면서 KTX로 이동하는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남은 수단은 최소 5시간 이상이 걸리는 선수단 버스였다. 하지만 서울을 잡으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K리그 클래식 챔피언을 원정에서 잡았는데 최소한 경기 직후만큼은 선수들에게 최대한의 포상을 주자는 게 조 감독의 생각이었다.

결국 구단은 조 감독을 포함해 전체적인 의견을 수렴해서 선수단이 서울에서 하루 숙박한 뒤 비행기로 부산까지 이동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우리 선수들’을 위해서라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조 감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러한 조 감독의 노력 덕분에 부산 선수단은 기분 좋은 밤을 보낸 후 편하게 집으로 복귀했다.

hanno@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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