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수원삼성과 성남FC의 R리그 경기 모습.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이제 막 축구에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이 헷갈려하는 게 있다. 2부리그와 2군리그다. 같은 의미라고 받아들이는 이들이 꽤 많은 편이다. 엄연히 다른 리그인데 이걸 설명하는 게 생각보다는 어렵다. 한국 축구의 2부리그는 K리그 챌린지라고 부르는데 이건 1부리그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의 리그다. 2군리그는 1부리그(K리그 클래식)와 2부리그(K리그 챌린지)와는 별개로 한 팀에서 출전 기회가 적은 2군들만 따로 여는 대회다. 선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후보들의 리그’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제는 2군리그라는 표현대신 우리는 이걸 R리그라고 부른다. 쉬운 개념이긴한데 설명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개념이기도 하다.

폐지와 부활 반복하는 R리그

두 리그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성적을 얼마나 중시하느냐의 차이다. 2부리그는 좋은 성적을 내 승격하면 1부리그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과정 이상으로 결과가 중요하다. 반면 2군리그는 결과보다는 내용을 더 중시한다. 1군에서 부상을 당한 뒤 회복 중인 선수나 자구단 유소년 선수의 테스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2군리그에서는 우승하는 것보다 어린 선수를 발굴하고 부상 당한 선수가 빨리 경기 감각을 찾는 게 더 중시된다. 1군 경기를 대비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고 보면 된다. 2부리그와 2군리그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K리그에서는 R리그라는 2군리그가 열린다. 우여곡절이 많은 대회다. 1990년 한 시즌만 운영됐다가 폐지된 뒤 2000년 재창설됐다. 그리고 나름대로 잘 운영되던 대회였지만 2012년 시즌을 앞두고 다시 폐지를 검토하게 됐다. K리그 승강제 실시를 준비하면서 2부리그가 생기는데 굳이 2군리그까지도 운영해야 하느냐는 문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프로축구연맹은 R리그 폐지를 검토했지만 이 과정에서 대학축구연맹과 마찰을 겪기도 했다. R리그를 폐지하면 선수단 규모가 당연히 축소되고 대학 졸업 선수들의 진로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2012년 시즌에는 연맹이 R리그 참가를 K리그 구단 자율에 맡겼지만 이 시즌을 끝으로 또 다시 R리그는 중단됐다.

하지만 R리그가 불필요한 대회인 것만은 아니었다. 거액을 들여 주전급 선수를 영입할 수 없는 구단에서는 R리그를 통해 유망주를 발굴하는 것도 꽤 중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연맹의 주도가 아니라 일부 구단들이 나섰다. 2013년 대전시티즌과 경남FC, 상주상무, 전북현대 등 네 개 구단이 합의해 R리그를 이어가기로 했다. 출전 선수를 K리그 등록선수에만 국한하지 않고 클럽 유스 선수들과 테스트를 받고 있는 국내외 선수들까지 모두 가능하도록 했다. 연맹이 폐지한 대회를 일부 구단이 다시 살린 것이다. 연맹도 여기에 심판진 배정 등을 지원했다. FC서울도 참가를 검토했지만 다른 팀들이 다 남부지역에 집중돼 원정거리가 멀어 참가하지 못했다.

R리그는 많은 이들의 주목 속에 치러지는 대회는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한 대회다. ⓒ인천유나이티드

R리그가 있어야 하는 이유

하지만 이 대회는 결국 이해 여름 중단되고 말았다. 자체적인 운영 성격이 강한 탓에 한계가 많았다. 타이틀을 놓고 자웅을 겨루는 대회가 아니라 전력 점검 차원의 평가전 형식이어서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하지만 R리그에 대한 필요성은 이후에도 계속 제기됐다. 1군경기에 선발 출장하는 11명과 교체선수 3명을 포함해 한 경기에 나올 수 있는 선수는 14명에 불과하고 한 시즌을 다 돌려도 20여 명의 선수 정도가 1군경기에 출장할 수 있는 상황에서 유망주 발굴과 경기력 점검을 위한 무대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능성 있는 선수를 당장 1군경기에 출장시킬 수는 없으니 R리그를 통해 테스트해봐야 했다. R리그를 성의 있게 참가하려면 그래도 1년에 2억 원 이상이 들지만 한 선수에게 2억 원을 투자해 실패하느니 이 돈으로 가능성 있는 여러 선수를 점검해 보는 게 훨씬 더 이득이라고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

브라질월드컵에서 골까지 넣은 이근호도 R리그 출신이다. 2004년 인천에 입단해 1군 출장 기회를 거의 잡지 못했던 이근호는 줄곧 2군리그에 출전했고 2006년에는 2군리그 우승과 함께 MVP까지 수상했다. 국가대표까지 지낸 강수일도 2008년 R리그 MVP출신이다. 한동원은 2004년 만18세의 나이로 2군리그 MVP와 득점왕을 거머쥐기도 했다. 또한 나이가 꽤 있는 선수들도 주전 경쟁에서 밀렸거나 부상 회복 과정에서 R리그에 참가하기도 한다. 수원삼성 시절 안정환이 관중과 충돌해 욕설을 했던 경기가 바로 R리그였다. 연맹은 이런 R리그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자 2016년부터 R리그를 재개했다. 하지만 R리그는 모든 K리그 구단이 의무적으로 참가하는 대회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참가하는 대회다.

올 시즌에는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 22개 팀 중 12개 팀이 R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K리그 클래식 수원삼성과 FC서울, 제주유나이티드, 울산현대, 인천유나이티드, 대구FC, 강원FC가 참가하고 K리그 챌린지 성남FC와 부천FC, 부산아이파크, 서울이랜드, 안산그리너스 등이 참가했다. 11월 28일까지 팀당 22경기씩 132경기를 치러 플레이오프 없이 최종 순위를 정한다. 23세 이하 국내 선수는 무제한 출전이 가능하고 23세가 넘는 선수는 5명까지 뛸 수 있다. 올 시즌에도 유주안(수원삼성)이나 이정빈, 김보섭(인천), 이은범(제주) 등 유망한 어린 선수들이 R리그에 꾸준히 출전했고 코바와 이석현(FC서울), 백종환(강원) 등 이미 노련한 선수들도 경기력 점검 차원에서 R리그에 출장하기도 했다.

R리그는 많은 이들의 주목 속에 치러지는 대회는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한 대회다. ⓒ인천유나이티드

시즌 끝나도 쉬지 못하는 R리그의 아이러니

그런데 아주 요상한 일이 벌어질 예정이다. R리그에 참가 중인 K리그 챌린지 구단들이 애매한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올 시즌 K리그 챌린지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는 10월 29일 일제히 열린다. 이 10개 팀 중 6개 팀은 이 경기를 끝으로 올 시즌을 마감하고 이후 플레이오프를 통해 살아남은 팀만 계속 시즌을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황당한 건 R리그는 오는 11월 28일까지 경기를 치른다는 점이다. 1군 선수단 일정이 모두 끝나고 휴식을 취해야 할 시기에 R리그는 열리는 것이다. 이미 K리그 챌린지에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서울이랜드와 안산그리너스는 이 애매한 상황을 한 달 넘게 겪어야 한다. 1군 선수들과 코치진은 휴가를 떠나야 하는데 2군 선수들은 R리그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부천과 성남, 부산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거나 플레이오프에서 미끄러지면 이들과 똑같은 신세가 된다. 한 구단 관계자는 걱정이 많았다. “시즌이 끝나면 선수단은 물론이고 프런트도 비시즌 체제로 들어가야 한다. 비시즌이라고 우리가 놀고만 있는 게 아니다. 시즌 결산도 해야 하고 내년 시즌 전지훈련 준비부터 선수 영입 등 준비해야 할 게 많다. 그런데 R리그는 시즌이 끝나고도 한 달 넘게 일정이 남아 있어서 운영을 위한 고민이 많다.” 다른 한 구단 코치진은 “1군 선수 중 경쟁에서 밀린 선수들을 한 달 동안 선수단에 묶여두며 R리그를 준비하도록 할 예정이다. 그런데 누구는 휴가를 받고 누구는 남아 있는 상황이 어수선할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다른 한 구단에서는 아직 남은 R리그 일정과 관련해 어떤 계획도 세우질 못했다.

시즌은 끝나는데 선수단 경기력 점검을 위해 운영 중인 테스트성 대회는 끝나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주객전도다. R리그는 애매한 일정 때문에 또 다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한 연맹의 일정이 아쉽다. K리그 챌린지에서 5개 팀이나 R리그에 참가하는데 연맹이 너무 안일한 대처를 한 건 아닐까. K리그 일정보다 R리그 일정이 더 길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건 상식적인 일이다. K리그 일정이 끝났는데도 R리그가 진행되는 건 마치 겨울방학은 시작했는데 방학하고 4주 동안 매주 학교에 가 쪽지시험을 보는 꼴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R리그는 천안과 보은, 충주, 제천, 부여 등 제3지역 경기가 많다. K리그 시즌은 끝났는데 선수단을 제3지역으로 인솔해야 하는 문제도 상당히 번거롭다.

R리그는 많은 이들의 주목 속에 치러지는 대회는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한 대회다. ⓒ인천유나이티드

R리그에 생겨날 또 다른 문제점

문제는 내년 시즌에도 펼쳐질 수 있다. 연맹에서 R리그를 22세 이하 선수들만 출전할 수 있는 대회로 규정을 바꿀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20세에서 22세의 애매한 연령대 선수들에게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주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R리그가 22세 이하 선수들만 출전하는 대회가 되면 문제는 더 커진다. 백업 멤버까지 14명의 선수를 22세 이하로만 채워야 하는데 이는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소년 육성에 초점을 두고 있는 팀이라고 해도 U-22선수를 경기당 14명씩 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1군에서 준주전급으로 활약하다 밀려나 경기 감각이 떨어진 22세 이상 선수 몇 명이 R리그를 통해 어린 선수들에게 주는 영향이 상당한 상황에서 어린 선수들만의 리그로 문을 좁히는 건 스스로 R리그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R리그는 해당 구단 우선 지명을 받고 대학 무대로 진출한 선수들도 꽤 많이 출장하는 대회다. 그런데 만약 R리그가 U-22 대회가 되면 대학 축구대회와 다를 게 없어진다. 우선 지명 이후 대학으로 보낸 선수들이 많아 여유 있는 구단은 R리그 경기 때마다 대학 선수들을 대거 데려와 유니폼만 갈아 입히고 뛰면 되지만 이러면 대학 축구대회와 다를 바 없다. 반대로 이런 우선 지명 이후 대학 진학 선수가 적은 팀은 선수단 14명을 구성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여러 모로 문제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어린 선수들에게 경험을 쌓게 해주려는 연맹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23세 이상 선수를 5명까지만 뛰게 하고 있는 R리그 현행 규정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선수 육성도 중요하지만 한창 전성기를 달려야할 20대 중반 선수들이 주전에서 밀려났을 때의 경기 감각 유지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R리그에 대한 K리그 구단 관계자들의 말은 대부분 비슷하다. 성가시고 돈이 들어가는 대회라 없으면 구단을 운영하기 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K리그를 생각하면 없어져서는 안 될 대회라는 것도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R리그가 없으면 우리야 편할 텐데 K리그의 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확장시켜야 한다. 우리가 고생스러워도 그게 맞다. 그런데 지금 R리그는 K리그 구단이 자율적으로 참가하는 대회일 뿐이다. 차라리 의무 출전 대회로 개편해 끌고 가야한다. 누구는 나가고 누구는 안 나가고 그런 대회가 돼선 발전이 없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대회지만 이 R리그를 잘 개편해야 K리그의 미래도 그려볼 수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주먹구구식 운영 뿐이라면 폐지됐다가 살아나고 참가했다가 포기하는 지금까지의 모습만이 반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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