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이력서만 100통, 정치권이 흔드는 대전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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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티즌은 최근 이영익 감독 사퇴 이후 감독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대전시티즌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벌써 감독 이력서만 100여 통이 왔다네요.” 대전시티즌 관계자의 푸념 섞인 말이다.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겠지만 이영익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뒤 대전 사령탑을 노리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 호심탐탐 이 자리를 노리고 있던 이들은 전임 감독이 떠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이력서를 보내고 있다. 심지어 K리그 챌린지 현직 감독도 이력서를 보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있다. 이 자리를 많은 이들이 노리는 이유는 하나다. 힘 좀 있는 이들의 ‘빽’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종현 체제로 남은 시즌 치른다”
대전 구단은 공식적으로 아직 감독 공모를 진행하지도 않았다. 이 이력서는 구단 쪽으로 온 것도 아니라 대전시 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시의회 의원도 “이 감독으로 하자”며 친한 감독 이력서를 꽂아 넣었고 지역 체육회부터 온갖 지역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이들도 자기 연줄을 대느라 바쁘다. 이렇게 다 자기 사람을 감독으로 꽂기 위해, 그리고 지도자들은 줄을 잘 서 감독이 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정치적인 암투를 시작했다. 정치적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시도민구단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영익 감독이 떠나자마자 보란 듯이 정치권에 줄을 서 이력서를 넣은 감독이 이렇게 많다는 건 슬픈 일이다.

대전 구단 사무국은 아직 차기 감독 선임 준비를 하지도 못했다. 시에서 뽑을지, 구단 차원에서 뽑을지도 정해진 게 없다. 그래도 혹시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해 국내외 감독을 총망라해 후보군을 정리하기는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구단 자체적인 일이었다. ‘이 정도면 팀을 맡겨도 되겠다’ 정도의 능력만으로 추린 리스트일 뿐 실제로 해당 감독들에게 의사를 물어본 것도 아니다. ‘이 사람이 과연 시민구단에 올까’라는 걱정은 나중 문제라고 생각하고 경험이 있으면서 리그에서 성과를 낸 감독은 다 추렸다. 이 중에는 외국인 감독도 몇 있다. 물론 김종현 감독대행이 아산무궁화와의 원정경기에서 감격적인 역전승을 따내며 선수단을 잘 추스르고 있는 가운데 일단 올 시즌까지는 김종현 감독대행 체제로 갈 가능성을 가장 높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인 힘을 앞세워 ‘자기 사람’을 감독으로 앉히려는 이들은 시를 통해 이력서를 넣고 있다. 사방에서 이력서를 갖다 꽂는다. 시에서도 혼란해 할 정도다. 한 관계자는 “대전시티즌 감독 자리가 이렇게 인기가 좋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래도 프로 감독을 한 번 하면 이후 대학교 등에서도 좋은 조건으로 감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파리 목숨’이란 걸 알아도 이런 시도민구단 감독직에 군침을 흘린다. 혹시 외국인 선수 한두 명이 대박을 치면 프로 무대에서 롱런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리는 전혀 순수하지 않다. 정치적으로 줄을 잘 서 프로 감독이 된다고 해도 그들의 입김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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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익 대전시티즌 전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최근 사임했다. ⓒ대전시티즌

시도민구단에 입김 넣는 지역 내 인사들
심지어 한 시도민구단은 사장이 직접 선수 명단을 짜 감독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감독은 그냥 사장의 명령을 따르는 꼭두각시였다. 낙하산으로 내려온 감독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만약 대전시티즌이 정치적으로 줄을 서 이력서를 낸 100여 명 중 한 명을 감독으로 뽑는다면 그 역시 이런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100명의 경쟁자를 뚫고 최종 선발된 감독은 가장 능력 있는 감독이 아니라 가장 정치를 잘 한 감독일 테니 그가 정치적으로 충성심(?)을 발휘하는 건 자명한 일이다. 대전시티즌 감독에 군침을 흘리는 많은 지도자들과 그들을 이용해 세력을 과시하려는 정치인들은 팀을 멍들게 하고 있다.

비단 대전시티즌 뿐 아니다. 시도민구단 선수 선발 과정에서도 지역 내 유력인사들이 입김을 과시하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전시티즌은 새 시즌을 앞두고 선수 선발 과정에서 숱한 압력을 늘 겪고 있다. 대부분이 대전시장이 임명한 구단 대표이사를 통해 “우리 애 좀 잘 봐달라”고 한다. 윤정섭 현 대표이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가 “테스트는 보게 해 줄테니 그 이후 일은 감독에게 맡긴다”면서 어느 정도 현명하게 대처했고 결국 테스트를 통과한 이는 없었다. 대전 구단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지역에서는 명망 있는 윤정섭 대표가 아예 처음부터 제안을 자를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잘 대처했다. 대전시티즌 역대 대표이사 중에 그래도 가장 합리적으로 역할을 하는 분”이라고 전했다.

윤정섭 대표이사는 올 시즌까지만 하고 팀을 떠나겠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일단 이영익 감독을 선임한 게 그였다. 윤정섭 대표이사는 올 시즌을 앞두고 공석인 감독 자리를 노리는 숱한 지도자들과 지역 내 유력인사들로부터 유혹을 받았지만 소신껏 일을 추진했다. 그래도 이영익 감독이 가장 낫다는 판단을 한 그는 시장실에 찾아가 권선택 대전시장에게 달랑 이력서 한 장만을 내밀었다. 주변으로부터 여러 후보군을 추린 게 아니라 “이 사람이 가장 낫다”며 이영익 감독의 이력서만 내민 것이다. 정치적인 낙하산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이었고 결국 구단주인 권선택 시장으로부터 최종 결제를 받아냈다. 하지만 이영익 감독은 성적부진으로 자진사임했고 윤정섭 대표이사의 입지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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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티즌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을까. ⓒ대전시티즌

‘축구특별시’ 대전은 어디로 가는가
소신을 가지고 추천한 인사가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상황에서 다시 감독직이 공석이 되자 또 다시 파리(?)가 꼬이기 시작했다. 올해까지만 일을 하고 이 자리를 내려 놓겠다고 공언한 윤정섭 대표이사는 감독 선발 권한을 차기 대표이사에게로 물려주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영익 감독 실패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고 새 대표이사 체제로 출범하면서 차기 대표이사와 뜻이 맞는 이가 감독으로 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역 내 유력인사를 통해 대전시에는 감독 이력서가 마치 ‘스팸 메일’처럼 날아들고 있다. 지역 내 유력인사들은 저마다 “이 사람 한 번 써보시라”고 한다.

대전시티즌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시 예산을 받다보니 시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시에서 구단 의견을 무시한 채 정치 싸움에서 이긴 이들을 낙하산으로 꽂는 건 잘못된 일 아닌가. 그들이 대전시티즌을 멍들게 하고 있다.” 대전시티즌은 아직 구단 차원에서 감독 공개 모집을 한 적도 없고 구단으로 이력서가 들어온 건 단 한 장도 없다. 일단은 김종현 감독대행 체제로 올 시즌은 마무리하겠다는 뜻이 강하다. 아산과의 원정경기에서 무승 행진을 끊은 김종현 감독대행이 이 분위기를 잘 수습하는 게 좋다는 판단이었고 새로운 대표이사가 합리적으로 감독을 선발하는 게 좋다는 의미다. 그러니 구단도 모르는 일을 대전시를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는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낙하산 인사와의 싸움은 시도민구단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 됐다. 이런 낙하산 인사가 결국 구단을 멍들게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줄 한 번 잘 서 경력도 쌓고 한 번 스쳐가는 자리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곳이 인생의 터전이자 일부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지역 내 유력인사를 통해 날아든 감독 이력서 100여 통이 참 슬프게 느껴진다. 대전시티즌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어 이력서를 보낸 이들도 있겠지만 과정이 합당하지 않으면 그 의도까지도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전시티즌은 올 시즌 5승 7무 16패를 기록하며 K리그 챌린지 10개 팀 중 꼴찌다. 3부리그와의 승강제가 있었다면 강등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대전시티즌이 부디 이런 입김을 이겨내고 ‘축구특별시’의 자존심을 다시 세울 수 있는 현명한 지도자를 선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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