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정성훈은 4년 만에 K리그에 복귀해 골을 넣었지만 이 골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본 이들은 많지 않다. ⓒ프로축구연맹

‘슬기로운 축구’는 전직 K리그 선수 출신인 이슬기 SPOTV 해설위원의 공간입니다. 대구FC에서 데뷔해 포항스틸러스와 대전시티즌, 인천유나이티드, FC안양 등 다양한 팀에서 활동했던 그는 현재는 은퇴 후 SPOTV에서 K리그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선수 시절 경험과 해설위원의 냉철한 시각을 덧붙여 <스포츠니어스> 독자들에게 독특하고 신선한 칼럼을 전달합니다. -편집자주

[스포츠니어스 | 이슬기 객원 칼럼니스트] 1996년 방학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하게 된 나는 아직도 내 인생의 첫 골을 기억한다. 효제초등학교와의 연습경기였다. 코너킥 상황에서 수비수가 잘못 걷어낸 공이 내 앞에 떨어져 그대로 찼는데 이 공이 골대로 들어갔다. 골 세리머니를 하고 싶었지만 연습경기였고 운이 좋았던 골이라 쑥스러워 아무 내색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계속 그 장면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그런데 내가 그 장면을 계속 떠올린 이유는 첫 골을 넣었다는 기쁨 때문이 아니었다. 세리머니를 못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이렇게 후회했다. ‘아, 황선홍 세리머니 했어야 하는데…’

관중 없는 경기장은 참 썰렁하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황선홍 감독님이 독일전 골을 넣은 뒤 머리를 살짝 흔드는 그 세리머니를 하고 싶었지만 못한 게 한이었다. 나에게는 여전히 그 세리머니가 가장 멋지다. 실제로 포항스틸러스에 입단해 황선홍 감독님과 한 팀에 속했을 때는 골을 넣는다면 이 세리머니를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포항 시절 나에게는 아쉽게도 효제초등학교와의 연습경기와 같은 행운은 없었다. 나에게 있어 첫 골이었던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골 세리머니를 못한 게 한이 됐지만 아무도 없는 텅 빈 경기장에서 골 세리머니를 했어도 참 웃겼을 것이다.

최근 K리그에서 역대 두 번째 무관중 경기가 펼쳐졌다. K리그 챌린지 부천FC1995와 아산무궁화와의 경기였다. 이날 중계 해설위원으로 경기장을 찾게 됐는데 경기장에는 들어오지 못했지만 경기장 밖에서 큰 소리로 응원하는 부천 팬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경기장 내부가 썰렁하다보니 마치 연습경기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구단 프런트와 기자 몇 명 빼고는 관중석에 사람이 없다보니 아마추어 경기처럼 느껴졌다. 다른 경기 해설보다 집중하기도 어려웠고 골 장면이 나와도 흥이 덜했다. 내 감정표현이 서툰 것도 있지만 다른 경기만큼 신나지 않았던 건 분명했다.

이날 정성훈 형님이 4년 만에 K리그로 돌아와 골을 넣었다. 대전시티즌에서 같이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 더 기뻤지만 세리머니를 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다소 어색했다. 프로 무대에서 골은 관중과의 호흡인데 연습경기 같은 무관중 경기에서의 세리머니는 마치 방학초등학교와 효제초등학교와의 1996년 연습경기 같았다. 내 인생 첫 골과 정성훈 형님의 부천 첫 골은 경기에 뛰는 선수와 코치진 말고는 아무도 없는 외로운 골이었다. K리그 챌린지로 돌아온 1979년생 39세 ‘루카 후니’ 형님의 멋진 골이 평범하게 느껴져 너무 아쉬웠다. 이 골을 더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보고 세리머니에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면 골의 가치는 더 빛났을 것이다.

아마추어 대회는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부족한 곳에서 펼쳐진다. ⓒ스포츠니어스

‘빠따’냐 4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연습경기처럼 관중이 없는 느슨한 경기도 힘들지만 압박감이 상상 이상으로 심한 경기는 더 힘들다. 석관중학교 시절 우리는 매번 16강이나 8강에서 떨어졌다. 당시에는 대회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내야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이 관문을 넘지 못해 무척 초조해 했다. 그런데 정말 두려웠던 건 4강에 가지 못하면 좋은 고등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경기가 끝난 뒤 집합을 당해 ‘빠따’를 맞는 것이었다. 진 것이 힘든 게 아니라 그 후에 일어날 일들이 너무 두려웠다. 4강 문턱에서 떨어지면 훈련 강도는 거의 뭐 말할 수 없는 한계 수준까지 올라가곤 했다.

그렇게 또 다시 한 대회 16강전에 진출했는데 나는 당시 공격수였다. 그런데 ‘반드시 이 경기에서 골을 넣고 이기겠다’는 생각보다는 ‘이걸 못 넣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나에게 공이 온다는 게 두려웠고 상대에게 이 공을 빼앗는 게 무서웠다. 기회가 왔는데 이걸 놓쳐서 지게 되면 같이 뛰고 있는 모든 선수들이 나 때문에 힘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찬스가 온다는 게 참 겁이 났다. 축구는 도전의 스포츠지만 나는 당시 최대한 안전한 선택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 눈 앞에는 ‘빠따’가 아른아른거렸다. 세리머니를 하기에도 민망한 관중 없는 경기는 그냥 힘이 빠지는 정도지 이렇게 압박감이 대단한 경기는 겁이 났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전, 우즈베키스탄전을 보는 내내 선수들의 심정이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이건 감독의 ‘빠따’ 정도로 끝날 경기가 아니었다. 절대 져서는 안 되는 이 어마어마한 경기에서 선수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은 엄청났을 것이다. 자칫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빠따’보다 더 무서운 비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이후 대표팀을 향한 온갖 비난과 조롱은 물론 음지에서 맴돌던 소문들도 SNS에서 사실처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경기에서 이기지 못한 대가라고는 해도 아직 어린 20대 선수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처다. 프로선수는 멘탈이 강해야 하지만 이렇게 벼랑 끝에서 전국민이 다 지켜보는 경기를 한다는 건 내가 가늠하지 못할 정도의 압박감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추어 대회는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부족한 곳에서 펼쳐진다. ⓒ스포츠니어스

무관중 경기와 전국민이 지켜보는 경기

물론 경기가 끝난 뒤 대표팀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는 이들도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경기 내용에 화가 났다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가 승부를 바꿔놓을 수 있는 경기에서 선수들의 압박감이 경기를 보는 내내 나에게 전해져 참 안타까웠다. 세계 최고인 리오넬 메시도 월드컵에 대한 심한 부담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경기 도중 구토를 하는 상황이 있었다. 몇 차례 검진에도 그 원인을 찾지 못했고 결국 경기에 대한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원일일 것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세계 최고 수준의 메시도 이런데 다른 선수들은 오죽했을까. 축구 경기라는 게 공만 잘 찬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낀 경기였다.

내용은 좋지 않았지만 결국 한국은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 대표팀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과 개선 방법이 뭘까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일단은 엄청난 압박감을 받은 경기에서도 패하지 않고 월드컵 진출 티켓을 따낸 선수들에게 고생했다는 말부터 전하고 싶다. 무관중 경기와 모두의 눈이 쏠린 상반된 경기를 비슷한 시기에 보니 축구라는 게 참 복잡한 스포츠인 것 같다. 경기장에 사람이 없으면 멋진 골을 넣고도 세리머니 하기가 참 민망하고 너무 많은 관심을 받은 경기에서는 골 찬스에 ‘빠따’가 아른거려 넣을 수 있는 골도 동료에게 돌리게 되더라. 우즈벡전을 지켜보고 침대에 누우니 이런 생각이 들어 한참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대표팀 선수들 정말 힘들었겠네. 그리고 1996년 효제초등학교하고 경기에서 황선홍 세리머니 했었어야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