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읽을 수 있어?” 이상우가 공부하는 선수 된 이유

이상우는 FC안양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 이상우 제공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앞둔 한 수영 선수는 학교 수업을 받기 위해 태릉선수촌을 떠났다. 대한수영연맹은 이에 대해 ‘대표팀 무단이탈’로 규정, 올림픽대표 자격을 박탈하는 조치를 취한다. 이 선수는 학업과 수영을 병행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장희진의 이야기다.

장희진의 뚝심과 소신은 사회적으로 큰 울림을 줬다. ‘공부하는 운동선수, 운동하는 일반 학생’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가의 ‘운동 기계’로 전락한 아이들의 권리를 위한 움직임이 일었다. 그리고 지금 2017년, 여전히 운동하는 학생들은 운동밖에 모른다. 스스로 ‘운동 기계’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운동선수는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뿌리 깊은 편견은 성적을 빌미로 운동부 폭력을 정당화시켰고 공부하지 않아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특기생 입학 제도는 정유라조차 이화여대에 입학할 수 있다는 약점을 노출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 선수들은 발가벗겨진 채 사회로 내몰렸다. 프로 진출에 실패한 선수, 은퇴 후 진로 탐색에 실패한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보다 못한 사람들은 대학 선수들에게 ‘레드 라인’을 제시했다. “C 학점 이상 받은 학생들만 종목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 경기에 뛸 수 없는 선수들과 학부모, 그리고 지도자들과 학교 관계자들까지 반발이 일었다. C0 룰의 장단점과 여러 담론이 오갔다. U리그는 C0 룰을 적용했다. 운영 자금을 인질로 삼았다는 평가도 있고 마땅히 따라야 하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운동선수는 왜 공부해야 하는가. 일부 어른들, 지도자와 학부모들은 왜 선수들의 학업 활동을 제한하고 두려워하는가. 선수들에게 필요한 공부는 과연 무엇인가. 학생 선수들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지도자, 프로 선수들을 넘어 사회 전체가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공부와 나의 축구인생’ ⓒ이상우 제공

그리고 답은 이상우에게 있다

쉽사리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들 속에서 이상우는 모범답안 같은 존재다. 이상우는 FC서울에서 프로로 데뷔한 이후 고양 국민은행, FC안양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가 2016년을 끝으로 은퇴를 결심한다. 그는 은퇴 이후에도 쉴 틈이 없다. 선수 시절 뛰어든 스포츠심리학 공부를 계속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우는 프로 선수 생활과 학업을 병행했다. 은퇴하기 훨씬 이전인 2009년 인하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스포츠심리학 박사과정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다. 그는 “강단에 올라 강의를 하기도 하고 선수들의 심리지도를 하고 있다”라며 근황을 전했다.

일반인들도 학문의 한 영역을 깊숙이 파고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스포츠심리학을 통해 선수 생활을 더 오래 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공부는 그의 선수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이상우는 선수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공부를 택했다. 그는 FC서울에서 그의 인생을 통째로 뒤바꾼 한 인물을 만났다. 당시 팀의 심리 상담을 맡고 있던 김병준 교수다. 그는 선수 시절 위기가 있을 때마다 김 교수를 찾아가 멘탈 훈련을 받으며 슬럼프를 극복했다. 심리 상담을 통해 자신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스포츠심리학 공부를 하면 선수 생활을 더 오래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스포츠심리학이 자신의 선수 생활뿐만 아니라 은퇴 이후 삶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로 그는 김태봉(대전 시티즌)과 이으뜸(아산 무궁화)의 심리 상담을 맡으며 그들의 활약을 도왔다.

운동선수와 공부, 그사이에 자리 잡은 편견

운동선수들은 일반 학생들보다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좋지 않다. 운동장에 있어야 할 사람이 책상에 앉아 공부해야 한다는 것 이상으로 운동선수들을 향한 편견과 싸워야 한다. 대학생 시절에는 운동선수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인식을 노골적으로 접하기도 했다. 등에 ‘KOREA’라고 써진 옷을 입은 국가대표 선수를 향해 “쟤는 저거 읽을 수나 있으려나”라고 말한 어떤 이를 목격한 뒤 “그때 이후로 무식한 축구선수가 되지 말아야겠다”라고 다짐했다. 그는 학업에 뛰어든 뒤로도 이러한 편견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공부하는 선수 출신들을 향한 색안경에 괴리감을 느끼곤 한다”라고 전했다.

그는 또 다른 편견에도 맞서야 했다. 그가 선수 생활을 하며 학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하자 주변에서는 “야, 축구나 해라. 축구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도 하고 그래야지”라며 그를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고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그는 “공부를 시작하면서 축구가 늘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동안 경기력이 떨어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밟으며 무사히 선수 생활을 은퇴한 그의 발언이었기에 더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이상우는 선수생활과 학업을 병행했다 ⓒ 프로축구연맹 제공

일반인들의 편견이 “운동선수들은 무식하다”였다면 지도자들과 학생 선수 학부모들의 편견은 “공부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경기력이 떨어진다”일 것이다. 얼마 전 한 매체에서는 MLS에서 프로 데뷔를 준비하는 한 학생 선수를 조명한 적이 있다. 그 선수는 미국의 학원 축구와 MLS 아카데미 둘 다 경험한 일화를 소개하며 “학교에서 축구를 해서는 ‘풀타임 축구선수’의 삶이 어떤지 절대 알 수 없다. 학교가 제공하는 기회 안에서만 축구를 하면 반쪽짜리 선수가 될 수도 있다. 학원 축구라는 환경 안에서는 선수가 한계에 도전할 기회가 제한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상우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만큼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공부가 경기력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친구들은 국·영·수 중심의 기본교육과정을 강요받은 반면 나는 스포츠심리학을 공부했기 때문일 수 있다”라고 조심스럽게 밝힌 뒤 “운동을 많이 한다고 축구를 잘 하는 게 아니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체계적, 과학적으로 운동을 하는 지가 중요하다. 운동하는 시간이 줄어 경기력이 떨어진다면 무조건 운동 많이 한 사람이 국가대표에 발탁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의 말과 앞서 말한 MLS 유소년 선수의 말을 종합해보니 코칭 커리큘럼의 개선도 중요하게 느껴졌다.

학원 축구의 코칭 커리큘럼이 개선되고 훈련 시간이 줄어든다 한들 운동장에 익숙한 선수들을 책상에 앉히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상우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선수들의 직업, 향후 진로와 연결되어있는 공부가 중요하다는 의미를 던졌다. 그는 “처음엔 다 어렵다”라고 말하면서도 본인이 흥미를 느끼고 재밌는 학문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더불어 “운동하는 친구들이 공부하면 진짜 잘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극한상황을 경험한 친구들이 집중하면 굉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C0 룰, 제도적 허점에도 공부는 반드시 해야

공부하는 운동선수의 표본과 같은 사람으로서 이상우는 대학 축구에 불고 있는 C0 룰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제도적 허점은 분명히 있다. 그것과는 별개로 공부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장단점이 있다고 본다”라고 답했다.

그가 말한 제도적 허점은 학생 선수를 단순히 학점으로 판단하는 위험에 있었다. 그는 “선수의 경기 출전을 위해 지도자 재량으로 학점을 더 주게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도자 권한이 비대해질 수 있다는 문제점과 함께 학점을 주는 다른 교수들까지 신경 써야 하는 학부모들의 부담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이상우는 “공부는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C0 룰의 순기능도 중요하다. 사실 지금 세대 중에서도 공부 하지 않고 대학에 온 친구들이 많다. 이 친구들이 지금이라도 대학에서 공부한다면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이대로 축구만 하면 결국 축구로 끝날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운동선수를 향한 좋지 않은 시선과 편견을 뒤집어야 한다”라는 의견 또한 덧붙였다.

그는 C0룰의 허점을 ‘투 트랙’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는 “일반 학생들과 선수 학생들의 학점을 별도로 관리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라고 조심스럽게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이 ‘투 트랙’은 초·중·고등학교부터 순차적으로 올라와야 한다고 내다봤다. 그는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경쟁하는 것은 불리한 측면이 남아있다”라고 말하며 “학생 선수들에게 필요한 공부를 알려줘야 한다. 스포츠 심리학, 스포츠 과학, 스포츠 사회학 등 관련 교육을 제공하면 아이들의 직업군 선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금 아이들은 축구만 바라보다가 안 되면 지도자 자격증부터 생각한다. 매우 한정적이다. 일찌감치 플랜 B와 C를 설정하게끔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운동선수도 무조건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 이상우 제공

은퇴 후 진로 탐색, 지도자 역할도 중요하다

이상우는 FC서울에 입단한 뒤 쟁쟁한 경쟁자들과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지도교수인 김병준 교수를 만나 선수 생활과 은퇴 후 미래를 설계하고 계획할 수 있었다. 학업 병행을 결심했을 당시 주변인들은 손가락질해도 지도자들은 이상우에게 길을 열어줬다. 김병준 교수도 흔쾌히 제자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선수들은 선수 생활이 단절될 경우 뻗어 나갈 수 있는 길이 많지 않다. 프로팀 취업에 실패한 운동선수는 생활고에 시달린다. 프로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도 은퇴 후 처우는 좋지 않다. 사회가 선수들에게 공부를 요구하는 이유는 선수들의 자생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히 공부하지 않은 선수들만의 탓일까. 학생 선수는 기본적으로 ‘학생’이다. 성인 대학생만 학생이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들도 학생이다. 이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지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상우는 김병준 교수라는 은사를 만난 덕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상우는 지도자들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학생 선수들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도 지도자의 몫”이라고 전했다. 이어 “축구 지도자 자격증 과정의 경우 축구 코칭만 가르친다. 좋은 지도자는 경기에 이기고 승리하면 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선수 생활에 한계를 느낀 제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비전은 지도자 자격증뿐이다”라며 지도자들의 한계를 설명했다.

그는 “깨어있는 지도자들이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했다”라면서도 아직 부족한 현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지도자들이 한계를 나타내고 있는 이유로는 “지도자들도 그렇게 운동만 하다가 지도자가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지도자들 세대는 더 많이, 열심히 하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관성이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라고 전했다. 지도자들이 제자들에게 다양한 미래와 비전을 제시해야 학생 선수들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는 경기력과 대회 성적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공부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 지도자의 큰 역할이며 숙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우는 학업과 운동을 ‘무조건’ 같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수명이 매우 짧은 점을 말하며 은퇴 후 위험부담과 리스크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공부로 준비하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배들과 학생 선수들을 향한 조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운동했던 사람들이 글도 쓰고, 해설도 하고, 에이전트도 해야 한다. 선수 출신이기에 더 많은 장점을 발휘할 기회가 열린다. 직업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공부해야 한다. 운동선수들에게 필요한 수업, 맞춤 수업의 길이 더 많이 열리고 또 찾길 바란다. 더 많은 진로의 길을 찾고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intaekd@sports-g.com

공부하는 선수 이상우가 말하는 ‘멘탈 관리’와 자존감 회복 (기사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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