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표팀 유니폼에는 태극마크보다 이 엠블럼이 더 익숙하다. ⓒ나이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주변에서 늘 나에게 물어본다. “우리나라 축구 요새 왜 그래요?”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그냥 축구를 못하는 거죠.” 흘리듯 하는 답변이지만 이건 요새 내 진심이다. 사람들은 선수들 기량이 뛰어나 유럽으로도 진출하고 월드컵에서 4강도 갔던 나라가 요즘 들어 잠깐 주춤한 줄 안다. 감독이 잘못해서 그런 줄 안다. 하지만 가슴 아파도 현실은 현실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그냥 우리나라 축구 실력이 뛰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공을 잘 못 차서 그러는 거다.

대표팀 수준부터가 다르다

기성용도 있고 손흥민도 있고 이승우도 있는데 왜 한국 축구는 그 모양이냐고 답답해 한다. 물론 이들은 대단히 훌륭한 선수들이다. 그렇다면 이 선수들을 선발하지 않거나 선발해 놓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감독이 문제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이 정도로 하는 선수들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도 많다는 점이다. 우리만 프리미어리그를 누비는 선수들, 그리고 리오넬 메시와 비교되는 유망주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주변 아시아 국가는 우리나라 공 찰 때 놀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들도 우리 이상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인정하긴 싫지만 일본은 이미 대표팀 선수 구성에서 한국을 한참 전에 넘어섰다. 오카자키 신지(레스터시티)와 나카토모 유토(인터밀란), 카가와 신지(도르트문트) 선에서 한국 해외파들은 일단 정리(?)된다. 하세베 마코토(프랑크푸르트)와 타카시 우사미(뒤셀도르프) 겐키 하라구치(헤르타 베를린), 유야 아사코(쾰른), 타쿠마 아사노(슈트트가르트), 고로쿠 사카이(함부르크) 등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선수들이 즐비하고 유야 쿠보(겡크)와 유키 코바야시(헤렌벤) 등 어린 선수들도 유럽에서 경험을 쌓고 있다. 수비진에는 마야 요시다(사우샘프턴)도 있고 주전 골키퍼 에이지 카와시마는 프랑스리그 메츠 소속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어떤가. 일단 기성용과 손흥민은 언급했으니 넘어가고 그 외에 유럽파를 살펴보자. 구자철(아우스크부르크)과 권창훈(디종), 황희찬(오스트리아 레드불 잘츠부르크) 정도다. 이번에 선발되지 않은 선수들까지 넓게 봐도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과 박주호(도르트문트), 석현준(트루아),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 등이 포함될 수 있는 전부다. 여기에 박주호는 경기에도 나서지 못하고 있고 석현준은 계속 팀을 옮기는 중이다. 이청용도 급격히 경기력이 떨어졌다. 무게감을 비교하면 한국이 일본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일본의 유럽파는 이제 갓 진출한 어린 선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팀에서 준주전급 이상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한국보다 이란이 훨씬 더 강하다. ⓒ이란축구협회

우리는 냉정히 아시아 2위권이다

선수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한국의 유럽파들은 최선을 다해 도전해 그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전력 외 취급을 받거나 아직도 벤치를 지키는 선수들이 더 많다. 빅리그에 속했으니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허울 뿐인 빅리거도 많다. 오히려 이란이 유럽파 선수 구성은 알차다. 사르다르 아즈문(루빈 카잔)은 지난해 로스토프 임대를 떠나 주전으로 활약하다 올 시즌 원소속팀으로 복귀했다. 그의 나이는 이제 22세에 불과한데 벌써 러시아에서 주전으로 뛰는 중이다. 레자 구차네자드는 네덜란드 헤렌벤의 주전 공격수고 카림 안사리파드 또한 그리스 올림피아코스에서 주전으로 출장하고 있다. 알리레자 자한바크쉬는 네덜란드 리그 AZ에서 3년째 주전이다. 알리레자 하지지는 임대 생활을 전전했지만 올해부터는 스웨덴 에스킬스투나의 주전 골키퍼로 도약했다.

어느 곳에서 뛰느냐보다 어떤 활약을 펼치느냐를 더 중요하게 봤을 때 이란의 선수 구성은 한국보다 훨씬 더 알차다. 더 무서운 건 일본이나 이란의 유럽파들 중 상당수는 23세 이하의 어린 선수들이라는 점이다. 나카무라 슌스케와 자바드 네쿠남 세대가 아니라는 거다. 그 시절 멤버가 아닌 그 아래 세대 선수들이 유럽에서 활발히 주전으로 뛰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호주 역시 유럽파 몇 명은 우습다. 로비 크루세(보쿰)와 매튜 레키(헤르타 베를린), 톰 로기치(셀틱), 잭슨 어빈(헐시티), 마시모 루옹고(퀸즈파크), 아론 무이(허더스필드), 베일리 라이트(브리스톨시티), 브래드 스미스(본머스), 매튜 라이언(브라이튼) 등 유럽의 빅클럽은 아니지만 저력 있는 클럽에서 꾸준히 뛰는 선수들이 상당하다.

그런데 우리는 유럽파 중에 내세울 수 있는 선수가 기성용이나 손흥민 정도다. 이들을 폄하할 생각도 없고 이들의 실력을 존중한다. 그런데 우리가 훌륭한 유럽파 선수를 보유했다고 자부하며 아시아의 강팀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미 일본이나 이란, 호주 등은 우리보다 더 알찬 유럽파를 훨씬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일단 가용할 수 있는 선수 자원 자체의 크기가 다르다. 아직도 박지성과 이영표를 추억하며 기성용과 손흥민에 감탄하고 이승우에게만 희망을 걸며 우리는 축구 강호였고 지금도 강하고 앞으로도 강해질 것이라고 기대만 하는 건 곤란하다. 이 정도 수준이면 아시아에서는 선두인 일본과 이란, 호주 등을 쫓는 2위권 팀이라는 게 가슴 아프지만 현실이다.

한국보다 이란이 훨씬 더 강하다. ⓒ이란축구협회

현실 인정 못하는 우리의 착각

“한국 축구 요즘 왜 그래요?”라는 질문에 “한국은 축구를 못하거든요”라는 내 대답이 틀렸을까. 대표팀 선수들의 수준을 보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답변이 아닌지 조심스레 묻고 싶다. 뛰지도 못하는 팀을 붙잡고 있는 선수나 무리하게 진출해 벤치에도 앉지 못하는 선수, 유럽 근처로는 가지도 않는 선수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그 나라의 전체적인 대표팀 수준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이미 유럽파 선수의 규모와 수준에서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한국을 아시아의 축구 강호라고 계속 믿는 건 키 작고 배나온 내가 거울을 보며 ‘나도 이렇게 보면 참 잘생겼어’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기성용과 손흥민을 깎아내려는 건 아니지만 이런 에이스들은 아시아 각 팀에 다 있다.

그렇다고 정책적으로 유망한 선수들을 다 해외로 보내면 될까. 그것도 아니다. 나는 더 이상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자국리그에 대한 중요성을 수십 번은 이야기했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부족해도 자국에서 키워내고 경험을 쌓은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면 아시아 최강팀과 우리의 수준 차이를 줄일 수 있다. 이번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두 경기에서 염기훈(수원삼성)과 김민재(전북현대)가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유럽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할 바에는 이렇게 자국리그에서 경험을 축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K리그가 투자에 비해 보여주는 성과는 기대이상이다. K리그는 적어도 경기력 면에서는 아시아 시장에서 상당한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경기력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K리그는 여전히 외롭고 약하다. K리그 챌린지에는 평균 1~2천 명의 관중이 들어차고 K리그 클래식 관중도 5~6천 명에 불과하다. 이 안에는 많은 스토리가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K리그보다는 유럽 축구에 진출한 몇몇 선수들만을 더 들여다 본다. 자국리그가 경기력을 갖추고는 있어도 대중의 관심과 흥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과연 우리를 아시아의 강호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한국 축구 약하거든요. 아시아에서도 강호 아니거든요”라고 외치면 불쾌해 할 사람들이 꽤 있겠지만 이건 엄연한 현실이다. 2002년 월드컵 4강이라는 영광에 아직도 취해, 몇 명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유럽파 선수들을 보며, 다른 나라에도 이미 몇 명씩은 있는 유망주을 물고 빨며 아시아의 강호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아시아의 호랑이? 15년 전 이야기

엄연히 말하면 우리는 아시아에서도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팀이 됐다. 아시아를 때려 부수던 시절도 있었고 아시아에서 단 두 장뿐인 월드컵 티켓도 따냈던 게 우리지만 우리는 지금 그때만큼 강하지 않다. 이란이나 일본, 사우디, 호주 원정을 가 승리는커녕 무승부만 거둬도 “그 정도면 되게 잘했네”라는 반응이 먼저 나올 정도다. 이미 아시아에서는 이란과 일본, 호주가 가장 앞서 나가고 있고 그 뒤를 한국이나 사우디, 카타르 정도가 뒤쫓는 형국이다. 우리 바로 밑에 우즈베키스탄과 중국, 북한 등이 있다. 나는 아직도 자국리그의 경쟁력이나 대표팀의 전통, 역사 등에서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 우리의 축구 실력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없다. 우즈벡과도 무승부 작전을 해야 할 만큼 한국 축구 수준은 떨어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한다. 눈높이는 아직도 월드컵 4강에 머물러 있고 매주 프리미어리그를 보면서 한두 명의 한국선수 활약에 한국 축구의 높은 수준을 투영해 만족한다. 월드컵에 나가서 16강에는 올라야 생각보다 괜찮은 소개팅녀를 만난 것처럼 ‘이 정도면 괜찮네’라고 한다. 어떻게 꾸역 꾸역 월드컵 본선에 9회 연속 진출하니 아직도 아시아 무대에서 꽤 먹히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 늘어나면서 우리가 혜택을 얻은 것일 뿐 지금도 아시아에 티켓을 두 장만 주는 시대라면 우린 진작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포기했어야 한다. 제자리걸음도 아니라 오히려 뒤로 가고 있는데 그래도 한국 축구가 예전만큼 강하다는 묘한 착시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계속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영광에 취해 있으면 안 된다. 인정하기 싫지만 아시아 최강은 일본과 이란, 호주다.

이란이나 일본, 호주가 아시아 축구에서는 금수저다. 집안은 평범한데 부모님을 졸라 골든구스 신발 하나 신고 란도셀 책가방 하나 맸다고 저 금수저들과 똑같은 수준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금수저들과 학창시절 좀 친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성인이 돼 보니 그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지더라. 금수저들이 유학 갔다 와서 아버지 사업 물려받고 벌써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그들과 같은 무리라고 생각했던 나는 늘 이 모양 이 꼴이다. 이미 그들과는 격차가 크고 내 노력이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는 걸 그때 직시했어야 한다.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을 정도의 금수저들 사이에서 부모님 졸라 산 고가의 신발 하나, 책가방 하나로 같은 수준인 것처럼 착각하지 말자. 언젠가 이 격차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진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다.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아니면 ‘축구 천재’라는 로또를 맡거나.

한국보다 이란이 훨씬 더 강하다. ⓒ이란축구협회

축구를 못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모든 문제의 진단은 인정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 칼럼이 ‘한국은 유럽파도 몇 없는 변변치 않는 팀이다’라고 오해 받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이 그만큼 다른 아시아 강호들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면서도 아직도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지적이라고 받아들여줬으면 한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문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결국 자국리그와 유소년이 답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투자가 해결책이다. 한국의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에 대해서는 축하를 보내지만 이제는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알제리를 1승 제물이랍시고 호들갑을 떨다 참패했던 4년 전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알제리보다 축구를 못한다. 이란보다도 못한다. 중국 정도는 아직 해볼 만한데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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