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FC 김두현을 만났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축구선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작아진다. 화려한 20대를 보냈던 스타 선수들도 나이를 먹으면 어느 순간 하부리그로 내려가거나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사람들은 이런 선수를 보면 “한물 갔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쟁쟁한 어린 선수들이 치고 올라오는 시점에 아름답게 늙어가는 고참 선수들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비록 전성기 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중요한 순간마다 묵묵히 고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한 선수가 있어 직접 만나봤다. 1982년생, 우리나이로 36세인 성남FC ‘두목까치’ 김두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반갑다. 나도 1982년생이다. 우리 동갑이다.

그런가. 벌써 우리가 36살이 됐다. 이제 나도 팀에서 최고참이다. 세월이 참 빠르다.

당신이 벌써 은퇴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고참이 됐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내가 수원삼성에 입단한 게 2001년이다. 2000년 10월부터 팀에 들어가 훈련을 했는데 그때 수원삼성 최고참이 신홍기 선배님, 서정원 선배님이었다. 류웅렬, 이진행, 조현두, 이운재 형도 다 그때 있었다. (고)종수 형은 그땐 어렸다. 그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고 생각하면 나도 옛날 사람이긴 하다.

이 정도면 당신도 축구 원로다. 요즘 컨디션은 좀 어떤가.

뭐 별로 힘들 게 없다. 후반에만 뛰고 그래서 체력적으로 힘들거나 그런 게 없다. 성남이 13경기 연속 무패를 하다가 경남을 만나 한 번 패해서 좀 아쉽긴 하지만 팀 분위기도 좋다. 최근 들어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김두현은 3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고비 때마다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성남FC

올 시즌 초반 성남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꼴찌까지 떨어졌었다. 성남 경기장에 와 박경훈 감독을 만날 때마다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나도 힘들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감독님이 새롭게 오셨는데 시즌 초반에는 선수 파악도 잘 안 됐고 성남 분위기를 잘 모르셨던 것 같다. 선수들도 외부에서 많이 왔다. 시즌 초반에는 선수나 감독님 모두 적응하는 시기였다.

올 시즌 유난히 외국인 선수들이 부상으로 연이어 아웃되는 일까지 겹쳤다.

뭔가 올해는 외국인 선수 운이 없는 거 같다. 비도시치는 부상으로 나갔고 네코도 부상으로 팀을 떠났다. 지난 시즌 대구에서 뛰었던 공격수 파울로는 부상은 아니었지만 적응에 실패하며 나갔다. 여기에 오르슐리치까지 부상을 당했고 다리오라는 브라질 친구도 오자마자 부상을 입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다. 운이 없었다는 표현 말고 딱히 쓸 수 있는 표현이 있을까. 정말 안 풀리긴 했다.

그래도 반전할 수 있다는 희망은 품고 있었나.

선수 구성을 보면 K리그 챌린지에서는 분명히 유리하게 경기를 끌고 갈 수 있는 구성이었다. 조합 문제에 대한 고민만 잘 해결된다면 반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더군다나 당신은 시즌 초반 주전 경쟁에서도 밀렸다. 천하의 김두현이 K리그 챌린지 벤치에 앉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과 코치님이 판단해서 경기에 내보내는 것이고 선수는 그 지시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아쉬웠던 부분도 있다. 지난 시즌 성남이 K리그 챌린지로 강등을 당해도 남아 있었던 건 강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 시즌에 잘해서 다시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면 큰 의미가 있는 일 아닌가. 팬들에게 미안한 게 많은데 승격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만들어 놨으니 다시 올려놓는 것도 내가 할 일이었다. 그런데 경기에 나가지 못하다보니 팬들에게 경기력으로 보답할 길이 없었다. 경기에 못 나가는 게 불만이 아니라 같이 경기장에서 힘을 쏟고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이렇게 벤치를 지킨 건 프리미어리그 웨스트브로미치 시절을 빼고는 처음 아닌가.

그렇다. 그때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벤치에 오래 있었던 적은 없다.

‘나 김두현인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 프리미어리그에도 진출했고 국가대표로도 활약한 당신이 나이를 먹고 내려놓아야 할 때라는 걸 인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우리 나이쯤 되면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이가 적은 게 아닌데 벤치에 있는 게 뭐가 이상한 일인가. 경기에 계속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체로 출전하더라도 그 시간에 영향력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내가 김두현인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늘 팀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선발 출전을 못하고 후반전에 잠깐 뛰거나 벤치에만 머물러도 전혀 이상한 나이가 아니지 않은가.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이 있고 지금이 그럴 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은 지난 5월 이후 다시 주전으로 도약했다. 노장의 투혼이다.

우리에게는 5월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다. 1라운드를 거의 망친 상황이었는데 5월 이후에도 성적을 내지 못하면 승격은 포기해야 했다. 그때 용기를 내 감독님을 찾아가서 “성남을 위해서 저도 힘을 한 번 보태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 이후로 감독님도 나를 믿어주셨고 선발로 경기에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뛰면서 좋은 분위기를 찾았다기보다는 선수들이 초반 분위기가 안 좋아서 위기 의식도 느끼고 있을 때였고 한 번 해보자는 의욕도 강할 때였다. 이런 게 잘 맞아떨어져 이후 분위기가 잡힌 것 같다.

감독을 먼저 찾아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용기도 대단한 것 같다.

뒤에서 우리 팀을 보니 아쉬운 부분이 많이 보였다. 팀에 3년 정도 있으면서 돌아가는 상황도 알고 선수들의 성향도 대부분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구심점이 되고 싶었고 반전의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경기에 나가지 못하다 보니 말만 앞서는 선배가 되는 것 같아 고민도 많았다. 그래서 감독님을 찾아가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김두현은 3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고비 때마다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성남FC

당신이 선발로 나서면서 경기력도 확 달라졌다. 성남은 무려 13경기 연속 무패를 하며 꼴찌에서 승격까지 노리는 팀으로 도약했다.

나는 이 팀에 대한 애착이 있고 작년의 아픔을 겪으면서 만회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도 있다. 그래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1라운드를 망치면서 떨어질 곳도 없는 바닥까지 내려와 있지 않았나. 내가 뛰어서는 아니지만 딱 내가 선발로 나설 시점부터 절묘하게 분위기를 잘 탔다.

하지만 FA컵 8강 목포시청과의 경기 0-3 대패는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시즌 초반에 경기에 나가지 못하다가 기회를 부여받고 성적을 좀 낸 이후에는 주로 벤치에 있으면서 후반전에 교체 출전했다. 그런데 목포시청전은 FA컵이었고 3부리그격인 팀과의 대결이라 평소 경기에 많이 나서지 못한 선수들 위주로 경기에 나갔다. 나도 선발 출장했다. 그런데 시작하마자마 페널티킥도 내주고 경기가 많이 꼬였다. 0-3 대패는 나에게도 무척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나는 그 경기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솔직히 나도 충격적이었다. 선수 구성을 봤을 때는 그래도 성남이 이겨야 하는 경기 아니었느냐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멤버로 발을 맞춰본 적도 없었고 새로 들어온 선수들도 많았다. 축구라는 게 멤버로 공 차는 건 아니다. 조직력도 필요하고 서로 몸의 소통도 필요하다. 그런게 잘 되지 않은 경기였다. ‘쿵짝’이 맞질 않았다.

하지만 리그에서는 최근 당신이 두 경기 연속골을 넣기도 하면서 이제 승격 가시권까지 진입했다. 승격 가능성은 어떻게 점치나.

주위에서는 냉정하게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팀에 속한 선수로서 가능성을 높게 보고 싶다. 지난 시즌 너무 말도 안 되는 강등을 겪었다. 분위기를 잡으려고 해도 뭔가 허전했고 팀이 단단하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뭔가 하려고 해도 잘 안 되더라. 강등권을 벗어날 기회가 많았는데 그 때마다 꼭 미끄러졌다. 꼬일 대로 꼬인 시즌이었다. 그런 충격적인 결과를 겪고 나서 올 시즌에는 오직 승격 하나만 보고 있다. 승격을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전혀 없다. 경남이 이미 멀찌감치 달아난 상황에서 우리가 경남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고 플레이오프를 통한다면 승격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시즌 생애 처음으로 강등을 겪었다. 어떤 기분이었나.

경기를 하면서도 강원에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결정을 지어야 할 때 우린 결정을 짓지 못했고 강원은 골을 넣더라. 경기가 끝나니까 멍했고 허무했다. ‘우리가 정말 강등돼야 할 팀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누구 한 명이 힘을 써 강등을 막을 분위기도 아니었다. 반전을 이루지 못했다.

원래 팀이 강등되면 주전급 선수들이 팀을 떠나는 경우가 많은데 당신은 이 팀에 남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계약기간이 올 시즌까지다. 계약이 끝났으면 모르겠는데 내가 떨어트린 팀을 계약기간도 다 채우지 않고 떠나는 건 모양새가 별로다. 선수 경력으로 봤을 때는 K리그 클래식 팀에 계속 있는 게 좋지 K리그 챌린지 경력이 생기는 게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의지가 있었다면 이적해 다른 K리그 클래식으로 옮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무책임하게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김두현은 3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고비 때마다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성남FC

요새 부쩍 이지민의 프리킥이 날카로워졌다. 이게 당신의 작품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엄청난 기술을 전수하는 건 아니고 서로 프리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당신이 말하는 건 ‘오바’다.

나도 프리킥을 잘 차고 싶다. 비법을 좀 전수해 달라.

상황에 따라 (이)지민이한테 “공을 두껍게 차라”고 하거나 “저쪽 포인트를 겨냥해 차보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내가 지민이하고 프리킥 연습도 같이 하고 구질을 잘 아니까 지민이가 어떻게 차면 더 날카롭게 골문을 향할 수 있는지도 조언해 주는 편이다. 부천과의 경기에서는 상대 벽을 보면서 “벽에 있는 선수 중에 쟤를 보고 차면 된다”고 했는데 정말 그 상황에서 지민이가 그 방향으로 프리킥으로 골을 넣었다.

이지민에게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뭐 사실 도움이 별로 안 되도 선배가 하는 이야기니까 도움이 된다고 하는 거 아닐까.

혹시 당구도 잘 치나. 공을 두껍게 차라고 하는 건 당구장에서 형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며 참견할 때 쓰는 용어다.

4구를 200밖에 못 친다. 당구하고 프리킥은 별로 연관은 없는 것 같다.

수원삼성 시절에는 막내인 권창훈에게도 많은 도움을 줬다고 들었다.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입단해 누구보다도 (권)창훈이 심정을 잘 안다. 내가 먼저 “창훈이랑 같은 방을 쓰고 싶다”고 해 수원에서 2년 정도 같은 방을 썼다. 12살 차이가 나는 선배가 같은 방을 쓰자고 했으니 아마 창훈이는 불편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형이 먼저 “너하고 같은 방 쓰고 싶다”고 이야기 해주면 기분 좋은 것도 있지 않았을까. 같은 방을 쓰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눴는데 원래 창훈이는 유망했다. 본인이 잘해서 컸지 내가 키웠다고 컸겠나.

당시 권창훈은 어떤 막내였나.

겉으로 보기에는 앳된 모습이지만 사실 속은 애늙은이다. 순수하면서도 성숙한 편이었다. 자기가 왜 축구를 해야하는지도 확고했고 정신력도 강했다. 요즘 어린 선수들 같지 않더라. 몸 관리도 또래 선수들이 해야 할 것 이상으로 했다. 빛을 보려면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 실력은 이미 출중했다. 내가 하나 도움을 준 게 있다면 성남으로 이적하면서 창훈이가 수원에서 더 많은 경기에 뛸 수 있도록 한 일 정도일 것이다.

지금은 성남에서 어떤 선수의 성장에 기대를 걸고 있나.

우리 팀의 연제운을 계속 보고 있는데 이 선수가 참 괜찮다. 하려고 하는 의지와 노력이 눈에 보인다. 올해 들어 기회를 많이 잡고 있는데 성장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김두현은 3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고비 때마다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성남FC

거의 10년 전 이야기지만 아직도 당신의 프리미어리그 시절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성공하지 못한 도전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챔피언십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하면서 2008년 시즌에 임했다. 그런데 시즌 초반 볼턴과의 경기에서 내가 때린 슈팅이 골대를 맞았다. 이 상황에서 골이 들어갔더라면 팀도 승리를 챙기며 프리미어리그에서 자신감을 찾았을 것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대단히 중요한 경기였는데 그 골을 놓친 게 참 아쉬웠다. 그리고 우리 최전방 공격수 밀러가 골을 많이 놓쳤다. 그해 동계훈련 때부터 많이 놓치더라.

부상으로 인한 아쉬움도 있었다.

미들즈브러와의 경기에서 무릎 내측 인대를 다쳐 8주 정도 쉬었다. 지금 와서 이야기해봤자 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그래도 그 부상이 아니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언어도 안 되고 부상까지 당하니 상황이 좋지 않아졌다. 팀 성적도 좋지 않아 골 넣는 것보다는 수비적으로 가야하는 상황이 더 많았다. 감독님 역시 쫓기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부상 이후 내 포지션이 아닌 자리에서 뛰기도 했다.

그래도 데뷔 시즌의 임팩트는 여러 한국인 프리미어리그 선수 중 가장 강렬한 쪽에 속했다. 더 도전하지 못한 게 아쉽지는 않았나.

군대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에 진출하면서 제약이 많았다. 자신감도 있었고 막상 부딪혀 보니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부족해서 안 되겠다’가 아니라 ‘어? 해볼만 한데’였다.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웨스트브로미치 이후에도 영국 내의 다른 팀 몇 군데와 이적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했고 중동에서도 제의가 왔다. 그때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영국에서 더 도전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군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시간 뒤에는 기회가 아니라 군대가 있었다.

요새도 프리미어리그, 웨스트브로미치 경기는 자주 챙겨보나.

프리미어리그는 중계를 워낙 잘 해주지 않나. 그래서 종종 보는 편이다.

그럴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날 것 같다. 마치 헤어진 여자친구의 인스타그램을 몰래 보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레스터시티 감독을 하고 있는 크레이그 셰익스피어가 그때 우리팀 코치였다. 중계를 보다 그 감독님이 잡히면 옛날 생각이 난다. 내가 뛸 때 있던 심판이 아직도 프리미어리그에서 심판을 보고 그때 팀에 있던 크리스 브런트 같은 친구는 아직도 그 팀에 있더라. 중계를 보다 웨스트브로미치 홈 경기장이 나오면 그때 생각이 꽤 난다. 지금 서울이랜드 피지컬 코치인 댄 역시 내가 웨스트브로미치에 있을 때 피지컬 코치였다.

해외 진출을 노리는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해준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 그 친구들하고 넉살 좋게 어울리고 장난칠 수 있는 정도는 필요한 것 같다. 언어가 전혀 안 되면 오로지 축구로만 평가받아야 하는데 축구를 너무 잘해서 그 자체로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선수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항상 좋은 컨디션으로 좋은 경기를 선보일 수는 없다. 위기의 순간이 분명히 찾아오는데 그럴 때 동료들과 소통도 하고 위안도 받으며 풀 수 있어야 한다. 완벽한 수준의 의사소통은 아니어도 그 정도의 언어 능력은 필요하다.

당신은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할 때 얼마나 언어에 대해 준비가 됐었나.

전혀 안 돼 있었다. 거기에다가 같이 생활하는 통역도 없었다. 구단에서 영어 선생님을 붙여줘 조금씩 몸소 부딪히며 배운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그 정도도 못한다.

김두현은 3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고비 때마다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성남FC

수원삼성에서 뛰던 당신은 2015년 성남으로 이적했다. 당시 김학범 감독의 영향이 컸었나.

물론이다. 김학범 감독님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감독님하고는 내가 20대 때 수원에서 성남으로 이적할 때부터 인연이 시작됐다. 그때도 감독님이 날 원하셨고 내 능력을 잘 끌어올려 주셨다. 나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아신다. 감독님이 2015년 나를 원했을 때도 같이 뭉쳐 다시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김학범 감독이 최근 광주FC 새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이번에 당신을 광주로 다시 부르면 어떻게 할 건가.

과연 그럴 일이 있을까. 하지만 단칼에 거절할 수는 없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마도 감독님하고 충분히 이야기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당신에게는 김학범 감독과의 인연 만큼이나 성남과의 인연도 특별하다. 2005년 성남에 입단해 이듬해 팀의 우승을 이끌며 영광의 시대를 보내기도 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좋았던 기억이다. 성남은 애착이 많이 가는 팀이다.

2006년 우승 당시 성남은 대단히 막강했다. 그 당시가 기억나나.

물론이다. 각 포지션별로 K리그에서 내로라하는 멤버들이 포진해 있었다. 지금 대충 생각나는 멤버만 해도 김영철, 박진섭, 김상식, 장학영, 손대호, 김철호, 모따, 두두, 이따마르, 네아가, 우성용, 남기일 정도다. 한동원은 20대 초반 애기였다. 축구가 너무 재미있던 시기였다. 당시에는 비기면 진 분위기였고 지면 연패한 분위기였다. 이기는 게 당연했던 팀이었다. 졌던 기억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때는 통일교 시절이라 팀이 워낙 돈도 잘 쓸 때였다. 수당도 꽤 많이 벌었다.

최고의 부자 구단이던 성남일화와 수원삼성 등을 거친 당신은 말년을 시민구단에서 보내고 있다. 불편한 것도 있을 것 같다.

할만하다. 성남도 시민구단 중에서는 롤모델로 꼽힐 정도로 체계를 잘 갖추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다른 시도민구단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환경이다. 풍족한 팀에서 오래 생활하면 좋지만 나는 은퇴 후에도 축구계에 종사하고 싶다. 축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시민구단은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나에게는 좋은 공부다. 시민구단을 경험해 보니 많은 도움이 된다. 선수 때 시민구단을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과거 ‘램파두현’, ‘제라두현’ 등의 별명이 많았다.

그것도 다 옛날 별명이다. 그 선수들 다 이제 은퇴한 사람들인데 나도 은퇴를 해야하는 건 아닌가.

그렇다면 무슨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드나.

그래도 요즘은 성남에 있으면서 성남의 상징인 까치에 빗대 ‘두목까치’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제일 좋다.

당신은 축구 전문 매거진 <포포투>에 꽤 오랜 시간 동안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현역 선수로는 굉장히 인상적인 활동이다.

경찰청에 복무할 때부터 썼으니까 지금 한 5년은 된 것 같다. 원래 하지 않던 일이다보니 처음에는 직접 다 쓰는 게 힘들긴 하더라. 하지만 워낙 축구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한다. 다른 선수들 중에는 운동할 때 빼고는 축구 이야기하는 걸 싫어하는 선수들도 있는데 나는 밤을 새면서도 축구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는 즐거운 일이다.

글을 잘 쓰는 비결이 있나.

내가 글을 잘 쓸 리가 있나.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도 아닌데. 하지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 내 주관은 설명할 수 있다. 그걸 풀어내는 능력은 전문적으로 글 쓰는 분들이 훨씬 뛰어나겠지만 나는 그냥 뭐 축구선수 치고는 조금 쓰는 정도다. 전문적으로 글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SNS에 글을 남길 때도 막 올리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정리를 하려고 하는 편이다. 은퇴 이후에는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은데 칼럼이나 해설 등도 경험해 보면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계속 축구만 해 와서 축구 외적인 일을 해보면 새롭고 긴장감도 있을 것 같다. 당신이 글만 쓰지 않고 방송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나는 아파트 대출금 때문에 하는 거다. 나중에 우리 <스포츠니어스>에도 칼럼을 기고해 달라.

일단 그러면 협상을 좀 해보자.

그러면 일단 우리 회사를 더 키워보겠다. 당신 몸값이 비싸서 우리가 못 잡는다. 그런데 올해로 36살인데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낄 때는 없나.

그런 걸 느끼면 아마 은퇴를 선언할 거다. 하지만 아직 몸이 예전같이 않아서 은퇴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계속 뛰면 회복에 문제가 있을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기량 퇴보에 대해서는 아직 느껴본 적이 없다.

김두현은 3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고비 때마다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성남FC

확실히 회복은 좀 느려졌나. 나는 술 마시면 다음 날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한다.

사실 축구는 언제 해도 힘들다. 20대 때도 힘들고 지금도 힘들다. 힘든 건 20대 때하고 똑같다. 한계를 느낄 때까지는 더 오래하고 싶다. 그래야 후배들도 더 오래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특별한 경우일 수 있지만 외국은 40대 선수들도 많다. 이런 경험 많은 노장 선수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지도자를 만나면 선수 생활은 더 길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언젠간 나도 은퇴를 하겠지만 아직은 특별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언제 은퇴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역을 이어가는 동안에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이제 선수로서 개인적으로 더 꽃 피울 건 없다. 내가 어릴 적 고참 형들을 보면서 이 형들이 오래 남아주고 많은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다. 나도 남은 선수 생활 기간 동안에는 후배들한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 몸 관리나 경기 준비 등에서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면 좋겠다. 요즘은 후배들하고 공 차는 게 너무 재미있다.

그렇다면 은퇴 후의 목표도 확실히 정해 놓았나.

은퇴 후엔 지도자를 하고 싶다. 지금도 선수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있다. 지도자 쪽에서 바라보는 선수의 시선도 항상 생각한다. 은퇴 후에는 내가 현역 때 하지 못했던 축구를 해보고 싶다. 지금은 혼자 힘으로 내가 원하는 축구를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지도자는 자기의 축구 철학을 한 팀에 그대로 담아낼 수 있지 않은가. 머리에 있는 축구를 한 번 실현해 보고 싶다.

그게 어떤 축구인가.

아기자기한 축구를 구사해보고 싶다. 축구라는 게 매 순간 확률을 높여야 하는 건데 이 확률을 높이려면 다양한 옵션을 선수들에게 제시하고 인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확률을 높이면 팀은 강해진다. 그런 디테일을 선수들에게 지도해보고 싶은 꿈이 있다.

나는 그걸 FM에서 한다.

나는 그 FM을 실제로 해보고 싶은 거다.

당신의 현역 생활, 그리고 그 이후의 꿈도 응원하겠다. 이렇게 현역 선수 중 동갑내기 친구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게 나는 너무 좋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다. 올 시즌 남은 경기에는 어떻게 임할 생각인가.

올 시즌도 많이 지나 얼마 남지 않았다. 중요한 시기다. 나는 몇 분을 뛰더라도 그 시간 안에 영향력을 보여주는 플레이를 펼치고 싶다.

프리미어리그와 국가대표까지 경험했던 그는 이제 경기에 나서는 시간이 줄어도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나이가 됐다. 하지만 이 모습이 추하거나 궁상 맞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여전히 그라운드에 설 때마다 ‘클래스’를 보여주고 있고 벤치에 있을 때도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해주고 있다. 김두현은 이렇게 아름답게 나이를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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