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제 감독이 벤치가 아닌 관중석에 있는 모습은 아직 어색하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다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이별하면 세상이 끝날 것 같지만 막상 이별을 하게 되면 허무함이 밀려오기도 하고 실감이 잘 나지 않기도 한다. 헤어진 다음 날 자고 일어나 눈을 뜨면 아주 선명한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가수 이현우는 <헤어진 다음 날>이라는 노래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제 아침엔 이렇지 않았어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어요.”

7년 동안 한 팀을 위해 일했던 축구감독이 하루아침에 팀을 떠나게 됐다. 2011년부터 수원FC와 인연을 맺어온 조덕제 감독은 성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26일 자진 사임했다. 2016년 팀을 K리그 클래식으로 올놓기도 했던 그는 최근 5연패의 깊은 부진에 대한 책임을 떠안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조덕제 감독은 사임 하루 뒤인 어제(27일)도 수원FC 홈 경기장을 찾았다. 불과 하루 전만하더라도 이 팀의 감독이었던 그는 하루 만에 평범한 한 명의 팬이 돼 있었다. 조덕제 감독이 수원FC와 ‘헤어진 다음 날’은 어땠을까.

조덕제 감독은 수원FC와 7년을 함께 했다. ⓒ프로축구연맹

조덕제 감독이 수원FC와 함께 이룬 역사

조덕제 감독은 수원FC의 역사와도 같은 감독이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아주대학교 감독을 맡았던 그는 2011년 수원시청 축구단 유소년 총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수원시청은 아마추어리그인 내셔널리그 소속이었다. 팀 명칭도 수원FC로 바뀌기 전이었다. 그리고 2011년 내셔널리그가 끝난 뒤 전임 김창겸 감독이 계약만료로 팀을 떠나자 유소년 총괄 감독이었던 조덕제 감독이 새롭게 성인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됐다. 수원시청은 2012년 12월 프로 전환을 확정지으며 K리그 챌린지에 참가하게 됐고 팀 명칭도 수원FC로 변경했다. 마지막 사랑은 언제인지 몰라도 첫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프로화 이후 초대 감독이라는 변하지 않는 역사도 조덕제 감독이 쓰게 됐다.

조덕제 감독은 2015년 막판 K리그 챌린지에서 엄청난 상승세를 이어가며 3위로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뒤 서울이랜드와 대구FC를 꺾고 부산아이파크까지 제압했다. 창단 후 최초의 K리그 클래식 승격까지 이뤄낸 것이다. 내셔널리그 팀을 K리그 챌린지를 거친 뒤 K리그 클래식까지 이끈 최초의 감독이었다. 같은 연고지에 있는 수원삼성에 비해 인지도가 부족하고 예산도 적었던 수원FC가 메이저 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던 건 조덕제 감독의 공이 컸다. 2015년 챌린지리그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비록 한 시즌 만에 다시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됐지만 강등팀 감독으로 경질되지 않은 유일한 사례로 남아있다. 조덕제 감독은 수원FC의 역사이자 지금의 수원FC를 만든 인물이다.

수원FC는 올 시즌 K리그 챌린지로 떨어진 뒤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서동현을 비롯해 정훈과 송수영, 백성동, 서상민 등 굵직한 선수들을 영입하며 재승격의 기회를 노렸다. 자파를 비롯해 시시와 가빌란, 레이어, 블라단 등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때마다 꼼꼼히 영상을 다 살펴가며 적극적으로 선수 관찰에 나섰던 조덕제 감독도 100여 명 이상의 외국인 선수들을 검토해 새 시즌을 준비했다. 하지만 기대에 비해 성적은 저조했다. 특히나 7월 이후 5연패를 기록했고 이 기간 동안 단 한 골밖에 넣지 못하는 등 최악의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결국 유소년 시절을 포함해 무려 7년이나 이 팀에서 헌신했던 조덕제 감독은 자진 사임을 선언해야 했다. 수원FC역사의 한 페이지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조덕제 감독은 수원FC와 7년을 함께 했다. ⓒ프로축구연맹

모든 이별은 이렇게 허무하다

이미 지난 6월 조덕제 감독은 수원FC 구단주인 염태영 시장과 면담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던 조덕제 감독을 염태영 시장이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만류했다. 염태영 시장은 조덕제 감독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껏 보여준 능력을 믿습니다. 다시 한 번 해봅시다.” 조덕제 감독은 이후 선수들의 정신력 무장을 주문하기도 하고 합숙도 하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연패는 이어졌고 한 골 넣기도 쉽지 않은 경기가 이어졌다. 경기 내용은 점점 좋아지고 있었지만 매번 졌다. 결국 지난 23일 홈에서 부천FC에 1-2로 패한 뒤 조덕제 감독은 다시 염태영 시장을 찾아갔다. 그제 바로 지난 주 금요일(25일) 일이다.

이 자리에서 조덕제 감독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만류하던 염태영 시장도 결국 조덕제 감독의 뜻을 존중했다. “제가 지금이라도 물러나는 게 팀을 위한 길입니다. 사퇴를 허락해 주세요.” 이 말에 염태영 시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날인 26일 이사회가 열렸다. 이미 조덕제 감독과 염태영 시장이 합의를 이룬 상황에서 이사회는 형식적인 자리였다. 결국 조덕제 감독은 지난 26일 사임을 공식발표했다. 때론 고생스럽고 때론 영광스러웠던 7년의 역사는 이렇게 공식 발표문 하나로 끝이 났다. 늘 그렇듯 이별은 이렇게 허무했다.

선수단은 물론 코치진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선수단 대부분이 뉴스를 통해 조덕제 감독의 사퇴 소식을 접할 정도였다. 조종화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감독님이 자진 사임이라는 선택을 하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사퇴 전날까지도 함께 웃고 떠들며 운동을 했거든요.” 조덕제 감독은 사퇴 발표가 난 지난 26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하루 앞으로 다가온 수원FC와 FC안양의 경기를 위한 마지막 훈련을 지휘했다. 이미 사퇴 발표가 난 상황이었지만 여느 때와 똑같은 훈련이었다. 그는 떠나지만 선수들은 남아 바로 다음 날 벌어질 경기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5연패를 당한 팀이 이 연패의 터널에서 빠져 나와야 하는 숙제가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조덕제 감독은 수원FC와 7년을 함께 했다. ⓒ프로축구연맹

조덕제 감독의 ‘헤어진 다음 날’

훈련이 다 끝난 뒤 조덕제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이 팀을 떠나는 건 싫다. 하지만 떠나야 한다. 그리고 너희들은 내가 왜 떠나야 하는지 그 이유를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팀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니 이제 그 선택이 맞다는 걸 증명하는 건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다.” 조덕제 감독은 선수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눴다. 코치들에게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가 수원FC 감독으로 지휘한 마지막 훈련을 이렇게 끝이 났다. 조덕제 감독은 이 훈련 이후 감독직을 모두 내려놓았고 선수 선발과 전술 등 모든 권한은 조종화 코치에게로 넘어갔다. 이별식은 대단하지도 않게 끝이 났다. 우리가 사랑을 하다 이별을 할 때처럼 말이다.

조덕제 전감독은 모든 걸 다 털어냈다. 이제 경기를 앞두고 상대를 분석해 선발 명단을 짜고 전술을 짜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원FC 경기가 열리는 날 경기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도 어색했다. 무려 6년 동안 해온 일은 하루아침에 그만뒀으니 그럴 법도 했다. 수원FC와 헤어진 바로 다음 날인 어제(27일) 조덕제 감독은 축구감독으로서의 하루가 아닌 평범한 일상을 시작했다. 어제 아침엔 이렇지 않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오늘 아침에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오래 몸담았던 축구 동호회에 나갔다. 수원FC 감독 시절에는 경기가 열리는 날 경기 준비로 바빠 잘 나가지 못했지만 수원FC와 이별한 뒤에는 홀가분해졌다. 일요일 오전을 여는 축구 동호회 회원들과 땀을 흘린 뒤 맛있는 점심까지 먹었다.

아무리 못해도 수원FC와 함께 할 땐 경기 준비를 위해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그는 한가했다. 집에 와 샤워를 하고 여유를 부리다 아내와 딸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가 향한 곳은 놀랍게도 수원종합운동장이었다. 비록 감독직은 내려놓았지만 제자들의 모습을 지켜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경기를 앞두고 가족과 단란하게 경기장으로 이동해 본 적이 없었던 그는 가족과 함께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가 자리한 곳은 수원FC 라커가 아닌 일반 관중석이었다. 관계자들이 모여 있는 본부석 쪽도 아니라 본부석 반대편 일반 관중석으로 향한 것이다. 그곳에는 오전에 만났던 축구 동호회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조덕제 감독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이들은 수원FC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늘 이곳을 찾아 ‘조덕제 회원님’을 열렬히 응원했었다. 이들은 비록 조덕제 감독이 사임했지만 그럼에도 수원FC를 응원하기 위해 이날도 경기장을 찾았다.

조덕제 감독은 수원FC와 7년을 함께 했다. ⓒ프로축구연맹

이제는 평범한 관중이 된 축구감독

경기 전 수원FC 서포터스에서 걸개를 걸었다. “감독님 제발 가지 마세요.” 비록 올 시즌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이 팀의 역사를 함께 세운 감독에 대한 메시지였다. 조덕제 감독은 축구 동호회 회원들 사이에 나란히 앉았다. 하루 전만 하더라도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그가 평범한 한 팬으로 일반 관중석에 앉게 된 것이다. 그는 경기 내내 다른 관중과 똑같이 응원을 보냈다. 때론 탄식도 내뱉었고 수원FC가 골을 넣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아직 감독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그는 경기 도중 스마트폰으로 다른 경기장 상황을 확인해 보기도 했다. 그가 하루 전날까지 축구감독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이들이라면 아마 사설 토토에 돈을 건 아저씨로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조덕제 감독은 평범하고도 열정적으로 수원FC 선수들을 응원했다.

이날 경기에서 수원FC는 FC안양과 3-3 무승부를 기록했다. 비록 감독이 그만두면서까지 바랐던 승리를 따내지는 못했지만 오랜 만에 시원한 골을 뽑아냈고 연패도 끊었다. 경기가 끝난 뒤 조덕제 감독을 만났다. 원래 그를 매번 만났던 곳은 기자회견장이었지만 이번에는 관중석이었다. 하루 전까지 이 팀을 지도했던 그는 대뜸 경기평을 했다. 늘 기자회견장에서 보던 그 모습과 그 말투 그대로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전방 압박이 부족했어요. 서상민과 송수영, 서동현 등 다 능력이 되는 선수들인데 조금만 더 열정을 가지고 뛰어주면 좋겠습니다. 이겼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열심히 뛰어서 마지막에 동점골까지 넣었네요.” 아직 그는 평범한 관중보다는 수원FC 감독이 더 익숙한 것 같았다. 아직도 수원FC에 대한 정이 넘치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관중석보다는 벤치가 편했다. “이렇게 관중석에서 우리팀 경기를 보니 넓게 다 보여서 너무 좋네요. 어떤 선수가 어떻게 뛰는지 더 잘 보여요. 그런데 아직은 어색해요.” 조덕제 감독은 그러면서 수원FC와 함께 한 지난 7년을 되짚었다. 깊은 회상에 잠겼다. “2015년 말에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했을 때 너무 기뻤죠. 어떻게 그걸 잊을까요.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서 이룬 승격이어서 아마 평생 못 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니 2011년 유소년 총감독을 할 때도 참 즐거웠어요. 아주대학교에서 막 나와 6세, 7세 아이들하고 운동장에서 매일 구르며 행복했거든요. 수원FC와 함께 했던 모든 추억이 다 생각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골대 뒤에 모인 서포터스는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전임 감독에 대한 마지막 예우였다.

조덕제 감독은 수원FC와 7년을 함께 했다. ⓒ프로축구연맹

한가로운 듯 어색했던 그의 하루

하지만 프로팀 감독은 결국 성적으로 말한다. 7년 동안 이 팀을 위해 일했던 조덕제 전감독도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가 없었다. “감독은 성적과 전술 부재에 대해 책임을 져야죠. 제가 물러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여기 일반석에 여성 응원단도 있고 조직적으로 응원하는 팬들이 꽤 많았는데 다 와해됐어요. 그건 전적으로 제가 성적을 내지 못한 책임이죠. 제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생각해 시장님께 사퇴 의사를 전한 겁니다. 늘 팬들에게는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요.” 조덕제 감독은 비록 사퇴했지만 이제는 한 명의 수원FC 팬으로 남을 생각이다. “일단은 올 시즌 끝날 때까지는 경기장에 계속 올 생각이에요. 내가 몸담았던 이 팀이 4강 플레이오프의 희망을 놓지 않고 계속 도전해 줬으면 해요. 저는 그걸 지켜보고 응원할 생각입니다. 한 명의 팬으로서 경기장을 찾아야죠.”

조덕제 감독이 수원FC와 헤어진 다음 날은 분주하지 않고 차분했다. 하지만 가장 익숙한 것과 이별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다. 아직도 그는 관중석보다는 벤치가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조덕제 전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아내, 딸과 함께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같이 온 축구동호회 회원 한 명이 상을 당해 거기에도 가봐야 해요. 그리고 우리 서포터스하고 오늘 뒤풀이도 하기로 했어요. 치킨에 맥주 한 잔 할 생각입니다. 그동안 성적도 좋지 않아 늘 미안했는데 오늘 고마움과 미안함을 다 팬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아직은 이 생활이 어색하지만 이제 적응해야죠.”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수원FC 숙소 입구를 그대로 지나쳐 자신이 몰고 온 차로 향했다.

한 시간 반 뒤 조덕제 전감독에게 전화를 했다. 보강 취재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사이 조덕제 감독은 이미 취기가 올라 있었다. 서포터스와 가볍게 치킨에 맥주를 한 잔 하겠다던 계획이 커진 것 같았다. “제가 술을 잘 못하는데 우리 서포터들하고 소주 한 잔 하고 있어요.” 그 동안 늘 진지하고 조심스러웠던 조덕제 전감독이 대뜸 농담을 건넸다. 지금껏 전혀 본 적 없는, 아니 전혀 상상해 보지 못한 조덕제 감독의 친근하고 엉뚱한 모습이었다. “아까 우리 집사람 봤죠? 집사람이 저보다 2cm나 커요. 내가 172cm인데 우리 집사람이 174cm거든. 하하.” 보아하니 이 술자리는 이별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밝은 분위기에서 고마움을 이야기하는 술자리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조덕제 감독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우리 수원FC 많이 사랑해주세요.”

이별을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헤어진 다음 날은 멍하고 정신이 없다. 내가 전화를 하면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받을 것만 같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공유하던 일상이 온전히 내 것이 돼 자유를 누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자유가 어색하기도 하다. 이별한 게 꿈인지 사랑했던 게 꿈인지도 헷갈린다. 조덕제 감독이 수원FC와 헤어진 다음 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덕제 감독이 수원FC와 헤어진 다음 날은 이렇게 한가로운 듯 어색하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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