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닝요는 지난 6월 경남 원정에서 팀 동료들과 함께 익살스러운 댄스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 부천FC1995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나는 부천FC나 FC안양 같은 팀이 잘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큰 상처를 받은 팀이 팬들의 힘으로 다시 일어섰으니 이런 팀들이 성공해야 또 다른 상처도 막을 수 있고 스토리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철학으로 그 누구보다 부천이나 안양 관련 취재도 많이 했고 되도록 좋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도록 신경도 많이 쓴 편이라고 자부한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불법인 홍염을 썼어도 좋은 방향으로 포장했다. 그게 다 울분을 털어내는 일이고 스토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주말 일부라고 믿고 싶은 부천 팬들의 행동에는 크게 실망했다.

두 달 전 바그닝요가 한 세리머니는?

지난 19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부천FC와 경남FC의 KEB 하나은행 2017 K리그 챌린지 25라운드 맞대결에서 사고(?)가 터졌다. 후반 30분 2-2 상황에서 부천 닐손주니어의 페널티킥을 경남 골키퍼 이준희가 막아낸 뒤 곧바로 부천 서포터스를 향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전매특허인 ‘호우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러자 경기가 끝난 뒤 부천 팬들은 경기장을 나가려는 경남 선수단의 버스를 막고 사과를 요구했다. 부천 팬들은 이 세리머니가 자신들을 향한 도발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경찰은 물론 119까지 출동했고 일부 팬이 지구대로 연행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무려 세 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경남 선수단은 경기장을 빠져 나가지 못했다.

상대팀 골키퍼가 도발 세리머니를 했다는 이유로 세 시간 가까이 선수단 버스를 막고 사과를 요구하며 대치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큰 잘못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딱 들어 맞는 행동이다. 부천 선수들은 불과 두 달 전 경남 홈에서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 지난 6월 4일 경남 원정에서 바그닝요가 골을 기록한 뒤 단체로 경남 서포터스석을 보고 익살스러운 춤을 춘 것이다. 도발이라면 이것도 도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남 팬들이 부천 선수단 버스를 막고 바그닝요에게 사과를 요구하진 않았다. 춤은 되는데 ‘호우 세리머니’도 안 될 건 없다.

누가 더하고 덜하고의 차이를 따지지 않더라도 불과 두 달 전 부천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지난 주말 그들이 한 행동이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는지 알 수 있다. 자신들이 상대 서포터스를 향해 하는 세리머니는 괜찮고 자기들이 그걸 그대로 당하면 세 시간이나 선수단 버스를 막으면서까지도 사과를 요구할 정도로 분노해야 하는 일이 되는 것일까. 이건 너무 이기주의적인 행동이다. 경남 선수들도 가로막힌 버스에서 세 시간을 기다리며 이런 이야기를 했단다. “우리는 되는데 너희는 안 돼”라는 건 세상에 없다. 부천도 되면 경남도 된다. 차라리 페널티킥 못 넣은 자기팀 선수한테 가 항의를 하면 조금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도 해보겠지만 상대방에게 도발성 세리머니를 당했다고 해 상대팀 선수단 버스를 막고 물리적인 힘을 가하는 건 어떤 이유에서도 용납해선 안 된다.

경남의 원정대 버스를 막고 항의하는 부천 팬들 ⓒ 스포츠니어스

부천이 K리그 클래식에 있었다면?

부천은 K리그 챌린지에서 백년 만년 있을 팀이 아니다. 팬들의 열정이나 역사적인 배경으로 보나 빨리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해야 한다. 그럴 만한 능력과 자격도 충분히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도 같은 팬들의 인식으로 K리그 클래식에 승격한다면 악몽 같은 일이 자주 벌어질 수도 있다. K리그 클래식에서는 골을 넣은 뒤 손을 귀에 대고 상대팀 팬들에게 도발하기도 하고 친정팀을 향해 “수준이 낮다”는 발언을 쏟아내는 선수도 있다. 친정팀 팬들이 던진 물을 주워 마시며 응수하고 SNS로 상대팀 수비수의 거친 플레이를 직설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만약 이런 행동의 상대가 부천이고 부천 팬들이 지금처럼 대응한다면 어떻게 될까. 부천이 지금 K리그 클래식에 있었더라면 참지 못하고 넘어갈 일이 너무나도 많다.

상대가 도발할 때마다 선수단 버스를 막고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하면 결국 부천 구단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 먹는다. K리그 챌린지보다 훨씬 더 도발과 응수가 잦은 K리그 클래식에 지금의 부천이 와 있다고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선다. 부천이 K리그 챌린지에서 구단 운영과 경기력 등의 내공을 쌓는 동안 팬들도 더 마음을 다듬어야 한다. K리그 챌린지에서 기분 나쁘다고 상대팀 버스를 세 시간이나 막는 팀이 당장 내년 시즌에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한다고 하루아침에 그 폭력적인 성향을 거둘 수는 없다. 지금부터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은 툭하면 경기가 끝난 뒤 양 팀 서포터스끼리 대치하던 부천SK 시절이 아니다. 훨씬 더 규모가 큰 전북이나 수원, 서울 팬들도 성격이 없어서 원정팀 버스를 편하게 보내주는 게 아니다.

관심이 적은 K리그 챌린지에서야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지만 K리그 클래식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엄격한 잣대로 K리그 클래식을 바라보는 언론의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된다. 툭하면 스포츠뉴스 메인을 장식할 것이다. 슈퍼매치에서 이상호가 친정팀 팬들이 던진 물병을 받아먹은 날 이상호에게는 경기 종료 뒤 열 명 넘는 기자들이 붙었고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팬들에게 전달됐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기자들도 대단히 많았다. 만약 부천이 K리그 클래식에서 상대팀 버스를 막았더라면 실시간으로 많은 매체를 통해 부정적인 뉴스가 그대로 전달됐을 것이다. 그나마 K리그 챌린지에 있어 관심이 덜하고 그 현장에 <스포츠니어스>만이 와 있어 파급력이 덜했다. 부천 팬들께 묻고 싶다. 지금 같은 마인드라면 FC서울 골키퍼 유상훈의 장풍을 맞고도 참을 수 있나.

경남의 원정대 버스를 막고 항의하는 부천 팬들 ⓒ 스포츠니어스

이제는 변해야 한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고 사람도 변해야 한다. “저 새X가 버르장머리 없이 감히 우리한테 도발했다”고 라커로 쳐들어가고 버스를 막고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축구보다가 화를 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경기장에서의 야유 정도로, 아니 아주 더 너그럽게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는 정도로 끝내자. 우리팀의 부진한 성적에 화가 나 버스를 막고 항의하다 감독이나 주장의 각오를 듣고 그래도 박수를 쳐주며 보내주는 건 어느 정도 소비자로서 어느 정도 정당한 의사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팀 버스를 세 시간 동안이나 막아서며 욕을 하는 건 절대 정당한 의사 표현이 아니다. 버스를 막고 상대팀이 집에 가지 못하고 막는 행위도 일종의 폭력이다.

자기가 기분 나쁘다고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취재 결과 경남 원정 버스 운전기사는 세 시간이나 출발이 지연돼 새벽 4시 반에 경남 클럽하우스에 도착했고 아침 6시에야 일정을 마무리했다. 결국 다음날 버스 운행 일정까지 다 통으로 날리고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됐다. 욱하는 심정에 한 행동으로 누군가는 생계까지 타격을 입게 됐는데 그깟 버스 막고 사과 받는 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인지 사뭇 회의감이 든다. 축구는 전쟁이라는 말에 동의하고 그만큼 전투적으로 싸워야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축구장 안에서만 해당되는 일이다. 90분 동안 야유를 퍼부었으면 될 일이고 다음에 만날 때 시원하게 이긴 뒤 “어디 또 호우 세리머니 한 번 해봐”라며 걸개 한 번 걸어주면 될 일이다.

혹시 이날 2-4 패배의 분풀이 대상을 상대팀에서 찾은 건 아닐까. 부천 팬들이 조금 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상대팀 버스를 가로막고 물리적인 힘을 행사한다고 해 이걸 다른 팬들보다 뛰어난 열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이러다 결국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무관중 징계나 벌금 징계를 당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구단에 돌아가게 된다. 이런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세 시간이나 대치하면서 받아내야 할 사과였는지 잘 생각해 보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은 아닌지도 잘 생각해 보자. 열정이라는 이유로 이런 폭력이 정당화 돼선 안 된다. 팀이 떠나가고 얼마나 힘들게 다시 만든 팀인데 이 팀이 몇몇 팬들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대중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남기면 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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