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명재영 기자] 수원에 이번 슈퍼매치는 승패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수원삼성이 12일 수원월드컵경기장(빅버드)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6라운드 FC서울과의 시즌 세 번째 슈퍼매치에서 0-1로 패배했다. 리그에서 펼쳐진 슈퍼매치에서 9경기째 승리가 없다. 최근 8경기에서 무패 행진을 달리며 선두 경쟁을 펼치고 있던 수원으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원은 승패를 넘어서 소중한 의미를 얻었다. 바로 구름 관중이다. 이날 빅버드에는 26,581명의 관중이 몰렸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슈퍼매치인데 관중이 적게 왔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수치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는 그 누구도 관중 수에 대해 지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이래야 슈퍼매치답지”라는 목소리가 컸다.

수원은 지난 2015년 시즌 개막을 앞서 중대 결심을 내렸다. 바로 경기장의 축소였다. 빅버드는 2002년 FIFA 월드컵 대회의 개최를 위해 설립한 경기장이다. 당시 FIFA의 월드컵 개최 규정에 의해 4만 명 이상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도록 44,301석이 경기장에 깔렸다. 월드컵이 끝난 이후 최고 인기 팀인 수원이 둥지를 텄지만, K리그 현실에서 ‘지나치게 큰’ 규모였다.

경기장을 꽉 채운 것은 2011년과 2012년에 있었던 단 두 번의 슈퍼매치뿐 이었다. 4만 관중으로 기준을 낮게 잡더라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흥행의 성공 기준인 2만 명이 빅버드를 찾더라도 경기장은 절반이 채 차지 못한다. 수원은 치열한 분석과 검토를 거쳐 2층 좌석을 전면 폐쇄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2층을 통천으로 가리자 빅버드는 18,128명(미디어석 포함)을 수용하는 경기장으로 변신했다. 2014시즌까지의 시즌 평균 관중 추이를 보면 매 경기 만석을 기록할 수 있는 규모였다. 여기서 수원은 한 단계 더 앞서나간다. 티켓의 전면 유료화 정책이다. “프로스포츠를 돈 주고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무슨 유료화냐”라는 목소리가 나올 법하지만 2014년까지 수원은 그렇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무료로 티켓을 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경기 당일에 행사 부스를 통해 다음 경기의 티켓을 거저 얻을 수 있었다.

팬들이라면 한 번쯤 접해봤을 법한 초대권이 바로 그것이다. 수원은 ‘축구 수도’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많은 관중이 몰리는 팀이었다. 문제는 그 관중의 적지 않은 인원이 무료로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과 비슷한 관중 수에도 입장 수익에서 큰 차이가 나는 이유였다.

빅버드에는 경기 외에도 팬 사인회, MD 뽑기 등 눈길이 갈만한 행사가 많았다

모기업의 지원 정책이 어느 순간 전면적으로 바뀌면서 수원도 자생의 길을 찾아야 했다. 그러한 측면에서 나온 결과물이 바로 앞서 언급한 두 조치다. 공격적인 마케팅도 병행된 끝에 지난 두 시즌은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평균 관중 수에서 마지노선이라고 여겼던 만 명을 넘겼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올해 터졌다. 지난 시즌 내내 리그에서 긴 부진을 겪으면서 팬들이 이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수단의 질적 약화와 성적의 곤두박질이 동시에 찾아오자 높은 팬 충성심을 자랑하는 수원도 버티기 힘든 모습이었다. 지난해 경기를 거듭할수록 관중 수가 차츰 떨어져갔고 그 여파는 올해에도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와 다를 것 없는 성적이 이어졌고 설상가상으로 홈 무승 징크스까지 찾아왔다. 결국 수원의 관중은 네 자리 수로 추락했다. 어느덧 1만 명은 넘볼 수 없는 수치로 여겨지고 있었다.

지난 6월 18일에 열린 슈퍼매치도 흥행 부진의 연장선이었다. 좋은 날씨와 주말 밤이라는 최상의 조건을 갖췄지만 20,140명만이 슈퍼매치를 현장에서 관람했다. 슈퍼매치 역사상 최저 관중에 가까운 기록이었다. 8천 명도 안 되는 평균 관중과 2만을 겨우 넘은 슈퍼매치는 수원 프런트에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제휴 기업의 확대와 더불어 지역 마케팅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다행히 팀의 성적도 여름을 기점으로 정상 궤도에 오르고 있었다. 2010년 이후 처음으로 5연승을 기록할 정도로 선수단의 분위기가 살아나자 빅버드를 잊었던 팬들도 다시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미약한 수치나마 관중 상승폭이 보이자 수원 구단은 이번 슈퍼매치에 모든 것을 걸었다.

우리가 ‘일본 J리그의 마케팅 사례’라며 기사로나 접하던 방문 티켓 판매를 시작했다. 구단의 전 직원이 직접 발로 뛰면서 지역 내 상점 등을 대상으로 티켓을 팔았다. 제휴가맹점인 ‘블루하우스’와 현물 지원이 직접 오가는 ‘블루스폰서십’을 활용한 홍보도 최대한으로 가동했다. 선수단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주포 공격수인 조나탄은 지역 내 다문화ㆍ장애인 가족을 직접 초청해 선행과 홍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모기업도 반응했다. 자사 직원들이 사용하는 내부망 시작 페이지에 슈퍼매치 홍보 사진이 올라갔다.

이러한 노력에 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매 속도가 빠르게 올라갔다. 경기 전 만난 수원 구단 관계자는 “최종 예매율은 3만 이상이 찾았던 지난해 FA컵 결승 수준”이라며 “많은 팬이 찾을 수 있도록 적지 않은 노력을 했는데 여러모로 기대되는 경기”라고 전했다. 그렇게 이날 빅버드를 찾은 관중은 26,581명이었다. 조심스레 기대했던 3만 관중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경기장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빅버드에는 경기 외에도 팬 사인회, MD 뽑기 등 눈길이 갈만한 행사가 많았다

이날만 임시로 개방한 일반석(E석)과 서포터석(N석) 2층은 경기 초반에 이미 빈자리가 없었다. 경기장 주변 교통이 마비되어 뒤늦게 입장한 관중들은 자리가 없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경기 도중 일반석 2층의 통천을 걷어 좌석을 추가로 확보해야 할 정도였다. 수원 관계자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팬이 경기장을 찾은 모습을 보니 기쁘다”며 “힘들었던 이번 시즌의 기억을 보상받는 느낌”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시즌 세 번째 슈퍼매치를 찾은 26,581명의 관중은 이번 시즌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를 통틀어 두 번째 최다 관중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혹자는 이런 기록의 원인을 좋은 성적으로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절실한 노력이 모여 빛을 봤다고 하는 것이 사실에 가까웠다. 승점을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하면 된다”는 소중한 교훈을 다시 느낀 수원의 향후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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