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팀 팬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가 야유와 함께 물병 세례를 받은 이상호.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수원=김현회 기자] FC서울 유니폼을 입은 이상호에게는 특별한 경기였다. 수원삼성 소속으로 무려 일곱 시즌을 뛰며 많은 수원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상호가 라이벌 서울로 이적한 뒤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치른 첫 경기였기 때문이다. 이상호는 1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 하나은행 2017 K리그 클래식 수원삼성과 FC서울의 경기에 선발 출장해 활약했다. 수원 입장에서는 ‘배신자’인 이상호는 경기 시작 전 선수 소개 때부터 쩌렁쩌렁한 야유를 들어야 했다.

서울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찾은 수원월드컵경기장은 낯설었다. 익숙했던 왼쪽 홈 라커가 아닌 어색한 오른쪽 원정 라커에서 경기를 준비하는 것부터가 이상호에게는 새로웠다. 이상호는 “원정 라커를 쓰고 몸을 풀 때부터 기분이 묘했지만 나는 이제 서울 선수”라고 웃었다. 하지만 이상호도 상당한 부담이 있었다. “야유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는데 전반전에는 신경이 쓰였던 게 사실”이라고 밝힌 이상호는 “후반전에 몸이 풀리면서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경기 도중 이상호가 파울을 하자 수원 팬들이 특유의 안티콜을 하기도 했다. 이상호가 7년 동안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듣던 그 안티콜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상호의 90분은 누구보다도 더 특별했다. 이날 경기는 후반 16분 수원삼성 곽광선의 자책골로 서울이 1-0 승리를 따내며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상호는 골을 넣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컸다. 이적하자마자 지난 3월 수원삼성을 상대로 동점골을 기록하며 진가를 발휘한 이상호는 “후반 수원 자책골 상황에서 내심 ‘골대에 맞고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후반에 근육 경련이 일어나 결국 교체됐다. 근육 경련이 아니었더라면 더 활기차게 움직이고 골 욕심도 내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진짜 특별한 이야기는 경기가 끝난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수원 선수들이 경기장을 돌며 홈 팬들에게 인사를 하던 순간 서울 선수들은 원정팬 앞으로 가 승리를 자축하는 기념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서울 선수들이 다들 라커로 들어가는 순간 이상호가 뚜벅뚜벅 수원 서포터스석으로 걸어갔다. 순간 경기장을 채운 수원 팬들은 이상호에게 야유를 보냈지만 이상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도 오래 뛴 팀이니 도리라고 생각해 야유가 나올 줄 알면서도 인사를 하러 갔다.” 그는 야유를 각오하고 7년간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 팬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상호가 인사를 하러 오자 수원 팬들은 걸개까지 내걸며 응수했다.

이상호는 이제 완벽한 서울 선수가 됐다. ⓒ프로축구연맹

수원 팬들이 야유를 하는 동안 서울 팬들은 반대편 골대에서 “이상호”를 연호했다. 한 선수를 두고 양 팀 팬들이 동시에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호가 수원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몸을 돌리는 순간 여기저기에서 이상호를 향해 물병이 날아들었다. 순간 멈칫한 이상호는 살짝 몸을 돌려 이중 하나의 물병을 집더니 그대로 뚜껑을 열어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돌아섰다. 물병을 투척한 수원 팬들을 향한 당당한 제스처였다. 이상호의 행동에 더 화가 난 팬들이 또 다시 그라운드로 물병을 집어던졌지만 이상호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이상호의 특별한 수원 원정길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경기가 끝난 뒤 만난 이상호는 여유가 넘쳤다. 야유가 터지고 물병이 날아오는 상황에서도 보란 듯이 여유 있게 그 물병을 집어 들고 마신 상황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마침 목이 좀 말라 시원하게 마셨다.” 이 와중에도 이상호는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야유가 나올 줄 알면서도 인사를 하러 갔다.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지만 이 상황에서도 물병을 던지지 말라던 분도 있었다. 화를 낸 분이 ‘7’이라면 말리던 분도 ‘3’은 됐던 것 같다. 그런 분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제 나는 서울 유니폼을 입었으니 이런 야유에 개의치 않고 서울을 위해 뛰겠다.”

한편 이날 이상호의 활약에 대해 황선홍 감독은 “100% 만족한다”며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을 많을 수 있어 부담감을 떨쳐버리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열정적인 모습으로 역할을 소화해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호에게는 너무나도 특별한 경기였다. 이상호가 수원 팬들이 던져준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마시는 동안 서울 팬들은 더 시원한 사이다를 벌컥벌컥 들이켠 기분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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