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문수축구경기장 ⓒ 울산 현대 제공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K리그에서 원정팬의 존재는 무엇일까?

홈팀의 입장에서 썩 반가운 손님은 아닐 것이다. 분명 티켓 값을 내고 입장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경기장에 입장한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그들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홈팀 선수들에게 야유를 퍼붓고 홈팀의 분위기를 망칠 때 그들은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원정팬이 고객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단순히 티켓만 따졌을 때 오히려 더 비싼 돈을 내는 고객이다. 문제는 원정팬들의 만족도다. 돈을 낸 만큼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많다. 주기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나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원정석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다. 매점이 없다거나 가방 검사가 너무 고압적이라는 등 각종 불만이 터져나온다.  원정팬들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경기장에 가는 셈이다.

이는 곧 원정팬들이 얼마나 충성도가 높은 고객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모든 악조건을 딛고도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기꺼이 돈과 시간을 들여 다른 팀의 경기장을 찾는다는 것이다. 스포츠 마케팅 학계에서는 이를 '스포츠 투어리즘'의 한 요소로 보고 꽤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K리그에서 원정팬은 여전히 눈엣가시였다. 그런데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 시작은 울산 현대다.

작은 배려 담긴 울산의 티켓 정책

대부분의 K리그 구단들의 원정석 티켓 정책은 명확하다. 홈팬들에게 제공하는 가격보다 조금 더 비싸게 받는다. 홈 팬 청소년이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미성년자 할인 혜택도 원정팬은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뭔가 특별하지는 않다. 오히려 삼엄한 경호원의 눈초리를 받으며 제한된 구역에서만 있어야 한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불편한 점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 울산의 원정석 정책은 다른 점이 있다. '상대 구단의 원정석 가격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FC서울의 경우 원정석 가격이 14,000원이다. 그렇다면 울산에서 열리는 울산과 서울의 원정석 티켓 가격은 똑같이 14,000원이다. 강원FC의 팬이라면 평창 알펜시아의 원정석 가격은 30,000원이다. 그렇다면 울산에 가서 원정석 티켓 가격으로 30,000원을 내야하는 셈이다.

이런 정책을 취한 이유는 무엇일까? 울산 구단 관계자는 "같은 K리그 구성원에 대한 존중의 의미다"라고 말했다. 티켓 정책의 결정권을 상대 구단에 넘겨준 셈이다. 이는 상대를 존중해야 울산 팬들 또한 원정에 가서 존중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평소 울산 구단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원정팬을 '불편한 손님'이 아니라 '또 하나의 고객'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적어도 원정팬 입장에서는 티켓 가격으로 불만을 갖는 일은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울산과 같은 원정석 티켓 정책을 취하는 인천의 팬들도 불만은 크게 없을 것으로 보인다. 두 구단이 상호 합의에 만원으로 책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작은 배려가 결국 구단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는 것이다. 울산은 이렇게 조금씩 원정팬들에게 호의적인 구단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자' 대구로 향한 발걸음

올 시즌 울산은 원정석 티켓 정책을 넘어 조금 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기로 결정했다. 생각의 확장이다. 원정팬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유치하기로 했다. "구단에서 제공하는 원정 버스를 타고 오시는 팬들도 많지만 가족 단위 등 소규모로 여행을 겸해 오는 팬들도 많았다. 이들이 우리 경기장에 와서 경기를 보고 울산 여행도 하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고 구단 관계자는 설명했다. 마침 2017년이 울산 방문의 해인 것도 한 몫했다.

울산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대구로 향했다. 4월 30일 대구 스타디움에서는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대구FC와 FC서울의 경기가 열렸다. 이날 울산은 한 쪽에 부스를 차렸다. 대구 팬들을 상대로 3일 뒤 열리는 울산 현대와 대구FC 경기의 원정 티켓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신선한 광경이었다.

대구와 서울의 경기에 '미호'가 난입했다. 그런데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 울산 현대 제공

대구와 서울의 경기에 울산이 등장했다.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울산의 마스코트 '미호'도 대구 경기장에 출격했다. 이날 대구 스타디움에서는 대구FC가 주최한 어린이 사생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곳에 울산 마스코트가 등장해 대구 마스코트와 함께 어린이들에게 다가갔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제 3자가 경기장에 등장했음에도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행사는 양 구단의 상호 존중과 협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어디서든지 할 수 없다. 만일 울산이 포항 경기장에서 이런 행사를 했다면 곧바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을 것이다. 그래도 울산은 이 이벤트를 통해 '공략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원정팬들을 위한 두 번째 이벤트를 만들기 위해 골몰했다.

'원정팬도 오세요' 디테일 살아있는 숙박 패키지 상품

고심 끝에 울산은 두 번째 이벤트를 내놨다. 이번에는 하나의 상품을 출시했다. 축구경기가 포함된 1박 2일 패키지다. 13일 열리는 동해안 더비에 맞춰서 만들었다. 울산의 K리그 클래식 경기 중 가장 상품성이 높은 경기가 바로 포항 스틸러스와의 동해안 더비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울산은 상품 구성을 위해 구단 스폰서인 신라스테이와 손을 잡았다. 해당 상품은 울산 신라스테이 디럭스룸 1박 이용권(12일 체크인)과 울산과 포항의 '동해안 더비' 입장권 2매로 구성되어 있다. 가격은 9만원이다. 모두 합쳐서 14만원에 달하는 상품을 약 40% 가량 할인해 가격 부담을 낮췄다. 이 정도면 가성비가 꽤 괜찮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울산 구단은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체크아웃 시간을 오후 4시로 늘렸다. 축구팬들의 여행 동선 및 이동 편의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 구단의 설명이다. 보통 숙박 시설의 체크아웃 시간은 정오를 넘지 않는다. 13일에 경기만 볼 계획을 갖고 있는 팬이라면 난감할 수 밖에 없다. 약 7시간이 비는 셈이다. 이를 감안해 체크아웃 시간을 늦춘 것이다. 게다가 티켓은 원정석도 이용 가능하다. 원정팬들의 수요를 고려한 것이다.

아쉬운 점은 단 20세트만 판매한다는 것이다. 선착순이다. '한정판' 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동해안 더비 관람을 계획하고 있는 축구팬이라면 고려해볼 만한 상품이다. 향후 울산 구단은 이런 상품의 추가 개발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구단 관계자는 "지역 관광지와의 연계 등은 협의를 하고 협조를 구해야 하는 부분이다. '당장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시도와 아이디어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은 계속해서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생각을 살짝 바꾸면, 그리고 조금만 더 행동하면 많은 것들은 바뀔 수 있다. 현재 울산의 모습이 그렇다. 원정팬들 역시 또 하나의 고객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면 그보다 한 발짝 더 나가야 한다는 사실 역시 자명하다. 남들보다 울산은 한 발자국을 더 앞서는데 성공한 셈이다. 그들의 시도는 성공할까? 개인적으로는 성공하길 바랄 뿐이다.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