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삼성 제공

[스포츠니어스 | 명재영 기자] 수원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 5년 동안의 기나긴 프로젝트였다.

수원삼성의 미드필더 박현범이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자유계약(FA) 신분으로 팀을 떠났다. 수원과의 두 번째 이별이다. 박현범은 차범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2008시즌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해 입단 첫해 리그 18경기 출전 2골 2도움을 올리며 수원의 리그 우승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2010년 트레이드를 통해 제주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박현범은 전성기를 맞았고 이듬해 현금+선수라는 적지 않은 이적료로 수원월드컵경기장에 복귀했다.

박현범은 2011년 수원 복귀 직후 경찰청 입대 전까지 수원의 주전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항상 좋은 일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다. 슈퍼매치와 같은 큰 경기에 강해 이름을 알리기도 했지만, 194cm라는 듬직한 신체조건과는 달리 공중 경합에서 약점을 보였고 정적인 플레이로 팬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특히 2013년에는 ‘백패스의 사나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5년 1년 9개월의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수원에 박현범의 자리는 없었다. 입대 전이었던 2013년에는 서 감독이 기존의 팀 색깔을 유지하면서 변화를 주는 조심스러운 기간이었기에 리그 14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지만 박현범이 팀을 떠난 2년의 세월 동안 수원은 180도 달라졌다. 권창훈, 김은선, 산토스 등 많은 활동량을 내세우는 선수들이 중원을 장악한 뒤였다. 몸 상태가 불완전했던 박현범은 주전 경쟁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때 대표팀의 부름도 받았던 박현범은 제대 후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시간을 보냈다. 작아진 팀 내 입지에 부상까지 그를 괴롭혔다. 2016시즌 좋은 경기력으로 부활하는 듯했던 박현범은 개막 후 한 달 만에 부상으로 다시 모습을 감췄다. 3개월의 재활을 걸쳐 복귀했지만 잔부상과 컨디션 난조의 악순환 속에 팬들의 머릿속에서도 완전히 잊혔다.

작년 9월 18일 전북현대와의 리그전에서 교체 출전을 마지막으로 박현범의 출전 기록은 멈춰있다. 팀은 시즌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박현범은 올해 단 한 번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결국, 계약 해지 형태로 수원에서의 생활을 정리한 박현범은 프로 생활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현재 박현범은 개인 훈련을 진행하며 동남아시아 등 해외로의 이적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장은, 박현범, 백지훈 등 '갤럭시'의 빈 자리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 수원삼성 제공

반대로 수원은 한 선수와의 이별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얻었다는 평이다. 2009년부터 2년 동안 최악의 부진을 겪은 수원은 창단 멤버였던 윤성효 숭실대 감독을 3대 사령탑으로 앉히면서 이른바 ‘갤럭시 정책’을 펼쳤다. 2011년 한 해에만 수많은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청백적 유니폼을 입었다. 정성룡, 이용래, 오장은, 최성국, 오범석 등이 ‘레알 수원’다운 이적료와 연봉으로 수원에 합류했다. 외국인 쿼터는 시즌 중에도 변화의 연속이었다. 반도, 마르셀, 디에고, 베르손, 스테보, 게인리히 등이 수원을 오갔다.

이러한 광폭 영입에도 수원은 2011년 트로피를 단 한 개도 들어 올리지 못했고 이 결과는 2012년에도 이어졌다. 이 시간 동안 수원은 “축구를 재미없게 한다”는 비판을 수없이 들었고 서포터와의 직접적인 불화 사건까지 터지기도 했다. 결국, 서정원 감독의 부임과 함께 팀 정책은 180도 바뀌었다.

이때부터 ‘고연봉 저효율’이라는 비판을 받던 일부 선수들의 정리를 위한 수원의 기나긴 정리가 시작됐다. 미필 선수들은 군대로 향했고 나이가 많은 선수들은 하나둘씩 짐을 쌌다. 비교적 오래 남아 있던 선수들은 대부분 큰 폭의 연봉 삭감이 이뤄진 경우였다. 이렇게 씀씀이를 줄인 결과 지난 시즌 에두의 영입 추진을 비롯해 조나탄, 다미르 등의 보강이 가능했다.

현재 수원의 선수단 중 윤성효 전 감독 시절에 영입했던 선수는 곽광선, 이용래, 서정진 단 세 명뿐이다. 곽광선을 제외하고는 활약이 미미한 상황이다. 갤럭시 정책의 빈자리는 매탄고와 알짜배기 영입 선수들이 채웠다. 이번 이적 시장으로 수원의 과거 정리는 90% 이상 마무리된 모양새다. 수원은 최근 5연승으로 분위기까지 좋아 이제야말로 자신 있게 새 출발을 말할 수 있게 됐다. ‘거품의 수원’은 이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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