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경남에 입단한 김도엽이 정든 팀을 떠나게 됐다. ⓒ경남FC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원클럽맨’은 스포츠의 마지막 낭만이다. K리그에도 ‘원클럽맨’의 역사를 이루고 있는 선수는 몇 없다. 김도엽도 ‘원클럽맨’이었다. 2010년 경남FC에 입단해 군에 입대한 2015년과 2016년을 빼고는 줄곧 경남에만 있었다.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해도 6년 반이라는 세월 동안 경남과 함께 했다. 조광래 유치원 시절부터 경남의 K리그 챌린지 강등, 그리고 올 시즌 초반 엄청난 상승세까지도 함께 한 선수였다. 김주영, 윤빛가람, 서상민 등 조광래 유치원생들이 모두 팀을 떠났어도 홀로 남아 경남을 지켰다. 그가 경남에서 경험한 감독만 8명(감독대행 포함)이다.

경남 팬들에게는 김도엽이라는 이름보다는 김인한이라는 이름이 아직도 더 익숙하다. 2014년 김도엽으로 개명했지만 아직도 김인한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그가 경남의 ‘영원한 원클럽맨’으로 남아주길 바랐던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지난 달 25일 경남과 제주는 김도엽과 권용현의 트레이드 소식을 발표했다. 2010년 경남 유니폼을 입은 뒤 줄곧 ‘원클럽맨’으로 남아 있던 김도엽도 결국 하루 만에 제주 선수가 됐다. 경남 팬들에게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김도엽에게 심정을 물었다. 우리의 ‘원클럽맨’은 그렇게 또 한 명이 사라졌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지난 5월 FA컵 울산전에서 쇄골 골절 부상을 당해 곧바로 수술을 했다. 쇄골 뼈가 네 조각이 난 상태여서 팀 훈련에 복귀하기까지 3개월은 걸린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회복이 빠른 편이라 아마 다음 주 정도면 팀 훈련에 복귀할 수 있을 것 같다. 몸싸움은 아직 무리가 있어 경기에 나가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거 같다. 지난 달 25일 제주 훈련에 합류해 현재는 혼자 따로 재활 훈련을 하는 중이다. 이제 막 공을 가지고 훈련을 시작했다.

‘원클럽맨’이 이적했다. 이적 추진 과정을 알고 있었나.

공식 발표가 나기 일주일 전에 경남 구단에서 연락이 왔다. “이런 제안이 왔고 이런 상황인데 너의 의견은 어떠냐”고 묻더라. 그때 처음 들었다. 내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했다. 경남은 2010년 내가 K리그에 입성해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고는 줄곧 뛰었던 팀이어서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나는 부상을 당해서 이제 막 재활을 시작하는 상태 아닌가. “구단에서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트레이드가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원하는 대로 해달라”는 건 당신도 트레이드를 원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내가 경남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경남에서 나도 다치고 (이)현성이도 다쳐서 공격수가 부족했는데 구단에서도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권용현은 부상 없이 바로 팀에 오면 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경남에 마지막으로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 트레이드를 받아들였다. 트레이드 기사가 난 지난 주 화요일에 제주로 와 메디컬 테스트를 받고 팀에 바로 합류했다.

현재 진행 중이었던 ‘원클럽맨’ 한 명이 이 역사를 이어가지 못하게 됐다는 건 아쉽다.

나도 많이 아쉽다. 경남을 K리그 클래식으로 올려놓고 좋은 상황을 만들고 싶었는데 내가 다쳐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경남 승격이 먼저니까 내가 승격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나 대신 누군가 경남 공격진을 채우는 것 뿐이었다. 경남에는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다.

만약 쇄골 부상이 아니라면 트레이드를 거부했을까.

물론이다. 올 시즌 초반 경기에서 계속 출전했고 세 골도 넣었다. 팀도 무패를 이어가며 K리그 챌린지 단독 1위를 질주했다. 경기에도 계속 나가고 있고 팀 성적도 좋은데 내가 팀을 떠날 이유는 없었다. 경남을 승격시키고 싶어서 남아 있었던 건데 점점 가능성은 커지고 있었다. 팀에 대한 애정은 대단히 컸지만 부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해 트레이드를 받아들여야 했던 묘한 상황이었다.

김도엽은 조광래 유치원의 마지막 선수였다. ⓒ경남FC

경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언제였나.

2010년 6월 수원삼성과의 홈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는 정규리그만 있는 게 아니라 리그컵도 있었다. 이날 리그컵 수원삼성전에 후반 15분을 남기고 교체 투입돼 데뷔골을 넣고 한 골을 더 넣었다. 이 경기는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경기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또한 시즌 전체로 치면 2012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해에 40경기에 나서 10골을 넣었다.

당신은 2014년 경남의 강등도 함께 지켜봤던 선수였다.

나는 그 시즌을 가장 기억하기 싫다. 당시 안종복 사장님과 트러블이 좀 있었다. 나는 열심히 뛰었고 팀이 어떻게든 강등되지 않도록 노력 중이었는데 사장님은 나를 그렇게 보지 않으셨던 것 같다. 내가 컨디션이 안 좋고 정신력도 부족하다고 판단하셨고 결국 후반기에는 2군도 아닌 3군에서 운동을 해야 했다.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 항상 준비돼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장님은 그게 아니셨다. 그렇게 3군에서 운동만 하다가 이듬해 상주상무에 입대하게 됐다.

2010년부터 경남에 있으면서 많은 선수들과 함께했다. 경남의 역사를 다 꿰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 아닌가.

국내 선수들은 다 이적했어도 경기를 하면서 한 번씩은 만난다. 어디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작별이라는 개념은 별로 없다. 그런데 외국인 선수 중에는 이제 한국을 떠난 까이끼나 루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애들이 무척 착했고 경기할 때도 잘 맞았다. (김)병지 삼촌하고도 같이 뛰었으니 나도 노장 축에 속하나.

그 유명했던 ‘조광래 유치원’의 마지막 학생이 이제 경남을 떠나게 됐다.

아 그런가. (최)영준이가 그 다음 시즌에 입단했으니 내가 조광래 유치원 마지막 선수였구나. 내가 마지막까지 지키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때 윤빛가람, 김주영, 서상민, 이용래 등 참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마지막까지 내가 조광래 유치원을 지켰다는 자부심을 갖겠다. 하지만 끝까지 함께해서 승격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건 많이 아쉽다. 승격까지 이뤘더라면 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급하게 이적을 확정짓느라 경남 팬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걸로 안다.

2010년도에 고등학생 팬들이 참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꽤 많은 분들이 계속 응원해 주셨다. 내가 신인 시절부터 봐 왔던 팬들이다. 이적한다고 하니 “가서도 잘하라”고 해주시더라. 구단에서 선수들과 감독님께는 인사를 하고 왔지만 팬들에게는 따로 인사를 할 기회가 없어서 내 SNS로만 작별 인사를 했다. 막판에 트레이드가 결정돼 짐 챙길 시간도 부족했고 메디컬 테스트를 받고 바로 제주에 합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도엽은 조광래 유치원의 마지막 선수였다. ⓒ경남FC

제주에 합류하니 기분이 어떤가.

매일 있었던 숙소와 훈련장을 떠나 갑자기 낯선 곳에 오니 모든 게 어색하다. 선수들도 다 바뀌고 주변 환경도 바뀌었다. 그나마 상무 입단 동기였던 최현태, 박진포, 배일환이 있고 선임이었던 권순형이 있어 어색함을 좀 덜었다. 경남에서 뛰었던 윤빛가람과 이창민도 있다. 이 외에는 대부분이 잘 모르는 선수들이다. 그나마 군대에서 인맥이 좀 생긴 것 같다.

제주 생활은 적응할 만한가.

아직까지는 초반이라 잘 모르겠다. 그런데 클럽하우스 시설이 너무 좋다. 바로 앞에 훈련장도 있고 지하에는 웨이트트레이닝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다만 방 안에 화장실이 없는 건 좀 불편하다. 함안에 있는 경남FC 숙소 신관에도 방마다 화장실은 있었다.

당신과 권용현의 트레이드를 두고 어느 한 쪽이 더 아깝다고 비교하는 이들이 많다. 당신은 군필이라는 메리트가 있고 권용현은 부상 없는 즉시 전력감이라는 매력이 있다. 이런 비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지는 몰랐다. 그런데 사실 트레이드가 돼 비교에 대한 부담감은 있다. 하지만 서로 ‘윈윈’하는 트레이드였으면 좋겠다. 그 선수도 경남에 도움을 줬으면 좋겠고 나도 부상을 털고 복귀해서 제주에 더 도움을 줬으면 한다.

그렇다면 제대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경남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부탁한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아쉽고 부상을 당해 더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한 점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제 다른 팀 선수가 됐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늘 경남이라는 팀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경남이 승격해서 다시 만나게 되면 웃으면서 봤으면 좋겠다. 늘 고마운 마음이다.

이제는 제주 선수다. 제주 팬들에게도 첫 인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당장은 부상 때문에 복귀하지 못하지만 몸을 잘 회복해 곧 경기장에서 인사드리겠다. 이제는 제주가 나의 팀이라는 걸 늘 기억하겠다. 지금은 팀이 4위에 머물러 있는데 복귀해서 좋은 역할을 해 그래도 1위를 한 번 찍을 수 있도록 하겠다. 많이 응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셨으면 한다.

조광래 유치원을 마지막까지 지키고 있던 김도엽은 이렇게 경남을 떠나 제주로 갔다. 경남에 도움을 주고 싶던 김도엽은 마지막 순간 자신이 부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 트레이드에 응했다. 그렇게 2010년부터 군 복무 시기를 빼고는 늘 경남 유니폼을 입고 있던 김도엽은 아직은 어색한 제주 유니폼을 입게 됐다. 이제는 ‘원클럽맨’이 될 기회를 놓친 김도엽과 그의 자리를 대신 채워야 하는 권용현 모두에게 이 트레이드가 성공적이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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