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탄 ⓒ 수원삼성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우리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나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 아직도 “두 유 라이크 지송팍?”이나 “두 유 노우 연아킴?”을 묻는다. 우리가 이 질문을 하는 건 그게 정말 궁금해서가 아니다. “알고 있다”나 “좋아한다”는 답을 원하는 거다. 처음부터 ‘답정너’였다. 우리는 외국인이 “쌀랑해요 지송팍”이나 “불코키 마씨써요”라고 해주면 박수를 보낸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송팍’이 ‘연아킴’으로, ‘연아킴’이 ‘캉남스타일’로 바뀔 뿐이다. 뭐 그리 피해 의식이 있어서인지 외국인들이 알아주면 그렇게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한다.

심지어 한국이 좋아하는 외국인들에게는 귀화까지도 강요하는 시대가 됐다. 최근 K리그 클래식 수원삼성 조나탄의 귀화가 이슈다. 이젠 우리도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혼혈이나 외국인 선수도 국가대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귀화한 외국인 선수의 대표팀 입성을 반대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한국을 사랑하고 귀화 조건을 갖춘 이가 있다면 누구든 대표팀에 올 수 있어야 한다. 국가대표 팀에 귀화 선수가 있어도 그 자체로 거부감을 갖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유전학적으로 세상 어디에도 순수한 순혈 인종은 없다. 이미 다문화 가정이 많아진 상황에서 아직까지도 배타주의와 순혈주의를 자랑스러워해선 안 된다.

귀화 의사를 먼저 묻는 이상한 세상

그런데 조나탄의 귀화 이야기는 좀 다르다. 조나탄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한국을 사랑하는 건 맞다. 치안도 좋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거기에다 자신의 재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한국에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니 그에게 한국은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조나탄은 “혹시 귀화를 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이 먼저 날아오자 “만약 한국에 남아 계속 뛰게 된다면 귀화할 의사가 있다”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이후에도 또 귀화 의사를 묻는 질문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했다. 조나탄이 한국에 애정이 있다는 건 분명하고 그는 사랑받는 곳에서 더 오래 남고 싶어한다. 물론 그가 귀화를 위해 한국어를 따로 배운다던지 한국 문화를 공부한다던지 하는 특별한 노력은 없다.

한국인이 되려는 아무런 노력 없이 귀화 발언을 했다고 조나탄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나는 이런 사회 분위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왜 이렇게 재능 있는 외국인을 귀화시키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 그냥 잘하면 잘하는 대로 봐주면 안 되나. 꼭 능력 있는 외국인에게 한국 음식은 잘 먹는지, 한국 아이돌 그룹은 좋아하는지, 한국을 좋아한다면 한국인이 될 생각은 없는지 캐묻는 게 언제부턴가 우리의 전통이 됐다. 이런 걸 기준으로 한다면 한국인도 잘 못 먹는 홍어도 맛있게 먹던 포항스틸러스 라자르부터 귀화시켜야 했다. 그런데 라자르에게 홍어를 잘 먹는다고 귀화를 강요한 이는 없다. 왜? 그는 조나탄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능력 있고 유명한 외국인만 보면 우리는 젓가락 사용법부터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본다. 김치를 먹으면 “대단하다”는 듯 박수를 보내고 홍어를 먹으면 감동한다. 그리고 “꼭 한국인 같아요”를 연발하고는 “귀화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는다. 귀화는 손바닥 뒤집듯 그냥 막하는 게 아니라 평생의 운명을 뒤바꿀 엄청난 선택인데 우리는 툭하면 귀화를 가벼운 이슈 쯤으로 던진다. 조나탄이 “귀화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먼저 “귀화시키자”고 한다. 귀화가 시킨다고 되는 일이 아닌데 언제부턴가 우리의 귀화를 ‘시키려’ 하고 있다. 김치 잘 먹고 강남스타일 좋아하고 박지성을 알고 있으면 “귀화하세요”라는 집요한 강요를 하는 세상이 돼 가고 있다.

수원삼성 조나탄을 꼭 한국인으로 만들어야 할까. 그냥 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남겨두는 건 안 될까. ⓒ수원삼성

누구라도 조나탄처럼 답하지 않을까?

조나탄의 발언을 그냥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의 관심과 애정 정도로 생각해 두자. 한국인이 “귀화할 생각 있느냐”고 묻는데 정색하고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정색하는 것도 불편하니 그냥 “한국을 좋아해 귀화도 생각해 봤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른다”고 딱 듣기 좋은 말을 해줬다고 받아들이자. 나도 해외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사랑받고 돈도 잘 벌고 그 나라가 살기에도 나쁘지 않으면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적당히 조나탄처럼 답했을 것 같다. 그렇다고 그가 한국에 대한 애정을 거짓으로 말한 것도 아니라는 걸 믿는다. 그런데 조나탄의 귀화가 이토록 과도한 뉴스가 되는 건 불편하다. 심지어 지상파 뉴스에서도 조나탄의 귀화를 보도할 만큼 이게 진지한 소식인가. 언론이 누구보다도 조나탄 귀화가 당장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걸 아는데 이렇게 기대감만 키우는 클릭수 장사하면 안 된다.

조나탄 입장에서는 한국 생활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브라질에서는 국가대표도 못 해봤지만 한국에서 일이 잘 풀리면 월드컵까지 나가고 더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아예 귀화 거부로 선을 그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돌아가는 상황이 좋을 때의 이야기다. 조나탄 입장에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을 것이다. 더 좋은 제안을 받고 조나탄이 해외로 이적할 가능성이 귀화보다는 훨씬 더 크다. 조나탄이 갑자기 부진해 대표팀에 도움이 안 될 가능성도 있다. 일이 잘 풀려 국가대표 발탁을 조건으로 귀화 이야기가 나오면 조나탄 입장에서는 반갑겠지만 그는 여러 가능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가 한국 생활과 문화에 감탄하며 한국인으로 평생을 살아가기 위해 귀화 가능성을 열어놓은 건 아니라는 걸 누구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귀화병’에 걸려 있다. 잘 하는 외국인 선수가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니 그게 곧바로 귀화로 흘러간다. 조나탄이 먼저 꺼낸 이야기도 아니다. 먼저 귀화 이야기를 꺼낸 건 우리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치고 있으면 그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의 플레이를 만끽하면 되지 이게 왜 귀화로 흘러가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사람을 다 굳이 한국인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릴까. 능력 있는 외국인 과학자가 한국에 와 김치를 잘 먹고 강남스타일 댄스를 추면서 즐거워하면 우리는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국이 그렇게 좋으면 귀화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그는 단지 한국을 좋아했을 뿐인데 우리는 어느새 그가 한국인이 된 모습을 상상하며 우리나라 과학 발전에 이바지해주길 바란다. 나는 이걸 ‘귀화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수원삼성 조나탄을 꼭 한국인으로 만들어야 할까. 그냥 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남겨두는 건 안 될까. ⓒ수원삼성

지금은 고국에서 잘 살고 있는 이들

과거 귀화 이야기가 나오던 외국인 선수들의 사례를 살펴볼까.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는 전남 수비수 마시엘의 귀화를 추진한 적이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는 ‘추진’이다. 마시엘이 한국이 너무 좋아 한국인이 되고 싶어 귀화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라 대한축구협회 차원에서 전력 강화를 위해 귀화를 ‘추진’한 것이었다. 마시엘은 당시 “한국 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한다는 보장만 있으면 귀화하겠다”고 했지만 히딩크 감독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결국 마시엘 귀화는 없던 일이 됐다. 당시 마시엘은 한국 생활 4년차에 접어들면서 한국에 대한 애정도 꽤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의적으로 먼저 귀화를 준비한 게 아니라 귀화 ‘추진’을 당했다. 마시엘이 한국인이 되고픈 의지가 있었더라면 대표팀 발탁 여부와 상관없이 귀화를 준비하면 될 일 아닌가.

에닝요와 라돈치치의 사례를 살펴보자. 에닝요는 대한축구협회와 최강희 감독이 나서 특별귀화를 추진한 바 있다. 외국인이 한국으로 귀화하려면 5년 이상 한국에 실제로 거주해야하고 한국어 구사 능력 등 한국 문화에 대한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 하지만 우수 인재는 이런 조건을 완화해 특별귀화를 인정할 수도 있지만 에닝요는 한국어를 거의 못하고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 특별귀화가 무산됐다. 라돈치치는 5년 이상 한국에 연속적으로 거주해야 하는데 중간에 일본 임대를 떠난 기간이 있어 거주 기간을 인정받지 못해 귀화의 꿈을 접었다. 에닝요는 태극기가 새겨진 축구화를 신기도 했고 라돈치치는 한국어 대화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유창하게 구사했지만 이 둘은 귀화를 하진 못했다. 그런데 마시엘과 에닝요, 라돈치치의 이후 모습을 보자. 이 셋은 축구선수로서의 역할이 끝난 뒤 결국 고국으로 돌아가 생활하고 있다.

2007년 한 잡지에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파격적으로 등장해 귀화를 고려하겠다던 모따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나. 브라질로 돌아가 잘 살고 있다. 귀화 의지가 있었더라면 한국에 남아 조건을 충족하고 공부를 해 한국인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을 떠났다. 그들을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한국인이 되고 싶은 외국인들은 알아서 남아 노력한다는 것이다. 누가 강요해 귀화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 한국에 남는다는 것이다. 이들이 귀화하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가 생활하고 있다고 마시엘과 에닝요, 라돈치치, 모따의 훌륭했던 K리그 생활까지 깎아내릴 것도 없다. 이들은 훌륭한 선수였고 K리그에 많은 걸 안겨줬다. 그들은 할 일을 다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굳이 귀화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 판단하면 된다.

수원삼성 조나탄을 꼭 한국인으로 만들어야 할까. 그냥 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남겨두는 건 안 될까. ⓒ수원삼성

우리의 고질병인 된 ‘귀화병’

조나탄은 현재 귀화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2014년 대구FC에서 한국 생활을 시작했지만 브라질에 돌아갔다가 지난해 다시 한국에 입국해 5년 거주 규정을 채우려면 아직 멀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는 건 맞지만 따로 한국어를 공부한다던지 귀화를 위해 준비하는 것도 없다. 그런데 연일 언론은 조나탄이 마치 귀화를 간절히 원하는 것처럼 떠들고 심지어 지상파 뉴스에서도 그의 귀화에 대해 보도한다. 귀화를 ‘시키자’고 난리다. 그런데 ‘귀화병’에 걸린 이들에게 안타까운 소식을 하나 전하자면 조나탄은 지금 특별귀화를 해도 국가대표팀에 뽑힐 수 없다. 국제축구연맹(FIFA)에 귀화 선수를 대표팀에 뽑으려면 ‘18세 이후 해당국에서 최소한 5년을 지속적으로 거주해야 한다’는 규정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귀화를 준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귀화를 해도 대표팀에 뽑힐 수도 없는데 조나탄 귀화는 지금 상황에서 그다지 진지하게 다뤄져야 할 이슈가 아니다. 조나탄이 귀화 조건을 채울 때까지 준비해 귀화를 하면 뜨거운 환영의 박수를 보내주면 되지만 그전까지는 귀화를 강요하지는 말자.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꼴은 딱 ‘귀화병’에 걸린 사람들 같다. 마치 금방 귀화할 것처럼 부풀리고 기대했다가 귀화를 선택하지 않으면 조나탄을 그때 가서 위선자로 바라볼 텐가. 조나탄이 무슨 죄인가. 그는 한국에 대한 애정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걸 듣기 편한대로 해석해 놓고 “귀화하라”는 정답까지 내려 놓은 건 우리 아닌가. 외국인에게 먼저 “귀화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다.

한국인으로 살고 싶으면 알아서 귀화를 할 테고 우리는 그냥 그전까지는 그의 플레이 자체를 즐기면 된다. 그냥 지금 그가 보여주는 대단한 활약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쓸 데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는 말자. 그리고 조나탄의 귀화에 대한 기대보다 그가 엄청난 제안을 받고 중국으로 이적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게 더 현실적인 일 아닐까. 한국을 좋아하는 것과 한국인이 되고 싶은 건 차원이 다른 문제인데 우리는 한국을 좋아하면 한국인이 되길 강요하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보자. 제발 이 ‘귀화병’ 좀 고치자.

footballavenue@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