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축구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해당 사진은 본 칼럼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태백=김현회 기자] 나는 지금 강원도 태백에 와 있다. 추계대학축구연맹전을 취재하기 위해 사흘 째 이곳에 있다. 생각보다 이곳이 마음에 든다. 태백 체질인 것 같다. 이 동네는 맛집도 많고 친절한 사람들도 많다. 큰 대회가 열리니 동네 전체가 떠들썩하다. 그저께는 취재를 마치고 우리 회사 기자들과 두루치기 집에서 소주를 한잔 하는데 김주성 동아시아축구연맹 사무총장이 바로 옆 테이블에서 취해 있었다. 김주성 사무총장의 지인이 “혹시 이 사람 아느냐”고 묻기에 “저 세이부 축구하면서 자랐어요”라고 했더니 어깨를 으쓱해 하기도 했다. 추계연맹전이 열리는 이곳 태백은 정과 설렘, 그리고 축구인들로 넘쳐난다. 되게 좋다.

한 여름 대낮 경기의 공포

그런데 하나 불편한 게 있다. 지금 전국 어딘들 마찬가지겠지만 너무 덥다. 그냥 더운 게 아니라 굉장히 습해서 대낮에는 푹푹 찐다. 저녁이면 놀라운 정도로 시원한 동네인데 낮에는 어느 곳 못지 않게 덥고 습하다. 어제(22일)까지 열린 조별예선은 오전 10시, 오후 2시 30분, 오후 4시 15분 이렇게 세 타임으로 나눠 경기를 치렀는데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을 볼 때면 안쓰럽기도 했다. 가만히 앉아 경기를 지켜보는 이들도 더워서 못 버틸 정도인데 선수들은 오죽할까. 전반과 후반 한 번씩 경기를 중단하고 수분을 섭취할 수 있는 쿨링 브레이크가 있지만 냉탕에 들어가도 시원치 않을 판에 물 몇 모금 마시는 걸로 더위를 피하기는 어렵다. 샤워를 해야 하는데 미스트를 뿌리는 정도다.

특히나 오후 2시 30분 경기는 죽을 맛이다. 7월 중순 땡볕이 가장 세게 내리쬐는 이 시간에 경기를 한다는 건 공포스럽다. 마치 군대에서 1월 매서운 추위에 혹한기 훈련 도중 새벽 3시 불침번을 위해 텐트에서 일어나 언 전투화를 신을 때와 완벽히 반대되는 공포다. 하지만 각 학교는 이 더위에 조별예선을 2~3경기씩 다 치렀고 76개 학교 중 40개 학교가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각조 1위 20개 학교는 32강에 자동 진출하고 2위 팀 중 추첨을 통해 4개 학교도 32강에 직행했다. 그리고 16개 나머지 2위 팀들은 오늘(23일) 32강전 진출을 위해 단판승부 맞대결을 펼쳐야 한다. 선수들은 2위 팀 중 32강에 직행한 4개 학교를 빼고 오늘 한 경기를 더 치러야 하는 16개 팀을 “똥통에 빠졌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똥통’에 빠진 16개 팀 중 무려 8개 팀이 하루 만에 또 경기를 치른다는 사실이다. 전주기전대와 한중대, 고려대, 수원대, 부산외대, 아주대, 연세대, 선문대 등이 이 더위에 하루의 온전한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이틀 연속 경기를 치르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일주일에 두 경기를 치르는 K리그 팀들도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하는데 어린 선수들이 이 더운 날 이틀 연속 경기를 한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는 주요 국제대회에서 최소 48시간 휴식을 권장하고 있지만 추계연맹전에서는 24시간의 휴식도 채 지켜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 대회는 지금껏 계속 인조잔디에서 치러지고 있다. 천연잔디보다도 열을 심하게 내는 인조잔디 위에서 선수들은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한다.

이 대낮 땡볕에 선수들은 경기를 한다. ⓒ스포츠니어스

22시간 만에 그라운드로 돌아오는 선수들

더 놀라운 사실도 있다. 심지어 아주대와 연세대는 22시간을 쉬고 다시 경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를 어제(22일) 오후 4시 15분에 시작한 이 두 팀은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경기를 마쳤다. 그리고 다음 경기 일정이 오늘(23일) 오후 4시 15분이다. 22시간 만에 다시 그라운드에 서는 황당한 일정이다. 날씨가 선선한 봄이나 가을에 일어나도 문제인 일을 한 여름에 하고 있으니 선수들이 너무 걱정된다. 어제 경기를 끝낸 뒤 이동해 씻고 저녁 식사하는 시간을 빼고 오늘(23일) 일찌감치 경기장에 도착해 경기 준비하는 시간을 빼면 휴식은 채 20시간이 되질 않는다. 나는 하루에 잠만 20시간을 자본 적이 있는데 눈을 감았다 뜨면 20시간은 후딱 간다. 그런데 이 선수들은 20시간 만에 또 90분을 뛰어야 한다. 감히 상상도 되지 않을 정도의 일정이다.

한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주최 측에서 하라는데 뭐 어쩌겠어요. 하라니까 해야지. 그런데 이런 경기에서 좋은 내용은 기대하면 안 되지.” 다른 감독도 선수들을 걱정했다. “이러다 누구 하나 잡겠어요. 벤치에 앉아있는 나도 더운데 선수들은 말로 표현 못할 만큼 힘들죠.” 그나마 대학축구연맹이 이틀 연속 경기하는 팀들을 일괄적으로 오후 2시 30분이 아닌 오후 4시 15분 경기로 배치했다는 게 배려라면 작은 배려다. 이 팀들은 엿새 만에 네 경기를 치르는 강행군 중이고 특히나 이틀 연속 경기를 하며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환경에서 선수들이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신력과 체력을 앞세울 수밖에 없고 기술과 전술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빠듯한 일정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짧은 시간 안에 대회를 끝내야 하고 76개 팀이 출전하는 대회에서 32강을 가려내야 하는 애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선수단이 하루라도 더 체류하면 체류비가 늘어나다보니 탈락한 팀들을 빨리 빨리 돌려보내는 것도 신경 써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시간과 비용적인 문제에 앞서 가장 먼저 고려돼야 할 건 선수들의 안전이다. 누구 한 명이 쓰러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살인적인 일정을 지적하거나 개선하지 않는 분위기가 아쉽다.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일 일은 아닌 것 같다. 오늘 경기장에서 만난 선수에게 “수고했다”는 ‘카톡’대신 “내일도 잘하세요”라는 ‘카톡’을 보내는 일은 축구계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로서 굉장히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똥통’에 빠진 선수들, 이러다 사람 잡겠다

대회를 빨리 끝내야 하는 입장도 이해하나 정말 하루 정도는 선수들이 푹 쉴 수 있는 환경이 우선이다. 그리고 더 이상적인 방법은 조명 시설이 갖춰진 경기장에서 야간 경기를 하는 것이다. 아니면 현실적으로 76개 팀을 32강으로 추리는 다른 방법도 고민해 보자. 애매한 팀 수로 애매한 32강을 가려야 하는 탓에 2위 팀 중 네 팀만 32강 직행의 행운을 얻었다. 그리고 나머지 2위 팀 중 16개 팀은 한 경기를 더 치러야 32강에 갈 수 있다. 제비뽑기 한 번의 운명이 너무나도 가혹하다. 이쯤 되면 2위 팀 중 32강에 직행한 네 팀이 혜택을 보는 게 아니라 나머지 16개 팀이 ‘페널티’를 받는 듯한 모양새다. 이 어린 선수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경기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어른들의 몫 아닐까. ‘똥통’에 빠진 이 16개 팀, 그 중에서 이틀 연속 경기를 하는 팀들이 무사하길 기원한다. 이러다 정말 사람 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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