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성은 좌절을 겪고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났다. ⓒ유해성 제공

[스포츠니어스 | 태백=김현회 기자] 한 젊은 남자 직원이 스포츠 전문 매장에서 축구화를 만지작거리는 손님들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이 직원은 손님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이 축구화는 정말 좋아요. 저라면 이 축구화를 신겠습니다.” 대부분의 손님은 이 남자 직원의 말을 새겨 듣지 않는다. ‘축구화를 팔기 위한 멘트구나.’ 하지만 이 직원의 말은 진심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이 직원은 축구화를 신고 그라운드를 누볐기 때문에 축구화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축구를 포기한 채 스포츠 전문 매장에서 손님들에게 축구화를 권하던 이 남자는 다시 한 번 극적으로 그라운드에 돌아와 무명팀을 구해낸 영웅이 됐다.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KC대 유해성이다.

불러주는 대학 없어 축구 포기해야 했던 청년

유해성은 경기도 평택 청담고등학교에서 축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실력은 그리 돋보이지 않았다. 남들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주목할 만한 성적을 내며 대학교의 러브콜을 받지만 유해성은 그렇지 못했다. “실력도 부족했고 제가 누군가를 원망할 만큼의 능력도 없었어요.” 그는 고등학교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결국 유해성은 주변 친구들이 대학에 진학해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이어나갈 때 초라하고 비참한 통보를 전해 들어야 했다. “갈 수 있는 대학이 없다. 어떤 학교도 너에게 제안을 보내지 않았다.” 유해성은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축구를 그만둬야 했다. 축구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유해성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해성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로지 축구만 생각했던 그가 이제 와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갈 수 있는 학교도 없었던 그는 잠깐 동네에서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는 일을 했고 이후 아디다스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축구를 했던 그는 유독 축구화를 사러 오는 손님을 보면 축구를 하던 시절 생각이 났다. 그리고는 그 시절을 간절히 그리워했다. 축구가 너무나도 그리운 날엔 동네에서 풋살을 하며 지냈다. 미래도 없고 그렇다고 희망도 없는 연속의 나날이었다. “축구가 너무 간절했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다시 축구를 할 기회가 없었죠.” 유해성에게 축구는 이제 남의 이야기였다.

이 무렵 유해성을 지도했던 청담고 구대령 감독에게는 새로운 제안이 왔다. 구대령 감독은 현역 시절 꽤 유망주로 이름을 날렸었다. 이동국, 김은중 등과 함께 청소년 대표를 지냈고 2003년 대구FC 창단 멤버로 프로 무대에도 입성했다. 하지만 이후 부상 등으로 활약하지 못하며 일찌감치 은퇴해야 했다. 이후 지도자로 변신해 무려 청담고에서 1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던 그에게 한 대학이 감독직을 제의했다. 하지만 구대령 감독은 잠시 망설였다. 이름도 생소한 KC대의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KC대는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이지만 인지도가 굉장히 낮은 학교였다. 그리스도신학대의 새로운 교명이 바로 KC대였는데 이 학교에서 축구부를 창단하며 구대령 감독에게 지도자가 돼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유해성은 구대령 감독의 부름을 받고 KC대에 입학했다. ⓒ유해성 제공

무명의 신생팀 KC대에 입학한 유해성

2015년 11월 구대령 감독은 고민 끝에 KC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더 큰 도전을 위한 모험이었다. 고등학교에서 10년 동안 활약한 그는 대학 무대를 통해 지도자로 한 단계 더 성장하길 원했다. 하지만 구대령 감독은 KC대를 맡은 이후 고민에 빠졌다. 워낙 학교 인지도도 부족하고 신생 축구부인 탓에 선수 수급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대령 감독은 대학교의 부름을 받지 못한 선수들에게 눈을 돌렸다. 유해성이 떠올랐다. 청담고 시절 아꼈던 제자였지만 어떤 대학의 선택도 받지 못해 좌절했던 유해성에게 구대령 감독이 전화를 걸었다. “너 우리 학교에서 같이 한 번 해보자.”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포기했던 유해성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연락이었다. 유해성은 고민할 것도 없이 구대령 감독의 말에 따랐다. KC대라는 생소한 학교 이름도 유해성에게는 상관없었다.

유해성이 1년 반 만에 다시 축구화를 신게 된 건 올해 2월이었다. 축구화를 팔던 아디다스 매장 아르바이트생이 축구화를 신고 그라운드에 섰다. 22세의 나이에 17학번 새내기로 KC대에 입학한 것이다. 유해성과 함께 청담고에서 뛰다 원하는 대학 진학에 실패했던 동료 최원석도 구대령 감독의 부름을 받고 KC대에 왔다. 그런데 너무나도 간절해서였을까. 유해성은 독하게 훈련에 매진했다. “죽지 않을 만큼만 했어요.” 유해성은 1년 반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달렸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저돌적으로 최전방과 오른쪽 측면을 달리던 유해성은 이 장점을 살리기 위해 체력을 다시 끌어올렸다. 유해성을 앞세운 KC대는 대학 무대에서 놀라운 경기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비록 U리그에서는 고려대와 한양대, 아주대, 광운대 등 축구 명문이 즐비한 최악의 권역에서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내용은 깜짝 놀랄 정도였다. 대표 선수들이 포진한 고려대를 상대로 분투하며 1-2 역전패를 당하기도 했고 한양대에도 접전 끝에 1-2로 졌다. 아주대와 광운대를 상대로는 각각 1-1, 2-2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신생팀답지 않은 면모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유해성은 이렇게 말했다. “비록 U리그 순위에서는 하위권이지만 주변 분들은 KC대를 도깨비 팀이라고 해요. 경기력은 강팀과도 비등비등하거든요.” 2학년이 5명인 상황에서 KC대는 1학년을 대거 경기에 투입하고도 쉽게 패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달 초 개막한 제13회 1, 2학년 대학축구대회에서는 16강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중심에는 유해성이 있었다. 이미 한 번 벼랑 끝까지 몰렸던 유해성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유해성은 구대령 감독의 부름을 받고 KC대에 입학했다. ⓒ유해성 제공

유해성의 극적인 골, 그리고 뜨거운 포옹

그리고 유해성은 지난 17일 강원도 태백시에서 개막하는 추계대학연맹전에 KC대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하지만 KC대의 조편성은 이번에도 좋지 않았다. ‘전통의 강호’들이 대거 KC대와 한 조에 포진했다. 동아대와 호남대, 명지대 등은 KC대가 상대하기엔 버거운 팀들이었다. “우리보다는 한 수 위의 팀이라고 생각했어요.” 유해성도 상대가 KC대보다는 강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런데 KC대는 첫 경기에서부터 일을 냈다. 동아대를 상대로 3-0 대승을 거둔 것이다. 유해성은 이날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동아대를 완벽히 뚫어냈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며 비슷한 아픔을 겪었던 최원석의 골을 도운 것이다. 하지만 유해성은 2차전 호남대와의 경기에서 땅을 치고 말았다. 완벽한 득점 기회를 날렸고 팀은 1-2로 패했다. 그렇게 유해성이 속한 KC대는 1승 1패로 마지막 3차전을 준비했다.

“마음 고생이 심했어요. 그 골을 넣었어야 하는데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했죠.” 유해성은 호남대전의 실수를 두고두고 기억했다. 그들의 마지막 상대는 명지대였다. 역시 1승 1패를 기록 중인 명지대와의 3차전은 외나무다리 승부였다. 이 경기를 통해 40강 토너먼트 진출 마지노선인 2위를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두 팀 모두 빠르게 공수를 오가는 치열한 다툼을 펼쳤지만 유독 골 운이 없었고 90분이 흐를 때까지 두 팀은 0-0으로 팽팽하게 맞섰다. 후반 4분의 추가시간도 거의 끝이 났다. 그런데 주심이 종료 휘슬을 불기 직전 KC대의 마지막 공격 상황에서 극적이면서도 기가 막힌 골이 터졌다. 페널티 박스 정면에서 유해성이 논스톱 슈팅으로 명지대 골문을 가른 것이었다. 완벽한 골이었고 아름다운 골이었다.

경기장을 찾은 학부형들의 환호가 울려 퍼졌고 KC대 선수들은 포효했다. 명지대 선수들은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그런데 유해성은 벤치로 뛰어가더니 한 남자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바로 구대령 감독이었다. 어쩔 수 없이 축구를 포기해야 했던 자신을 구해준 스승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구대령 감독과 유해성은 꼭 껴안으며 이 기쁨을 나눴다. 그렇게 유해성의 극적인 골로 KC대는 동아대에 이어 명지대까지 잡는 이변을 일으키면서 40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KC대의 기적적인 성적이었다. 무명의 대학교가, 그것도 1학년 위주로 구성된 대학교가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팀들을 따돌리며 거둔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기적의 중심에는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좌절했던 유해성이 있었다.

유해성은 구대령 감독의 부름을 받고 KC대에 입학했다. ⓒ유해성 제공

다시 축구화 신은 유해성의 도전

유해성은 경기가 끝난 뒤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이렇게 말했다. “축구가 너무나도 하고 싶었어요. 불러주는 학교가 없어 1년 반 동안 마음 고생을 했습니다. ‘남들은 축구를 계속 하고 있는데 나는 왜 이럴까’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런 타이밍에 딱 감독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저를 구해주셨어요. 아무 생각할 것 없이 감사한 마음에 달려왔죠. 감독님이 대학 무대에 진출하지 않았으면 저는 다신 이런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겁니다.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해요.” 유해성은 그렇게 다신 없을 것 같던 기회를 잡았고 가장 극적인 순간 KC대와 스승을 위한 골을 넣었다. 불러주는 곳이 없어 그토록 원하던 꿈을 접어야 했던 유해성은 이 한방으로 설움을 날렸다. 그는 이 간절함으로 계속 도전할 생각이다. “꿈을 잠시 포기한 동안 축구가 더더욱 간절해졌어요. 축구로 꼭 성공하고 싶어요.” 유해성은 매장에서 손님들에게 축구화를 골라주는 것보다는 아직 그라운드에서 축구화를 신고 있는 모습이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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