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흔한 공터 풍경. ⓒ인천시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웅장한 경기장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경기장 근처에 도착하면 어디선가 신나는 노래 소리가 스피커를 향해 흘러 나오고 길거리 음식을 파는 분들의 목소리에는 흥겨움이 묻어 있다. 길게 줄을 선 매표소에서는 기다림과 동시에 설렘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경기장에 들어서면 푸른 그라운드에서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이 나를 흥분시킨다. 그리고 맥주를 한 캔 따서 마시면 이 멋진 공간에서의 작품은 완성된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경기장에서는 좀처럼 이런 풍경을 볼 수가 없다. 과할 정도로 웅장하고 멋지게 만들어진 이 경기장들은 아무런 구실도 못한 채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여 완공했지만 프로경기가 열리지 않거나 아마추어 경기만 열려 많은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는 경기장들을 소개한다. 이 경기장 주변은 마치 죽은 도시와도 같다. 당신의 세금이 줄줄 새고 있는 그 경기장으로 안내한다.

울산에는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만 있는 게 아니다. 울산종합운동장도 있다. ⓒ울산시

8위. 울산종합운동장 (770억 원)

2001년 10월 울산시 박맹우 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울산공설운동장 부지에 새로운 종합경기장을 짓겠다.” 이유는 간단했다. 울산시가 2005년 전국체전을 유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장 울산 지역 사회단체와 일부 시의원들이 반대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미 최신식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을 보유한 상황에서 전국체전 개폐회식을 위해 새로운 경기장이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이들은 자체 분석을 통해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도 개폐회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존 공설운동장 좌석이 23,000석이었는데 굳이 돈을 들여 이보다 작은 20,000석 짜리 경기장을 지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여기에 기존 운동장에도 이미 400m 트랙이 갖춰져 있으니 경기장 신축 비용을 쓰지 말고 기존 공설운동장에서 육상경기를 치르자고 했다.

하지만 울산시는 사업을 강행했다. 울산공설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울산종합운동장을 짓기로 확정지은 것이다. 사회 단체가 반발했지만 곧바로 종합운동장 신축을 위한 용역업체 모집 공고를 냈다. 그런데 사업비가 650억 원에 달했다. “256억 원만 들여 공설운동장을 보수해 쓰자”던 반발 의견을 무시한 채 이렇게 공사는 시작됐다. 그런데 막상 경기장 착공에 들어가자마자 울산시가 사업비를 확 늘렸다. 기존의 650억 원에서 120억 원을 증액해 770억 원을 쓰기로 한 것이다. 인건비가 늘었고 자재가격도 상승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여기에 전광판을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과 같은 크기로 변경하기 위한 예산도 9억 원이 더 늘어 22억 원에 달했고 조경비도 기존 15억 원에서 15억 원이 더 늘어났다. 또한 전국체전에 필요한 다른 종목 경기장까지 다 지으려면 1,138억 원이나 필요했다.

결국 이 경기장은 처음 책정한 예산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들여 지어졌다. 하지만 수백억 원을 들인 이 경기장은 막상 전국장애인체전 도중 성화대 성화로가 폭발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성화대 내부 가스배관에 금이 가면서 가스가 누출돼 폭발한 것이다. 20m 높이의 성화대 머릿 부분이 본부석 옥상으로 떨어지는 사고였다. 지역민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무려 770억 원을 들여 지은 경기장은 이렇게 망신을 당했다. 이후 내셔널리그 울산현대미포조선의 홈 경기장으로 사용됐지만 이 팀이 지난해 해체하면서 현재는 주인 없이 방치된 상황이다. 이 팀의 해체 이후로 주인 없이 장기적으로 방치될 운명이다. 울산시는 현재 조기축구회와 중학교 팀 등에 경기장을 대여하고 울산종합운동장 웨딩홀과 주차장 유료화 사업으로 푼돈을 벌고 있다. 770억 원짜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그 차는 안전할까. 일단 성화대가 또 무너지지는 않을지부터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울산에는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만 있는 게 아니다. 울산종합운동장도 있다. ⓒ울산시

7위. 의정부종합운동장 (924억 원)

모두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이 대회에 빠져 있을 때 경기도 의정부시는 조용히 경기장 하나를 걸립했다. 2002년 4월 완공된 의정부종합운동장이다. 당시 월드컵을 치르는 제주서귀포월드컵경기장이 1,251억 원을 들여 지었는데 월드컵도 치르지 않는 의정부가 774억 원의 예산으로 경기장을 신축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28,000석의 관중석을 갖췄고 최대 수용 인원은 35,000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도 크다. 비록 디자인은 세련되지 않아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의 축소판이라는 평가를 듣지만 시설 만큼은 K리그는 물론 국제경기를 치러도 될 만큼 훌륭하다. 실내체육관과 야구장, 실내 빙상장, 사이클 경기장까지 갖춘 말 그대로 종합 스포츠타운이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엄청난 혈세를 쏟아 부어 지어진 경기장이다.

심지어 2001년 경기도에서는 이듬해 안양에서 열릴 경기도체육대회 개최지를 의정부로 일방적으로 변경해 버렸다. 의정부종합운동장이 완공돼 갑자기 경기도 체육회에서 연고 이전, 아니 개최지 이전을 이틀 만에 선언해 버린 것이다. 안양시 체육회 관계자들은 2001년 부천에서 열린 경기도민체육대회 폐막식에 대회기 인수를 위해 갔다가 대회기도 의정부에 빼앗겼다. 그만큼 774억 원의 혈세를 퍼부어 완공한 이 경기장의 위용은 막강했다. 의정부시는 이 경기장을 앞세워 전국체전 유치도 준비했다. 하지만 이 경기장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바로 보조경기장이 없다는 점이었다. 전국체전은 1종 경기장으로 평가 받은 곳이 개최지로 선정되는데 1종 경기장과 2종 경기장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보조경기장의 유무다. 무리하게 경기장을 짓다보니 예상이 부족해 보조경기장을 짓지 못한 의정부종합운동장은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1종 경기장으로 올라갈 수 없어 전국체전을 개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의정부시는 국방부와 협의해 161억 원을 들여 경기장 인근 군부대 소유 땅을 사들이고 건물 철거 공사까지 마무리했다. 여기에 150억 원을 더 들여 보조경기장을 짓기로 했다. 그래야 전국체전은 물론 국제 규모의 대회를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지를 매입하고 지금까지도 의정부시는 보조경기장을 짓지 못했다. 공사비 70억 원이 필요하지만 예산 집행이 되지 않은 것이다. 이 군부대 부지는 여전히 텅 비어있고 의정부시는 최초 774억 원과 보조경기장 부지 비용 161억 원을 포함해 총 924억 원을 쓰고도 여전히 2종 경기장으로 남아있다. K2리그 시절 의정부험멜이 잠시 다녀갔고 현재는 K3리그 FC의정부만이 쓸쓸하게 이 경기장을 지키고 있다. 924억 원을 쓰고도 보조경기장이 없어 국제대회는커녕 전국체전도 못 치르는 이 경기장은 완공된 지 1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반쪽짜리 경기장으로 남아 있다.

울산에는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만 있는 게 아니다. 울산종합운동장도 있다. ⓒ울산시

6위. 충주종합스포츠타운 (1,203억 원)

충주에는 경기장도 있고 팀도 있었다. 하지만 팀은 떠났고 경기장도 버려지다시피 했다. K리그 챌린지 충주험멜은 해체를 선언했고 그들이 홈으로 쓰던 충주종합운동장은 주인 없이 방치됐다. 하지만 충주시는 이와는 별개로 전혀 다른 사업을 야심차게 구상했다. 바로 새 부지에 충주종합스포츠타운을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무려 1,203억 원을 투입해 2017년 전국체전을 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기존 충주종합운동장에 비해 1,200억 원이 넘게 투입되는 충주종합스포츠타운 주경기장이 그리 웅장하거나 위용이 있지도 않다는 점이다. 심지어 신축하는 주경기장의 관객석 규모도 14,946석에 불과하고 지붕도 경기장 전체를 덮지 않는다. 가변석을 5,000석 더 설치할 수 있는 구조다. 1,203억 원으로 14,946석에 불과한 경기장을 지으니 좌석 하나당 1천만 원에 조금 못 미치는 비용이 드는 셈이다. 무슨 좌석에서 히터나 에어컨 같은 거 막 나오나.

신축 경기장 디자인이 1980년대 건립된 공설운동장 디자인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심지어 기존 구장 수용인원이 17,000명으로 이 신축 경기장보다도 더 많다. 그런데도 경기장 신축 사업비는 1,200억 원을 넘었다. 참고로 이 신축 경기장 부지에서는 철기시대 무덤과 문화재가 발견돼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대로 막 파헤치기에는 아까운 곳이다. 그런데 더 의아한 건 아직 기존의 충주종합운동장 처리 방안은 물론이고 이 신축 경기장 활용 방안도 없다는 점이다. 충주시는 일단 오는 10월 전국체전을 마치고 기존의 충주종합운동장을 활용하거나 매각하는 방안을 결정하기로 했다. 계획도 없이 있던 경기장을 방치하고 또 다른 경기장을 쓸 데 없이 짓고 있다. 신축 경기장이 들어서는 호암지구 부동산 업자들만 신이 났다. “아파트값 오르고 상권 좋고 학군 좋으니 어서 이 동네에 집 사라”고 난리다.

충주는 험멜축구단이 떠난 뒤 이제 축구 불모지가 됐다. 그런데 경기장만 두 개다. 기존 충주종합운동장 매각도 쉽지 않을뿐더러 이 경기장을 매각한다고 해도 신축되는 충주종합스포츠타운은 어떻게 쓸 것이냐는 점은 여전한 숙제다. 충주시는 이번에 열리는 전국장애인체전과 전국체전을 통해 생산유발 2,377억 원, 부가가치 유발 1,069억 원을 예상했는데 지금껏 이런 예상이 그대로 맞아 들어가는 건 본 적이 없다. 예언을 하자면 충주종합스포츠타운에서 올림픽 대표팀 경기 몇 번 열고 웨딩홀과 영화관 입점해 활용하다가 곧 적자 투성이 애물단지라는 하소연이 쏟아질 거다. 충주종합스포츠타운은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운동장 바닥과 관람석이 거의 수평을 이뤄 선수들의 숨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다고 홍보하는데 그것도 다 이 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릴 때의 이야기다. 웨딩홀과 영화관에는 해당사항 없는 이야기다. 우리의 혈세는 또 이렇게 곱게 접어 하늘 위로.

울산에는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만 있는 게 아니다. 울산종합운동장도 있다. ⓒ울산시

5위. 진주종합경기장 (1,811억 원)

경남 진주시는 2006년 2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2010년 전국체전 유치를 확정지은 뒤 대규모 종합경기장을 짓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부집매입에 지역 주민들이 극심하게 반발해 애를 먹었고 예산도 부족했다. 경기장을 짓는데 무려 1,811억 원이 드는데 이중 1,383억 원이 시 예산이었다. 진주시는 신안동 공설운동장 보조경기장 부지를 매각해 일정 예산을 충당할 계획이었지만 아무도 이 부지를 사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극심한 재정 위기를 겪던 진주시는 이 경기장 건립을 위해 400억 원의 지방채까지 발행했다. 건립 이후 3년 동안 이자로만 40억 원 이상을 내야하는 상황이었다. 36만 명이 거주하는 진주시에서 지방채까지 발행해 1,800억 원이 넘는 거액을 들여 경기장을 짓는다는 것부터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이 경기장을 활용할 마땅한 방안은 없었다. 경남FC는 훨씬 더 관람이 편하고 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창원축구센터를 2010년부터 홈으로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지방채까지 발행해 경기장을 완공한 진주시는 개장 기념 경기로 경남FC를 불러들였고 이후 전국체전과 전국소년체전, 전국장애인체전 등을 치렀다. 하지만 이후에는 전혀 활용할 방안이 없었다. 한 달 전기세만 1,500만 원이 나왔고 연간 8억 원의 관리비가 드는데도 수익시설은 썰렁했다. 이 큰 경기장에 음식점 하나와 매점 하나만 운영되고 있었다. “향후 혁신도시가 되면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분석만을 내놓을 뿐이었다. 겨우 긴축 재정을 펼쳐 지방채를 상환하고 웨딩홀과 뷔페식당, 실내 스포츠시설 등을 임대하며 자생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면서 연간 9억여 원의 임대 수익을 올리게 됐지만 관리비만 8억이었고 경기장 건립에만 1,811억 원이 들었으니 이대로 1,800년 이상은 활용해야 본전을 뽑는 것이었다. 거기에 경기장 내부는 부실 공사로 물이 새고 결로현상까지 생겨 곰팡이가 곳곳에 퍼지기도 했다. 이러는 동안에도 여전히 신안동 공설운동장은 현재까지도 매각이 안 됐다. 진주시는 공설운동장 보조구장만 매각 대상으로 지정했다가 6년 동안 모두 12차례 유찰되면서 주경기장까지 매물로 내놓은 상황이다. 경기장으로서의 기능보다는 그나마 수익사업으로 유지비를 뽑는 정도의 기능만 할 정도다. 이따금씩 경남FC가 한 번씩 와 경기를 치르는 정도에 그치는 가운데 지난 해에는 모든 행사를 합쳐 이 경기장을 딱 세 번 썼다. 그러다 최근에는 아예 경기장을 무료로 시민들에게 개방해 버렸다. 그라운드에서는 아저씨들이 공을 차거나 골프를 치고 육상 트랙에서는 족구와 배드민턴을 한다. 복지 좋은 핀란드에서도 시민들을 위한 이런 최고급 복지시설은 없을 것이다.

울산에는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만 있는 게 아니다. 울산종합운동장도 있다. ⓒ울산시

4위. 고양종합운동장 (1,348억 원)

2000년 9월 고양시는 엄청난 규모의 경기장 신축을 발표했다. 일산신도시 대화동에 무려 42,055석의 관중석 규모를 자랑하는 어마어마한 경기장을 짓기로 한 것이다. 당시 투입된 예산만 무려 1,348억 원이었고 시공사만해도 무려 7개였다. 국비 9억 원과 도비 60억 원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고양시 예산으로 충당했다. 당장 국제대회를 치를 수 있을 정도의 최신식 경기장이었다. 하지만 이 경기장을 지은 이유는 ‘그냥’이다. 경기장을 활용할 방안도 없었지만 그냥 폼나는 경기장 하나 가지고 싶어 만든 거다. 일단 공사를 시작해 놓고 활용 방안을 찾으니 완공을 앞두고도 당연히 경기장을 쓸 방법은 없었다. 연구 용역을 통해 내놓은 방안이 프로축구단 운영과 각종 생활체육 공간 제공, 경기도민체전 개최 뿐이었다.

결국 고양시는 2003년 경기장을 완공한 뒤 K2리그 전반기를 이미 김포에서 소화한 김포국민은행을 후반기 시즌에 고양종합운동장으로 끌어오는 꼼수까지 부렸지만 이 팀은 2012년을 끝으로 해체해 버렸다. 이후 경기장 활용을 위해 안산할렐루야를 데려와 고양Hi FC(고양자이크로)로 탈바꿈했지만 이 팀은 국가 지원금을 횡령하는 등 K리그 챌린지 역사상 가장 큰 민폐를 끼치며 해체했다. 이후 올 시즌 초반 K3리그 고양시민축구단이 잠시 홈으로 사용했지만 300여만 원에 가까운 대관료를 부담하기에 벅차 결국 고양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말았다. 2007년 FIFA U-17 월드컵 이후 몇 차례 A매치가 열리긴 했지만 현재는 경기장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양시의 의지를 봤을 때는 앞으로도 다른 지역 팀을 빼와 경기장을 내주는 것 외에는 경기장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고양시는 처음 이 경기장을 지을 때 프로야구단과 협의해 500억∼600억 원을 추가로 들여 경기장 옆 시민공원에 25,000석 규모의 야구장으로 만들기로 했지만 이 계획은 그 사이 쏙 들어갔다. 이 곳은 이제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곳이라기보다는 그저 가끔씩 예능 프로그램 야외 세트장으로 전락했다. MBC <무한도전>에서 인간과 황소의 줄다리기편 촬영지이기도 하고 ‘텔레파시 특집’ 당시에는 유재석이 이곳을 찾아 촬영하기도 했다. 가끔 뮤직비디오나 드라마 촬영 장소로 쓰이고 명절 때마다 열리는 ‘아이돌 육상선수권대회’에나 나온 게 전부다. 심지어 완공 당시 20억 원을 들여 깐 최신식 트랙은 최근 들어 노후해 육상 트랙으로서의 역할도 하지 못한다. 1,348억 원짜리 방송 세트일 뿐이다. 이 경기장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면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울산에는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만 있는 게 아니다. 울산종합운동장도 있다. ⓒ울산시

3위. 화성종합경기타운 (2,360억 원)

람보르기니를 사 놓고 기름값을 못내 버스를 타고 다니는 꼴 아닐까. 경기도 화성에는 무려 2,360억 원의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지어진 멋진 경기장이 있지만 K3리그 화성시민축구단은 주경기장에서 경기를 하지 못하고 2,000석 규모의 보조경기장에서 경기를 한다. 도저히 이 화성종합경기타운 주경기장을 쓸 여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주경기장은 텅 비어있다. 주차장에는 빚까지 져 가며 산 람보르기니가 있는데 연비를 감당할 수 없어 버스를 타는 딱 그 모양새다. 애초부터 화성시는 이런 초대형 경기장을 보유하는 게 무리였다. 2009년 2,360억 원을 투자해 35,000석 규모의 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 5,000석 규모의 실내체육관을 건립할 때부터 활용 방안은 전무했다.

기공식 당시 화성시의 직·간접 부채 규모는 5,963억 원으로 시민 1인당 113만 원의 빚을 지고 있었는데 2,000억 원이 넘는 돈을 경기장 신축에 쓴다는 건 무리였다. 최영근 화성시장은 기공식에서 “시 남부권역을 체육 웰빙 도시와 기업클러스터 도시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이 약속은 지킬 수 없었다. 공사는 1년여 만에 중단됐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가 재정난을 겪었고 여기에 LH의 자금난까지 맞물려 공사는 재개와 중단을 반복했다. 2010년에는 공사비 462억 원이 부족했고 2011년에도 500억 원 이상이 모자라 외상으로 공사를 해야 했다. 무리한 건설이어서 정부가 지원을 거부해 국비 지원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화성시가 이를 해결해야 했다. 원래 2011년 1월까지 준공할 예정이었지만 이 기간은 하염없이 늘어났다. 심지어 400여 명이던 공사현장 인원도 100여 명으로 줄여야 했다.

결국 화성시는 이 경기장을 지어 2012년 경기도민체전을 개최하기로 했지만 재정난으로 대회 개최권을 반납하는 망신까지 당했다. 도민체전은 개최지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화성시에는 대회를 운영할 돈은커녕 경기장 공사비도 없었다. 이 대회는 부랴부랴 경기도 평택에서 대신 치러져야 했다. 가까스로 2011년 5월 경기장을 완공했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치를 경기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무려 1년 동안 이 새 집에서는 아무런 함성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완공 1년 만에 한국과 시리아의 올림픽 대표팀 경기가 열렸다. 그나마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축구 몇 경기가 열렸을 뿐 지금도 이 경기장은 주인 없이 방치돼 있다. K3리그 화성시민축구단의 홈 경기 개최로는 전기세도 못 뽑는 상황에서 이 팀은 이 멋진 경기장을 뒤로 한 채 보조경기장을 안방으로 쓰고 있다. 애초부터 이들에게 람보르기니는 무리였다.

울산에는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만 있는 게 아니다. 울산종합운동장도 있다. ⓒ울산시

2위. 인천아시아드 (4,460억 원)

2007년 인천이 2014 아시안게임 유치에 성공한 뒤 안상수 시장은 유치 공약대로 무려 7만석 짜리 종합운동장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정부에서는 경기장 신축을 반대했지만 인천시는 “국비 지원을 받지 않고 민간 자본을 유치할 것”이라며 건설 추진을 강행했다. 안상수 시장은 개발 제한 구역이던 서구 연희동 일대에 경기장을 짓기로 하고 토지 보상을 대부분 마무리한 뒤 공사 착공 직전까지 일을 추진했다. 그런데 이후 인천시장 선거에서 송영길 후보가 당선되면서 모든 걸 원점으로 돌렸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을 만나 설득한 끝에 기존 문학경기장을 재활용해도 좋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하지만 애초 신축 경기장을 반겼던 서구 주민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삭발 시위를 하고 3보 1일 시위를 하며 인천시를 압박했다. 단식 투쟁도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갈등이 심화되자 민간업체는 슬쩍 발을 뺏고 그 어떤 기업도 참여하려고 하지 않았다.

정부에는 “우리가 알아서 짓겠다”던 인천시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인천에는 이미 문학경기장 외에도 인천축구전용경기장까지 짓고 있어 육상과 축구 등의 인프라는 차고 넘쳤다. 문학경기장을 5천석 증축해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으로 활용하고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축구 종목을 소화해도 충분했다. 굳이 7만석짜리 초대형 경기장을 신축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서구 주민들의 압박이 거세지자 결국 인천시는 7만석 규모를 5만석으로 줄여 신축하기로 결정했다. 민간 업체가 참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인천시는 정부를 향해 손을 벌렸다. “아시안게임 성공 개최를 위해 국비를 지원해 달라.” 서구 주민을 중심으로 100만 서명운동과 지역 정치권이 합심해 계속 정부를 압박했고 결국 전체 사업비의 27%인 1,326억 원의 국비 지원을 받아냈다. 나머지는 시비로 충당했다. 무려 4,460억 원의 혈세가 경기장 건설에 투입된 것이다.

예산이 4,460억 원이나 투입돼 지어진 이 경기장에서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육상 종목만이 열렸다. 정작 축구 경기는 문학경기장과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고양종합운동장, 안산와스타디움, 화성종합경기타운 등에서 나눠 개취됐다. 심지어 대한민국과 북한의 남자 축구 결승전도 인천아시아드가 아닌 문학경기장에서 열렸다. 또한 여자 축구는 주경기장이 아닌 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에서 치러졌다. 지금껏 이 경기장에서 열렸던 축구 경기는 2014년 5월 개장 기념 경기로 열린 한국과 쿠웨이트의 아시안게임 대표 친선전 뿐이다. 건설 당시부터 논란이 컸던 이 경기장은 아시안게임 개회식과 폐회식, 육상 경기 외에는 지금까지도 제 구실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경기장을 건설하는데 혈세가 무려 4,460억 원이나 투입됐고 1년 유지비로만 42억 원씩이나 쏟아 붓고 있다. 하지만 이 경기장의 활용 방안은 여전히 전무하다. 이곳에 올 팀도 없고 활용할 행사도 없다. 4,460억 원으로 차라리 전국의 보도블록이라도 바꿔주면 걸을 때 기분이라도 좋을 텐데 말이다.

울산에는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만 있는 게 아니다. 울산종합운동장도 있다. ⓒ울산시

1위. 용인시민체육공원 (3,218억 원+α)

무려 16년을 질질 끌어온 사업이다. 2001년에 사업을 추진했지만 질질 끌다가 2010년에야 첫 삽을 떴다. 3,218억 원의 예산이 들었는데 황당한 건 이중 토지보상비로만 무려 1,387억 원이 들었다는 점이다. 이 동네를 지날 때 벤츠 S클래스 트렁크에 흙이 묻은 곡괭이를 툭 던져 넣는 할아버지가 있다고 해도 놀라지 마시라. 그거 어마어마한 토지보상비로 산 차다. 여기에 더 황당한 건 이렇게 16년 동안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 붓고 지은 게 덜렁 종합운동장 하나라는 점이다. 명색이 시민체육공원인데 같이 건립할 예정이던 볼링장과 지하주차장, 보조경기장은 돈이 없다고 짓지도 못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보조경기장이 없으면 전국체전도 열지 못하는 2종 경기장일 뿐이다. 3,000억 원 넘게 들였는데 가장 큰 규모의 대회를 유치할 수 있는 게 소년체전과 경기도민체전 정도다. 경기도 소년들은 아주 복 터졌다.

더 어이가 없는 건 16년 동안 지연된 경기장이 이제 완공을 앞뒀는데 쓸 방안도 없다는 점이다. 경기장 건설에는 3,000억 원을 넘게 쓰면서 논란이 된 것처럼 프로 구단 창단이 아니라 기존 K리그 팀 연고 이전을 유도해 경기장을 채울 방안에만 몰두하고 있다. 물론 이 경기장은 보조경기장도 없어 국제경기도 치를 수 없다. 보조경기장은 여건이 좋아지면 짓겠다고 했지만 아직 뚜렷한 계획도 없다. 그런데 혈세 논란은 이뿐 아니다. 교통 접근성도 좋지 않고 거기에다 이미 근처에 용인경전철 역시 있지만 경기장 앞에 역을 또 신설하겠다고 추진 중이다. 적자에 허덕이는 용인경전철에 사업비만 350억 원이 투입되는 시민체육공원역(가칭) 추가 건립 검토에 들어가 또 논란이다. 역과 역의 거리가 900m에 불과한데 이 정도면 전철이라기보다는 마을버스에 가깝다.

여기에 아직 마땅한 수익 시설도 구상하지 못했다. 수익시설 입점이 가능한 곳은 낮은 층고 때문에 수익시설이 들어오기도 쉽지 않다. 16년 동안 질질 끌어오며 덜렁 종합경기장 하나 짓는데 3,000억 원 이상의 혈세를 투입했다는 건 기가 막힌 일이다. 4,460억 원이 투입된 인천아시아드를 제치고 용인시민체육공원을 혈세 먹는 하마 1위로 꼽은 건 아직 이 경기장 건축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언제 또 어떻게 돈이 더 들어갈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지 모른다. 아직 짓겠다는 보조경기장과 볼링장, 지하주차장은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공사비가 3,218억 원이다. 물론 어마어마한 경기장을 짓고 있지만 활용 방안은 전혀 없기 때문에 완공 이후에도 유지 관리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렇게 시원하게 돈을 쓰는 걸 보니 용인시에만 막 석유 같은 거 나오고 그러나.

내 세금이 올바른 곳에 좋은 의미로 쓰이길 바라는 마음은 다 똑같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내는 세금이 줄줄 새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힘이 쭉 빠진다. 요 며칠 보니 지방세, 재산제, 교육세, 자동차세, 주민세 등 고지서가 많이도 날아왔다. 부지런히 벌어서 열심히 세금 내자. 그래야 또 어딘가에 내 세금으로 경기장을 지을 테니 말이다. 이제 제발 지자체들이 이런 치적 쌓기에만 집중하지 않았으면 한다. 겉보기에만 번지르르한 이런 사업 때문에 정작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많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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