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어떻게 중계로 다루느냐에 따라 축구의 재미는 달라진다. ⓒ스포츠니어스

‘슬기로운 축구’는 전직 K리그 선수 출신인 이슬기 SPOTV 해설위원의 공간입니다. 대구FC에서 데뷔해 포항스틸러스와 대전시티즌, 인천유나이티드, FC안양 등 다양한 팀에서 활동했던 그는 현재는 은퇴 후 SPOTV에서 K리그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선수 시절 경험과 해설위원의 냉철한 시각을 덧붙여 <스포츠니어스> 독자들에게 독특하고 신선한 칼럼을 전달합니다. -편집자주

[스포츠니어스 | 이슬기 객원 칼럼니스트] “운동장 돌아.” 이 말이 나오는 날이면 경기를 제대로 못한 거였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오늘 경기에 대한 평가를 알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감독님 앞으로 모였다가 바로 숙소로 돌아가는 날에는 경기를 잘한 거고 운동장 뺑뺑이를 도는 날에는 경기를 못한 거였다. 이 얼마나 직설적이고 단순한가. 그런데 K리그 선수가 된 뒤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감독님이 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플레이한 경기를 다시 보거나 감독님이 언론에 혹시 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그 평가가 궁금했다. 그리고 축구팬들이 쓴 댓글에도 혹시 내가 언급이 돼 있을까 찾았다. 선수로 뛸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지 않아 경기가 끝나면 곧장 숙소로 돌아가 노트북을 켠 뒤 내 이름을 검색해 보는 게 일이었다.

신인 선수 시절에는 경기가 끝난 뒤 바로 내가 플레이한 모습을 찾아보는 게 쉽지 않았다. 2009년 대구FC에 입단했을 때 우리 홈 경기는 대구MBC나 ‘방우정의 유머중계’라는 구단 자체 편파 방송으로 중계됐다. 그런데 이마저도 다시보기를 하려면 사흘은 기다려야 했다. 그래야 구단 홈페이지에 업데이트가 되니 불과 몇 년 전 일이지만 내가 뛰는 영상을 보는 것도 환경이 굉장히 열악했다. 그러다보니 내 경기 평가는 다음 카페 ‘아이러브사커’, 흔히 말하는 ‘알싸’에 내 이름을 쳐보는 것 정도거나 경기에 대한 뉴스 댓글, 구단 홈페이지 ‘팬존’에 들어가 보는 정도였다. 포털 사이트에 이름도 자주 쳐봤다. KBS 이슬기 아나운서가 입사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포털 사이트에 ‘이슬기’를 검색하면 내가 제일 먼저 나왔다.

당시 내가 엉뚱하게도 왼발을 잘 쓰는 선수라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플레이하는 영상은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포털 사이트 문자 중계 선발 명단을 보면 내 포지션이 항상 왼쪽 윙백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모든 팀을 4-4-2 포메이션으로 설정해 놓고 출전 명단에 있는 순서대로 입력하다보니 내가 늘 왼쪽 윙백인 것처럼 표시됐다. 당시 대구FC는 3-5-2 포메이션을 주로 썼는데 세 명의 중앙 수비수 다음에 늘 내 이름이 올라와 있던 모양이다. 그러니 나는 늘 내 포지션과 상관없이 왼쪽 윙백이 돼 있었다. ‘알싸’에 가보면 대구 경기를 보지 않았거나, 볼 수 없었던 이들이 포털 사이트 선발 명단과 문자 중계만 보고 나를 왼발 킥이 능한 왼쪽 윙백이면서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겸할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해줬다.

아마 나를 잘 아는 축구선수라면 내가 왼쪽 윙백을 했다가는 왼쪽이 큰일 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 거다. 아무래도 경기 영상을 보기 힘들고 문자 중계로만 접할 수 있으니 오해가 생긴 모양이다. 그런데 세상이 참 좋아졌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2017년인 지금은 경기가 끝나면 바로 경기를 다시 볼 수 있다. 에서 해설을 하면서 다시보기를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정말 간편하다. 홍보를 하나 하자면 K리그 클래식은 하이라이트 편집이 돼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데 K리그 챌린지는 하이라이트 없이 전체 경기 영상만 있어 아쉬워하는 이들은 프로축구연맹 공식사이트를 들어가 보시라. K리그 챌린지도 하이라이트 편집이 잘 돼 있다. 나도 오늘 안 사실이다.

서울이랜드와 수원FC의 경기는 득점이 없었지만 치열했다. ⓒ프로축구연맹

칼럼을 쓰는 오늘(17일)은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서울이랜드와 수원FC의 K리그 챌린지 경기 해설을 하고 왔다. 날씨는 덥고 습도도 높다보니 중계하는 입장에서도 쉽지 않았는데 선수들은 고생이 더 많았다. 서울이랜드의 경기력이 인상적인 경기였다. 조향기와 최호정, 전민광이 후방에서 빌드업을 잘했고 이예찬과 유지훈의 측면 플레이도 좋았다. 그리고 주한성이 중앙에서 보여준 공격 연계 능력도 뛰어났다. 최근에 3연승을 거두며 좋은 경기력을 선보인 수원FC 조덕제 감독이 “비긴 게 다행일 정도”라고 할 만큼 서울이랜드의 경기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았다. 그런데 경기 다시보기도 제대로 되지 않던 시대를 살던 사람이 이제는 경기 다시보기가 편해지니 중계 화면에 대해 더 욕심도 나고 아쉬움도 생긴다.

이날 최고의 장면은 후반 24분 서울이랜드 최호정이 수비 지역에서 공을 뺏어낸 후 바로 주한성에게 패스를 했고 주한성이 상대를 이동 트래핑으로 따돌려 측면에서 침투하던 명준재에게 찔러주는 장면이었다. 명준재는 수원FC 골키퍼 이상욱과 완벽한 일대일 상황을 맞았지만 이상욱이 적절한 타이밍에서 몸을 날려 발끝으로 막아냈다. 굉장히 수준 높은 장면이었다. 명준재의 마무리는 아쉬웠지만 이상욱의 선방도 엄청났다. 이 과정에서 수원FC 레이어와 이상욱이 쓰러졌는데 아쉬운 건 이 다음 중계 화면이었다. 중계 화면은 쓰러져 있는 선수를 잡고 있었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넘어져 있는 선수가 아니라 최호정에서 주한성, 그리고 명준재로 이어지는 수준 높은 장면을 보고 싶었을 것 같다.

아쉬운 대목은 레어이와 이상욱이 고통스러워 하는 장면이 나온 뒤 이 멋진 패스 장면은 생략되고 주한성이 패스를 하는 순간부터 명준재의 슛이 이상욱에게 막히는 장면만 나왔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장면이 과정 하나 없이 단순하게 명준재의 슈팅 장면 하나만 나오면 결국 공격수가 완벽한 찬스를 놓친 것밖에 되지 않는다. 해설을 하면서 아쉬운 부분은 공이 아웃되거나 파울이 됐을 때 이 평범한 파울 장면이나 아웃 장면대신 결정적인 플레이나 논란이 될 만한 장면을 다시 보여줬으면 하는 점이다. 평범한 파울이나 아웃 장면을 다시 보여주는 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이날도 황재훈의 중거리슛과 이승현과 이예찬의 돌파, 주한성의 볼 컨트롤, 레이어의 태클, 배지훈의 왼발 크로스, 김영광의 제스쳐 등 사소해 보이지만 멋진 장면들이 많았는데 시청자에게 다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다.

서울이랜드와 수원FC의 경기는 득점이 없었지만 치열했다. ⓒ프로축구연맹

경기가 0-0으로 끝난 뒤 포털 사이트 반응을 보니 정말 “살벌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다. 선수 생활을 했고 현재 해설을 하는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경기였는데 반응은 “재미없다”는 평 일색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두 명의 친구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 반응도 극과 극이었다. 현직 K리그 선수는 “꿀잼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경기였다”고 했고 평범한 회사원 친구는 “핵노잼이다. 최악의 경기였다”고 했다. 골이 터지지 않은 문제를 떠나 조금 더 경기를 멋지게 포장하고 비춰줘야 하는 중계진도 조금 더 분발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프로 무대에서 8년 동안 생활을 했는데 선수와 감독, 팀 관계자 모두 사소한 것까지 열심히 준비한다. 당연히 이걸 포장해주고 잘 소개해줄 의무도 있다. 이 경기뿐 아니라 수준 높은 패스가 나오는 경기도 많은데 이 멋진 장면을 더 멋지게 포장하는 기술이 부족하다는 건 아쉽다.

‘구티의 그날’이라는 동영상이 있다. 레알마드리드에서 뛴 구티가 잘하는 날은 그 어느 누구도 막지 못한다는 말에서부터 비롯한 영상이다. 이 하이라이트로만 보면 구티는 세계 최고의 선수다. 하이라이트만 믿고 외국인 선수를 뽑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교훈과 함께 이렇게 잘 편집된 영상이 불러오는 긍정적인 영향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단지 경기장에 배치된 카메라 대수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어떤 걸 잡아내느냐, 그리고 어떻게 편집하느냐의 문제다. 좋은 장면을 잘 편집해서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팬들이 더 재미있게 경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텔레비전 중계를 보고 재미를 느껴 운동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경기 사흘 뒤에나 영상을 볼 수 있던 열악한 시절도 있었지만 앞으로도 발전을 위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