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만의 깜짝 데뷔골, 부천 이윤환은 기다리고 기다렸다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장은 묵을 수록 깊은 맛이 난다고 했다.

17일 안양종합운동장은 원정팀 부천FC1995 팬들의 환호로 가득 찼다. 안양을 3-1로 꺾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부천의 신인 이윤환이 데뷔골을 기록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젊은 팀 부천에는 꽤 많은 신인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인의 데뷔골에 너무 호들갑 떠는 것 아니냐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부천에 이윤환의 골은 특별하다. 부천 유스 시스템으로 키워낸 선수가 만들어낸 첫 번째 골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데뷔전에서 골을 기록한 수원 삼성 유주안과 비교하며 많은 사람들이 ‘대박 신인이 이번에는 K리그 챌린지에 깜짝 등장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부천 인생을 보면 오히려 기다림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장은 묵을 수록 깊은 맛이 나듯이 이윤환의 골은 기다림의 연속 끝에서 나왔기 때문에 더 짜릿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련으로 가득했던 부천과의 첫 인연

이윤환이 부천과 인연을 맺은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축구 명문으로 꼽히는 대신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꽤 촉망받는 공격수였다. 하지만 당시 대신고의 감독이 바뀌면서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된 상황이었다. 그 와중 그에게 손을 내민 팀이 부천이었다. 당시 부천은 유스 팀을 창단하면서 장래가 촉망한 유망주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었다. 그는 입단 테스트를 통해 부천 U-18 팀에 입단할 수 있었다.

창단 멤버로 부천에 입성한 그였지만 부천 생활은 쉽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지만 당시 부천 U-18 팀은 창단 팀이었다. 전력이 프로 산하의 다른 유소년 팀이나 학원 축구 팀에 비해 약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매번 0-5, 0-6 이런 식으로 졌어요. 이기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축구 선수가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스트레스 받는 일이잖아요.”

그래도 그는 부천을 통해 꿈을 키웠다. 볼 스탭을 하며 부천의 1군 경기를 매번 지켜봤다. 그에게는 부천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일종의 우상이었다. “공을 들고 앉아 있으면서 ‘나도 저기서 저렇게 뛸 수 있을까?’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형들 뛰는 모습 보면 굉장히 멋있잖아요. 특히 그라운드에서 뛰는 동안 서포터들이 이름을 불러줄 때는 정말 선수들이 멋있게 보였어요.”

하지만 그는 뜻하지 않게 선수 생활에 위기가 찾아왔다. 그것도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프로 입성 또는 대학 진학을 한창 고민해야 할 중요한 시기였다. 양쪽 무릎 연골을 재생해야 하는 큰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연습을 소화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정상적인 생활도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약 6개월 동안 쉬어야 했다. 한창 꿈을 키우고 있는 어린 이윤환에게는 큰 타격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고민 끝에 그는 1년 유급을 선택했다. 1년 더 고등학교를 다니겠다는 것이었다. 코칭 스태프는 반대했다. 하지만 이윤환의 아버지까지 나서서 설득한 끝에 유급을 할 수 있었다. 몸도 제대로 회복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인 무대로 올라가는 것보다 1년을 더 준비하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그렇게 1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1년 뒤에도 그는 눈 앞의 기다림을 선택했다. 대학 진학 대신 프로 직행을 선택한 것이다. 대학에 진학한다면 U리그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프로에서는 기회를 잡기까지 더 오래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는 대학보다 프로 무대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대학교를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부모님이 어차피 대학에 가더라도 프로에 가야 하지 않냐고 말씀해주셔서 저도 생각이 바뀌었죠. 게다가 마침 부천에서 저를 불러줬어요. 그래서 입단하기로 마음 먹었죠.”

우연과 우연 속 주어진 행운같은 기회

2016 시즌 입단한 이윤환은 프로 첫 해 단 한 경기도 나오지 못했다. R리그에서는 11경기 출전에 8골 3도움을 기록하며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1군 무대에서는 고작 교체 명단에 한 번 이름을 올린 것이 전부였다. 이것이 프로의 냉혹함이었고 이윤환의 현실이었다. 그는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걷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2017 시즌이 되자 이윤환의 사정은 조금 더 나아보였다. 꿈에도 그리던 1군 무대를 밟았다. 상주와의 FA컵 경기를 통해 이윤환은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하지만 그는 냉정하게 여전히 후보였다. 교체 명단에 한 번 들기도 어려웠다. 일단 그는 교체 명단부터 꾸준히 드는 것이 목표였다. R리그에서 실전 감각을 쌓으며 꾸준히 몸을 만들었다. 상주전에 나선 순간 자신의 이름을 크게 외쳐주던 팬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면서 기다렸다.

7월 17일 FC안양과의 K리그 챌린지 경기에서 그는 올 시즌 처음으로 리그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약 1년 만의 일이었다. 이윤환은 교체 명단에 들었다는 것 자체가 감격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려서 그것 만으로도 행복했어요. K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였죠. 하지만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것이 어디겠어요.”

선배 바그닝요와 후배 이윤환 ⓒ 부천FC1995 제공

교체 명단에 들어간 것도 행운이었다. 마침 부천의 주 공격수인 바그닝요가 경고 누적으로 안양전에 나설 수 없었다. 정 감독은 공격진 엔트리를 짜며 고심했다. 진창수를 후반 조커로 투입하기로 결심한 상황이었다. 부천의 삼각 편대에 제대로 구멍이 난 것이다. 교체 명단에 올라야 할 자원을 선발로 투입했다. 그렇다면 교체 명단을 채워야 했다. 그의 선택은 이윤환이었다.

경기는 치열하게 흘러갔다. 부천은 안양에 선제골을 내줬지만 두 골을 넣으며 2-1로 역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2-6 대패를 만회하겠다고 이를 간 안양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후반전 들어 안양은 공격적으로 부천을 압박했다. 아찔한 상황이 몇 차례 등장했다. 도저히 이윤환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후반 29분 안양 최재훈이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한 것이다. 수적 우위를 점한 부천은 안양의 공세에서 여유로울 수 있었다. 그 때 정갑석 감독은 한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2-1로 끝내기에는 조금 아쉬운데?’ 마지막을 확실하게 마무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가 생각해낸 방법은 교체였다.

“분명 2-1로 끝났다면 남는 아쉬움이 향후 선수단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했어요. 좀 더 공격적으로 한 골 더 기록하기 위해서는 교체 카드가 필요했어요. 교체 선수 중 가장 공격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선수가 이윤환이었어요. 투입 상황이 적절하게 맞아 떨어졌죠.” 정 감독의 말이다. 이윤환은 몸을 풀던 중 그렇게 정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이윤환의 머릿속은 새하얘질 수 밖에 없었다. 꿈에도 그리던 K리그 무대를 밟게 됐다.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정 감독이 다가와 한 마디를 건넸다. “편하게 해.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봐.” 그 한 마디에 이윤환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감독님이 해주신 한 마디에 긴장이 많이 풀렸어요. 자신감도 가졌구요.”

2년 준비한 세리머니, 5분 만에 선보이다

후반 39분에 안태현을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은 이윤환은 그야말로 정신 없이 뛰어다녔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모를 정도였다.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지난 상주전이 2군을 중심으로 나선 경기였다면 이 경기는 주전이 대부분 투입되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중요한 한 판이었다. 무게감이 달랐다.

그리고 단 5분 만에 기회가 찾아왔다. 조범석이 길게 넘겨준 공을 이윤환이 받았다. 그는 빠르게 돌파 후 강한 슈팅으로 상대의 골망을 흔들었다. “누가 줬는지는 사실 모르겠어요. 공이 제게 오길래 받고 돌파를 했는데 슈팅 찬스인 거에요. ‘아, 잘하면 들어갈 수 있겠다’ 싶어서 때렸는데 그게 골이 됐어요.”

돌파하는 이윤환과 이를 마음 졸이며 바라보는 부천 정갑석 감독 ⓒ 부천FC1995 제공

K리그 무대를 밟은지 단 5분 만에 날린 첫 번째 슈팅이 골이 됐다. 이윤환도 환호했고 팬들도 구단 관계자들도 환호했다. 새로운 스타의 탄생이었다. 이윤환은 기쁜 가운데서도 그토록 준비해왔던 세리머니를 펼쳐 보였다. 팬들이 환호하고 있는 관중석으로 뛰어가 자신의 이름과 등번호를 보여주는 세리머니였다.

“사실 제가 프로에 들어오면서 생각했던 세리머니였어요. 언젠가 제가 프로에서 골을 넣으면 팬들에게 달려가서 제 등번호와 이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2년 만에 그 꿈을 이뤘어요.” 이윤환이 꿈꿨던 대로 팬들은 그가 보여준 49번이라는 등번호와 이윤환이라는 이름 석자를 확실하게 기억했다.

아직 이윤환의 기다림은 현재진행형

경기 후 정 감독은 이윤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프로 팀에 유소년 육성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윤환의 골은 그 과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구단 프런트에서는 작년부터 이윤환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가졌습니다. 결국 기다림 끝에 올해 기회를 얻고 골까지 넣었습니다. 이런 과정들이 우리 부천이 성장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윤환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는 많다. 정 감독 역시 이를 지적했다. “최근 R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이 선수가 슈팅에 재능을 갖고 있어요”라고 말한 그였지만 “아직은 미미한 부분이 조금 보입니다”라고 평했다. 물론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여름에 체력적인 문제가 부천에 발생할 것이고 다시 이 선수에게 기회가 갈 수도 있습니다. 그 때 지금처럼만 해주면 이윤환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겁니다”라는 격려 또한 잊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 감독은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윤환은 그 지적에 대해 알고 있다. “아직 제가 특출난 장점이 없어요. 특히 감독님은 스피드가 있는 선수를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그렇지 않거든요. 저는 아직 빠른 스타일도 아니고 힘이 좋은 스타일도 아니에요. 그 부분은 더 노력해서 보완하도록 해야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을 비추던 안양전은 끝나버렸다. 5분 만의 데뷔골을 기록한 이윤환의 인생에 남을 경기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다. 지난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하더라도 그가 선발 자리 중 하나를 곧바로 꿰차기는 쉽지 않다. 부천은 현재 승격을 위해 치열한 경쟁 중이고 이미 부천은 리그 최강이라 부르는 진창수-김신-바그닝요 삼각 편대를 비롯해 K리그 챌린지에서 경쟁력 있는 공격수들이 즐비하다.

이윤환 역시 그 사실을 안다. 득점 후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도, 처음 앉아보는 기자회견장도 아직은 낯선 신인이다. “안양전은 이제 끝났어요”라고 말한 그는 “앞으로 경기는 많잖아요. 제게는 1군 경기만 있는 것이 아니고 R리그도 있어요. 어디에 있든 제가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그렇다면 더 좋은 기회가 제게 올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누군가는 5분 만의 데뷔골을 보고 스타가 탄생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윤환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아직도 이윤환의 기다림은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K리그 무대를 꿈꾸며 끊임없이 땀흘리고 좌절하며 다시 일어서는,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선수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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