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저우 단장 웬샤오팅 ⓒ 구이저우 헝펑 지청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축구는 꽤 보수적인 스포츠입니다.

남자들의 축구에서 여성을 보기는 굉장히 쉽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그저 여자 축구라는 다른 카테고리로 묶어놓을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남자 축구에 여성이 등장하면 많은 관심을 받게 됩니다. 국제 심판을 거쳐 현재는 FC안양에 있는 임은주 단장, 올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ACL)에서 많은 관심을 받은 홍콩 이스턴의 찬유엔팅 감독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 슈퍼리그(CSL)를 비롯한 중국 프로축구에서 여성 단장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나 홍콩의 사례와는 다른 면이 존재합니다. 어찌보면 황당한 부분도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젊다'는 것입니다. 성공 사례도 있고 실패 사례도 있습니다. 중국 프로축구의 대표적인 여성 단장 두 명을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쓰촨 여배우에서 단장이 되어버린 아이루

2014 시즌을 앞두고 쓰촨성은 축구 열기로 뜨거웠습니다. 무려 두 팀이 프로축구단 창단을 선언한 것이죠. 한 팀은 '쓰촨 리더스'였고 다른 한 팀은 '쓰촨 롱파(現 쓰촨 안나푸르나)'였습니다. 중국에 프로축구 붐이 불며 팀 창단 또는 인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이었던 쓰촨성 지역 사회 역시 프로축구단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특히 쓰촨 리더스는 중국 내에서 비교적 특이한 팀이었습니다. 쓰촨성의 주력 산업은 석유 화학입니다. 이곳에는 중국 최대의 석유 화학 공장이 있고 셰일가스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쓰촨 리더스는 바로 이를 바탕으로 합니다. 지역 기업인 쓰촨 리더스 석유 화학이 모기업으로 나섰습니다. 중국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한 팀이 창단된 것이죠.

창단 당시 이 팀은 지역 사회 공헌 등 식상한 말들을 늘어놓은 다음 한 가지 파격적인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팀을 축구 종주국인 영국 주식 시장에 상장하겠다는 것이었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축구로 지역 사회를 발전 시키고 지역 주민에게 자부심을 불어 넣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함께 그들은 비전 만큼 파격적인 단장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창단 단장은 바로 '아이루'라는 인물이었습니다.

단장에 취임한 아이루 ⓒ 쓰촨 리더스

1989년생인 아이루는 여성입니다. 2014년 당시 그녀의 나이는 만 25세였습니다. 평생을 축구화만 신고 살았어도 단장 직에 어울리는 인물인지 의심이 갑니다. 게다가 그녀는 단장 직에 취임할 때까지 축구와 전혀 인연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배우였습니다. '나혼시대(裸婚时代)', '접기각첨도문도애(踮起脚尖吻到爱)' 등이 그녀의 대표작입니다. 특히 '접기각첨도문도애'에서는 한국 배우 김정훈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그녀는 왜 새로운 축구단의 단장 직에 올랐을까요? 알고보니 그녀는 '금수저'였습니다. 이 구단의 모기업인 쓰촨 리더스 석유 화학의 총재는 바로 아이루의 아버지입니다. 물론 구단은 나름대로 이유를 들었습니다. 쓰촨성의 주류를 이루는 중국 소수민족 이족(彝族) 출신으로 지역 화합을 이룰 수 있고 배우인 만큼 3부리그 팀을 빠르게 끌어올리기에 좋다는 것입니다. 능력보다는 상징성을 본 것이죠. 물론 명분 만을 따졌을 때 이야기입니다.

야심차게 출발한 시즌이지만 얼마 가지 않아 쓰촨 리더스는 휘청이기 시작합니다. 아이루를 단장 직에 앉히며 홍보에는 성공했지만 팀 성적과 재정 상황은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국 정치의 거물인 저우융캉(周永康)이 부패 혐의로 퇴출당한 것이 컸습니다. 저우융캉은 쓰촨성 정·재계와 깊은 연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피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축구단에 돈을 쏟아붓는 여유있는 상황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장이라면 이를 조금이라도 해결했어야 합니다. 아이루는 전혀 그런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몰라라 하는 캐릭터에 가까웠죠. 지역 언론은 "미녀 단장 도대체 어디로 도망갔냐!"는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단장에 취임한 아이루 ⓒ 쓰촨 리더스

결국 2014 시즌 쓰촨 리더스는 3승 2무 11패로 9개 팀 중 7위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칩니다. 이 한 시즌이 쓰촨 리더스 역사의 전부입니다. 이 팀은 선수단 임금 체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다음 시즌 리그 참가가 금지됩니다. 사실상 해체였죠. 아이루는 다시 배우로 돌아갔습니다. 2015년 휴식기를 가진 뒤 2016년부터 다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구단 역사상 최초 CSL 입성을 이끈 웬샤오팅

쓰촨 리더스는 허무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와 비슷한 팀은 승승장구 하고 있습니다. 마치 엇갈린 운명과도 같을 것입니다. 그 팀은 바로 구이저우 헝펑 즈청입니다. 2016 시즌 중국 갑리그 2위로 CSL에 승격한 구이저우는 현재 16개 팀 중 9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직 시즌은 많이 남아있지만 고무적인 성과죠.

사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구이저우는 이런 팀이 아니었습니다. 2부 갑리그와 3부 을리그를 오가는 작은 팀이었죠. 을리그에서 승격하더라도 다음 시즌 갑리그에서 곧바로 강등당하는 팀이었습니다. 2015년 구이저우는 사상 처음으로 갑리그 13위로 잔류에 성공해 이를 자축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2016 시즌을 앞두고 구이저우는 지역 부동산 개발 업체에 인수됩니다. 이름도 구이저우 헝펑 즈청으로 바뀝니다. 새 모기업은 인사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구단의 운영을 담당할 단장에 '웬샤오팅'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 아니 그녀는 여자였고 축구와 인연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웬샤오팅이 단장에 취임할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26세였습니다. 홍콩 태생인 그녀는 살면서 중국과 큰 인연이 없었습니다. 축구 역시 인연이 없었죠. 주로 영국에서 공부를 했고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중국에 와서 맡게 된 첫 번째 직장이 바로 축구단이었죠. 심지어 단장이었습니다.

단장에 취임한 아이루 ⓒ 쓰촨 리더스

그녀가 단장 직에 취임하게 된 이유는 바로 모기업 회장 웬웨이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아이루가 떠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중국의 일부 언론들도 그녀의 취임을 '경솔하다'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축구단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구이저우의 모기업이 바뀌면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재정입니다. 이 업체는 꽤 탄탄한 재정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구이저우 팀에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웬샤오팅은 이 점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프로 선수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가장 큰 당근은 바로 '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수들에게는 금전적인 보상을 아끼지 않으면서 팬들과는 적극적으로 소통을 시도했습니다. 구이저우의 팬들 중에는 웬샤오팅의 팬인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갑리그 하위권과 을리그 상위권을 맴돌고 있는 팀의 성적도 크게 개선됐습니다. 결국 2016 시즌 구이저우는 2위로 CSL에 진출하는데 성공합니다.

구이저우가 CSL에 승격하면서 중국에서는 웬샤오팅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축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장'이라는 별칭도 붙었죠. 단순히 미모가 뛰어나서 웬샤오팅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팀 운영을 잘 했고 그에 걸맞는 성적을 냈기에 현재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 축구계에 20대 여성 단장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실력이 아닌 인맥으로 발탁된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구단을 운영하는지 살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꽤 많습니다. 아직 '20대 여성 단장'이라는 신선한 시스템이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확답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독특한 사례가 더 많아질 수록 이들에 대한 평가도 좀 더 냉정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