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캠퍼스에서 만난 송범근은 키가 좀 클뿐 평범한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U-20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안방에서 경기를 치른 한국은 16강에서 포르투갈에 무너지며 결국 8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누군가는 이 대회를 실패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선수의 등장에 대해서는 반대의 여지없이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바로 신태용호를 지켰던 골키퍼 송범근(고려대)이 그 주인공이다. 대회를 마치고 이제는 잠시 학교 생활에 전념하고 있는 그를 고려대로 직접 달려가 만났다. 든든했던 이 골키퍼는 캠퍼스에서 만나니 공강 시간을 잘 활용하는 영락없는 대학생이었다.

요새 어떻게 지내고 있나.

U-20 월드컵이 끝난 뒤 휴가를 받았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님이 밥을 사 주셔서 동료들과 함께 맛있는 것도 얻어먹었고 애들과 그날 저녁에는 간단하게 술도 한 잔했다. 그런데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편도염도 오고 감기에도 걸려 며칠 집에서 쉬었다. 두 달 넘게 합숙 훈련하고 대회를 준비하느라 집에 못 갔더니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집이 제일 편하더라.

잠깐 쉰 뒤 곧바로 U리그 경기에 나섰다고 들었다.

휴가를 받고 쉬다가 한양대와의 U리그 이틀 전에 다시 고려대에 합류해 운동을 했다. 그리고 한양대전이 끝난 뒤 다시 휴가를 받은 상황이다. 그래서 (이)승우와 같이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지금은 휴가 중이라 학교 훈련 없이 수업에만 열중하고 있다.

팀내 최장신인 당신과 최단신인 이승우가 함께 해운대 바닷가를 거니는 모습은 굉장히 어색할 것 같다.

다른 분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키가 거의 30cm는 차이 날 거다. 하지만 나하고 승우하고는 다 잘 맞는다. 개그 코드도 비슷하고 좋아하는 음악도 비슷하다. 서로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여자 이야기도 자주 하는 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부산 클럽이 일요일에는 문을 닫더라. 승우의 친형도 함께 놀러 갔는데 바닷가 구경도 하고 회도 먹고 재미있게 놀다 왔다.

이승우는 개성이 넘쳐 보인다. 실제로도 그런가.

(백)승호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승우는 재작년 열린 JS컵 때 처음으로 만났다. 그때 같은 방을 배정 받았는데 사실 나도 처음에는 그 친구가 너무 튀어 보여서 좋게 생각하진 않았다. 알고 봤더니 내가 키가 커서 승우가 처음에는 나를 좀 불편해 했단다. 애들은 막 우리 방으로 승우와 사진을 찍겠다고 찾아오고 그랬다. 그런데 지내 보니까 승우는 거만한 게 아니라 할 땐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한다. 취향도 비슷해 금방 친해졌다. 지금은 ‘베프’다. 신나는 노래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해서 EDM을 함께 즐긴다. 승호는 승부욕도 강하고 성실한 스타일이다. 포르투갈전이 끝나고 화가 나서 울기도 했다. 노력으로 그 위치까지 올라간 애다. 그런데 승우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타고난 게 더 큰 것 같다. 천재 맞다.

당신은 U-20 대표팀의 공식 DJ라고 들었다.

늘 훈련장에 가거나 경기를 하러 갈 때면 내가 선수단 버스에서 DJ를 자처했다. 아무도 안 시켰는데 혼자 좋아서 한 거다. 원래 노래를 크게 듣는 걸 좋아해서 방에서도 혼자 크게 틀어놓는 편인데 버스에서 한 번 틀어보니 애들이 좋아하더라. 아예 휴대용으로 된 큰 스피커를 내 돈 주고 사 버스를 탈 때도 들고 다니면서 틀었다. 이게 뭐라고 그때부터는 DJ로서의 부담감도 생겼다. 애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중압감이 드는데 특히 승우가 음악에 민감하다. 마음에 안 들면 “노래 바꾸자”고 한다. 요새는 의 노래를 자주 튼다.

시끄러운 노래를 싫어하는 동료들은 없었나. 나는 EDM보다 김광석 노래가 더 좋다.

불편하다고 말하는 동료가 있다면 배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친구들이라 그런지 다 이런 노래를 좋아했다. 원래 안익수 감독님이 계실 때는 버스에서 시끄러운 노래를 못 틀게 하셨다. “듣고 싶은 애들도 있고 아닌 애들도 있다.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신태용 감독님은 “신나는 음악을 들어야 아드레날린이 더 나온다”면서 오히려 더 신나는 노래를 요구하셨다. 가끔 조용한 음악이 나오면 감독님께서 “그런 건 틀지 말라”고 하시더라.

부업으로 DJ를 해보는 건 어떤가.

나중에 은퇴를 하면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축구에만 전념하고 싶다. DJ는 취미일 뿐이다.

송범근은 백승호의 승부욕과 노력을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송범근 페이스북

안익수 감독과 신태용 감독은 EDM을 대하는 자세부터 다르다. 지도 방식도 다르지 않나.

물론이다. 안익수 감독님은 진중하고 조용조용한 스타일이다. 처음에는 너무 무서워서 애들이 밥 먹을 때도 숨소리도 못 낼 정도였다. 그런데 알고 보면 되게 자상하고 우리를 잘 챙겨주셨다. 나중에는 친해져서 가끔 장난도 치고 대화도 많이 했는데 좀 적응이 되니까 팀을 떠나게 되셨다. 그런데 신태용 감독님은 처음부터 되게 편한 스타일이었지만 할 때는 또 확실하게 한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감독님한테 배울 게 많았다.

이번 대회 이야기는 차근차근 해보자. 처음 축구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원래 축구를 좋아해서 엄마가 공부하라고 하면 축구화를 신고 운동장으로 도망쳤다. 부모님께 늘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왜 축구를 하고 싶냐”고 물어보셔서 “나를 알릴 수 있는 건 축구밖에 없다”고 대답했단다. 기억은 없지만 오글거리는 멘트 아닌가. 그런데 어린 놈이 그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하니까 엄마도 허락해 주셨다. 어린 나이에 뭔가 인정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신용산초등학교 축구부에 들어갔다.

결국엔 지금은 U-20 대표선수까지 됐다. 처음부터 골키퍼로 두각을 타나냈나.

아니다. 처음에는 골 넣고 주목받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갑자기 초등학교 감독님께서 나한테 “골키퍼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셨다. 나는 당연히 “싫다”고 했고 그 당시에는 또래보다 키가 약간 큰 편이었을뿐 특출나게 신체 조건이 좋지도 않았다. 하지만 감독님께서는 우리 부모님 키를 미리 알고 나한테 골키퍼 제안을 하신 거다. 아버지가 187cm고 엄마도 168cm였기 때문이다. 4학년 때 5학년 골키퍼가 없어 도와주는 셈치고 처음 골키퍼를 하게 됐다. 하지만 완전히 속은 거였다.

다시 필드로 돌아가지 못했나. 동심을 그렇게 이용하는 건 옳지 않다.

골키퍼를 처음 하면서 의외로 괜찮게 했다. 그리고 주변에서 계속 칭찬해 주니까 인정 받는 게 너무 좋았다. 하지만 1년만 딱 골키퍼를 하고 6학년이 되면 공격수로 전환시켜 주기로 약속하셨는데 1년 동안 골키퍼를 하다가 공격수를 하려니 잘 안 되더라. 미드필더도 해보고 다 해봤지만 결국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골키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골키퍼로 전향하길 정말 잘한 것 같다. 골키퍼는 손도 쓰고 경기 내내 서 있고 좋지 않은가. 원래 이렇게까지 키가 크는 건 아니었는데 점프도 많이 하다 보니 더 컸다. 지금은 194cm다.

부럽다. 나는 194cm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174cm만 됐으면 좋겠다.

키가 크면 불편한 게 많다. 버스를 타면 머리가 천장에 닿고 비행기를 타면 자리가 좁다.

그럼 내가 키가 작아 불편한 걸 한 번 열거해 볼까.

아니다. 그래도 큰 게 나은 것 같다.

골키퍼를 하면서 일상생활을 할 때 좋은 점도 있나. 순발력이 남다를 것 같다.

식탁에서 젓가락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 손으로 이걸 잘 잡는다. 평상시에는 이런 점들이 골키퍼로서는 참 좋은 것 같다. 그 외에는 딱히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은 이후 매탄중에 진학했다가 전학을 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원래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려면 중2 막판, 중3 초반에 잘해야 한다. 그래야 스카우트의 눈에 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매탄중에서 세일중으로 전학을 갔다. 사실 매탄중에 있을 때는 선수도 아니었다. 팀에도 골키퍼 코치가 없었고 창단 초기여서 열악했다. 나 역시 기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조금 더 체계적인 지도를 받고 싶어 학교를 옮긴 것이다.

당시에는 중학생이니 그냥 축구를 그만둬도 부담이 없을 때였다. 그런데도 그렇게 전학까지 가 축구를 해야 했나.

축구를 계속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감독님과 세일중 감독님이 친분이 있었다. 중학교 진학 당시 세일중에서도 나를 원했는데 내가 매탄중으로 가겠다고 해 매탄중에 입학한 것이었다. 세일중으로 옮기고 정영길 코치님이 잘 가르쳐 주신 덕분에 실력이 많이 늘었다. 하지만 당연히 선수로 가장 잘 뛰고 있어야 스카우트 눈에 들 시기에 전학을 가면서 고등학교 진학에 애를 먹었다. 경기에서 실력을 많이 보여주지 못해 고등학교 팀 중 프로 유스 팀으로는 상주상무 유소년인 용운고만이 나를 원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상주로 가게 됐다.

송범근은 백승호의 승부욕과 노력을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송범근 페이스북

사람들은 상주상무 유소년 팀이면 졸업하고 상무에 바로 가야되는 걸로 알기도 한다.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일일이 다 설명을 해야 한다. 일단 용운고를 졸업하면 상주에서 우선지명을 할 수 있다. 나도 상주에서 우선지명권을 행사했고 지금은 그 지명권을 잠시 상주에서 미뤄 놓아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이건 상무 팀의 우선지명권이 아니라 상주의 우선지명권이다. 상주가 시민구단을 창단하면 먼저 지명할 수 있는 권리다. 내가 알기론 올해까지 상주가 시민구단을 창단하지 않는다면 나에 대한 우선지명권이 사라진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상주에서는 상무가 잘하고 있고 올해 안에 상주에 시민구단이 창단되는 건 어렵지 않을까.

지금 자유의 몸이 되는 걸 기대하는 것 같다.

뭐 꼭 그런 건 아니다. 사실 주변에서는 “군대에서 우선지명하면 좋은 거 아니냐”고 많이 오해하고 있는데 그러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유소년 출신 몇 명을 빨리 상무에서 우선지명 해준다면야 군대에 빨리 갔다 오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럼 당신도 빨리 군대에 다녀올 생각이 있나.

물론 아직은 아니다.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

상주상무 유소년은 다른 팀하고는 좀 다른 게 있나. 예를 들어 불침번을 세운다던지 부식으로 맛스타를 준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 건 없다. 다른 유소년 팀하고 다 똑같다. 다만 필드 플레이어 유니폼이 밀리터리 디자인이었고 폐교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 해서 쓰는 것만 조금 특이했다. 상주 시골에 있어 주변이 다 논밭이었고 시내에 나가려면 택시비만 해도 2만 원 정도가 나왔다. 그래서 3년 동안 열심히 한눈 팔지 않고 운동에만 전념했고 그때 실력도 많이 늘었다. 선수는 아무래도 경기에 나가는 게 실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계속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돼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신은 안방에서 열린 이번 U-20 월드컵의 주전 수문장으로까지 성장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이었나.

체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많이 뛰었다. 그게 가장 힘들었다. 오전에는 뛰고 오후에는 전술 훈련하고 저녁에는 웨이트트레이닝에 전념했다.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2주일 동안 계속 이렇게 체력 훈련을 했는데 이 시기가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신태용 감독님께서 기초 체력으로 일단 상대를 압도해야 한다고 하셔서 나도 열심히 뛰었다. 많이 뛰지 않는 골키퍼여도 할 건 다 해야 하지 않겠는가.

연령별 대표팀을 겪어보면 동료들끼리 추억도 많이 쌓는 것 같더라.

아쉬움도 있고 기뻤던 순간도 있는데 2015년 러시아 친선대회에 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때가 첫 소집이었고 다들 대표 선수가 되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임했다. 결승전에서 이기고 있다가 러시아에 역전패를 해서 준우승에 그쳤는데 처음 발을 맞췄던 시기여서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쉬움은 컸던 대회였지만 경기 내용도 좋았었다.

잠비아와의 평가전 도중 정태욱이 큰 사고를 당해 많은 이들이 걱정하기도 했다.

걱정되고 불안해서 경기가 끝난 뒤에도 분위기가 침울했다. 그런데 (정)태욱이가 다친 그날 밤 연락이 와 괜찮다고 했고 다음 날에는 영상 통화도 했다. 그때 (이)상민이가 태욱이에게 응급조치를 취해서 많은 주목을 받지 않았나. 이후로는 둘이 인터뷰도 같이 하고 항상 붙어 다니더라. 원래는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가 아닌 거 같았는데 그 사건 이후로 더 친해진 모양이다. 며칠 전에는 둘이 지드래곤 콘서트로 보러 갔단다. 남자끼리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러게 말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결국 한국은 16강전에서 패하고 말았다. 안방에서 열린 대회라 내심 기대치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자신은 있었다.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해 봤던 선수들도 있었고 홈 경기라 그랬던 것 같다. 나도 내심 8강이나 4강까지는 목표를 두고 있었고 첫 경기 기니전에서 이겼을 때도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아직은 세계의 벽이 있더라. 잉글랜드를 경험해 보니 확실히 여유가 있고 볼 소유가 된다. 한 명을 제칠 능력은 다 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많은 관중 앞에서도 긴장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경험이 부족했다.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뛰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송범근은 백승호의 승부욕과 노력을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송범근 페이스북

신태용 감독이 포르투갈과의 16강전에서 갑자기 새로운 전술을 들고 나온 것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너무 큰 실험이었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포르투갈과의 16강전만 이기면 더 높게 올라갈 수 있겠다는 느낌이 있었다. 포르투갈전이 고비였는데 그날 감독님께서 전술을 바꿔 4-4-2를 썼다. 우리는 감독님이 결정한 전술이니 믿고 가야하는데 받아들이는 선수들 입장에서는 혼란도 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결과적인 이야기다. 포르투갈을 상대로 수비를 두텁게 해 역습을 노려야 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우리는 감독님 결정을 믿고 따라야 한다. 만약 수비적으로 해서 졌으면 “왜 홈에서 내려서느냐”고 할 수도 있다. 결과를 내지 못한 선수들의 잘못이다. 그 고비를 넘겼어야 했다.

2년 넘게 준비했던 대회가 한순간에 끝났다. 허무하기도 할 것 같다.

집에 와서 자고 일어났더니 다음 날 아침에 멍한 기분이 들더라. 텔레비전을 틀면 우리와 함께 대회에 참가했던 다른 나라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있어 일부러 채널도 돌렸다. 나중에야 그 경기들을 챙겨봤다. 대회가 끝났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아쉬움도 컸고 기간도 짧았기 때문이다. 더 길게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하지만 배운 것도 많고 좋은 경험이었다. 그런 세계적인 유망주들과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를 했다는 건 큰 자산이 될 것 같다.

주변에서는 너무 ‘이승우 원맨팀’이 되는 거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다. 초대형 스타 한 명과 그 동료들 사이에서는 갈등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은가.

승우 때문에 내가 소외감을 느껴본 적은 없다. 원래 우리는 늘 미디어의 관심이 적었던 선수들이니 적응이 돼 있었다. 그런데 승우와 승호 사이에서 같은 공격수인 (조)영욱이는 소외감을 느꼈을 것 같다. 같은 포지션인데 관심이 한쪽에만 쏠리니 부담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팀 내부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다 좋았다. 경기 당일에도 애들끼리 장난도 치고 그랬다. 걱정할 건 전혀 없었다. 다만 프로 애들은 훈련 도중 내기를 해 걸리면 50만 원씩 사고 대학생 선수들이 내기에 걸리면 눈치껏 적게 산다. 연봉 차이가 있다 보니 그런 거는 서로 알아서 배려했다.

많은 관중의 박수를 받다가 아마추어 무대인 U리그로 돌아오니 감정이 남다를 것 같다. 꿈을 꾸고 온 기분 아닌가.

그렇다. U리그에 돌아오니 긴장이 나도 모르게 풀린다. 아무래도 관중도 적고 대중의 관심도 부족하니 그런 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약간의 긴장은 경기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해 스스로 긴장감을 만들기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고 있다. 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

송범근은 백승호의 승부욕과 노력을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송범근 페이스북

이번 대회가 끝나고 해외 여러 팀에서 당신에게 관심을 보인다고 들었다. 당신도 알고 있나.

에이전트를 통해 직접적으로 제안이 온 건 없다. 나도 그냥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정도다. 파리생제르망과 마르세유 등에서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이제 월드컵이 끝났으니 제안이 올 수도 있지만 유럽은 여름 이적 시장이 열리는데 내가 대학교에 재학 중이니 바로 유럽으로 가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은 좀 지켜봐야겠지만 유럽의 좋은 팀들이 관심을 가져준다니 그 소식만으로도 기분은 좋다.

유럽 진출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나.

골키퍼가 가장 중요한 건 동료들과의 소통 능력과 피지컬이다. 내 피지컬은 유럽 선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언어는 손색이 많다. 영어 과외를 한 적도 있는데 시간이 없어 지금은 손을 놓고 있다. 다시 외국어 공부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는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

꾸준하게 경기에 나서고 싶다. 자리를 확실하게 잡아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프로 무대에 서고 싶다. 분데스리가에 진출하는 것도 목표다. 독일이 좋은 골키퍼가 많지 않은가. 그런 곳에서 한 번 배워보고 싶고 그런 관중 많은 곳에서 한 번 뛰어보고 싶다. 이번 U-20 월드컵 말고는 이렇게 관중이 많은 곳에서 뛰어본 적이 없는데 굉장히 설레더라. 이제 20살인데 앞으로 딱 선수 생활을 20년만 더 했으면 좋겠다.

송범근은 이번 U-20 월드컵에서 얻은 큰 수확이다. 비록 아직은 외모에서 어린 티가 나는 선수였지만 목표 만큼은 당찼다. 그의 바람처럼 앞으로 송범근이 더 많은 이들 앞에서 더 뜨거운 함성을 느끼며 승승장구하길 응원한다. 이 어린 선수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골문을 든든하게 지킬 날이 곧 올 수도 있다. 송범근은 이렇게 솔직하고도 진솔한 이야기를 남기고 다음 수업 시간이 됐다며 성큼성큼 강의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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