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이들에게 K리그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81번째 슈퍼매치는 FC서울이 수원 삼성을 2-1로 잡으며 승리를 거뒀다. 수원 팬들은 깊은 아쉬움을 삼켰다. 서울 팬들은 부진했던 지난날들을 잊고 큰 소리로 환호했다. 울고 웃는 사람들이 바뀔 뿐 슈퍼매치는 늘 이런 모습이었다.

이번 시즌 K리그는 유난히 사건 사고가 잦았다. 팬들마저 "진짜 위기"가 찾아왔다고 느낄 정도였다. 실망이 쌓였다. 슈퍼매치는 "예전 같지 않다"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렸다. 이날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겨우 2만 명을 조금 넘겼다. 그래서 팬들을 더 만나고 싶었다.

그곳엔 같은 팀을 응원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상대 팀이 있었다. 팬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슈퍼매치가 예전 같지 않다"라는 말은 곧 설득력을 잃었다. 슈퍼매치는 변함없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다른 유니폼, 똑같은 대답, "우리가 이긴다"

휴식기 이전까지 양 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수원은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을 겪었으나 상승세를 타며 어느덧 6위에 올라 있었다. 서울은 시즌 초반 슬로 스타터의 오명을 벗으려 노력했으나 뚜렷한 무기를 가지지 못한 채 7위까지 내려앉은 상황이었다. 어느 한쪽이 좀처럼 치고 나가지 못하는 두 팀을 바라보는 팬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한 수원 팬은 "내려갈 팀은 내려가게 되어있습니다"라며 서울의 부진이 계속되길 바랬다. 다른 수원 팬은 "서울 FA컵 떨어졌죠? 올해는 리그에서밖에 더 못 만나겠네요"라며 서울의 FA컵 탈락을 비웃었다. 한 서울 팬은 어느새 서울보다 높은 순위에 있는 수원을 향해 "기세가 좋은 것도 잠깐이죠"라고 말하며 조금은 분한 듯 "다시 내려갈 거에요"라고 말했다.

경기 시작 전에 만난 수원 팬들은 조나탄의 3년 계약을 기뻐하며 그의 활약을 기대했다. "3년 계약이니 3골 넣을 수 있을까요"라는 재미없는 질문에도 수원 팬들은 성의있게 대답해줬다. "5골도 넣을 것 같아요"라는 팬도 있었고 "한 골만 넣어줘도 충분합니다"라는 팬도 있었다. 한 서울 팬은 이에 대해 "계약과 결정력은 별개의 문제"라며 냉정한 모습을 보였다.

상투적인 질문을 던졌다. "오늘 경기 어떨 것 같아요?" 돌아올 대답이 뻔하리란 것쯤은 알았다. 텍스트가 아닌 그들의 표정이 궁금했다. 혹시 모른다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불안한 표정은 "무조건 우리가 이깁니다"라는 말과 함께 기대감과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입고 있는 유니폼은 달라도 그들의 표정과 대답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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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종료 후 여운은 여전히 진하게 남는다

경기 종료 후 만난 서울 팬들은 "다행이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휴식기 이전의 부진, 그동안 너무 쉽게 뚫렸던 수비를 걱정했었지만 이날은 승리를 거뒀다. 서울 팬들은 화려하게 복귀한 하대성을 자주 언급했다.

서울 팬들은 돌아온 '상암의 왕' 하대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역시'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선수였어요. 미드필드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선수가 필요하다고 느꼈는데 오늘 하대성이 잘해줬어요." 황선홍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하대성에 대해 "경기 컨트롤과 판단력이 뛰어난 선수라서 믿었다"라고 칭찬하며 "중원을 장악하려고 했던 부분은 주효했다"라고 경기를 평가했다.

하대성의 플레이를 지켜본 한 수원 팬은 울분을 삼켜야 했다. "패배는 아쉽지만 그런 선수가 있어야 리그가 재밌죠. 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선수예요. K리그 중앙 미드필더 중에서는 최고인 것 같아요."

반면 수원의 영웅 염기훈에 대한 평가는 양 팀 모두 박했다. 서울 팬들은 이날 부진했던 염기훈에 대해 "오늘 염기훈 별로던데요"라며 즐거워했다. 다수의 수원 팬들은 "폼이 많이 죽었어요. 이제는 정말 하락세인 것 같아요. 후반 되니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 보였어요"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래도 꾸준히 잘 뛰어준 선수예요. 다음 경기는 더 잘할 거에요"라며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수원 팬들은 많이 아쉬워했다. 확실한 반등을 기대했지만 하필 서울에 지면서 기세가 한풀 꺾였다. 한 수원 팬은 "수원 팬 하기 참 힘드네요"라고 말했다. 다른 수원 팬은 "완전 희망 고문이에요. 상승세를 탈 듯하면 꼭 이렇게 흐름이 끊기네요"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들에게 슈퍼매치는 단 90분간 펼쳐지는 경기가 아니었다. 경기 후 진하게 남는 여운까지 슈퍼매치의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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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예전 같지 않다고 그래요. 여긴 수원의 명절이에요"

슈퍼매치의 주인공은 서울과 수원, 수원과 서울이다. 누군가에겐 "예전 같지 않은 매치"일지라도 당사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몇몇 팬들은 "예전 같지 않다"라는 말이 슈퍼매치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한 서울 팬은 "K리그가 예전 같지 않죠. 남부의 슈퍼매치라고 할 수 있는 동해안 더비도 예전 같진 않던데요"라며 17일(토)에 열렸던 동해안 더비에 대해 자기 생각을 밝혔다.

프렌테 트리콜로 1대 회장을 맡았던 박장혁 씨는 "한국 축구 자체가 위기 아니에요? 한국 축구 시장성 자체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이어 "대한민국에서 이정도 관중이 찾아오는 축구 경기가 또 있을까요? 열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지금 한국 축구 상황을 살펴보면 슈퍼매치는 나은 편이죠"라고 말하며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시사했다.

한 수원 팬은 슈퍼매치가 "예전 같지 않다"라는 말에 "누가 예전 같지 않다고 그래요. 여긴 수원의 명절이에요"라고 했으며 다른 수원 팬도 "남들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도 K리그에서 가장 큰 경기잖아요. 저한텐 언제나 즐겁고 항상 가슴 설레는 경기에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남들이 뭐라 하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 슈퍼매치는 언제나 전쟁이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전쟁일 것이다. 한 서울 팬은 "선수들이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좋았어요. 경고도 6장 나왔잖아요. 팬들이 응원만큼 야유를 더 크게 해도 좋을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한 수원 팬은 "슈퍼매치의 현장감은 말이 필요 없죠. 진짜 전쟁 같이 느껴져요"라고 말했다.

팬들은 벌써 82번째 슈퍼매치를 기다린다 

다음 슈퍼매치는 8월 12일 뜨거운 여름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팬들은 벌써 다음 슈퍼매치를 기대하고 있었다. 수원 팬들은 서울을 향해 "오늘까지만 좋아했으면 좋겠네요. '수원아 또 속냐' 걸개도 만들었던데 후회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 다음엔 각오하라고 전해주세요"라며 복수를 다짐했다. 서울 팬들은 수원을 향해 "염기훈 못 잃어서 어떡해요? 다음에도 우리가 이길 거에요. 날씨도 더울 텐데 고생하지 말고 그냥 집에서 중계화면으로 보는 게 나을 것 같네요"라고 전하며 승자의 여유를 만끽했다.

서로 이기지 않고는 못 사는 두 팀이지만 서로를 향한 응원 메시지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어쨌든 K리그 최고의 매치입니다. 다음에도 팬들에게 화끈한 경기를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축구라는 게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죠. 서로 힘든 시간을 보냈으니 나중에 좋은 날도 많을 겁니다." "그래도 우리 걱정해주는 건 쟤네들밖에 없어요." "그래도 나중에 상위 스플릿에서 또 만나야 하지 않겠어요? K리그 최고의 매치업이 하위 스플릿에서 열린다면 더 슬플 것 같아요." 이렇게 그들은 애증(?)의 관계를 다지며 또 다음을 기약했다. "전북을 만나면 꼭 이기길 바란다"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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