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꼽히고 있는 허정무 부총재 ⓒ 인천 유나이티드 제공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결국 슈틸리케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대한축구협회는 빠르게 차기 감독 선임에 착수했다. 벌써부터 한 인물이 국가대표팀 차기 감독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바로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다. "국내 감독이면서 월드컵 최종예선을 경험해 본 인물"이라는 이용수 전 기술위원장의 말을 감안한다면 그가 신임 감독으로 취임할 가능성은 더욱 올라간다.

그가 감독직을 맡게 될 경우 장점은 분명 존재한다. 현재 대표팀 수석 코치직을 맡고 있는 정해성 코치를 비롯해 기성용, 이청용 등 대표팀 주요 선수들과 함께 한솥밥을 먹은 바 있다. 허 부총재 본인도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안정'을 향후 대표팀의 키워드로 삼는다면 허 부총재는 다시 감독직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허 부총재의 가장 큰 약점은 현장을 떠난지 굉장히 오래됐다는 것이다. 그는 2012년 4월 인천 유나이티드의 지휘봉을 내려놓은 이후 감독직을 맡지 않았다. 벌써 5년 이상이 지났다. 그만큼 세계 축구의 흐름도 굉장히 많이 변화했다. 2012년만 해도 당시 축구의 대세는 '티키타카'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백 쓰리 등 상당한 변화가 있다. 이 흐름을 허 부총재가 잘 파악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대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남은 두 경기에서 한국의 월드컵 진출의 역사가 끝날 수도 있고 이어질 수도 있다. 급한 불은 꺼야한다. 누군가는 이 불을 책임져야 한다. 허 부총재는 좋은 소방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땜질식 처방은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하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모든 불을 책임지는 것도 옳지 않다.

자꾸 오버랩되는 그 사람, 김인식 감독

타 종목인 야구에서 선례를 찾을 수 있다.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앞두고 한국 야구계는 국가대표팀 수장을 찾아 헤맸다. 프로야구 현직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으로 논의됐으나 대부분이 팀 훈련 등을 이유로 고사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의 선택은 김인식 기술위원장이었다.

그는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꽤 많은 업적을 쌓았다. 2006년 제 1회 WBC 4강, 2009년 제 2회 WBC 준우승, 2015년 프리미어12 우승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KBO는 "단기전인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했다"는 이유로 그를 선임했고 김 감독은 "구본능 총재가 한 번 더 맡아달라고 했다. 벌써부터 걱정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감독직을 수락했다.

김인식 감독은 한국 야구계의 존경 받아야 할 인물이었다 ⓒ KBO 제공

그리고 한국 야구는 2017 WBC에서 예선 탈락이라는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현실적인 문제로 감독직을 계속 김인식 감독에게만 미룬 결과였다. 결국 명장이라 불리던 70대 노감독은 명예롭지 못하게 내려왔다. 국제 대회가 다가올 때마다 그들은 안일하게 '김인식 감독이 해줄 거야'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매번 지휘봉을 맡겼다. 결국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영광이 아니라 치욕이었다.

허 부총재가 감독 후보로 급부상하면서 나는 김인식 감독이 계속해서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허 부총재가 앞으로 국가대표팀을 맡을 최적의 감독 후보라는 판단이 든다면 당연히 그를 선임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고 있는 모습은 그가 최적의 감독이기 때문에 선임하는 것이 아니라 급하기 때문에 선임한다는 느낌만 받고 있다.

감독 하나로 위기 극복? 한국 축구 그렇게 쉬운 존재였나

만일 허 부총재가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될 경우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해질 수 밖에 없다. 본선 진출에 성공하더라도 꽤 오랜 시간 동안 그에게 본선 무대를 맡겨도 될 지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만일 본선 진출에 실패할 경우 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허 부총재는 불명예를 뒤집어 쓸 뿐 아니라 거취까지 애매해진다. 그를 선택한 것이 잘못이라는 여론의 질타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는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할 경우 잠재적 손실이 엄청날 것이라고 말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각종 배당금과 중계권료, 스폰서 등의 축소는 한국 축구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감독을 정하면 안된다.

다음 최종예선 경기는 8월 31일과 9월 5일에 열린다. 한 달 반 가량의 시간이 남아있다. 급한 것은 맞다. 하지만 감독 한 사람이 바뀌어서 경기력이 180도 달라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인가? 게다가 국가대표팀은 프로 팀처럼 자주 발을 맞춰볼 수도 없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비장한 사명감을 가지고 단두대에 올라갈 한 사람이 아니다. 축구계 전체의 각성과 위기 돌파를 위한 의지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월드컵 본선 진출 하나에 목숨을 걸었던가? 그리고 한국 축구가 애초부터 월드컵 본선 진출만 하면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했던가? 현재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다. 자존심도 굉장히 상한다. 하지만 그래도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지금 닥친 위기는 새로운 감독 한 사람에게 모두 떠넘기면 안된다. 축구계 모두가 힘을 모아 넘겨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대표팀 감독직은 '그 다음'에 해당하는 일이다.

허 부총재의 말대로 국가대표팀 감독직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국가대표팀 감독직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모습은 국가대표팀 감독을 아무에게나 맡기고 있는 모습이다. 이 상황은 감독의 선임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현재 선수단을 가장 잘 아는 인물에게 감독 대행직을 맡기고 축구계가 전반적인 모든 부분에서 총력 지원을 한 다음 감독 선임은 그 이후에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물론 감독 대행 체제에서 대행 역할을 맡은 인물이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될 것이라는 우려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정식 감독과 대행은 무게가 다르다. 그만큼 책임에서 자유롭다. 남은 최종예선 일정에서 정식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고 싶었다면 슈틸리케 감독을 더 일찍 경질했어야 한다. 하지만 협회는 최악의 상황이 눈 앞까지 보이는 곳까지 오고 나서 경질했다. 이렇게 하고 정식 감독을 선임하겠다는 것은 욕심이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잘 포장된 등 떠밀기다.

허 부총재가 대표팀을 맡기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동안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한국 축구의 전설들이 감독직을 맡고 불명예스럽게 물러나는 것을 자주 봐왔다. 허 부총재는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월드컵 원정 16강을 달성한 감독이다. 능력 있는 감독이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잡은 지휘봉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그에게 주어질 책임은 너무나도 가혹하고 무겁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축구가 위기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평소 한국 축구가 위기라는 말에 "이번 위기는 268번째냐"라고 웃어 넘기는 나도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는 한국 축구의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 큰 위기가 단순히 감독 한 사람으로 인해 기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허 부총재의 감독 선임으로 모든 것을 넘기겠다? 그것이야말로 한국 축구의 진정한 위기를 불러오는 교만이자 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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