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르신이 효창운동장에서 열리는 WK리그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12일 오후 4시 효창운동장에서는 팬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기가 열렸다. IBK기업은행 2017 WK리그 서울시청과 이천대교의 경기였다. 가뜩이나 관심이 부족한 WK리그가 열악한 효창운동장에서, 그것도 평일 낮에 열렸으니 무관심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경기장 주변과 내부도 차분했다. 하지만 다 낡고 떨어져 덜렁거리는 관중석 의자에 앉은 이들은 경기 내내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진지하게 진단하기도 하면서 경기를 즐겼다. “아이고, 슈팅을 먼저 했어야지.” 이들은 대부분 7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었다. 과연 이 어르신들은 어떻게 효창운동장까지 오게 됐을까.

‘축구 전문가’들이 모여드는 효창운동장

안성우 옹은 1938년생으로 올해 80세다. 하지만 벌써 효창운동장으로 출근(?)한지 5년 가까이 됐다. WK리그는 물론 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회까지 효창운동장에서 열리는 경기에 빠짐 없이 오고 있다. 안성우 옹은 10대 때부터 축구를 참 좋아했다. “내가 서울 토박이거든. 그런데 예전엔 서울에서도 뭐 오락거리가 없었어. 우리한테 최고로 재미있는 건 축구 뿐이었지.” 나이를 먹고 사회 활동을 은퇴한 뒤부터는 그토록 좋아하던 축구를 원 없이 보고 있다. “여기 뒤에 효창공원에 가면 노인네들이 많아. 매일 하는 거라고는 장기를 두는 게 다야. 이렇게 운동장에 앉아서 축구를 보는 게 장기나 두고 있는 거 보다는 훨씬 재밌잖아. 그런데 이거 싫어하는 사람들은 돈 주고 보라고 해도 안 봐.”

서울 공덕동에 사는 안성우 옹은 매달 효창운동장 1층 안내소에서 한 달 치 경기 일정을 받아간다. 인터넷을 다루기 어려운 어르신들은 이렇게 프린트된 일정을 통해 경기를 확인한다. 어르신에게 효창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축구는 은퇴 후 삶의 재미다. “여기 앉아 있으면 뭐가 좋냐고? 그냥 보는 거지. 돈도 안 내고 시간도 잘 가고 안 볼 이유가 없잖아. 하루에 경기를 많이 하는 날은 6경기씩 하기도 해. 그러면 앉아서 내내 경기를 보다가 시원치 않으면 그냥 집에 가. 이제는 경기 일정만 딱 봐도 재미있을 경기를 집을 수 있어. 아무래도 고등학교 애들 경기가 박진감은 제일 있지. 이번 주 금요일에도 여자축구를 여기서 또 하거든. 서울시청하고 저기 뭐야 그 어디더라. 상무 팀. 그 팀하고 해. 금요일에 또 와야지.” 안성우 옹은 운동 삼아 집에서 효창운동장까지 걸어 온다.

이런 어르신들이 꽤 많다. 이날도 50여 명 넘는 어르신이 경기장에 앉아 저마다의 축구를 즐겼다. 진지하게 전술을 분석하는 어르신도 있었고 70대 어르신에게 “막걸리 좀 더 사오라”며 심부름을 시키는 80대 어르신도 있었다. 조직적인 단체는 아니지만 같은 취미를 공유하면서 정보도 얻는다. 안성우 옹도 마찬가지였다. “광팬들은 지방이고 뭐고 다 쫓아다녀. 아니 얼마 전에는 노인네들끼리 부산까지 축구를 보러도 갔다니까. 나는 목동경기장에 야구장이 있는 건 알았는데 축구장도 붙어있는 건 몰랐거든. 그런데 여기 한 노인네가 목동축구장에서도 경기가 있다고 알려줘서 또 부리나케 목동도 가봤지. 이름은 몰라도 얼굴만 아는 노인네들하고 여기 오면 매일 만나.” 어르신들에게 축구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최고의 콘텐츠였다.

원로 축구인 박경화(맨 왼쪽) 옹은 경기가 열릴 때마다 효창운동장을 찾는다. ⓒ스포츠니어스

어르신들에게 효창과 축구는 추억이다

효창운동장에 앉아 하루에 많게는 6경기씩 지켜보는 어르신들은 한국 축구의 산증인이자 전문가였다. 안성우 옹은 효창운동장을 지을 때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가 1959년이었어. 이승만 박사가 여기를 싹 치우고 경기장을 지었지. 그때 나는 군대에 가 있었어. 그리고 1961년 10월에 개장을 한 거야. 주차장까지 합치면 12,000천 평이나 돼. 우리나라 축구 전용경기장은 여기가 최초야. 서울운동장(지금은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빼고는 서울에서 축구를 할 데가 여기밖에 없었어. 그런데 서울운동장은 종합경기장이었거든. 효창운동장은 축구를 위한 최고의 시설이었지.” 사실과는 아주 약간의 잘못된 정보가 있었다. 개장 경기는 1961년이 아니라 1960년이었고 규모는 16,000평 정도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할까. 어르신들은 효창운동장에서 추억을 곱씹는다.

“예전에 여기에서 국제경기를 하면 난리가 났지. 경기장이 아주 꽉 찼어. 내가 여기 처음 온 건 군에서 제대하고 1964년도였을 거야. 그때는 인조잔디도 없이 그냥 흙바닥이었다고. 비 오는 날이면 선수들 유니폼에 흙탕물이 튀어서 알아볼 수도 없었어. 인조잔디도 1983년도인가 그땐 깐 거야. 1960년대에는 여기가 어마어마하게 좋은 줄 알았는데 지금은 여기가 경기장 중에 제일 거지야. 예전엔 어마어마했던 경기장이었는데 지금은 뭐 조금 변한 정도가 아니지.” 추억에 젖은 안성우 옹은 서울시청과 이천대교 선수들이 슈팅을 날릴 때마다 몸이 들썩거렸다. 어르신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지는 편을 응원해. 이기는 편은 응원 안 해. 그리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도 보고 그래. 내가 알아 뭘해. 그냥 재미있으면 되는 거지.”

또 다른 한 무리의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별 대화 없이 경기에만 집중해 있는 어르신 한 명이 있었다. 박민구(81세) 옹이었다. 다가가 이유를 물었더니 한참을 생각하다 어르신이 입을 열었다. “중학교 때까지 축구선수를 했어. 그런데 그때 6.25 전쟁이 나고 피난통에 축구를 그만뒀지. 아마 집안 환경이 좋지 않아서 전쟁이 안 났어도 축구선수를 계속하지는 못했을 거야. 그런데 이렇게 지금도 축구를 보고 있으면 그때 생각이 많이 나. 나도 이런 데서 한 번은 뛰어볼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한이라고. 경기하는 애들 보면 우리 손녀 같기도 하고 손자 같기도 해서 즐겁기도 해. 여기 앉아있으면 생각이 많아져. 나이 먹고 추하게 술 먹으면서 ‘꼬장’이나 피우면 뭐해. 축구 보면서 점잖게 놀아야지.”

“여기 노인네들 축구 참 좋아해”

박민구 옹도 중고등학교, 대학교, 여자축구를 가릴 것 없이 효창운동장에서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꼬박꼬박 이곳을 찾는다. 그러면서 한 가지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했다. “원래 여기에 노인네들이 더 많았어. 그런데 한해 두해 지날수록 자꾸 줄어들어. 며칠 안 보이다가 소식 들어보면 저세상 사람이 됐다는 거야. 그냥 여기에서 만나면 다 친구처럼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던 사람들이 하나씩 떠나니까 그게 참 안타까워.” 어르신들에게 효창운동장은 추억을 곱씹는 곳이기도 했지만 즐길거리가 부족한 이들이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박민구 옹은 이렇게 말했다. “자식들 다 키워 놓고 보니 벌써 노인네가 됐더라고. 애들 키우느라 모아놓은 것도 없어. 이 나이에 돈 안 드는 취미가 뭐가 있겠어. 여기 앉아서 축구나 보는 거지.”

또 다른 한 무리의 어르신들은 경기 내내 활발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 한 어르신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니 거짓말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차범근이 스승이야.” 어딘지 익숙한 얼굴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혹시 박경호 선생님이시냐”고 물으니 어르신이 이렇게 말했다. “박경호는 우리 형이고 나는 그 동생 박경화야.” 한국 축구 여자대표팀 초대 감독을 지냈고 건국대를 대학 무대 정상으로 이끌기도 했던 축구 원로 박경화(77세) 옹이었다. 어르신 역시 한 무리의 다른 어르신들과 어울려 WK리그에 몰두해 있었다. 이미 축구계에서 은퇴한지 오래된 박경화 옹은 축구인의 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축구팬으로 돌아가 매일 효창운동장을 찾는다고 했다. “30년 전 여자축구가 처음 들어올 때보다 정말 많이 발전했어. 여자들이 이렇게 잘하는 거 보면 용치.”

박경화 옹은 효창운동장에서 엄청난 역사를 이룬 축구인이었다. 1960년 제2회 아시안컵 우승을 바로 이 효창운동장에서 일궈냈기 때문이다. 어르신이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뒤로 한국이 이 대회에서 지금까지도 우승컵을 들어 올린 적이 없을 정도로 이 기록은 여전히 대단하다. “나는 지금도 그때 우승 메달을 가끔 걸어봐. 그때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와서 저쪽 문이 무너졌어. 여기만 오면 그때 생각이 많이 나. 내가 감독이 돼 건대 축구를 우승시켰는데 그래서 거기에서 40년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 매일 집에서 왕십리까지 갔다가 거기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여기까지 와. 쉬엄쉬엄 다니는 거지. 경기만 있으면 다른 일 다 제쳐두고 여기로 와. 여기 오면 노인네들 다 만나거든. 예전에는 선수하고 팬으로 만났던 사이인데 지금은 그냥 다 친구처럼 같이 축구 보는 거야. 여기 노인네들 축구 참 좋아해.”

원로 축구인 박경화(맨 왼쪽) 옹은 경기가 열릴 때마다 효창운동장을 찾는다. ⓒ스포츠니어스

어르신들은 내일 또 그곳에 모일 것이다

박경화 옹도 박민구 옹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하나 둘 떠나는 친구들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원로 축구인들에게 부탁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축구를 했던 사람들은 이렇게라도 경기장에 계속 나와 줘야 돼. 그게 후배들한테 힘을 실어주는 거지. 그런데 자주 나왔던 원로 축구인들이 하나 둘씩 자꾸만 돌아가셔서 그게 안타까워. 우리 형님도 이제는 거동이 불편해서 집밖엘 다니지 못해. 나도 건강할 때 더 많이 다니려고 해. 이 효창운동장이 나한테는 집 같은 곳이거든. 우리 축구를 좋아하는 노인네들한테는 효창운동장에 대한 추억 하나씩은 다 있을 거야.” 비록 이날 경기는 득점 없이 0-0으로 마무리됐지만 어르신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하나둘 자리를 떴다. 그리고는 누가 약속한 것도 아닌데 경기가 열리는 내일(15일) 오후 4시 또 경기가 열리는 효창운동장으로 모여들 것이다.

언젠가부터 젊은 세대와 노년층 사이에는 갈등이 골이 생겼다. 정치색으로 나눠졌고 소통은 끊겼다. 어느 순간부터 젊은층과 노년층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존경은 사라졌고 조롱만이 남았다. 하지만 나는 축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지하철을 타고 축구장으로 향하는 이 어르신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효창운동장을 꾸준히 찾는 어르신들에게 축구는 추억이자 친구이고 놀이다. 젊은 팬들이 함성을 지르고 방방 뛰며 즐기는 축구, 그리고 멋진 유럽 응원 문화를 동경하는 축구가 트렌드처럼 자리 잡고 있지만 이렇게 어르신들이 즐기는 축구에 대해서도 한 번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효창운동장에 가면 1960년 아시안컵 우승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차범근의 꼬마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한국 축구 대부’ 박종환 감독을 “종환이 그 자식”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만날 수 있다. 70대 어르신에게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는 80대 어르신도 만날 수 있다. 효창운동장을 찾는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이 축구를 더 오래 즐겼으면 한다. 그리고 이 어르신들을 위해 한국 축구가 조금 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으면 한다. 우리나라가 고령층 빈곤율은 OECD에서 가장 높고 어르신들이 가질 수 있는 취미도 별로 없다. 효창운동장에 앉아 하루 종일 축구를 보는 어르신들과 마주하니 축구인들이 이 어르신들을 위해 무언가 돌려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르신들도 축구팬이고 우리도 언젠간 늙으니까. 그리고 그게 국민 스포츠인 축구가 해야 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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