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이란이 훨씬 더 강하다. ⓒ이란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실망스럽다. FIFA가 주관하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대한민국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카타르에 2-3으로 패하며 월드컵 본선 진출이 불투명해졌다. 경기가 끝난 새벽부터 언론은 뜨겁다. 대부분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을 논하거나 선수들의 부진을 탓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성적표의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대한축구협회(이하 협회)는 이르면 15일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기술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명목은 카타르전 평가이지만 정황상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여론은 기술위원회에 집중될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과 함께 차기 사령탑에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책임을 덮어씌우고 자신들은 책임론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또다시 협회는 자신들의 지위와 자리를 지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이란축구협회

슈틸리케는 할 만큼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의 능력을 다했다. 여론을 받아들여 K리그 선수들을 다수 선발했으나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전술적으로도 기성용을 전진배치 했고 점유율 축구보다 상대 진영에 공을 보내려 노력했다. 황희찬과 기성용은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는 자신이 경질 위기에 있음을 정확히 알았다. 선수들은 자신들을 뽑아준 감독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수들은 초조했다. 그 초조함을 잡아줬어야 할 감독조차 초조했다. '도하 참사'는 그래서 일어났다. 그 결과로 그는 경질될 것이다. 그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책임을 인정하고 경질 결정에 따르는 것이다.

해피엔딩은 감독이 바뀌고, 선수들이 호성적을 거둬 월드컵 본선에서도 인상적인 경기력을 펼치는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본선 진출에 좌절할 땐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미 물러난 슈틸리케? 곧 선임될 차기 감독? 그것도 아니라면 이용수 기술위원장? 정말 그들만 바뀌면 한국 축구가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승승장구할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협회의 총알받이다

비판의 화살은 협회로 향해야 한다. 협회는 지금까지 성적 부진의 원인을 모두 감독에게 돌렸다. 감독만으로 부족했을 때는 또 다른 얼굴마담을 해고했다. 차범근 감독은 월드컵 대회 중에 경질됐다. 조광래 감독은 레바논 쇼크로 황급히 경질됐다. 협회가 자신 있게 앉힌 홍명보 감독 또한 여론에 못 이겨 경질했다. 홍명보 감독으로는 부족했는지 당시 협회 부회장이었던 허정무도 해고했다. 이번엔 슈틸리케 감독과 더불어 이용수 기술위원장까지 내쫓을 기세다.

그렇게 한국 축구가 부진할 때마다 그들은 감독을 바꿨다. 대표팀의 차기 감독은 늘 이슈가 됐다. K리그 겨울과 여름 이적 시장보다 뜨거웠다. "이번 감독은 괜찮을 거야." "이번 감독은 믿고 기다려 보자." 불만을 잠시 잠재우고, 불만이 일어나면 다시 감독을 바꿨다. 그래서 대표팀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 취급을 당했다. 뚜렷한 철학 없이 간판만 바꾼 한국 축구는 그렇게 색깔을 잃었다.

협회는 이번 '도하 참사'의 비난 여론도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하면서 잠재우려고 할 것이다. 선임 과정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이용수 기술위원장도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다. 새로운 총알받이를 구하려고 애쓸 것이다. 최근 한 매체를 통해 들은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을 보면 정몽규 회장마저 그들의 방패일 가능성도 있다. 안 의원은 협회를 아예 '현대축구협회'라고 비판했다. 그는 협회를 "최순실마저 뚫지 못한 폐쇄적인 조직"이라고 표현하며 "옷만 정몽준에서 정몽규로 바꿔 입었다. '현대가'들끼리 나눠 먹고 있다. 비판받아야 한다"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감독-기술위-협회장 백3 수비력은 이미 월드컵 우승국 수준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국인 독일도 이 센터백 라인은 못 뚫는다.

ⓒ이란축구협회

월드컵은 협회의 수익사업일 뿐이다

협회가 철학 위에 다시 세워져야 한다. 어떤 축구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대한민국 축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 대표팀을 응원하는 서포터의 이름이 왜 '붉은 악마'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협회가 점유율 축구를 한국 축구의 철학으로 삼겠다면 국내 축구단은 점유율로 승리하기 위한 축구를 고민해야 한다. 후방에서 볼을 점유하며 역습을 노릴지, 전방에서 빠른 템포로 볼을 점유하며 상대 수비진을 어지럽힐지는 각 구단에게 달려있다. 협회는 각 구단의 고민과 실험의 장을 국내에 마련해야 하며 협회의 철학을 이어갈 수 있는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

뚜렷한 철학이 없는 지금의 협회는 그저 현대 그룹의 수익사업일 뿐이다. 그렇게 축구판은 정치판이 된다. 현대 그룹의 수익사업에 다들 한 발씩 들여놓는 것이다. 그들의 최대 수익사업은 단연 월드컵이다. 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해야 한다. 그들에게 감독은 도박이다. '대박'이면 큰돈을 벌고 '쪽박'이면 해고한다. 정몽규 회장이 이란전 패배 이후 슈틸리케 감독의 자리를 지지한 이유는 그가 AFC 아시안컵에서 '대박'을 쳤기 때문이다.

국내 한 매체는 협회와 FCN이라는 스포츠마케팅 회사에 유착 관계가 존재하며 그 중심인물은 '현대가 거물'인 채수삼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즈 회장이라고 폭로했다. 채 회장은 2016년 8월 FCN의 사내이사로 등장했다. 그리고 FCN은 협회의 거대한 계약을 독점했다. 대표팀이 선전하면 가장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조직이다. 월드컵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수익사업일지 짐작 가는 부분이다.

협회, 이제 대한민국의 '축구'를 마주해야 할 때

협회는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버리고 한국 축구와 마주해야 한다. 늘 그렇듯 가장 중요한 것은 '축구'다. 대한민국 축구가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말로만 K리그, 유소년 정책을 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K리그를 운영할 것인지 프로축구연맹과 토론해야 하며 '어떻게' 유소년을 키울 것인지 지도자들과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 대표팀에 차출된 선수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도록 도와야 한다.

협회가 진지하게 축구를 마주해야 그들이 '현대의 사조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국가대표팀만 우뚝 솟아있는 역피라미드가 깨지기 시작할 것이다. 나중에 협회장 얼굴만 '야권'대표로 바꿔도 소용없다. 이번 일로 부랴부랴 또 새로운 총알받이만 찾는 자신들의 무능함을 깨닫고 대대적인 쇄신을 감행해야 한다.

intaekd@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