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유나이티드 팬들은 K3리그에서 가장 열정적이기로 유명했다. ⓒ서울유나이티드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이상한 일이 있었다. 팀은 없는데 서포터스가 먼저 생겨났다. 이 팬들은 유니폼을 제작해 입고 뭉쳤지만 응원할 팀은 여전히 없었다. 그렇게 2001년 결성된 단체는 무려 6년이라는 세월 동안 팀 없이 서포터스만 존재해야 했다. 그리고 2007년 마침내 그들이 염원하던 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서울유나이티드였다. 안양에서 연고를 옮긴 FC서울이 아니라 진정한 서울시민들이 주인이 되는 팀을 그렸던 사람들은 서울유나이티드의 창단에 큰 관심을 가졌다. 비록 그들의 무대는 K3리그였지만 어디에서 뛰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침내 팀이 생겼고 금방 팬이 늘어 FC서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서울 연고 프로팀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첫 시즌부터 대박을 쳤다. 잠실종합운동장에는 서포터스만 무려 500명 가까이 모일 정도로 엄청난 열기를 자랑했다. 다른 K3리그 팀이 팬 한 명 없이 경기를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실력도 뛰어났다. 아마리그 최강이라 불리는 진서울FC와 굿프랜드FC가 하나로 뭉쳐 인상적인 경기력을 뽐냈다. 서울유나이티드는 1992년 K리그 득점왕 출신 임근재 감독을 모셔왔고 과거 K리그를 주름 잡았던 우제원과 제용삼 등을 영입해 원년 K3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다. K리그 구단도 받지 못했던 나이키의 후원을 받았고 타이틀 스폰서는 KT였을 정도로 미래는 밝아보였다. 서울유나이티드는 비록 K3리그에 있었지만 관심도와 주목도는 여느 K리그 팀 못지 않았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K리그를 점령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서울유나이티드는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그 많던 팬들은 다 사라졌고 잠실종합운동장을 떠나 서울시내 여러 경기장을 전전하고 있다. 한 경기에 500명 가까이 모이던 서포터스는 이제 많아봐야 홈 경기에 10명을 채우지 못할 정도가 됐다. 2007년 그들이 야심찬 꿈을 품고 창단했을 때 10년 뒤의 모습이 이렇게 초라하리라고 예상했던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잠실종합운동장에는 새로운 주인 서울이랜드FC가 나타났다. 원년 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서울유나이티드는 올 시즌 1무 5패 6득점 21실점하며 꼴찌에 머물러 있다. 그것도 10년 전과 다르게 K3리그가 상위(어드밴스 리그)와 하위(베이직 리그)로 나눈 상황에서 하위 그룹 꼴찌다. 진정한 시민구단의 ‘로망’과도 같았던 서울유나이티드는 지금 이런 모습이다.

팬들이 서울유나이티드를 떠난 이유

팬들이 많이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창단 후 3년 동안 응원을 했던 한 팬은 K3리그의 현실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거창했다. 당장 서울유나이티드가 바르셀로나 같은 팀이 되는 걸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해 한 해 뭔가 더 성장해서 쑥쑥 클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조기축구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특히나 원정경기 응원을 가보면 열악한 시설에 한숨부터 푹푹 나왔다. 이상은 높았는데 현실은 처참했다.” 결국 이 팬은 신념을 버리고 FC서울을 응원할 수는 없어 지금은 해외축구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장밋빛 미래를 기대했다가 K3리그의 열악한 현실을 알게 된 이들은 창단 후 금방 서포터스에서 빠져 나갔다. 현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울유나이티드는 골수 팬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그 팬들 중 상당수도 2014년 지지철회를 선언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승부조작 때문이었다. 2008년 서포터스 중 일부는 서울유나이티드에서 승부조작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고 구단에 철저한 조사와 책임을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이게 알려지면 구단이 해체될 수도 있으니 함구해 달라”는 구단의 말을 들었다. 팀 창단 한참 전인 2001년부터 서울시내에서 창단 촉구 전단지를 돌리며 누구보다 열정을 다했던 팬들로서는 승부조작 사실이 퍼져 어렵게 창단된 구단이 해체되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 실제로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연루된 서울파발FC는 2009년 해체되기도 했다. 팬들은 이 사실을 세상 밖으로 내놓지 않고 구단을 압박했다.

하지만 서포터스의 요구에 구단의 대처는 미온적이었다. 주주총회에서도 팬들의 의견은 무시됐고 팬들은 혼란을 넘어 분노하기 시작했다. 결국 구단의 자체적인 조사와 처벌을 바랐던 팬들은 2014년 “서울유나이티드가 승부조작을 벌였는데 자체적인 조사는커녕 쉬쉬하고 넘어가고 있다”는 양심선언을 하고 서울유나이티드 지지를 철회했다. 당시 서울유나이티드에는 네 개의 소모임 중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두 개의 소모임이 있었는데 이 두 소모임 중 하나가 아예 지지철회를 선언한 것이다. K3리그의 열악한 현실을 보고 가뜩이나 많은 팬들이 빠져 나간 상황에서 가장 활발히 운영되던 소모임 하나가 빠져나간 빈자리는 컸다. 이들 중 소수는 현재 서울이랜드FC를 응원하고 있고 대부분은 응원하는 팀 없이 경기장을 돌아다닌다. 그 수가 30여 명에 이른다.

지난 2007년 서울유나이티드 팬들은 상대팀 선수와 충돌해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무관중 경기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팬들은 이렇게 경기장 밖에서 응원하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서울유나이티드

그래도 서울유나이티드에 남은 이들

당시 이 소모임에 속해 있다가 지지를 철회한 한 팬은 이렇게 말했다. “승부조작에 대한 구단의 사과나 명확한 대처도 없었다. 무마하려고만 했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프로팀이 되겠다는 의지도 전혀 찾아볼 수 없이 그냥 단장이 지금 위치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 더 많은 투자를 받고 위로 올라갈 생각은 없었다. 아마도 당시 그 사건만 아니었더라면 비전이 없는 걸 알면서도 팀을 떠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서울유나이티드를 떠나 ‘방랑자’가 된 이들은 지금도 모임을 갖는다. 이달 말에는 포항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나 포항스틸러스 경기도 지켜볼 생각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이제 어느 한 팀에 정을 주기가 그렇다. 그냥 한 팀을 응원하기보다는 축구나 즐기려고 한다.” 이들은 서울유나이티드 서포터스에서 이제는 그냥 친목 모임이 됐다.

물론 이 사건 이후 팬들이 다 떠난 건 아니다. 창단 원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유나이티드를 응원하고 있는 한 팬은 이렇게 말했다. “구단의 당시 대처가 미흡했던 건 맞다. 하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당장 돈이 없었고 뛸 선수도 없었다. 몇십만 원의 유혹에 선수들이 흔들릴 정도로 상황이 열악했다.” 그는 서울유나이티드가 단장 혼자만의 팀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인정했다. “사실 말이 좋아 시민구단이지 단장님이 이끄는 구단이다. 독선적인 운영과 개인 구단화도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 구단이 돈이 있고 잘 돌아가면 그 분을 잘라버리면 그만인데 지금 당장 훈련과 경기 진행을 위한 최소한의 인력도 부족하다. 그러면 대안은 있나. 없다. 그리고 내가 다른 팬들이 다 팀을 떠날 때도 지키고 있었던 건 나까지 이 팀에서 손을 떼면 망하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았다.”

누구의 선택이 옳은지 정답은 없지만 서울유나이티드는 이런 깊은 내홍을 겪었다. 여기에 더해 잠실종합운동장을 홈으로 쓰는 K리그 챌린지 서울이랜드의 창단도 서울유나이티드에는 악재였다. 경기장 사용료를 감당할 수 없어 노원 마들스타디움에서 홈 경기를 치르는 서울유나이티드는 ‘떠나는’ 팬들은 많지만 신규 팬 유입이 이뤄질 수 없는 구조가 됐다. 지금도 열정적인 지지를 보내는 팬의 말을 들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1~2년에 새로운 팬이 한 명 정도씩 들어온다. FC서울이 이미 자리를 잡았고 강남에도 서울이랜드라는 대체제가 생겼으니 우리 팀에 새로운 팬이 유입될 여지는 더 줄었다.” FC서울과 서울이랜드 사이에서 서울유나이티드는 애매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거대 기업 둘이 버티는 서울에서 시민구단이 근근이 버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2007년 서울유나이티드 팬들은 상대팀 선수와 충돌해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무관중 경기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팬들은 이렇게 경기장 밖에서 응원하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서울유나이티드

직원들 자비 털어 운영되는 팀

서울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선수들도 불만은 많다. 팀을 떠난 한 선수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며 성토했다. “그 팀에 들어가기 전에는 ‘올해 스폰서가 잡혀 훈련수당만 한 달에 30만 원을 주고 승리하면 얼마를 더 주겠다’는 프런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경기에 나가고 하면 한 달에 최소 100만 원은 받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하니 계속 수당 지급이 미뤄졌다. ‘스폰서와 아직 계약을 못했으니 한 달만 기다려 달라’는 말이 계속 이어졌고 결국 한 푼도 받지 못하고 팀을 나왔다. 아무리 열악한 K3리그 구단이라도 교통비 정도는 챙겨주려고 하는데 지금도 서울유나이티드에 있는 선수들은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유나이티드는 일주일에 홈 경기장인 마들스타디움에서 딱 한 번밖에 훈련을 하지 못했고 남양주나 효창 등을 전전해야 했다. 그것도 훈련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매일 달랐다.

서울유나이티드에 속했던 다른 한 선수도 구단의 불합리한 처사에 대해 토로했다. “팀 동료 중에 브라질리그에서 제안이 와 브라질로 가고 싶어하는 선수가 있었다. 그런데 구단 측이 ‘안 된다. 그렇게 나가면 이적 동의서를 써주지 않겠다’고 했다. 사실 우리는 돈도 못 받았고 계약서도 쓴 적이 없다. 그냥 시즌 시작 전에 K3리그에 선수 등록을 한 게 전부다. 하지만 선수들이 뭐 그런 계약 관계를 아나. 구단에서 무섭게 말하니 갈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선수는 이후 해외에 진출했다. 선수 교체는 한 시즌이 지나고 못 버티고 나가는 선수들 뿐인데 그렇게 대부분이 물갈이된다. 서울유나이티드에 희망을 품고 왔다가 실망하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를 듣고 “너무 센 발언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 팀은 정신을 좀 차려야 된다.”

서울유나이티드 측도 할 말은 있었다. 서울유나이티드 홍기홍 팀장은 구단의 열악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 10명 정도가 자비를 털어 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나도 오늘 지인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왔다. 프런트들이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우리 돈을 쓰면서 팀을 운영 중이다. 개인 사업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 회사에 다니시는 분들도 있다.” 팬과 선수들의 불만은 높아져 가지만 구단 운영 역시 쉽지 않다. 대기업이 투자하는 다른 서울 구단과는 아예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그래도 10년 간 운영한 서울유나이티드라는 브랜드 때문에 지방 몇 개 도시에서 연고이전에 대해 문의하기도 했지만 구단 측은 이를 모두 거절했다. 그러면 이 팀의 존재 이유 자체가 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서울유나이티드는 어떻게 해서든 서울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난 2007년 서울유나이티드 팬들은 상대팀 선수와 충돌해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무관중 경기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팬들은 이렇게 경기장 밖에서 응원하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서울유나이티드

그들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가장 큰 문제는 이미 강북에는 FC서울이 자리를 잡았고 강남도 서울이랜드가 차지했다는 점이다. 홍기홍 팀장은 “이 두 팀은 서울시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면서 “이미 서울에 두 팀이나 있는데 시에서 우리를 따로 지원할 명분이 없다. 갑자기 내일 당장 우리를 후원하는 스폰서가 생기면 프로화를 진행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계속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 지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답이 없는데 그래도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한다. 언제 올지 모를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홈 경기장에 대한 고민도 크다. “처음 출발을 할 때 서울시 전체와 강남을 커버할 게 아니라 작은 ‘구’를 타켓으로 했어야 한다. 하지만 강남에 있는 구들은 돈은 많지만 운동장이 없고 강북 쪽은 인프라는 좋은데 예산이 적다. 그런데 예를 들어 서초구에서 지원을 받고 다른 구에서 경기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10년 전 서울시 전체와 강남을 공략하려고 했던 서울유나이티드는 이제 홈 경기장 마들스타디움이 위치한 노원구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려고 하지만 아직 노원구와도 구체적인 지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 그럼에도 서울유나이티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동북 4구(노원, 성북, 도봉, 강북)을 공략하는 수밖에 없다. “동남권은 서울이랜드가 있고 프로농구 팀도 있다. 프로야구 팀도 두 개나 있다. 서남권에는 프로야구 넥센이 있고 서북권에는 FC서울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250만 인구가 있는 동북권에는 프로스포츠가 전무하다. 이 정도 인구 시장만 가지고도 K리그 챌린지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팀들이 있는데 우리도 이 동북권 쪽을 공략하고 싶다.” 홍기홍 팀장은 서울유나이티드의 생존을 이 지역에 걸었다. 이미 FC서울과 서울이랜드가 뿌리를 내린 서울시에서 창단 10년을 맞은 서울유나이티드는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서울유나이티드가 부천FC처럼 되길 바라는 이들도 많다. 부천SK 연고이전 이후 부천시민들은 부천FC를 만들어 현재는 K리그 챌린지에 참가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유나이티드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홍기홍 팀장은 서울과 부천의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우리도 부천이 프로화를 준비할 때 같이 프로화에 도전했다. 하지만 부천은 정말 황금 비율이 맞아 들었다. 팬들의 열기와 지자체의 의지, 그리고 시장의 철학 등이 딱 맞아 떨어졌다. 해냈으니 쉬워 보이는 거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시는 부천처럼 지자체의 의지나 시장의 철학 등이 있지 않다. 이미 서울에 팀이 많은데 서울시에서는 더 팀이 생겨나야 할 이유도 없고 K3리그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이 일을 정치적으로 푸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서울시에 서울유나이티드는 그리 매력적인 콘텐츠가 아니다.

지난 2007년 서울유나이티드 팬들은 상대팀 선수와 충돌해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무관중 경기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팬들은 이렇게 경기장 밖에서 응원하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서울유나이티드

'창단 10년' 서울유나이티드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최근 들어 창단한 시흥시민축구단이나 양평시민축구단 등은 별 무리 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에서도 이제는 K3리그에 신생팀이 생길 때마다 “얼마의 돈이 필요하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준다.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신생팀은 지자체에서 구단 운영 예산을 준비해 집행하기 때문에 실패가 거의 없다. 그러면서 지자체에서 이렇게 지원을 받는 구단과 그렇지 못한 구단의 차이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서울유나이티드는 지자체의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이렇게 근근이 버티고 있다.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자비를 털고 팀을 운영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10년을 버틸 수 있었지 그게 아니라면 벌써 공중분해 되도 이상할 게 전혀 없는 팀이다. 지금 서울유나이티드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버티고 버티며 후원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지난 10년보다 앞으로의 10년이 더 힘들 수도 있다.

여전히 서울유나이티드를 응원하고 있는 한 팬은 이렇게 말했다. 쉽지는 않지만 그의 말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우리 팬들이 떠난 건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떠난 거다. ‘내년엔 더 좋아지겠지. 내년엔 투자를 받겠지. 내년엔 K리그에 가겠지.’ 그러면 더 실망하게 되고 버티지 못한다. 언젠간 K리그에 가 멋진 팀이 되는 모습을 꿈꾸지만 당장 한두 해 사이에 우리 팀이 확 좋아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냥 매 경기 즐길 뿐이다. 설기현이 뛰던 레딩도 120년 만에 승격하지 않았나. 120년 전에는 그 팀도 보잘 것 없는 팀이었을 텐데 결국은 누군가 응원을 멈추지 않아 120년 뒤에 좋은 날이 왔다. 시간이 얼마가 걸려도 좋으니 우리도 그런 날이 오길 꿈꾼다. 10년이 아니라 그 이상 걸려도 괜찮다.” 10년 전 서울유나이티드는 축구팬의 ‘로망’이었지만 그들의 10년 후는 힘겹다. 과연 경기장을 가득 채웠던 10년 전 서울유나이티드의 모습은 재연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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