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유나이티드와 우라와레즈의 경기에서는 결국 난투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하루가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화가 난다. 지난 5월 31일 열린 제주유나이티드와 우라와레즈의 2017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은 난투극으로 얼룩졌다. 경기 막판 양 팀 선수들이 충돌했고 경기가 끝난 뒤에도 그라운드에서는 몸싸움이 일어났다. 나는 경기 종료 직후 제주 선수들과 통화하며 정황을 취재했고 이를 기사로 보도하기도 했다. 우라와가 앞서게 되자 경기 도중 우라와 선수는 제주 선수들을 향해 “3-0”이라고 외치며 도발했고 경기가 끝난 뒤에도 다른 우라와 선수가 제주 벤치 쪽으로 조롱하며 또 다시 “3-0”이라고 도발한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제주 선수들은 화를 참지 못하고 우라와 선수들에게 거칠게 항의하다 몸싸움까지 일어났다. 우라와 마키노는 도발을 한 뒤 제주 선수들이 뒤쫓자 잽싸게 라커로 도망가 버렸고 그라운드에 남은 제주 선수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수만 명의 우라와 관중은 제주 선수들을 향해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경기 종료 후 나와 통화한 한 제주 선수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분해서 잠을 못 자겠어요.” 그렇게 제주 선수들은 수만 명이 모인 적지에서 조롱까지 당하며 외로운 싸움을 펼쳤다.

기적의 논리와 ‘선비 코스프레’

일단 짚고 넘어갈 제주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경기력으로 우라와를 눌러버렸으면 이런 도발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2-0으로 승리하며 절대적인 우위를 점했던 제주는 결국 원정에서 세 골을 내주며 역전 당하고 말았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몸싸움 상황에서 제주 백업요원 백동규가 벤치를 벗어나 그라운드까지 뛰어가 상대 선수를 가격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백동규에게 맞은 선수는 싸움에 가담했던 이가 아니라 말리던 이였다. 이 두 가지는 제주가 여러 번 반성하고 곱씹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분위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선비’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아주 근엄하고 중립적인 척 “제주가 골을 넣지 못하고 원인 제공을 했으니 당해도 할 말이 없다”는 이야기가 슬슬 나온다. 여기에 K리그 비하까지 슬쩍 끼워 넣는다. 기적의 논리다. 경기 도중 상대를 향해 “3-0”이라며 도발하고 상대 벤치를 보고 괴성을 지르면서 세리머니를 하며 조롱한 걸 제주의 부족했던 경기력과 연결 지어 퉁치는 건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나 역시 제주의 경기력이 부족했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우라와의 페어플레이 정신을 망각한 비매너 플레이는 지탄받아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인들이 더 ‘선비’가 돼 대단히 중립적인 척 하고 있다. 언론의 자세와 포털 사이트의 반응 등을 보면 이게 과연 한국인지 어딘지 모를 정도다. 제주가 원인 제공을 했으니 어쩔 수가 없다? 돈이 없는 친구에게 “내 연봉은 1억이야”라며 도발해 보라. ‘그래. 내가 돈이 없어서 원인 제공을 한 거니까 연봉 1억 원인 친구의 말도 어쩔 수 없어’라고 참을 수 없다면 ‘선비 코스프레’ 하지 말자. 페어플레이 정신을 잊은 팀에는 당연히 비판을 퍼부어야 한다. 그게 K리그 구단의 상대였다면, 더군다나 일본 클럽이었다면 비판이 더 거세야 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닐까. K리그를 폄하하려고 우라와 편을 드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운 이들이 참 많다.

도발을 한 뒤 재빨리 라커룸으로 도망가는 우라와의 마키노. ⓒ프로축구연맹

K리그 폄하와 '선비질' 사이

하지만 우리의 반응은 너무 침착하다. 일본과의 경기에서 치욕적인 도발을 당하고 싸움까지 났는데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에 조차 이 사건은 올라오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정도로 우리는 축구에 관심이 없다. 그저 대표팀 경기에만 관심을 있을 뿐 축구에는 관심이 없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일본 극우 클럽에 대해 실컷 욕하는 게 애국심이라면 애국심 아닌가. 적지에서 한국 선수들이 온갖 수모를 당하고 수만 명의 야유를 들어도 우리는 ‘선비’다. “제주가 원인 제공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K리그가 투자 안 하더니 꼴 좋다.” 이게 말이나 되나. 우리가 해야 할 건 ‘선비질’이 아니라 우라와가 얼마나 비열하게 도발했느냐를 알리는 것이다.

심지어 인터넷 유사 언론에서는 ‘국제 망신’이라는 제목을 뽑기도 했다. 어떤 부분이 망신인가. 망신이라면 원정에서 부족한 경기력으로 진 게 망신이지만 이번 난투극은 ‘국제 망신’이 아니다. 전후사정 다 빼고 그렇게 국제경기에서 난투극이 벌어져 제주가 한국 망신을 시켰다고 몰아가지 말라. 대표팀 한일전만 하면 애국가를 목 놓아 부르며 단재 신채호 선생의 명언을 걸어놓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우리는 일본 극우 클럽이 한국 클럽을 조롱했는데 왜 여기에는 애국심도 없이 ‘선비질’만 해댄다. 일본대사관 앞 시위는 오버여도 적어도 인터넷상에서는 우라와에 대한 비판 여론이 폭주해야 하는데 너무 양반이다.

나는 프로 경기에 내셔널리즘이 들어간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제주가 한국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나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라와는 그렇지 않다. 우라와는 일본을 대표하는 극우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전범 기업인 미쯔비시를 모기업으로 하고 있는 우라와는 선수들도 큰 문제다. 최근 우라와 수비수 모리와키 료타는 경기 도중 가시마의 외국인 선수 레오 실바에게 “입 냄새가 난다”고 폭언을 퍼부었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이었다. 이후 인종차별 논란이 거세지면서 모리와키는 사과했지만 실바는 계속 분노했다. 실바는 “징계가 내려진 뒤 나중에 사과하는 건 무의미하다. 모리와키와는 더 이상 깊이 엮이고 싶지 않다”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도발을 한 뒤 재빨리 라커룸으로 도망가는 우라와의 마키노. ⓒ프로축구연맹

전범 기업이 후원하는 극우 성향의 우라와

팬들은 더하다. 2014년에는 응원석 출입구에 일장기와 함께 영어로 '일본인 외 사절(Japanese Only)'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당시 상대팀 공격수였던 재일교포 3세 이충성을 향한 차별 문구였다. 2015년에는 감바오사카 패트릭을 향해 한 팬이 “흑인은 죽으라”며 SNS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패트릭은 큰 충격을 받았다. “태어나서 인종차별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더군다나 일본에서 이런 인종차별을 받게 될 줄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우라와 팬들이 포항 원정을 와 골키퍼 신화용에게 침을 뱉기도 했다. 신화용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구나’ 팬 수준을 실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라와의 모든 선수와 모든 팬이 그런 건 아니지만 우라와는 기본적인 태생부터 성향까지도 저질 구단이다. 태생부터 전범 기업을 모태로 하고 있는 그들은 선수와 팬의 극우주의 성향이 짙다. 하지만 그럼에도 평균 관중이 4만여 명에 달한다. 평균 관중 2위인 팀보다도 1만여 명이 더 많을 정도로 압도적인 인기다. 그러니 당연히 우라와와의 경기는 내셔널리즘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아니 이건 내셔널리즘이라기보다는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다. 전범기업이 후원하는 팀에서 선수와 팬 모두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 없이 한다면 상대는 죽기 살기의 전쟁을 펼쳐야 한다. 정상이 비정상을 이겨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저질 구단에 존중 따위는 없다.

그런데 우리 ‘선비님’들은 이걸 여전히 아주 근업하고 중립적인 자세로 본다. 이번에 제주가 보여준 실망스러운 경기력은 논외로 하자. 우라와 선수들의 저열한 도발 끝에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는데 여기에서 무슨 중립을 찾나. 이건 우라와의 잘못된 행동을 가감 없이 비판해야 할 문제다. 심지어 우라와 한 팬은 이번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 안에서 전범기를 펼치며 한국을 혐오하는 해시태그까지 걸고 도발했다. 그래도 “제주가 경기력이 좋지 않아 원인 제공을 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할 건가. K리그의 경기력을 논할 건가. 이건 경기력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을 가지고 싸워야 하는 문제다.

도발을 한 뒤 재빨리 라커룸으로 도망가는 우라와의 마키노. ⓒ프로축구연맹

여론에서 밀리면 그게 곧 사실이 된다

폭력적인 분위기를 조장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뭐가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는 알아야 한다. 극우세력이 득실대는 수만 명의 경기장에서 제주 선수들은 외롭게 싸우면서 온갖 조롱을 당했다. 화는 이럴 때 내야 한다는 거다. 제주가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패한 것에 화내기 보다는 우라와의 무개념 행동에 화를 내야 한다. 나는 여기에 더해 이렇게 일본에서 한국 선수들이 난투극에 휘말렸는데도 아주 평온하게 돌아가는 세상에도 화가 난다. 일본한테는 가위바위보도 이겨야 한다고 하면서 애국심을 불태우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나. ‘전.범.기.업.’ 우라와가 이 짓을 하는데도 말이다.

지금껏 K리그 선수들이 단체로 이유 없이 폭력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걸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정도로 몰상식한 K리그 팀은 없다고 자부한다. 한두 명이 종종 폭력적인 행위를 한 적은 있어도 조직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만큼 우리의 수준이 낮지 않다. 우라와전의 폭력 사태는 안타깝고 절대 축구 경기 도중에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제주 선수들이 물러서지 않아 잘했다고 하고 싶다. 적지에서 제주 선수들이 그런 도발을 당하고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고개 숙이고 조용히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면 그게 더 비참한 일이었을 것이다. 경기는 거지 같이 했어도 제주 선수들의 대응은 훌륭했다.

나는 경기 도중 일어난 폭력을 옹호한 적이 지금껏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도할 정도로 분노하고 제주 선수들의 편에 서는 건 그만큼 이 사안이 대중의 관심 밖이기 때문이다. 나라도 과하게 제주 선수들의 편을 들어줘야 할 거 같아서다. 우라와는 수만 명의 관중과 함께 싸웠고 경기 후에도 이 사건으로 들썩이는데 우리는 너무 조용한 걸 넘어 ‘선비’가 넘쳐난다. 여론에서 밀리고 쪽수에서 밀리면 시간이 흐른 뒤 결국 우라와가 정의가 되고 제주는 불의가 된다. 폭력은 절대 옹호할 수 없지만 페어플레이 정신을 망각하고 노골적으로 도발한 선수에 대해서는 때론 아주 거세게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런 분위기를 원한다.

도발을 한 뒤 재빨리 라커룸으로 도망가는 우라와의 마키노. ⓒ프로축구연맹

그들은 전쟁을 하는데 우리는 ‘선비질’을 한다

많이 화가 난다. 그리고 안타깝다. 저쪽 편은 많은데 우리 편은 없는 거 같아서다. 인기 없는 K리그의 한계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서 더 힘이 빠진다. 한 개 소대가 최전선에서 싸우는데 나머지는 그냥 이 전쟁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제주 선수들에게 더 미안해진다. 한 제주 선수는 우라와전이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여기 사이타마는 시내 전체가 이번 경기 포스터로 도배돼 있어요. 정말 엄청난 축구 도시네요.” 그들은 인해전술로 전쟁을 하는데 우리는 ‘선비’들만 넘쳐난다. 이래도 “제주가 원인 제공을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거나 “투자 없는 K리그의 한계”라고 할 건가. 싸울 땐 좀 싸우자. 이 선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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