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웅 씨는 대전시티즌의 열정적인 팬이다. 혼자 아산 원정까지 갈 정도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2003년부터 대전시티즌을 응원한 김선웅(30세) 씨는 늘 그렇듯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설렘이 가득했다. 김선웅 씨는 시즌을 앞두고 기대감이 부푼 마음으로 올 시즌 대전 경기 일정이 나오자 이를 휴대전화에 일일이 다 저장했다. 언제든 경기 일정을 찾아보고 경기장으로 달려가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전의 열정적인 팬이었다. 비록 대전이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됐어도 김선웅 씨의 열정은 계속됐다. 올 시즌 대전이 K리그 챌린지에서 힘을 못 써도 그는 늘 경기장으로 향했다.

강원도 삼척에서 충남 아산으로 ‘5시간의 원정’

지난 달 27일 김선웅 씨는 어머니 생신을 맞아 온 가족과 함께 강원도 삼척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그의 머리 속에는 대전 경기 생각만 가득했다. 다음 날인 28일 대전이 아산 원정을 떠나 아산무궁화 축구단과 경기를 펼치기 때문이었다. 올 시즌 1승 3무 9패로 부진을 겪고 있는 대전이 ‘강호’ 아산을 상대로 적지서 펼치는 경기라 상당한 부담이 있는 승부였다. 김선웅 씨는 강원도 삼척에서 충남 아산까지 그 먼 거리를 어떻게 이동해야 할까부터 고민했다. 경기 당일 아산행을 고민하던 그를 보고 서울로 향해야 하는 삼촌이 반가운 말을 꺼냈다. “내가 온양온천역까지 태워다 줄게. 선웅아 어서 타.”

김선웅 씨에게는 너무나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삼촌 차를 타고 온양온천 역으로 향했다. 서울로 가야하는 삼촌도 돌고 돌아 먼 길을 가야했지만 조카의 열정을 높이 샀다. 그렇게 김선웅 씨는 온양온천 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충남 아산에 위치한 이순신종합운동장으로 향했다. 평소 원정 응원을 떠날 때면 다른 팬들과 함께 대전에서 원정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그로서는 홀로 떠나는 원정이 고되기도 했지만 대전을 응원하러 간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렇게 김선웅 씨는 무려 5시간 동안 이동한 끝에 충남 아산에 도착했다.

그는 아산으로 가며 많은 생각을 했다. “얼마 전 김진규 선수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선수들도 성적이 좋지 않아 너무 미안해하고 있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요. 5시간이나 걸려 아산으로 가면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선수들이 열심히 뛰어주는 모습만을 바랐죠. 사실 요즘 성적이 좋지 않은데 지금은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수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뛰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승리요? 최선만 다하면 됐죠.” 올 시즌 K리그 챌린지에서 단 1승에 그치며 꼴찌로 내려 앉은 대전을 보면서도 김선웅 씨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산으로 향했다.

대전팬 김선웅(왼쪽에서 두 번째) 씨는 대전시티즌을 응원하는 게 인생의 행복이다.

경기장에 1등으로 도착했는데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날따라 대전 팬들도 이 경기에 관심이 별로 없는 듯했다. 대전을 응원하는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경기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김선웅 씨는 대전의 좋지 못한 상황을 한탄했다. ‘아무리 우리 팀 요즘 경기력이 좋지 않아도 이렇게까지 무관심해도 되는 거야?’ 그래도 늘 그랬던 것처럼 경기장에 가면 반가운 팬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터덜터덜 경기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순신종합운동장의 분위기도 조금은 달랐다. 원래 경기장 앞 육교에 아산무궁화 경기 일정 현수막이 붙어 있어야 하는데 전국소년체육대회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이었다. 김선웅 씨는 ‘그런가 보다’하고 갈 길을 갔다.

7시 경기였지만 김선웅 씨는 경기 직전의 두근거림을 더 느끼고 싶어 5시 반에 경기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아산은 새로 구단이 만들어져 초대 공연도 자주하고 이것저것 볼거리가 많아 팬들이 꽤 많다고 들었는데 지나다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경기 시작 한 시간 반 전에 왔다고 해도 이건 너무 이상했다. 정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인기가 부족한 K리그 챌린지라고 해도 이런 싸한 분위기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이제야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챈 김선웅 씨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K리그 어플을 켜 일정을 확인했다. 그런데 어플에는 아주 작은 글씨지만 김선웅 씨에게는 기가 찰 두 글자가 써 있었다. 5월 28일 아산무궁화-대전시티즌 ‘취소’

말문이 막혔다. 강원도 삼척에서 삼촌 차를 얻어 타고 버스를 갈아타 5시간 만에 겨우 경기장에 도착한 김선웅 씨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만 보니 경기장 안에는 김선웅 씨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렸더니 친구들이 혀를 찼다. “그 경기 연기된 거 너만 몰랐어? 우린 다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아산을 비롯한 충남일대에서 열리는 소년체전 때문에 이 경기는 9월 27일로 연기 돼 있는 상황이었다. 연맹은 이를 지난 4월 28일에 공지했고 아산 구단은 물론 대전 구단도 팬들에게 미리 알렸다. 세상에서 김선웅 씨만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대전팬 김선웅(왼쪽에서 두 번째) 씨는 대전시티즌을 응원하는 게 인생의 행복이다.

세상에서 혼자만 모르고 있던 사실

김선웅 씨도 할 말은 있었다. “요즘에 K리그 일정은 대부분 페이스북 등을 통해 확인하잖아요. 그런데 구단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경기 취소와 연기에 대한 공지가 없었어요. 구단 홈페이지에서 팝업창을 띄워 공지했다고는 하는데 저는 광고가 많아 아예 팝업창을 다 차단해 놓았거든요. 정말 몰랐습니다. 아,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저만 몰랐어요. 혼자 썰렁한 이순신종합운동장에 서 있던 기분을 아무도 모를 겁니다.” 팬들 중 그 누구도 커뮤니티를 통해 그날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것도, 그 누구도 원정 응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것도 다 이유가 있었지만 김선웅 씨만 모르고 있었다.

그는 결국 이게 자신의 불찰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제가 축구장을 10년 넘게 다녔어도 경기가 취소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겪질 못했거든요. 당연히 경기가 열릴 줄 알았고 이게 취소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팬들이 경기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도 그냥 우리가 요즘 너무 못하니까 관심이 떨어진 줄로만 알았죠. 왜 경기 취소와 연기를 유심히 살피지 않았을까 자책했어요. 제 잘못이죠.” 김선웅 씨는 결국 혼자만 기대했던 이 경기를 보지 못하고 다시 대전으로 향해야 했다. 그것도 한 번에 대전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 천안을 들렀다가 대전으로 향했다. 삼척에서 온양온천을 들러 아산으로, 거기에서 다시 천안으로 갔다가 대전으로 향하는 ‘혼자만의 강행군’이었다. 다시 집에 돌아가는 데에도 무려 3시간이나 걸렸다. 선수들은 누워서 자고 다른 팬들은 <복면가왕>을 보며 쉬는 한가로운 일요일 저녁에 그는 혼자 경기장에 가겠다고 왕복 8시간을 허비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하루 온종일을 바칠 수 있는 팬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일까. 비록 공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헛걸음해야 했지만 김선웅 씨처럼 먼 길을 달려오는 팬이 있다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김선웅 씨는 이 바보 같은 사연을 전한 뒤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요새 우리 팀 성적이 좋지 않아서 팬들의 관심이 많이 떨어졌어요. 오래 응원한 팬들도 많이 지쳤죠. 하지만 선수들이 힘을 내는 것 이상으로 팬들로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9월 27일로 연기된 아산 원정경기 전날에는 꼭 다음 날 일정을 제대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우리 앞으로 경기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면 김선웅 씨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기로 약속하자.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걸 한 사람만 모르고 있는 건 가혹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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