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군인은 군대 축구를 제패한 뒤 K리그에서도 엄청난 역사를 쓴다. 물론 이런 일은 흔하지 않다. ⓒ김원일 제공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축구선수들의 운동 능력은 엄청나다. 다들 운동 능력이 뛰어난 이들끼리 경쟁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능력을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이들이 평범한 일반인과 겨룬다면 어떨까. 축구선수가 일반인과 운동 능력을 겨룬다? 평생 밥 먹고 운동만 했던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과 경쟁한다면 이건 반칙이고 사기다. 오늘은 동네 체육대회에서 ‘흔한 치트키’ 역할을 했던 축구선수들의 사연을 소개하려 한다. 물론 이 중에는 치트키라고 믿고 썼다가 버그가 생긴 경우도 있다.

5. ‘군대 축구 제패’ 김원일

숭실대에서 윤성효 감독의 지도를 받던 김원일은 갑자기 현역으로 해병대에 입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상무도 아닌 일반 현역병으로 입대하면서 사실상 축구선수의 꿈을 접은 것이었다. 하지만 군대에선 축구를 잘하는 후임을 가장 예뻐하지 않던가. 김원일은 군대에 가 곧바로 전설이 됐다. 보통 신병이 들어오면 군기를 잡는 게 관례지만 김원일만큼은 남다른 대우를 받았다. “군대라는 곳이 워낙 소문이 빠른 곳이잖아요. 벌써 제가 축구선수 출신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어요. 그날이 공교롭게도 주말이었거든요. 왕고가 저에게 보급형 새 축구화를 던져주더라고요. 군 생활을 해보신 분은 알겠지만 이만큼 파격적인 일도 없을 거예요. 갓 전입온 이등병이 새 보급형 축구화를 신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잖아요. 그리고는 왕고가 저에게 딱 한 마디를 던졌어요. ‘오늘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줘라.’”

김원일은 죽기 살기로 공을 찼다. 파격적인 대우에 걸맞는 실력을 보여줘야 했고 2년 동안 편한 군 생활을 위해서도 멋진 기량을 선보여야 했다. 세 시간 동안 죽어라 뛰었다. 드리블하고 개인기 쓰면 밉상으로 보일까봐 고참들이 발만 대면 골을 넣을 수 있게 패스를 갖다 바쳤다. 그러자 경기가 끝난 뒤 고참이 김원일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네 군 생활은 이제 풀렸다.” 김원일은 군 생활 동안 연대 대표와 사단 대표로 뽑혀 숱한 우승을 일궈냈다. 그리고 그는 군대에서 ‘만렙’을 찍었다. 해병대 1사단 대표로 ‘선진강군! 한마음대축제 하이원 2008 군대스리가’에 나서 전반전만 뛰고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을 펼치며 우승을 이끌었다. 전군 중 축구를 잘하는 사람들이 다 모였다는 대회에서 김원일은 ‘치트기’로 활약했다. 이후 K리그에 입성한 그는 2013년 포항의 우승을 이끄는 극적인 골을 넣기도 했고 현재도 제주의 주전 수비수로 활약 중이다.

4. 초등학교에 나타난 ‘총알’ 최태욱

‘총알 탄 사나이’ 최태욱은 현역 시절 100m를 11초 00에 주파하기도 했다. 그런데 동료들은 “태욱이가 이 기록보다도 더 빠르다”고 입을 모았다. 이 기록을 잰 건 고등학교 때였고 심지어 스파이크가 아닌 일반 운동화를 신고 쟀기 때문이다. 주력이 더 폭발적으로 늘어난 성인이 돼 스파이크를 신고 쟀더라면 10초대 기록도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최태욱은 역대 한국 축구선수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빨랐다. 오죽하면 별명이 ‘총알 탄 사나이’였을까. 그런 그가 얼마 전 동네 체육대회 등장했으니 이건 반칙이다. 그것도 동네 학부형들 노는 초등학교 체육대회에서 그랬으니 ‘치트키’ 소리를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네 체육대회에 ‘총알 탄 사나이’가 등장한 건 이태원 해밀턴 호텔 수영장에 마이클 펠프스가 온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지난 달 세종초 운동회가 열렸다. 두 아이들의 아빠인 최태욱도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학교에 갔다. “아빠, 오늘 달리기에 나올 거지?” 두 아이는 아빠 최태욱이 ‘총알 탄 사나이’라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부모님이 참가하는 계주 경기가 있는데 더군다나 학급마다 학생 수도 적어 운동회에 온 부모님 대부분이 계주에 참가해야 했다. 최태욱은 학교에 가면서 트레이닝복을 꺼내 입으려다 참았다. “이거 입고 가면 오늘 작정하고 오는 거 같겠지?” 결국 최태욱은 청바지를 입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계주 경기에 최태욱이 등장했다. 다른 아빠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트레이닝복을 입었지만 역시나 가장 빠른 건 최태욱이었다. 최태욱은 바통을 잡은 뒤 한 바퀴를 순식간에 돌았다. 아직도 현역이라고 착각했는지 최태욱은 경기가 끝난 뒤 아쉬워했다. “직선에서 뛰면 다 이길 수 있는데 운동장이 작아서 다 곡선이야.”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던 그는 이제 아이들을 위해 초등학교 맨땅 운동장을 달리는 아저씨가 됐다.

김기동은 포항의 전설이면서 송악중학교의 전설이다. ⓒ포항스틸러스

3. 12년 만에 우승 이끈 김기동

2011년 10월 당시 포항에서 뛰던 김기동은 엄청난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필드 플레이어로는 최초로 K리그에서 5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의 주인공이 되기 직전이었다. 그런 김기동은 추석이 지나고 고향에 갔다가 모교인 송악중 동창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 만에 학교를 찾았다. 친구들과 만나 회포를 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모교에 들른 김기동을 보자 동창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한 번 이겨보자. 기동아 부탁한다.” 김기동과 같은 기수 동기생들은 무려 12년 동안 이 동문회 축구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최약체였는데 K리그의 전설 김기동이 등장했으니 기대하는 건 당연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에 왔던 김기동은 결국 친구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맨땅에서 열리는 동문 축구대회에 나섰다. 동네 축구대회의 ‘치트키’였다.

김기동은 관리를 잘한 축구선수였지만 39세인 친구들은 이미 배가 나오고 머리도 벗겨지고 있었다. 이 사이에서 김기동은 매너 있게 슈팅은 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패스만 했다.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배가 나와 숨을 헐떡이던 친구들은 김기동의 허를 찌르는 패스를 받은 뒤에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과인이 되고 레반도프스키가 됐다. 결국 12년 동안 이 체육대회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김기동의 동창들은 김기동과 함께 이 대회에서 4승 1패를 기록하며 우승컵까지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특히나 ‘괴력의 사나이’ 김기동은 팀이 치른 5경기에 모두 출장해 200분 풀타임을 뛰는 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경기가 끝난 뒤 동기들은 김기동을 헹가래하며 이렇게 말했다. “기동아. K리그에서 500경기 꼭 뛰어라.” 김기동은 그렇게 동네 축구대회의 전설이 됐다.

2. 울산의 미래 만난 ‘레전드’ 서덕규

지난 1일 울산 검단초등학교 운동회에서는 특별한 이벤트가 열렸다. 울산현대 선수들이 등장해 학부모들과 이색 대결을 펼친 것이었다. 지역 공헌 활동의 일환이었다. 울산 유소년 팀인 현대고를 갓 졸업한 새내기 골키퍼 문정인이 골문 앞에 선 뒤 사회자가 안내 멘트를 날렸다. “승부차기 이벤트를 하겠습니다. 이 골키퍼를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님들은 나오세요.” 그러자 누군가 등 떠밀리 듯 나왔다. 살이 찌고 후덕해졌지만 울산 팬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선수였다. 바로 서덕규였다. 서덕규의 아들은 이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울산에서만 뛰었던 ‘원클럽맨’ 수비수 서덕규가 학부모 자격으로 나온 것이다. 동네 운동회에서 ‘치트키’도 이런 ‘치트키’가 없었다. 1998년생 골키퍼 문정인이 이제 막 걸음마를 할 때 울산에서 뛰던 전설이 눈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서덕규는 검단초 체육 교사인 지인과 울산현대 관계자가 등을 떠밀며 “한 번 나가 보라”고 해 이 자리에 선 것이었다. 그런데 서덕규는 풋살화까지 신고 있었다. “준비한 건 아니고 원래도 풋살화를 신고 다닌다”고 둘러댔지만 서덕규의 표정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사회 공헌 활동을 하러 와 한 수 보여주려던 울산 선수들도 당황했다. 울산의 전설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나. 울산의 전설과 울산의 미래가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서덕규는 도움닫기를 한 뒤 힘차게 공을 찼다. 다들 전설의 슈팅은 어떤지 기대했다. 하지만 서덕규가 찬 공은 골대를 한참 빗나가고 말았다. 전설적인 선수치고는 어이 없는 슈팅이었다. 이에 대해 서덕규의 변명을 좀 들어보자. “큰 골대에만 차다가 초등학교의 작은 골대를 보니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참고로 서덕규는 현재 양산 범어고등학교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 프리킥은 역시 이천수다.

김기동은 포항의 전설이면서 송악중학교의 전설이다. ⓒ포항스틸러스

1. ‘조기축구의 전설’ 김형범과 조재진

우리나라에서 크로스가 가장 좋았던 선수를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단연 김형범을 꼽을 것이다. 김형범은 에닝요가 등장하기 전까지 K리그에서 가장 많은 프리킥 득점을 올렸던 선수였다. 그렇다면 가장 헤딩이 좋았던 선수는 누구일까. 나는 조재진이 한국 축구 사상 제공권이 가장 좋았던 선수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프랑스전에서 보여준 헤딩 능력은 눈물겨울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데 만약 김형범이 크로스를 하고 조재진이 이를 헤딩으로 연결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전성기 시절 대표팀에서나 가능한 모습일 것이고 이게 실제로 이뤄진다면 축구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 일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믿을 수 없는 전설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국가대표 경기나 K리그에서가 아니라 동네 조기축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남양주시 별내동에 가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김형범과 조재진이 나란히 취미 삼아 나가는 조기축구회가 있기 때문이다. 남양주시에서 골프 사업을 하고 있는 김형범과 조재진은 늘 붙어 다니고 있다. 현역 은퇴 후 축구 지도자로 나서는 다른 이들과 달리 이 둘은 새로운 분야에 뛰어 들었고 서로 의지하며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동네도 같아 함께 운동도 즐긴다. 당연히 김형범과 조재진이 뛰는 조기축구팀은 동네 최강이다. 김형범은 “내가 크로스를 올리면 재진이 형이 여전히 해결한다”고 밝혔다. 동네 조기축구회라고 무시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남양주시 별내동 조기축구회에서 큰 내기 제안이 들어온다면 다들 한 번은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 ‘형컴’ 김형범과 월드컵에서 갈라스, 튀랑을 쳐바르던 조재진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형범의 말은 더 무섭다. “누구를 만나건 조기축구회에서 반갑게 인사해 주시면 나는 강력한 오른발로 화답할 생각이다.”

축구를 보며 욕하는 건 쉽다. “나도 저 정도는 하겠네.” “아니 무슨 슈팅을 저렇게 해.” 하지만 그들과 한 번이라도 마주해보면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이렇게 전설적인 선수들이 일반인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한다. 이렇게 동네 체육대회에서 ‘치트키’로 활약하는 것도 팬들을 위한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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