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상무 선수들의 가장 군인다운 모습. ⓒ상주상무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주말 인터뷰를 위해 만났던 부산아이파크 이정협은 군대에 일찍 다녀온 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같은 날 만난 경남FC 골키퍼 이범수는 군 입대에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떨어져 내년 목표를 군 입대로 세웠다고 했다. 이정협은 1991년생이고 이범수는 1990년생인데 이정협은 이제 군대에 대한 고민 없이 앞길이 창창하고 이범수는 다시 한 번 군 입대에 도전해야 한다. 합격한다고 해도 상주상무나 아산무궁화에서 2년을 뛰어야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연봉을 올릴 수 있는 시기에 수입이 없어진다는 것도 치명적이고 이제 막 물이 오를 나이에 군대에 간다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쉬울 것이다.

상주와 아산, 경력 넘치는 K리거에 보상 같은 곳

이범수를 욕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일찍 군대를 가려고 세 번이나 시도했지만 결국 군 입대에 실패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상주나 아산에 입대하는 선수들의 나이가 너무 높고 그에 따른 경력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상주와 아산은 지난 시즌 정기모집 시기 기준으로 만27세 이하의 선수들에 한해 입대 신청을 받았다. 만27세이니 우리나이로 29살의 선수까지도 지원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29세면 축구선수로서는 전성기를 보내야 할 나이인데 그렇다보니 당연히 경쟁률은 세질 수밖에 없다. K리그 클래식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 정도나 입대를 보장받을 수 있을 뿐 K리그 챌린지 선수들은 합격을 장담할 수가 없다. 내셔널리그를 비롯해 아마추어 선수들의 입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느 순간부터 상주와 아산은 K리그에서 오래 뛴 병역 미필 선수들에게 보상(?) 같은 곳이 됐다. 군 입대를 미루고 미루면서 K리그에서 자리를 잡아야 그 혜택으로 갈 수 있는 곳처럼 받아들여지게 됐다. 처음부터 상주와 아산이 이런 목적으로 운영된 건 아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병역을 지체하려는 선수들이 끝까지 군대를 미루다가 선택하는 곳이 되고 만 것이다. 심지어 몇몇 선수들은 상주와 아산 입대 시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아예 군 팀에 갈 수 없게 돼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상주와 아산은 군 입대를 늦출 수 있는 저기 끝자락에 가 있다. 그러니 이제 막 프로 무대에 발을 내딛은 어린 선수들은 상주와 아산 입대를 꿈도 못 꾼다. 프로 무대에서의 경력을 선발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이 홍철이나 김태환, 김호남을 능가할 수가 없다.

과연 상주와 아산이 이런 목적으로 운영되는 게 맞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상주와 아산이 K리그에 참가하고 있지만 사실 이 팀들은 프로의 성격이 아니다. 상주의 운영 주체인 국군체육부대는 ‘세계 최일류 체육전문기관, 국가체육을 선도하는 엘리트 군인 선수 육성’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수선수 발굴을 주요 추진사업이라고 설명한다. 아산 선수들은 경찰대학 부설 기관이 무궁화체육단 소속인데 무궁화체육단은 “우수선수를 발굴 육성하여 국가체육진흥 정책에 부흥하고 각종 대회에 참가하여 민경화합과 국민에게 친근한 경찰이미지를 제고하고자 창단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두 팀은 ‘육성’과 ‘발굴’에 중점을 둔 팀이다. 이미 발굴돼 육성된 20대 후반의 전성기를 누리는 선수들을 뛰기에는 부적합하다.

아산무궁화 선수들의 경기 모습. ⓒ 아산무궁화 제공

그들의 본래 취지는 발굴과 육성

그런데 지금 상주와 아산은 본 취지와는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일단 이 팀에 입대하기 위해서는 K리그에서 엄청난 경력을 쌓아야 한다. 올 시즌부터 이제 막 빛을 발하기 시작한 이범수가 세 번이나 문을 두드렸지만 그가 선택을 받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국가대표 경력 정도는 있어야 ‘안전빵’이고 K리그에서 날고 기는 선수들이 전성기 몇 시즌은 선보여야 좀 여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팀이다. 늘 ‘레알상무’라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매 시즌 상주와 아산은 제대하는 선수들 이상의 선수들이 새롭게 입대한다. 과연 이 팀들이 본래의 취지인 발굴과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가. 그저 K리그 클래식 승격과 잔류를 위해 전성기 선수들의 전력 수혈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는 않는가. 후자인 것 같다. 발굴과 육성이라는 취지와는 다르게 이제는 해외에서 뛰던 선수들이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해 K리그에 복귀해 한 시즌을 뛴 뒤 상주나 아산에 간다.

그래서 제안한다. 상주와 아산의 입대 연력을 대폭 낮춰야 한다. 정말 본 취지에 맞는 발굴과 육성에 초점을 맞추려면 입대 연령을 만27세에서 만23세로 낮출 필요가 있다. 이미 클 만큼 다 큰 선수들이 최대한 입대를 늦추고 늦추다 가는 팀이 아니라 이 팀은 유망주들이 가는 팀이어야 한다. 가능성을 보고 데려오고 키워내는 게 국가가 주도하는 군 팀의 역할 아닌가. 물론 유망주들은 성장 속도도 다르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령 만23세로 입대 연령을 대폭 낮춰 입대하게 된 어린 선수 중에는 기대만큼 크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상주와 아산은 본래 취지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 나는 상주와 아산은 실업 무대로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 제도라면 상주와 아산도 당연히 좋은 성적이 나올 땐 K리그 클래식으로 가는 게 맞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 이유는 다른 프로팀과는 다르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제도적으로 자꾸 상주와 아산의 입대 시기를 낮추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게 한국 축구가 훨씬 더 발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갓 대학을 졸업하거나 중퇴한 뒤 프로 무대에 뛰어든 선수들은 대부분 팀에서 중용되기가 어렵다. 이렇게 몇 년씩 버티면서 성장해 25세는 돼야 주전으로 도약한다. 물론 돋보이는 기량으로 어린 나이에 주전으로 도약하는 이들도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를 말하는 거다. 그런데 25세에 조금씩 기회를 잡아 2~3년 뛰다가 딱 군대에 갈 나이에 걸려버리면 입대한 뒤 2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돌아오면 이미 중고참이 돼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바꾸자는 거다. 대학을 중퇴하거나 졸업한 뒤 프로에 오면 어차피 벤치를 달굴 시간이 긴데 이때 군대 문제를 해결하면 팀에도 큰 도움이 된다. 군대에 갔다 오면 그때부터가 전성기의 시작이다. 군 팀에서 전성기를 보내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래도 명색이 프로라면 제 가치를 지불해주는 프로팀에 있을 때 전성기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아산무궁화 선수들의 경기 모습. ⓒ 아산무궁화 제공

이른 병역 해결, 선수 위한 일이기도

실제로 최근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K리그 선수들 중 22세 이하 어린 선수들로 팀을 만들어 챌린지 대회에 출전시키고 싶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어린 선수들이 프로에 와도 경기에 많이 나서지 못하는데 이 기간 동안 쉬는 걸 걱정했기 때문이다. 문체부 당국자도 예산 지원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만큼 좋은 아이디어다. 그런데 이런 훌륭한 정책을 굳이 따로 만들 필요도 없다. 상주와 아산의 입대 연령을 확 낮추면 그 팀이 바로 유망주 팀이 되기 때문이다. 어린 선수들에게 뛸 기회도 제공하면서 거기에 병역 문제까지 해결해 훗날 해외 진출도 용이해지니 이보다 더 좋을 게 있나. 물론 현재 상주와 아산 입대를 계획 중인 선수들이 있어 당장 이를 실행할 수는 없지만 점차적으로 입대 시기를 낮춰 자연스럽게 어린 나이에 입대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상주나 아산이 이미 프로 무대에서 이뤄놓을 걸 다 이뤄놓은 주전 선수들이 혜택을 받는 곳처럼 되는 건 곤란하다. 상주와 아산의 입대 연령을 대폭 낮추자.

이렇게 입대 시기를 앞당기면 상주와 아산의 선발 과정이 문제가 될 수는 있다. 지금처럼 눈에 보이는 K리그에서의 경력으로 선수들을 선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서로 머리를 맞대면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다. 청소년 대표팀 등의 경력을 반영하는 방법도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재 K리그 클래식의 U-23 선수 의무 출전 조항과 K리그 챌린지의 U-22 선수 의무 출전 조항을 활용했으면 한다. 현 규정상 구단별로 어린 선수들을 경기에 의무적으로 출전시켜야 하는데 이렇게 한 시즌 정도 구단에서 출전하며 꽤 활약한 선수들로 상주와 아산이 선발 기준을 세워도 큰 무리가 없다. 승패에 사활이 걸린 구단이 어린 선수 한 명 입대시키겠다고 기량도 안 되는 선수를 경기에 내보낼 수는 없다. K리그 클래식의 U-23 선수들과 K리그 챌린지의 U-22 선수들 중에서 옥석을 가려 상주와 아산에 갈 기회를 준다면 좋을 것 같다.

이건 선수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정협은 “윤성효 감독이 1년차 때 바로 군대로 가라고 한 게 너무 싫었다”고 했다. 당장은 그럴 수도 있다. 이제 막 프로 물을 먹게 됐는데 다시 통제된 군대로 가는 걸 좋아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가야 하는 군대다. 그래도 고등학교와 대학교 등 자유로운 생활에 제약이 있던 축구부에서 생활했던 습관이 남아있을 때 고생하는 게 낫지 않은가. 아무 것도 모를 때 가는 게 낫다. 그리고 어차피 프로에 있어도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다면 빨리 2년이라는 시간을 채우고 돌아오는 게 더 현명하다. 이제 막 전성기에 올라 몸값도 가장 많이 받아야 할 시기에 군대에 가는 건 선수에게는 엄청난 손해다. 처음에는 군대 가는 게 너무나도 싫었던 이정협이 “지금은 그 당시 입대가 ‘신의 한 수’였다”고 하는 걸 보라. 본인은 여러 번 입대를 노렸지만 결국 입대에 실패하고 기량에 물이 오른 이범수가 이제 다시 군대를 노크해야 하는 사례도 안타깝다.

‘레알상무’가 불편하다

더군다나 상주와 아산은 축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미드필더 김정우가 스트라이커로 변신하기도 하고 측면 수비수가 공격수가 되기도 한다. 지금껏 배워온 축구와는 다른 자유로운 축구를 해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다. 프로에 가면 이런 거 못 한다. 상주와 아산에 다녀온 선수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말한다. “축구를 이렇게 마음 편하게, 재밌게 해본 적은 없었다.” 물론 K리그에 참가하니 아예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없을 수는 없지만 상주와 아산은 다른 팀보다는 그런 성적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유롭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지금껏 해보지 않은 포지션도 경험해보고 해보고 싶은 플레이도 해보고 병역까지 마무리하면 얼마나 좋은가. 일찌감치 군대에 다녀온 수원삼성 구자룡과 이종성은 이제 훈련소에 입소한 이상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군대 언제 갔다 와?” 일찍 군대에 다녀온 자의 여유다. 군대에 일찍 갔다오면 향후 해외진출도 훨씬 쉬워진다.

어린 선수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팀을 위해서도, 한국 축구 전체를 위해서도 상주와 아산의 입대 연령은 대폭 낮아져야 한다. 상주와 아산은 K리그에서 오래 뛴 병역 미필 선수들에게 보상(?) 같은 곳이 아니라 이제 막 피어오를 선수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곳이어야 한다. 일찍 군대에 갔으면 상사도 달았을 만27세 남자들이 이등병으로 모여 있는 군 팀은 상식적으로도 좀 이상하지 않은가. 언제 올지 모를 올림픽 동메달이나 아시안게임 금메달, 그리고 그 팀에 내가 뽑힐 거라는 아주 희박한 가능성에 기대하지 말고 일찍 일찍 군대에 다녀오는 분위기를 만들자. 매 시즌 나오는 ‘레알상무’, ‘경찰셀로나’라는 말이 불편하다. 상주와 아산은 원래 설립 취지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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