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K리그 0경기 출장 ‘전설의 외인 선수’ TOP10

마졸라
이 유니폼은 10년 뒤 중고나라에서 '레어템'으로 판매됩니다. ⓒ전북현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많은 선수들이 K리그에 도전한다. 이중에는 팬들의 기억 속에 어렴풋이 이름이 기억나는 이들도 있고 역사에 강렬한 이름을 남긴 이도 있다. 누군가는 성공하지만 그보다 많은 이들은 실패한다. 아마도 K리그 팬들은 FC서울 무삼파나 인천유나이티드 알파이를 생각하며 실패한 외국인 선수들의 사례를 꼽을 것이다. 이 둘은 화려한 경력에 비해 초라한 성적과 좋지 않은 인상만을 남기며 K리그를 떠났다. 하지만 이들은 오늘 소개할 선수들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무삼파는 5경기 나왔고 알파이도 8경기에 출장한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오늘은 K리그에 등록했지만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한 ‘전설의 선수들’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야심차게 영입해 단 1분도 써먹지 못한 ‘먹튀’들을 소개한다.

오세이 (2003년 부산 0경기 출장)
2003년 시즌을 앞두고 부산아이콘스 사령탑에 오른 이안 포터필드 감독은 자신의 제자 한 명을 구단에 추천했다. 1982년생으로 당시 21살에 불과한 마이클 오세이였다. 포터필드 감독은 바로 전년까지 가나 프로팀인 아산테 코토코의 감독을 맡고 있었는데 오세이는 이 팀의 주전 선수였다. 오세이는 아산테 코토코를 아프리카 컵위너스컵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득점왕까지 거머쥐었다. 아산테 코토코는 가나 최고의 명문 팀으로 한 통계 연맹에서 선정한 20세기 아프리카 축구 클럽 1위에 뽑히기도 했다. 그런 명문 팀에서 감독이 직접 모셔온 선수였으니 오세이에 거는 기대는 당연히 컸다.

오세이는 입단 테스트에서도 곧바로 활약을 펼치기 시작했다. 시즌 개막 전 남해 스포츠파크에서 열린 연습경기 성격의 한중일 3개국 프로축구대회에서 중국 중위안을 상대로도 골을 기록하며 킬러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오세이가 우리나라에서 기록한 골을 전부였다.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오세이는 몸싸움에서도 툭툭 쓰러지며 훈련 과정에서도 처참한 경기력에 머물렀고 결국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한 채 조용히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얼마나 이 선수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냐면 당시 언론에서는 21살에 불과한 이 선수를 착각해 32살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부산에서 처참하게 실패한 오세이는 이후 아산테 코토코로 복귀했고 지금도 그곳에서 코치로 일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좋지 않은 뜻의 ‘레전드’가 됐지만 아산테 토코토에서는 진짜 ‘레전드’다.

오세이
오세이의 최근 모습. 그는 현재 가나에서 축구 지도자로 활동 중이다. ⓒ아산테 코토코

장아비 (2003년~2004년 울산 0경기 출장)
지금이야 K리그에 중국 선수가 등장하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2003년에 중국 선수가 K리그에 입성한 건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바로 장아비가 그 주인공이다. 17살이던 장아비는 계약금 2,000만 원, 연봉 1,200만 원을 받고 울산현대와 정식 계약했다. 중국 산둥 루넝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하던 장아비는 2001년 연습생 신분으로 홀로 울산에 와 2년 동안 실력을 갈고 닦았고 마침내 K리그 입성이라는 목표를 이뤘다. 축구 외에도 하루에 한두 시간씩 꼭 한국어 공부를 하며 한국 문화도 익혔고 중국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히는 경사를 누렸다.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잘생긴 얼굴로 울산 지역 여고생들의 인기를 얻기도 했다. 심지어 한 고등학생 팬은 직접 모은 돼지 저금통을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아비에게 K리그의 벽은 높았다. 2003년에는 2군리그에 교체 멤버로 출장해 9경기 1득점의 기록에 머물렀고 2004년에는 2군리그 6경기에 나선 게 전부였다. 왼발잡이로 왼쪽 미드필더를 맡았던 장아비는 유상철과 최성국 등 쟁쟁한 1군 선수들과의 주전 경쟁에 실패했고 여기에 발가락 부상까지 당했다. 울산 김정남 감독은 “기회를 봐 장아비를 정식 경기에 내보낼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장아비는 단 한 번도 K리그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결국 그는 2004년 이후 K리그 무대를 떠나야 했다. 비록 K리그 데뷔전을 치르지는 못했지만 어린 나이에 열정 하나만으로 한국 무대를 노크했던 그의 도전 정신은 높이 살만하다. 다른 선수들은 K리그에서 몇 달 버티다 떠났지만 장아비가 K리그에서 도전한 시간만 해도 무려 4년이다. 국내 무대에서는 외국인 선수라기보다는 그저 한류를 좋아하는 축구 유학생 중 한 명으로 취급받는 아픔을 겪었다.

알리(2005년 전남 0경기 출장)
알리우타가 2005년 전남드래곤즈 유니폼을 입을 때만 하더라도 그에 대한 기대는 컸다. 루마니아 명문 클럽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에서 활약했던 알리는 루마니아 대표팀으로도 세 차례나 A매치에 나서며 전도유망한 미드필더로 각광받았다. ‘루마니아 특급’ 네아가와 함께 전남을 이끌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알리’라는 이름으로 K리그에 등록한 그는 2003년에는 스투아 부쿠레슈티에서 네아가와 함께 뛰어 호흡도 좋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원 소속팀에서 이적 협상 당시 이상한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일단 3개월 정도 무상으로 먼저 써보시고 마음에 들면 그때 계약해 주세요.” 전남은 화려한 경력에다 네아가와의 호흡까지도 좋은 알리를 공짜로 데려올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딱 알리를 본 순간 알았다. 이것은 잘못된 영입이었다는 것을…. 이미 부상으로 3개월 동안 운동을 하지 못한 알리의 몸 상태가 축구선수라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허정무 감독은 알리를 단 한 순간도 경기에 내보내지 못했고 3개월 뒤 조용히 그를 루마니아로 돌려보냈다. 뒷목을 잡을 일은 더 있었다. 알리와 함께 야심차게 영입한 선수가 한 명 더 있었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 출신이자 뉴캐슬에서도 뛰었던 오피옹은 단 한 경기에 교체 출장해 오프사이드 두 개만 범하고 천진난만하게 늘 벤치에서 웃고 있었다. 그나마 오피옹은 출장 기록이라도 있지 알리는 그 누구도 뛰는 걸 본 적이 없다. 허정무 감독이 가장 싫어하는 노래는 <날아라 병아리> 아닐까. ‘굿바이 알리’ 그렇게 알리는 출장 기록 ‘0’의 전설이 됐다.

핫도 (2006년 대전 0경기 출장)
2006년 2월 대전시티즌이 야심차게 브라질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슈바와 헤지스, 그리고 핫도였다. 특히나 23세의 젊은 핫도에 거는 기대가 컸다. “빠른 스피드와 테크닉이 장기다.” 하지만 슈바와 헤지스의 이름을 기억하는 팬들은 있을지 몰라도 핫도를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핫도가 한국에 와 동계훈련을 한지 20일 만에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왼 무릎 관절 부상이었다. 결국 핫도는 정밀 검사를 통해 최소 5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간 뛸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미 계약까지 다 마무리하고 핫도를 최전방에 내세우려고 계획한 대전은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대전은 핫도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 그를 잠시 브라질로 돌려보낸 뒤 재활 비용까지 댔다. 핫도가 빨리 부상을 회복하고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당장 시즌을 시작해야 하는 대전은 급한 대로 대체자를 구해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브라질과 유럽은 이미 리그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코치진이 시즌을 준비하다 해외로 나가 선수를 살펴보는 것도 무리였다. 그래서 겨우 겨우 3개월짜리 단기계약으로 한 선수를 데려왔는데 이 선수가 바로 훗날 큰 성공을 거둔 ‘데빡이’ 데닐손이다. 만약 핫도가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데닐손의 신명나는 마빡이 세리머니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게 운명 아닐까. 그런데 핫도가 브라질에서 재활을 마치고 7월 입국했지만 정밀 검사 결과에 또 다시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앞으로 3개월 더, 그러니까 10월은 돼야 회복할 것이다.” 결국 대전은 한 시즌 내내 핫도의 병원비만 대다 그와 이별했다. 대전 팬들 사이에서도 핫도 유니폼은 레어템 중의 레어템이다. ‘출장 기록 無’

얜
빨래를 널기 전 기념 촬영을 한 얜. ⓒ텐진 웨이보

얜 (2010년 제주 0경기 출장)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족족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제주유나이티드에도 전설의 선수가 있다. 바로 얜이다. 얜 누군가 할 것이다. 얘는 얜이다. 지난 2010년 제주가 영입한 중국인 선수 얜 송을 말하는 거다. 얜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중국 국가대표로 맹활약했던 측면 미드필더로 2004년 아시안컵에서는 중국의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A매치에도 18번이나 나왔고 다롄 스더와 저장 그린타운 등 중국 슈퍼리그에서도 통산 211경기에 나와 31골을 넣을 정도로 경험이 풍부한 선수였다. 당시 아시아쿼터로 중국 선수들이 속속 K리그에 진출했는데 얜은 기존 선수들과는 조금 달랐다. 리웨이펑과 완오후량, 펑샤오팅 등이 모두 수비수였던 것과 달리 얜은 미드필더와 공격에 더 능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얜의 활약에 따라 중국 선수들의 K리그 진출이 더 수월해 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얜은 결국 단 한 번도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중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김은중과 산토스, 네코, 구자철, 오승범, 이현호 등 쟁쟁한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그런 얜에게도 대망의 K리그 데뷔전이라는 기회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R리그에만 나서며 호시탐탐 K리그 데뷔를 준비했던 얜이 무려 4개월 만에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2010년 7월 얜은 경남과의 포스코컵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90분 동안 세 명을 교체할 수 있었고 연장전까지 가면 두 명을 더 교체할 수 있는 규정이 있었다. 얜은 그 후보 명단 7명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날 앞서던 제주는 후반 막판 동점골을 허용했고 박경훈 감독은 연장전에 돌입한 뒤에도 수비에 치중하며 끝내 얜을 기용하지 않았다. 5명의 선수가 교체되는 동안 끝까지 벤치에만 있던 건 얜과 골키퍼 한동진 뿐이었다. 얜 이렇게 FA컵 한 경기에 나오면서 K리그 데뷔에는 실패하고 떠났다.

따시오 (2011년 부산 0경기 출장)
2011년 부산아이파크는 기존의 외국인 선수인 펠리피만 그대로 두고 세 명의 외국인 선수를 더 영입했다. 대대적인 개편이었다. 이안과 반 덴 브링크, 그리고 따시오가 부산의 새로운 식구가 됐다. 특히나 따시오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장신 공격수 정성훈이 전북으로 이적해 비어있던 자리를 따시오로 채우기로 했기 때문이다. 따시오는 193cm에 90kg의 엄청난 체격으로 강력한 공격력을 탑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따시오는 곧바로 치러진 대구대와의 연습경기에서도 결승골을 기록하는 등 기대감을 부풀렸다. 부산 코치진은 “수비수 3~4명이 둘러싸도 따시오의 볼을 빼앗기 쉽지 않다”고 극찬했다. 팬들은 그가 피게이렝시의 승격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알고 기대했고 따시오의 ‘FM’ 능력치를 축구 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따시오는 그냥 ‘2군의 제왕’이었다. 그래도 펠리피나 이안, 반 덴 브링크는 1군 경기에 모습이라도 드러냈지 따시오는 2군만 전전했다. 2군 경기에서는 6번 출장해 무려 5골을 기록하는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쳤지만 그에게 1군에서의 기회는 단 한 번도 주어지질 않았다. 안익수 감독이 1군 무대에서는 도저히 기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키만 클 뿐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느려도 너무 느렸다. 도저히 쓸 수 없는 수준이었다. 따시오가 결국 단 한 경기에도 나오지 못하자 팬들은 “정성훈의 이적을 무마하기 위한 영입 아니었느냐”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결국 따시오는 그렇게 5개월 만에 한국 무대를 떠나야 했다. 3~4명의 수비수들이 달라붙어도 공은 빼앗을 수 없지만 그전에 공을 받을 수도 없었으니 공을 지키는 능력이 무슨 소용일까. 야심차게 영입한 따시오의 연맹 출장 기록에는 ‘0’이라는 숫자가 아주 선명하게 찍혀있다.

반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진 속 표정이 모든 걸 말해준다. ⓒ수원삼성

반도 (2011년 수원 0경기 출장)
2011년 2월 수원은 거창한 보도자료를 뿌렸다. 브라질 명문클럽 크루제이루와 보타포구에서 활약한 바 있는 공격수 반도를 영입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란리그 사바콤에서도 뛴 적이 있어 아시아 축구에 대한 적응도도 높은 반도는 170cm의 단신이지만 뛰어난 순간 스피드와 저돌적인 드리블 돌파가 특기인 선수라고 소개됐다. 하지만 이같은 수원의 보도자료가 진짜인지 거짓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왜? 반도가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한 채 짐을 쌌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예수와 부처를 직접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반도도 마찬가지였다. 들리는 간증, 아니 소문에 의하면 형편없는 실력에다가 한국 문화와 날씨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에 있는 동안 음식에도 적응하지 못해 하루 하루 시간이 갈수록 야위어가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 반도는 윤성효 감독에게 이렇게 사정했다. “저 브라질로 좀 보내주세요.” 그렇게 반도는 1년 계약을 맺었지만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한 달 만에 전설이 된 채 브라질로 떠났다. 그의 대체자가 마르셀이었으니 이거 상처난 데 소금을 뿌린 격이다. 디에고, 헤이날도, 마르시오, 티아고, 산드로, 주닝요, 알베스 등 수원에서 처참히 실패한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라운드에 잠깐이라도 서 팬들에게 인사라도 했지 반도는 그 누구도 공 차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한 경기에 출장하고 퇴출된 핑팡 정도가 반도와 견줄 수 있다. 그래도 한 경기에도 못 나온 반도가 ‘전설’이다. 반도는 한 경기도 뛰지 않고 두달 치 월급 6천만 원을 챙겼다.

뇸뇸 (2015년 고양 0경기 출장)
전설 중의 전설을 가진 선수다. 카메룬 출신으로 덴마크 3부리그 스코바켄 소속으로 뛰다 부상으로 사실상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던 뇸뇸은 이후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등을 떠돌며 선수 생활을 겨우 이어 나갔다. 이외에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워낙 신비주의와 뻥튀기를 일삼은 고양자이크로 출신 선수이기 때문에 접할 수 있는 정보도 전혀 없고 그 흔한 인터뷰 한 줄 없다. 2015년 K리그 챌린지 미디어 데이 당시 고양 이영무 감독은 뇸뇸에 대해 “골을 넣을 줄 아는 선수”라는 아주 당연한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뇸뇸이 K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하고 3개월 만에 팀을 떠나야 했으니 그가 골을 넣을 줄 아는 선수라는 평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이 선수와 함께 했던 한 국내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일반인이라고 보면 된다.”

더 황당한 건 뇸뇸과 함께 영입된 또 한 명의 선수가 있는데 이 선수도 그라운드에 단 한 번도 서지 못한 채 팀을 떠났다는 점이다. 토고 국가대표 출신이라고 소개된 이 선수의 이름은 보소우였다. 이영무 감독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시절부터 아프리카 현지에서 아프리카 선수들의 경기력을 쭉 지켜봤다”면서 “내셔널리그 시절 팀을 이끌고 르완다와 콩고 등을 돌며 아프리카 선수들을 더 면밀히 본 적도 있다. 환경 문제만 적응한다면 충분히 제 기량을 보일 수 있다”라고 자신만만해 했지만 결국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뇸뇸과 보소우는 이렇게 한 시기에 한 팀에서 나란히 단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한 외국인 선수라는 불명예의 역사를 쓴 채 조용히 귀국 길에 올랐다. 이영무 감독의 기도가 더 간절해야 했을까.

마쿠스
부루마블에서 스톡홀름에 호텔을 올린 뒤 기뻐하는 마쿠스 ⓒ포항스틸러스

마쿠스 (2017년~ 포항 0경기 출장)
올 시즌 1월 포항이 영입한 마쿠스는 이력이 독특했다. 스웨덴 연령별 대표팀을 거쳤고 성인 대표팀에서도 활약한 그는 K리그에 입성한 최초의 스웨덴 선수였다. 동계훈련 기간 동안도 압도적인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강력한 수비력을 선보이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마쿠스가 활약한 건 동계훈련 기간 뿐이었다. 막상 시즌 시작을 앞두고 발가락을 다쳤고 발가락이 다 나을 때쯤 되니 골반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이 역시 어느 정도 치료가 되자 이번에는 허리를 다쳐 또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거의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보면 된다. 포항은 이 종합병원, 아니 마쿠스의 자리에 김광석과 배슬기 등 국내 선수를 대체로 쓰고 있는데 이들이 잘하고 있어 마쿠스를 찾는 이들도 별로 없다는 점 역시 슬프다. 그냥 없는 선수 취급을 받는 중이다.

마쿠스는 비록 경기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지만 시즌카드 판매 행사를 비롯해 다양한 구단 행사에 참여하고 있어 더 짠한 마음이 생긴다. 구단을 위해 그라운드에서 뛰어야 하는데 그라운드 밖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 포항은 최악의 경우 이번 시즌 중 마쿠스를 돌려보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단 한 경기도 공식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K리그를 떠난 전설들 사이에서 마쿠스는 점점 이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훈련 복귀 소식에 반가워하던 팬들도 훈련 사진을 본 뒤 혼자만 축구화가 아니라 운동화를 신고 있는 마쿠스의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복지 좋은 스웨덴에서 한국으로 와 고생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제 K리그에서 스웨덴 출신이라고 하면 마쿠스보다는 인천의 문선민을 더 떠올린다.

마졸라 (2017년~ 전북 0경기 출장)
점점 전설이 돼 가고 있는 선수다. 전북 최강희 감독이 지난 2월 마졸라를 영입하고 “적응만 잘 한다면 로페즈 이상의 활약을 보여줄 선수”라고 극찬하자 다들 마졸라가 K리그 최고 수준의 실력을 선보여 전설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마졸라는 현재까지 4개월 동안 단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하면서 또 다른 의미의 전설이 돼 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0경기 출장이라는 ‘레전드’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처음 마졸라가 영입됐을 당시에는 J리그 우라와 레즈와 중국 항저우 그린타운 등에서 활동, 아시아 무대의 경험이 풍부한 공격수라는 기대가 컸지만 이제는 “제발 한 경기에라도 나와 달라”는 팬들의 간절한 바람이 훨씬 더 크다. 마졸라에게 바라는 건 이제 경기에 나와 골을 넣고 전북을 승리로 이끄는 게 아니라 그저 경기에만이라도 한 번 모습을 비춰달라는 것이다.

전북 구단도 5월 복귀 예정이라던 마졸라의 복귀 예정 시기를 최근 6월로 한 달 더 늦춰 발표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마졸라의 부상 복귀 시점이 늦춰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지난 시즌 막판 무릎 인대 파열로 무려 6개월 재활이라는 큰 부상을 당한 로페즈를 대신해 마졸라가 영입됐는데 로페즈가 부상을 털고 마졸라보다 더 빨리 돌아올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로페즈 대체자로 영입된 마졸라로서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의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마, 졸라. 답답하네.” 심지어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여서 사회복무 요원으로 6개월 간 K3리그 화성FC로 떠난 한교원이 오는 7월 복귀할 예정인데 이제는 마졸라보다 한교원이 더 빨리 전북에서 뛸 수 있다는 예상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교원이 ‘정배’고 마졸라가 ‘역배’다.

지금껏 K리그에서 찬란한 역사를 썼던 외국인 선수들도 많다. 하지만 누구나 다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수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K리그에 도전하고 그 중에 극소수의 선수들만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우리가 한 번쯤 기억하는 선수들이라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은 소리 소문 없이 K리그 무대에서 사라진다. 오늘 소개한 사연들을 살펴본 뒤 그만큼 K리그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리그라는 점을 한 번쯤은 기억했으면 한다. 그리고 마졸라와 마쿠스는 아직 K리그에 속해 있으니 하루 빨리 데뷔전을 치러 이 불명예 ‘레전드’에서 탈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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