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안정환도 '축알못' 소리를 듣는다 ⓒ MBC '마이리틀텔레비젼' 캡쳐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전문가에 의해 정보가 생산된다. 사람들은 댓글을 단다. 그 과정에서 생산자는 축구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축구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규정한 '축알못 전문가'의 의견은 사장될 뿐만 아니라 비난의 대상이 된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믿고 거르는 OOO”다.

축구 기사의 댓글, 축구 커뮤니티, SNS에서 일어나는 담론을 즐겨보는 편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최근 흥미로웠던 점은 특정 전문가들을 향한 비난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축구 전문가들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의 경력이나 학위, 혹은 그들이 이뤄낸 성과나 성취보다도 ‘호불호’가 판단의 척도가 됐다. 전문가들은 대중의 호불호에 의해 차례대로 화형대에 올라가고 있었다.

전문가들의 전문성을 인정해야 한다

가장 먼저 전문가들도 실수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한미약품이 개발 중이었던 ‘올리타정’은 임상시험 중에 사망자를 만들어냈다. SBS는 세월호 인양 지연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고 이는 오보로 이어졌다. 패배한 축구 감독들은 “전술 운용에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한다”라고 답한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원숭이가 실수로 나무에서 떨어졌다고 원숭이 노릇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나름의 학식과 경험을 갖춘 고급인력들이며 그들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누가 뭐래도 한미약품은 그 ‘팔팔정’을 비롯해 암과 당뇨, 면역질환을 치료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기업이다. 축구 전문가들은 축구장에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영국에서는 '1991 축구폭력법'이 만들어졌다. 덕분에 지금은 피부색과 출신 지역에 관계없이 다양한 선수들이 녹색 그라운드 위를 누빌 수 있게 됐다.

악플로 곤욕을 치렀던 박문성 해설위원 ⓒSBS 모닝와이드 캡쳐

'축알못'이라 비난받는 축구전문가들

‘축알못’ 소리를 가장 많이 듣는 축구 전문가들은 해설위원이다. 축구를 모르는 해설위원이라니. 안정환은 전문가로서 올레 군나르 솔샤르를 미드필더라고 해석했다. 그는 솔샤르도, 자신도 미드필더라고 해석했다. ‘축알못’이라서가 아니라 전문가로서 자신의 세계관과 철학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박문성은 해설능력이 아닌 별개의 문제로 비난받는다. 각종 반칙 상황을 정확하게 보는 눈과 중계화면이 전환되는 상황을 해석하고 스토리를 전달하는 그의 장점이 ‘스렉코비치’와 ‘그래프’ 때문에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선수들의 중국 슈퍼리그 이적을 단순히 돈 때문에 선택했다고 비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대성은 2014년 FC서울을 떠나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할 당시 “매년 AFC챔피언스리그를 겪으며 만났던 슈퍼리그 팀들의 폼이 올라왔음을 느꼈다”라고 했으며 “외국 선수들의 기량 때문에 중국 선수들의 실력이 많이 가려진 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라운드에서 직접 뛰는 선수들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관심 없었다. 더 큰 무대에서 뛰겠다는 선수들을 향해 “돈 때문에 갔다”라는 꼬리표만 붙여놨다.

쉽게 말해 전문가를 향해 “감 놓아라, 배 놓아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비전문가'들이 전문가를 너무 쉽게 비난한다. 감독의 선발 명단은 승리를 위한 최선책이다. 훈련과정을 지켜보고 선수들의 몸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경기가 끝나고 감독의 전술과 선수 기용을 비평할 수는 있어도 시작 전부터 “이 선발 명단은 잘못됐다”라며 감독을 비난하기엔 근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악플로 곤욕을 치렀던 박문성 해설위원 ⓒSBS 모닝와이드 캡쳐

"나도 너만큼 똑똑해"

전문가들이 폄하되고 비난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웅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수석연구원은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비평적 역량을 가진 전문가가 상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소비자들이 직접 비평가로 나서고 싶어 하는 욕구도 그만큼 커졌다"라고 말한다.

톰 니콜스(56) 미국 해전대학(Naval War College) 교수의 저서 『전문지식의 죽음』에 의하면 “인터넷의 팽창으로 지식이 폭발해 누구나 어떤 문제에든 ‘나름’의 전문가가 됐으며, 민주주의의 평등 강조가 모든 의견이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것으로 오해돼 ‘나도 너만큼 똑똑해’라고 여기는 나르시시즘이 확산된 결과”라고 말한다.

니콜스 교수는 구소련 문제 전문가다. 트위터를 통해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비전문가’들에 화가 나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니콜스 교수는 "전문지식에 대한 '인정'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두렵다"며,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한 사람이 교육, 경험, 혹은 다른 성취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더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비단 미국인들만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블로그, 나무위키, 위키피디아를 근거로 한 지식은 자랑할만한 것이 못 된다. 출처의 신빙성을 의미하는 ‘공신력’이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 공신력을 가려내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약을 쓰지 않고 아이를 키우겠다는 ‘안아키’ 육아가 대표적이다.

과소평가된 축구전문가, 존중 필요해

대부분의 축구 전문가는 과소평가되고 있다. 그들은 축구라는 콘텐츠를 즐기는 소비자들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그들의 실수만을 부각하고 그들을 평가한다. ‘호불호’의 차이로 그들을 ‘축알못’ 취급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소비자들은 좀 더 생산적인 담론으로 그들을 비평하거나 비판해야 한다. “믿고 거른다”라는 것은 단지 전문가들을 비평하기 귀찮아하는 불성실한 사람들의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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