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K리그 서포터로 산다는 것

수원 FA컵 우승 세레머니
ⓒ 수원삼성 제공

[스포츠니어스 | 명재영 기자] 서포터(Supporter). 사전적 의미로는 특정 집단에 대한 지지자 혹은 팬을 의미한다. 축구장에서는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는 사람들로 표현된다. 더 나아가 K리그에서는 골대 뒤에서 유니폼을 갖춰 입고 탐(북)과 깃발 등을 이용해 응원가를 부르는 이들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K리그에서 서포터의 존재는 오랜 시간 동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이 논란은 최근 들어 더 커지는 모양새다. 도대체 우리의 축구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1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던 지난해 7월 2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18라운드 울산현대와 수원삼성 간의 경기가 끝난 뒤, 수원의 원정 서포터가 수원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고 충격적인 역전패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욕설과 야유 등 통상 상대 선수단에 하는 행동이 수원 선수단에 향했다. 결국 서정원 감독이 버스에서 나와서 팬들의 분노를 직접 받아내야 했다.

#2 리그 정규 라운드 마지막 경기가 펼쳐졌던 2016년 10월 2일, 이번엔 수원월드컵경기장(빅버드)이었다. 수원FC와의 더비에서 4-5로 패배하자 팬들의 잠시 묵혀놨던 분노가 다시 터져 나왔다. 경기가 종료되자 선수단 버스 통로로 팬들이 대거 몰려들었고 이 과정 속에 주장 염기훈이 나와 눈물까지 흘리며 가슴 아픈 상황이 연출됐다. 팬들은 염기훈을 감싸주었지만 같은 장소에 있었던 구단 프런트의 발언은 아직도 팬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3 지난 16일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수원과 광주FC의 경기가 0-0 무승부로 마무리되자 빅버드가 야유로 가득 찼다. 선수단이 서포터가 위치한 북측 골대 좌석으로 다가서는 순간 야유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야유뿐만 아니라 손가락 욕설 등 다소 거친 표현도 등장했고 이 과정에서 수원 최고참인 이정수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팬들과 대립하려는 행동을 취했다. 동료가 이를 말리면서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나나 싶었지만, 이튿날 이정수가 언론을 통해 은퇴 의사를 밝히면서 엄청난 논란거리가 됐다.

극과 극으로 나뉜 서포터스 행동에 대한 반응
K리그 서포터즈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수원의 프렌테 트리콜로가 얽힌 세 사건이다. 이 사건들은 많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팬들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까지 하겠냐’는 반응과 ‘선수들이 일부러 지는 것도 아닌데 팬이라면 응원만 해야 한다’는 두 반응이다. 어떤 의견이 맞는 것일까. 정답은 없다. 개개인의 주관적인 영역에서 발생했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사전적인 의미로 이 사건을 바라보면 후자에 가까울 수 있다. 서포터란 지지하는 팀을 응원하기 위해 뭉친 집단이다. 팀이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응원을 펼치고 혹여나 팀이 패배하더라도 다음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격려를 보내 선수단의 사기를 올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세상사가 그렇듯 항상 좋은 일만 볼 수 없는 것이 축구다. 최악의 경기력과 결과로 실망을 안겨주기도 하고 언론을 통해 프런트의 잘못된 운영 행태가 폭로되기도 한다. 이럴 때 서포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또한 정답은 없다. 서포터 내부에서도 끝까지 팀을 독려해야 한다는 의견과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일 땐 채찍도 들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뉜다. 수원의 사례는 후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한때 ‘레알 수원’으로도 불렸던 팀이 바닥에 떨어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은 수원 서포터에겐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수원 서포터의 극단적인 행동은 단순히 팀이 못해서일까? 수원이라는 팀을 오랜 기간 현장에서 지켜봐 온 입장에서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서포터스의 헌신성과 선민의식
수원 서포터가 축구계에서 인정받은 이유 중 하나는 헌신성이었다. 팀이 잘 나가면 어느 팀이건 팬들이 몰리게 된다. 반대로 팀이 부진에 빠지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썰렁해지는 게 우리 축구의 현실이다. 올해 수원의 평균 관중이 전년도보다 많이 줄어든 현실 속에서도 서포터가 지키는 북측 좌석은 여전한 모습을 보인다. ‘세오 타임’이라는 비아냥 속에서도 전국을 누비며 경기장을 지키고 있다. 그런 이들이 팀에 채찍을 들었다. 그렇다면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서포터라는 단어가 언급되면 가장 많이 따라다니는 단어가 선민의식이다. ‘일반 관중을 배척하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이유다. 서포터 중심의 K리그 문화가 적지 않은 관중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의견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것과 서포터가 문제라는 주장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물론 과도한 욕설이나 물리적인 충돌, 규정에 위반되는 행동 등은 근절되어야 한다. 축구에서 서포터가 가진 특별한 의미를 고려하더라도 결국 합법적인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서포터 중심의 응원 문화가 K리그 발전에 발목을 잡는다는 의견은 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서포터는 구단으로부터 돈을 받고 고용된 인력들이 아니다. 그들 또한 대립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라이트 팬’과 본질은 똑같다. 애초에 서포터는 K리그를 이끄는 존재가 아니라 팬의 한 그룹일 뿐이다. K리그의 발전은 프로축구연맹과 각 구단의 몫이다.

성남 서포터 걸개
성남FC 서포터들은 내외적으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 프로축구연맹

K리그 서포터로 살아간다는 것
지금 서포터가 둘러싼 환경은 어떤가. 적지 않은 언론이 서포터를 응원단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서포터의 존재 자체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일부 구단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들의 헌신적인 응원과 멋진 퍼포먼스는 관객의 시점에서 박수치며 바라보지만 무언가 사건이 발생하면 평론가의 입장에서 비평하기에 바쁘다. 서포터를 축구장에 배경음을 깔아주는 존재 정도로 인식하는 게 아닌지 의심될 때도 있다. 단적인 예로 서울이랜드를 들 수 있다. 구단이 창단될 당시 서포터가 없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냈지만 3년차인 현재는 서포터가 없어서 홈경기의 재미가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게 들린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서포터는 생각보다 많은 능력을 갖춰야 한다. 줄어드는 관중 수에 대한 개선 방향을 모색하며 머천다이징(MD) 상품의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한다. 응원 또한 어렵게 하면 안 된다. 외국어가 들어가거나 리듬이 어려우면 ‘겉멋만 잔뜩 든 서포터’라며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 온라인이나 언론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비평과 비난에 맞설 맷집 또한 갖춰야 한다. 이 글에서는 수원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모든 팀의 서포터가 같은 처지다. 성남과 울산의 서포터들은 지난해 팀의 감독을 물러나게 한 주동자로 찍혀 아직도 무차별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서포터=강성’이라는 프레임에 단단히 갇혀 손가락질을 당할 뿐이다.

이정수의 은퇴 선언 이후 만난 수원 서포터의 한 운영진은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도 다른 팬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팀을 사랑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정말 사랑하기에 때로는 회초리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회초리만 든 것도 아닌데 최근의 분위기는 다소 아쉬운 게 사실입니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단순히 팀이 지거나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축구니까 질 수도 있죠. 다만 팀의 한 축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모습에 화가 날 뿐입니다. 하지만 무슨 상황이 되었건 내 팀이기에 끝까지 함께할 겁니다”

hanno@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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