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 홈 경기장을 채운 관중의 모습. 이들의 함성을 듣고 싶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나는 축구장에 가면 기자석에 앉는 대신 일반 관중석에 종종 앉는다. 일반 관중석의 반응도 보고 분위기도 익히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기 위해서다. 테이블까지 마련된 기자석도 좋지만 그래도 더 좁고 불편한 일반 관중석에서 느끼는 게 더 많다. 그러다가 인사를 건네는 축구팬과 맥주를 한잔하기도 하고 양 팀 전력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일반 관중석에는 거나하게 술에 취한 아저씨가 툭툭 내뱉는 한 마디로 주변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한다. 특히나 과거 모란종합운동장의 아저씨들은 입담이 대단했다. “내가 마 신태용이 꼬마 때부터 축구 봤는데 야들 저렇게 가르치면 되나. 태용이 네가 나와서 보여주래이.” 이게 바로 일반 관중석의 묘미다.

금기시 되던 앰프 응원이 돌아왔다

FC서울과 FC안양의 지난 FA컵 32강전도 일반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역사적인 경기에 대한 일반 관중의 반응이 궁금해서였다. 이날 만큼은 노트북도 가져가지 않았고 치킨과 맥주를 사 들고 일반 관중석에 앉았다. 딱히 관중을 인터뷰할 것도 아니었지만 이 역사적인 현장을 지켜보는 일반 관중의 모습을 기억 속에 담고 싶었다. 그런데 경기 시작 전부터 내 이런 바람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일반 관중석 앞에 세워 놓은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은 응원단장이 90분 내내 시끄러운 응원을 하는 것이었다. 옆에는 두 명의 아리따운 여성 응원단이 시종일관 박수를 유도했고 응원단장은 단 1분도 쉬지 않고 계속 마이크를 잡은 채 무슨 말을 했다. 옆 사람과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마이크 소리와 음악 소리는 시끄러웠다. 자리를 한참 옆으로 옮겼음에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FC서울만 그런 게 아니다. 요즘 들어 K리그 경기장에서는 이런 앰프 응원이 도를 넘고 있다. 얼마 전 찾아간 서울이랜드FC 홈 구장 잠실종합운동장도 마찬가지였다. 여기는 90분 내내 앰프를 켜고 응원하는 건 아니지만 장내 아나운서가 중요한 순간마다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로 응원을 유도했다. 세트피스 상황이 되면 여지없이 장내 아나운서가 외치는 “골! 골!” 소리가 귀를 괴롭혔다. 아마 5분마다 한 번 꼴은 그랬던 것 같다. 한 명이 마이크를 잡고 외치는 함성은 민망하기도 했고 불편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 찾았던 제주유나이티드의 홈 경기 역시 비슷했고 상주상무도 경기 내내 앰프를 이용해 관중석의 호응을 유도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구단마다 확성기와 앰프, 음향기기 등을 이용해 소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고 있다. 일반 관중석에서 찬스를 놓칠 때마다 나오던 탄성도 이제는 쉽게 들을 수가 없다.

K리그에서 금기시 되던 이런 음향기기 사용은 몇 년 전부터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일체 금지됐던 음향기기 사용은 일반 관중의 응원 유도를 위해 서포터스의 응원 구호를 따라하자는 취지로 등장했지만 이제는 팬들의 목소리를 다 뒤덮을 정도로 일반화 되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일반 관중이 무조건 서포터스 응원을 따라하자는 게 아니다. 전 관중의 서포터스화도 아니다. 일반 관중도 그들 나름대로 즐길 권리를 존중한다. 서포터스의 어려운 ‘알레’, ‘포르자’ 등의 구호를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의 응원 유도건 그게 귀를 찢는 듯한 음향기기로 행해지는 건 원치 않는다. 지금은 촌스럽게 느껴질지 몰라도 ‘아리랑 목동’을 부르건 ‘삼삼칠 박수’를 치건 음향기기 사용은 최대한 자제했으면 좋겠다.

FC서울 홈 경기장에서 앰프를 이용해 응원을 유도하고 있는 응원단의 모습.

앰프 응원으로 분위기 살릴 수 있나?

이건 연맹 규정에도 있다. 프로축구연맹 규정 제6장을 보면 경기규정 위반 항목으로 ‘확성기를 통해 경기 진행에 지장을 주거나 방해하는 행위는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확성기는 경기 진행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중석을 향하여 응원 유도용으로만 사용 가능하다’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경기 진행에 지장을 주는 정도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 한 K리그 현직 선수는 이번 취재 과정에서 “과도한 앰프 사용으로 선수들끼리 의사 전달이 안 되는 경우도 잦다. 그라운드에서도 앰프의 시끄러운 소리가 다 들린다”고 밝혔다. 확성기가 관중석을 향해 응원 유도용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이게 선수들의 경기에도 지장을 끼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뿐만 아니라 대한축구협회가 주관하는 FA컵에는 아예 ‘제19조 (팀, 임원, 지도자 및 선수에 대한 제재)’ 규정에 ‘경기 중 앰프(음향기기 일체) 뿐만 아니라 각종 호각류, 레이저 빔 등 기타 경기 진행 및 선수단 안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협회에서 승인하지 않은 도구를 사용한 응원은 금지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협회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고 명시돼 있다. FA컵 규정에는 앰프와 음향기기 등을 지목하며 이 응원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K리그 경기 도중 선수들의 플레이에 지장을 주는 정도의 음향기기 응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고 FA컵에서는 아예 금지한다고 명시된 음향기기 응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지금껏 음향기기 사용으로 구단이 징계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규정을 떠나 축구장에 음향기기를 이용한 소음이 그만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규정 때문에 이런 음향기기 사용을 자제하자는 게 아니라 축구장의 매력이 음향기기로 반감되는 게 달갑지 않아서다. 무대에 오른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귀가 찢어질 듯한 고함을 치면서 분위기를 유도하는 건 다른 종목에선 해도 축구장에서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기 분위기와는 상관없는 경쾌한 음악이 관중의 함성까지 묻어버리는 일도 축구장에서는 없었으면 한다. 그런 건 클럽이나 술집에서 해야지 경기장에서 해야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축구장에서 모든 관중이 바라보는 무대는 선수들이 서 있는 그라운드여야지 관중석 앞에 우뚝 솟은 응원단석이 되어선 안 된다. 앰프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고 해 썰렁했던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FC서울 홈 경기장에서 앰프를 이용해 응원을 유도하고 있는 응원단의 모습.

수천 관중을 이기는 앰프 하나

나는 인천유나이티드의 경기장 분위기가 참 좋다. 인천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 두 명의 장내 아나운서가 그라운드로 내려가 일반 관중에게 응원 구호를 소개하고 시범을 보인다. 그게 전부다. 그리고는 경기가 시작되면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쯤 한 번씩 마이크로 응원을 유도한다. 90분 내내 귀를 찌르는 음향기기가 없지만 인천의 경기장 분위기는 음향기기를 쓰는 그 어떤 구단보다도 못하지 않다. 세트피스 상황마다 의무감으로 마이크를 잡고 관중을 바라보며 “골! 골!”을 외치라고 강요하지 않지만 일반 관중도 알아서 흥을 내고 알아서 소리를 지를 수 있다. 경기 도중 옆에 앉은 친구와 수다도 떨어야 하는 법인데 마치 클럽에서 헌팅을 할 때처럼 크게 귓속말을 해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앰프를 이용한 응원은 큰 스트레스다. 5만 관중의 함성은 90분 내내 듣고 있어도 귀가 불편하지 않지만 한 명의 앰프 응원은 몇 분만 들어도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수백, 수천 명의 서포터스가 동시에 뿜어내는 구호나 노래가 전기를 타고 흐르는 음향기기 속 응원단장 한 명의 목소리에 묻히는 건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건 두 주먹으로 싸우는 격투기 링 위에서 혼자 무기 들고 싸우는 꼴이다. 많은 관중이 아니어도 몇몇 관중이 지르는 함성과 구호, 때론 푸념이 선수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분위기가 정말 스포츠 경기장의 분위기 아닐까. 굳이 꼭 일반 관중도 서포터스의 응원을 따라하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들이 선수들을 향해 내뱉는 애정 섞인 푸념도 응원의 한 부분인데 우리는 지금 이 소소한 응원 요소를 거대한 앰프 하나로 이끌어 가려고 한다. 서포터스와 일반 관중이 외치는 구호가 같지 않아도 상관없다. 서로 다른 응원을 하다가 골 찬스가 되면 목소리가 하나로 뭉쳐서 환호성이 되면 그뿐이다. 90분 내내 응원단장이 잡은 마이크 하나로 일반 관중은 응원의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음향기기의 괴력은 양 쪽 서포터스의 응원 소리까지 다 덮어버린다. 수백, 수천여 명의 관중이 일제히 내는 구호를 마이크 하나 잡았다고 한 명이 이겨버리면 이 얼마나 불공정한 일인가. 그리고 중요한 순간마다 “골! 골!”을 외치라며 누군가 마이크를 잡고 강요하는 것도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다. 경기는 1분 1초마다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는데 누군가 앰프를 틀고 응원을 유도한다고 해 이 모든 순간을 다 잡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술 취한 아저씨들이 ‘아리랑 목동’을 부르고 꼬마들이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 하나에 까르르 웃는 것도 다 경기의 일부다. 자발적으로 부는 부부젤라도 경기의 일부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게 앰프 응원 하나로 획일화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과도한 음향기기 응원은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요소이기도 하다.

K리그의 앰프 응원, 이제는 그만

어느 순간부터 K리그를 점령해 가고 있는 앰프 응원 문화가 더 자리 잡으면 그때부터는 양 팀 팬들이 서로 더 큰 스피커를 동원해 경쟁할 수도 있다. 요즘만 해도 양 쪽 팀 응원가와 일반 관중석 앰프 소리가 뒤섞이면 이게 축구장에 와 있는 건지 시장 바닥에 와 있는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건 클럽이지 축구장이 아니다. K리그에서 앰프를 끄는 건 관중이 많고 적고, 서포터스와 일반 관중이 함께 응원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연맹에서도 앰프 사용 규제 규정을 만들어야 하고 구단들도 자발적으로 앰프 대신 진짜 일반 관중이 즐길 수 있는 응원이 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K리그에서 앰프가 사라졌으면 한다. 그리고 이 앰프를 대신해 관중의 진짜 목소리가 채워졌으면 한다. 경기장이 세상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 될 필요는 없다. 축구장은 그냥 축구장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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