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에 던지는 질문, ‘우리팀 가훈은 뭐예요?’

감독은 거들 뿐 ⓒ맨시티 YouTube 공식채널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가훈(家訓). 집안의 규범을 일컫는 말이다. 집안의 규범은 곧 그 가정의 정체성이 되고 철학이 된다. 이 철학적인 문장들은 집안의 벽에 걸릴 수도 있고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들은 잔소리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한 가정의 ‘가풍’이 만들어진다.

요즘 K리그 매우 시끄럽다. 우리 대표는 얼마 전 처음으로 K리그가 재미없다고 썼다. 다른 언론들도 이에 질세라 “감독을 바꿔야 한다”, “외국인 감독이 필요하다”, “유소년 정책이 필요하다” 등 말이 많다. 그럴수록 팀이 추구하는 축구 철학이 궁금했다. K리그 구단들의 가훈은 뭘까. 그들의 축구 철학은 어떻게 발현되고 있을까.

그런데 잘 모르겠다

가정의 철학은 가훈이라는 형태로 문장이 된다. 팀의 정체성과 철학도 하나의 문장으로 접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K리그 구단들의 철학이 나타나는 문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적어도 구단 홈페이지의 ‘구단 소개’ 혹은 구단주의 ‘인사말’에서는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봐도 철학을 담은 문장이 나타난 구단들은 몇 없었다. 축구단을 운영하는 구단이 구체적으로 ‘어떤 축구를 하겠다’가 뚜렷하지 않았다.

반면 구단의 목표는 비교적 잘 나타나 있었다. 문제는 이 목표들이 한국축구의 모범답안이라도 되는 듯 뻔하다는 것이다. “팬들을 우선으로 하겠다”, “유소년 정책에 힘쓰겠다”라는 목표가 그랬다. “한국을 넘어 세계로(아시아로)”와 같이 미래를 향한 포부는 밝히고 있다.

이는 경영이념에 가깝다. 특히 재정문제가 거론된 시·도민 구단들은 구단 비전에 “투명한 재정 건전성”을 내세운다. 부천의 홈페이지에 명시된 구단 비전은 마치 기업 비전을 보는 듯했다. 부천의 ‘핵심가치’는 “순수 시민구단으로서 세계적인 롤모델이 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전문성과 자부심으로 일해”야 한다. ‘자소서’를 100개 이상 써본 ‘취준생’들은 공감하겠지만 부천의 비전은 어딘가 뜬구름 잡는 듯한 이야길 하고 있을 뿐이다.

부천의 비전. 무슨 축구를 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다 ⓒ부천FC 홈페이지

그나마 알 것 같은 팀들

구단이 추구하는 축구 철학을 나타내는 것이 팀컬러다. 전술을 팀컬러로 가장 잘 정착시킨 팀은 전북이다. 전북의 경우 막강한 공격력을 기반으로 한 축구를 위해 노력한 결과 ‘닥공’이라는 확실한 팀컬러를 새겼다. 후반 교체로도 마르지 않는 공격의 줄기는 전북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구단이 추구하는 가치를 문장으로 잘 드러낸 구단도 있다. 수원 삼성은 ‘축구수도’라는 그들의 자부심을 걸고 구단 홈페이지에 굵은 글씨로 “Home of Football”이라고 적었다. FC서울의 경우는 지난 시즌 큰 파급효과를 냈던 “Champion Like Always”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감독을 거치면서 팀 전술의 변화는 있었지만 그들이 원했던 것은 항상 정상이었다. 국군체육부대인 상주 상무는 그야말로 ‘수사불패(雖死不敗)’에 걸맞게 뛴다. 가장 팀컬러가 잘 나타나는 팀이다.

인천의 경우는 조금 특이하다. 김도훈 감독의 ‘늑대축구’, 김봉길 감독의 ‘봉길매직’이라는 매력적인 텍스트로 K리그에서 주목을 받았다. 주목하고 싶은 점은 매번 감독이 바뀌고 상위 스플릿과 강등권을 넘나들면서도 그들의 팀컬러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천의 경우 매우 끈끈한 축구를 하며 승리를 위해서 늘 악착같이 뛰는 일관된 모습들이 나타난다. 굳이 정리하자면 인천의 축구는 “끈질긴 축구”다.

다양한 철학을 가진 팀이 맞붙을 때 리그는 재밌어진다. 공격을 지향하는 팀, 수비를 지향하는 팀, 혹은 늘 중위권과 잔류를 목표로 강팀에 단단하며 약팀엔 잔혹한 팀까지 있어야 한다. 피지컬 싸움을 하는 팀, 높이를 이용하는 팀, 스피드를 이용하는 팀이 있어도 재밌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애슬레틱 빌바오처럼 순혈주의 팀을 꾸리거나 셀틱과 레인저스처럼 종교적인 팀이 있어도 좋다.

울산의 팀컬러로 영광의 시대를 이끌었던 김호곤 감독 ⓒ울산현대 제공

철학 잃은 울산, 팀컬러와 성적 두마리 토끼를 놓쳤다

반면 K리그 구단들은 다 똑같다. 클래식, 챌린지 22개 구단의 철학은 ‘성적’이다. 우승이니 상위 스플릿이니 아시아 티켓이니 하는 것들은 ‘성적’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목표’일 뿐이다. 철학이 모두 똑같으니 똑같은 축구를 할 수밖에 없다. 똑같은 경기를 계속 보고 있으니 재미가 없다는 소리가 나온다. 경기의 승패는 수비수 실책이나 심판의 오심으로 갈라진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특출난 선수가 있으면 이길 수 있다.

울산의 철퇴 축구는 색깔이 많이 죽었다. 김호곤 감독과 함께 끝났다. 이후 조민국, 윤정환 감독을 거쳐 김도훈 감독까지 울산을 맡고 있지만 지금은 아예 다른 팀이 됐다. K리그는 감독이 바뀌면 팀컬러뿐만 아니라 팀의 시스템 자체가 바뀐다. 조민국 감독의 경우 김호곤 감독의 색깔을 지우고 자신의 색깔을 입히면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려고 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울산의 팀컬러가 완전히 해체되었으며 성적도 얻어내지 못했다. 조민국 감독은 결국 울산에 머무를 수 없었다.

구단이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이 없을 때 이런 결과가 나타난다. 페이스북의 한 유명 페이지 관리자는 K리그 구단의 감독 선임과정을 “야망없는 무사안일주의”라고 표현했다. 이영표는 한 매체를 통해 기술 이사(Technical Director)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구단이 감독을 뽑을 때도 기술 이사의 역할이 필요하다. 지금 K리그 구단들은 우리 팀의 축구철학과 가장 잘 맞는 감독이 누구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쉬고 있는 감독 중에 누가 가장 낫나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라고 말했다.

울산이 김호곤 감독의 후임을 정할 때 울산의 철학에 공감하고 선수비 후역습 축구를 실현할 수 있는 감독을 내정했다면 양동현이 아직 울산 유니폼을 입고 이번 시즌 득점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공격과 득점을 추구한다”라고 써놓으면 뭐하나. 국내에 적당한 감독이 없다면 외국인 감독을 데려왔어야 했다.

이영표는 기술 이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영표 페이스북 계정

팬들에게 ‘우리 축구’를 알려줘야 한다

결국 팀마다 ‘우리 축구’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아이덴티티’가 없다. 감독이 바뀔 때마다 전술이 바뀌고 감독에게 맞는 팀이 된다. 분명 유니폼 색깔은 그대로인데 감독이 바뀌더니 전혀 다른 축구를 한다. 결과가 잘 나오면 명장, 반대는 경질이다.

축구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축구다. 대부분의 K리그 구단이 내세우는 ‘목표 모범답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 축구’가 뭔지 확실히 정해야 한다.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팬들을 이해시킬 수 있고 팀 철학에 어울리는 유소년 선수들을 육성할 수 있다. 다양한 철학을 먹고 자란 유소년들은 한국축구의 자산이 된다.

클럽의 ‘가훈’이 이렇게 중요하다. 각 구단이 팬들에게 가훈을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 우리 집은 예전부터 가훈을 나보고 정하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이 모양 이 꼴이다. 오늘도 마감이 늦었다.

intaekd@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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