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여자축구 원정기 “평양 떠나며 ‘살았다’고 박수쳤죠”

남북 축구
평양 원정에서 물러서지 않고 당당한 경기를 펼친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 명단. ⓒ조선중앙TV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대한민국 여자 축구 대표팀이 북한 평양에서 역사적인 경기를 치르고 돌아왔다. 과연 이들의 평양 생활은 어땠을까. 일반인은 가볼 수 없는 평양에서 열흘 간 생활하며 2018여자아시안컵 B조 예선에서 당당히 조 1위를 차지, 본선 진출 성공이라는 멋진 결과를 안고 온 대표팀 수비수 임선주(인천 현대제철)에게 물었다. 미스터리한 도시 평양에서 치른 역사적인 경기에 대한 뒷이야기를 지금부터 공개하려 한다.

신기하고 겁났던 평양과의 첫 만남
지난달 29일 북한 측은 대한민국 여자축구 대표팀 신변 안전을 보장하는 담보서를 통일부로 보냈다. 아시아축구연맹을 통해 대한축구협회로도 이 담보서가 전달됐다. 북한이 “대한민국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의 신변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이었다. 이 담보서를 받으면서 여자 대표팀은 미지의 땅 북한 평양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하지만 서울에서 200km에 불과한 평양까지 가는 데는 무려 26시간이 걸렸다. 중국 베이징에서 1박을 하고 평양으로 가는 복잡한 경로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선수단은 베이징 대사관 직원에게 휴대 전화를 모두 반납했다. 북한에서는 휴대 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른 것들이 필요했다. “책도 가져가고 보드게임도 챙겼어요. 훈련이 끝나면 선수들하고 시간을 보낼 만한 것들을 찾았죠.” 대표팀은 그렇게 지난 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임선주는 평양에서의 첫 장면을 이렇게 회상했다. “처음에는 겁도 났죠. 모든 게 신기하기도 했고요. ‘여기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이 사람들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한 게 많았습니다.” 다른 선수들도 임선주와 마찬가지로 평양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공항에서 숙소인 양각도 호텔까지 가는 버스에 오르자 북측 안내원이 말했다. “사진 찍으셔도 됩네다.” 의외였다. 북한에서는 모든 게 통제될 줄 알았는데 대표팀 선수들의 사진 촬영까지도 허락한 건 의외의 일이었다. 몇몇 선수들이 창밖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데 곧바로 북측 안내원의 표정이 변했다. “그건 찍으면 안 됩네다. 지우시라요. 그러다가 집에 못 돌아갈 수도 있습네다.” 북한 주민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자 곧바로 제지했다. 선수들은 이때부터 아예 사진 촬영을 포기했다. ‘우리가 정말 북한 땅에 와 있구나’라는 걸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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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1승 2무 14패로 북한에 밀렸던 대한민국은 이번 원정 경기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중계 방송 화면 캡처

양각도 호텔에서의 생활
임선주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것만 찍으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알고 봤더니 15분이면 가는 길을 좋은 것만 보여주겠다면서 돌아간 거라고 하더라고요. 15분 거리를 30분 동안 돌아갔죠.” 차창 밖에 보이는 건 대부분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는 대형 선전 문구였고 고층 빌딩들이었다. 안내원이 이런 걸 찍으라고 강요 아닌 강요한 것이다. 그렇게 선수단은 서울 여의도처럼 대동강 가운데 양각도란 섬에 자리 잡은 양각도 국제호텔에 도착했다. 47층짜리 고층 건물에 도착하자 선수단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렇게 높은 건물일줄은 몰랐어요. 외형은 정말 좋아보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부에 들어가보니 우리나라 시골 여관 수준이었어요.”

27년 전 남북통일축구 당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당시 대표팀 이명화는 숙소에서 혼잣말로 “파인애플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다음 날 방안에 파인애플이 놓여 있는 깜짝 놀랄 만한 경험을 했다. 방 안에 도청장치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보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실제로 당시 정부 관계자는 “도청 장치가 있을 수 있으니 텔레비전을 크게 틀고 이야기하고 최대한 김일성 이야기는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방마다 도청장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을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천진난만한 선수들은 장난을 쳤다. “여기 방에 수건 좀 갖다 주세요. 호호.” 삼삼오오 모인 선수들은 허공에다 대고 외치며 꺄르르 웃었다. 물론 그렇다고 정말 수건이 배달된 건 아니었다.

선수들은 숙소 텔레비전을 틀어 보고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조선중앙TV와 중국 채널, 러시아 채널, 알 자지라 영어 방송 등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잠깐 채널을 돌려보고는 텔레비전을 껐다. 볼 게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불편한 건 휴대전화가 없다는 점이었다. 여가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휴대전화가 없으니 아침마다 전쟁이었다. 알람 시계가 따로 없던 선수들은 휴대전화 알람 기능을 쓸 수 없어 고생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게 선수들을 더 돈독하게 해주는 걔기가 되기도 했다. 임선주는 이렇게 말했다. “아침마다 서로 먼저 일어난 동료들이 시간에 맞춰 호텔 전화를 이용해 옆방으로 전화를 해서 깨워줬어요. 그렇게 서로를 챙겨야 했죠.”

평양에 울려 퍼진 애국가와 태극기
“처음에는 생소한 환경이 신기하기도 했고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며칠 지나다보니 신기한 것도 덜했고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더라고요.” 하지만 역시나 평양 생활을 하며 가장 좋았던 건 음식이었다. 선수단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밥맛’의 칭찬했다. “밥이 너무 맛있었어요. 조미료도 거의 안 들어가고 마치 시골에서 할머니가 해주는 밥 같았거든요. 평양에서의 ‘밥맛’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또한 대한민국 선수단과의 대화를 완강히 거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친절하게 웃으며 대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대부분은 살짝 이들을 경계했지만 그러면서도 친절함을 유지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맞대결은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다. 이 둘을 빼놓고는 상대적인 약체들과 싸웠기 때문이다. 골득실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다른 경기에서 최대한 많은 점수차로 승리한 뒤 남북전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그런데 북한 관중은 대한민국과 인도와의 경기에서 일방적으로 인도를 응원하며 대한민국을 경계했다. 남과 북의 맞대결이 펼쳐지던 날에는 무려 5만여 명의 관중이 경기장에 들어차 일방적인 응원을 펼치기도 했다. 선수 입장 전 대한민국 선수들끼리 “꼭 이기자”고 결의를 다지자 바로 옆에서 살벌한 소리가 들려왔다. “죽이자.” 북한 선수들이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들리게 일부러 강한 멘트를 날린 것이었다. 그러자 대한민국 선수들도 “죽여”라고 대응했다. 경기 전 악수 때도 북한 선수들은 대한민국 선수들을 툭툭 치고 가면서 신경전을 펼쳤다. 전의가 불타는 경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평양 땅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애국가를 크게 불렀다. 임선주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애국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평양에서 애국가를 들으니 애국심이 솟아 오르더라고요.” 5만여 관중이 내뿜는 함성은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선수들은 이미 이를 예상해 철저히 대비 훈련을 해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한국에 있을 때부터 소음 훈련을 했죠. 북한 국가나 응원가를 크게 틀거나 응원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훈련했어요. 서로 대화가 안 통할 정도로 소음이 극심한 상황에서의 극복 방법을 이미 준비했죠. 북한 관중의 함성이 크긴 했지만 소음 훈련 때보다는 작았어요. 더 편하게 경기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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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열린 역사적인 남북 대결의 모습. ⓒ조선중앙TV

치열했던 경기, 전쟁 같았다
하지만 경기 초반 플레이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결국 전반 5분 만에 북한에 페널티킥을 내주고야 말았다. 이대로 골을 내주면 5만여 관중의 기세는 더 들끓을 게 분명하고 더 어려운 경기를 펼쳐야 했다. 그런데 이 순간 골키퍼 김정미가 상대 페널티킥을 막아냈고 재차 공을 향해 달려들던 북한 선수는 발로 공이 아닌 김정미의 얼굴을 가격했다. 이때 임선주가 나섰다. “너무 화가 났어요. 아무 생각 없이 그 상대 선수를 밀쳤습니다.” 임선주가 상대 선수와 충돌하자 다른 선수들도 다같이 몸싸움을 했다. 서로 욕을 하며 밀쳤다. 5만여 북한 관중이 들어찬 김일성 경기장에서 단 11명 뿐인 대한민국 선수들은 ‘깡’ 좋게 맞붙었다. 북한을 이기고 아시안컵 본선 무대에 가자는 의지가 강했다.

임선주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서웠어요. 그런데 그때는 경기에만 집중해서 겁이 없었죠. 관중의 함성과 야유도 들리지 않던데요. 다들 저한테 미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충돌 이후 대한민국 선수들은 자신감을 찾았다. 전혀 밀리지 않는 경기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반전의 계기였다. 경기는 다른 축구 경기 때와 달랐다. 임선주는 경기를 이렇게 평가했다. “솔직히 내용이 충실한 경기는 아니었어요. 경기 내내 신경전을 펼치고 충돌하고 다퉜던 기억이 더 많이 나요. 원래 우리는 북한만 만나면 늘 경기 내내 거친 플레이에 당하기만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도 그대로 맞받아쳤어요. 90분 동안 정말 전쟁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얌전했던 대한민국 선수들의 변신에 북한도 당황한 듯했다.

전반 추가 시간에 한 골을 내준 대한민국은 후반 30분 귀중한 동점골을 뽑아냈다. 장슬기가 오른쪽을 파고든 뒤 날린 오른발 슈팅이 상대 수비수를 맞고 굴절된 뒤 북한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경기 전부터 정부 관계자가 “골을 넣어도 최대한 세리머니를 자제하라”고 했지만 선수들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서로 부둥켜 안고 기뻐했고 5만 북한 관중은 쥐죽은 듯 조용해 졌다. 그렇게 경기는 결국 1-1 무승부로 끝났다. 골득실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던 대한민국이 부담스러웠던 홈팀 북한과 비긴 건 승리 만큼이나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임선주는 경기 도중 계속 충돌했던 상대 공격수에게 다가갔다. 임선주와 충돌해 입에서 피까지 났던 이 선수에게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선수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대로 그라운드를 빠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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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 김정미가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모습. ⓒ조선중앙TV

베이징 도착하자 “살았다”고 박수 치기도
그만큼 북한은 대한민국전 무승부가 뼈아팠다. 적지에서 대단한 성과를 이룬 대표팀은 북한전이 끝난 뒤 라커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북한 측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아 이것도 눈치가 보였다. “환호하는 장면을 찍었는데 소리는 못 내고 소리 내는 시늉만 했어요.” 결국 대한민국은 북한전 선전 덕분에 골득실에서 북한을 밀어내고 아시안컵 본선 진출 티켓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북한을 떠나기 하루 전에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미 대회 기간 동안 이런 이야기가 흘러 나왔지만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부 관계자가 선수들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협회 관계자가 북한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선수들에게 뒤늦게 이 소식을 전했다.

선수들이 기대하는 마지막 일정만이 남아 있었다. 바로 평양 냉면을 먹는 것이었다. 가장 유명한 냉면집인 평양 옥류관에 가 냉면을 먹고 곧바로 공항으로 이동해 북한을 떠날 예정이었다. 선수들은 훈련 도중 냉면 내기를 하기도 했다. 미리 냉면 가격까지 다 알아 놓고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다음 냉면 먹으러 가자”고 약속하기도 했다. 옥류관 식사 예약도 미리 해 놓았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이 옥류관 식사가 취소됐다.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워낙 현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결국 선수단은 양각도 호텔에서 냉면을 먹는 걸로 대신해야 했다. 임선주는 냉면 맛을 이렇게 기억했다. “맛은 있었어요.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지 기대 만큼의 맛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옥류관 냉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선수단은 평양 냉면으로 평양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해결했다.

미국의 공격설 등 정세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선수들은 “이러다 한국에 못 가는 거 아니냐”고 불안해 하기도 했다. 그런데 평양에서 중국 항공기를 탄 선수단은 안심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선수단 뿐 아니라 홍콩 선수들도 같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열흘 간의 치열하고도 추억 쌓인 평양 생활을 마치고 아시안컵 본선 진출 티켓을 손에 넣은 채 당당히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선수들은 비행기가 베이징에 내리자 “살았다”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를 쳤다. 가슴 졸였던 평양 원정은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됐다.

그들의 멋진 성과에 박수를
5만여 명의 일방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은 전혀 밀리지 않으며 멋진 성과를 일궈냈다. 그녀들이 이뤄낸 결과에 박수를 보낸다. 방송 중계도 없을 정도로 관심이 부족했지만 선수들은 악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또한 앞으로는 축구를 통해 남과 북이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km에 불과한 이 거리를 돌고 돌아 26시간에 걸쳐 가야 한다는 건 참 슬픈 일 아닌가. 평양 원정 경기가 끝난 뒤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고 자동차를 타고 돌아오는 코스가 일상이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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