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팬과 충돌한 뒤 이정수는 은퇴를 선언했다. 과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까.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흔들리는 수원삼성이 또 다른 악재를 맞았다. 베테랑 수비수 이정수가 일부 팬들과 충돌했고 이후 팀을 떠나며 은퇴하겠다는 소식까지 전해진 것이다. 수원삼성의 최근 분위기가 얼마나 엉망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5무 1패로 올 시즌 개막 이후 K리그 클래식에서 단 한 차례도 승리하지 못한 수원삼성이 이런 분위기에서 반등할 가능성은 더더욱 없어 보인다. 팬들도 이정수의 은퇴 선언에 대해 갑론을박하고 있다. 하지만 이정수는 이렇게 은퇴하면 안 되고 팬들도 이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 수원삼성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선수 향한 팬들의 폭력, 용인될 수 없다

일단 가장 먼저 짚고 싶은 건 일부 팬들의 과격한 행동이다. 지난 광주전이 끝난 뒤 일부 팬들은 실망스러운 경기력에 머물고 있는 수원삼성 선수들을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행동이다. 지지하는 팀이 나태함에 빠져 있거나 실망스럽다면 이런 불만 표시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일부 팬들이 손가락으로 욕을 하면서 맥주캔까지 그라운드로 던졌다는 점이다. 이런 행동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잘못했다. 아무리 경기력이 형편없어도 욕과 함께 선수들에게 이물질을 던진다는 건 그 누구도 용서 받을 수 없다. 이정수는 손가락 욕을 하고 맥주캔을 던진 팬들과 설전을 벌이다 염기훈의 제지로 겨우 돌아갔다.

간단히 생각하면 된다. 선수들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은 팬들도 하면 안 된다. 만약 선수가 관중석을 향해 손가락 욕을 날리거나 물병을 집어 던진다면 이건 징계는 물론 그라운드 밖에서도 팬들과 여론의 혹독한 비판을 받을 것이다. 아마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성격 좀 있는 팬들은 그라운드로 뛰쳐 나가 선수와 한판 붙을 수도 있고 선수의 SNS에 몰려가 험한 소리를 내뱉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관중이 선수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고 정당성이 생기는 건 아니다. 쉽게 생각하자. 선수가 관중을 향해 해선 안 될 행동은 팬들도 선수에게 해서는 안 된다. 뭐 야유 쯤이야 정당한 불만 제기로 볼 수 있는데 이 선을 넘으면 안 된다. 팬은 왕이 아니다.

또 다르게 생각해 보자. 경기장 밖에서 해선 안 될 행동은 경기장 안에서도 안 된다. 거리를 지나다가 누군가에게 손가락 욕을 하거나 맥주캔을 던질 정신 나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경기장 안이라고 해서 용인될 수는 없다. 경기장 안과 밖은 똑같은 곳이다. 유니폼을 맞춰 입었다고 해 군중심리로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고 너그럽게 봐줘서는 안 된다. 이건 일부 수원 팬들이 100% 잘못한 일이다. 지난 상주상무와의 홈 경기를 직접 경기장에서 지켜봤는데 많은 팬들은 수원삼성의 실망스러운 경기력에 야유를 퍼부었다. 그쯤이면 충분하다. “쎄오 퇴진”이라는 구호도 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욕설과 이물질 투척은 안 된다. 정당한 범위를 벗어나면 그 메시지조차 흐려진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수원삼성은 이정수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프로축구연맹

이정수는 이렇게 은퇴하면 안 된다

하지만 이정수도 이런 식으로 은퇴하는 건 반대다. 이제 선수 생활의 마무리를 해야 할 선수가 불미스러운 일로 이렇게 축구화를 벗는 건 자신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행위다. 이정수가 누구인가. 국가대표로도 큰 기여를 했고 이전까지는 수원삼성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선수다. 2006년 K리그와 FA컵에서 수원삼성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던 이정수는 2008년에는 리그컵과 K리그에서 수원삼성이 모두 우승을 차지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J리그와 카타르 등을 거친 뒤에는 수원삼성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며 다시 팀으로 복귀했다. 알사드 소속으로 수원삼성과 경기를 펼치다 양 팀의 주먹다짐이 있자 옛 동료와 팬들에 대한 의리로 스스로 경기장을 떠나기도 했다. 귀감이 되기에 충분한 선수다.

K리그 선수들은 사적인 자리에서 우스갯소리로 “이정수가 한국 선수 중에는 최고의 현금 부자일 것”이라고 한다. “카타르에서 입국할 때마다 돈 뭉치를 가방에 잔뜩 넣고 온다”는 확인 안 된 소문도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카타르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더 아쉬울 것도 없는 선수지만 나는 그가 수원삼성으로 복귀해 현역 마무리를 준비한다는 소식에 감동을 느꼈다.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연봉이지만 그는 부 못지 않게 명예도 중시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정수가 이렇게 일부 팬과의 충돌로 홧김(?)에 은퇴해 버리면 그가 쌓아온 명예와 헌신까지도 모두 변질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떠날 바에는 그냥 지난 시즌 FA컵 우승 이후 명예롭게 은퇴하는 게 나을 뻔했다.

돌아갈 팀, 혹은 마음의 고향 같은 팀이 있다는 건 축구선수에게 최고의 축복이다. 지금은 은퇴한 김형범은 누가 뭐래도 전북현대 선수다. 아직도 많은 전북 팬들은 김형범을 그리워하고 그에게 지지를 보낸다. 유상철은 현역 시절 J리그에서도 뛰었고 지도자로도 여러 곳을 옮겨 다녔지만 마음의 고향은 늘 울산현대다. 아무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지도자 생활을 하건 안 하건, 그래서 그 팀으로 돌아가건 돌아가지 않건 선수라면 이렇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 한 군데라도 있어야 한다. 수십 년 뒤에도 할아버지가 돼 경기장 한 켠에 앉아 있으면 어린 관중으로부터도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선수가 정말 성공한 선수 아닐까. 그 선수의 현역 시절을 그리워하고 존경하며 은퇴 후에도 지지를 보내는 팬이 있는 선수라면 너무나 행복할 것 같다.

수원삼성은 이정수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프로축구연맹

이 사단의 원인은 최악의 경기력

그래서 이별이 중요한 거다. 이정수가 이렇게 팀을 떠나고 은퇴해 버리면 지금껏 이룬 수원삼성에서의 우승과 수원삼성-알사드전에서의 의리, 멋지게 마무리하기 위해 연봉을 깎고도 복귀한 선택 모두 잊혀진다. 그저 일부 팬들과 싸워서 홧김에 은퇴한 선수로만 오랜 시간 기억에 남을 것이다. 지금이야 ‘그런 명예도 필요 없으니 더 이상 이 힘든 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후회할 게 뻔하다. 사람은 힘든 건 금방 잊어도 행복했던 때는 금방 잊지 못한다. 여자친구와 지지고 볶고 싸우다 헤어지면 그 때의 미운 감정은 금방 잊혀지는데 그녀와 갔던 맛집을 갈 때마다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정수도 지금 이렇게 은퇴한다면 ‘그래도 그때 조금 더 멋지게 이별할 걸’이라고 금방 후회한다.

팀에 헌신해 존경 받아야 할 선수가 아니라 그저 한 순간 구단에 있다가 지나가는 선수라면 뭐 어떻게 이별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정수여서 이런 식의 이별이 더 아까운 거다. 사실 이정수가 지난 시즌 FA컵 우승컵을 들고 명예롭게 은퇴했으면 더 멋진 그림이었겠지만 이 상황에서는 올 시즌을 끝까지 마무리 해야 한다. ‘명가’ 수원삼성에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 올 시즌 막판까지 그들이 이런 힘겨운 상황이라면 이정수가 강등을 막고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모습이 그에게는 가장 명예로운 이별이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이정수 입장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프로 의식이 있는 선수라면, 더군다나 팀을 이끌 베테랑 선수라면 이런 식의 무책임한 은퇴는 곤란하다. 그가 수원삼성에서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할 생각이 없더라도 가장 성공한 축구선수였다면 마음의 고향 한 곳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건 수원 프런트와 코치진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경기력이 좋았다면 팬들이 이렇게 화를 낼 일도, 이정수가 팬들과 마찰을 빚고 은퇴 선언을 할 일도 없었다. 과거 나는 성남FC의 전통이 끝나는 순간은 김학범 감독과 이별할 때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하나 더 예언 아닌 예언을 하자면 수원삼성에 성공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경우 그들은 염기훈이 은퇴하는 순간 더 추락할 것이다. 지금이야 축구에 통달한 염기훈이 그라운드 내에서도 팀을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중이고 어린 선수들을 독려하거나 채찍질 하는 것도 염기훈이 한다. 만약 이런 염기훈이 사라진다면 수원삼성은 더 몰락할 것이다. 그 전에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한 선수의 존재 유무에 따라 팀이 흔들릴 정도로 수원삼성은 많이 망가졌다.

수원삼성은 이정수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프로축구연맹

이정수와 일부 팬, 구단 모두 이러면 안 된다

삼성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투자에 인색한 고위 관계자들도 문제고 팀을 맡은 지 1~2년 된 것도 아닌데 아직도 팀 컬러를 보여주지 못하는 감독도 문제다. 외국인 선수 농사는 언제가 마지막 성공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참담하게 실패하고 있는데 스카우트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이 그저 이 사단을 폭력적인 일부 팬들의 문제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 경기가 끝나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해 야유는 물론 손가락 욕을 하고 맥주캔을 던지는 팬이라도 있지 조금만 더 이런 경기력이 이어진다면 그런 팬들조차도 다 사라질 것이다. 최악의 경기력에 머물렀는데도 경기 종료 후 경기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하다면 그건 정말 재앙이다. 이런 야유와 팬들의 성화도 감사하게 여겨야 하고 빨리 수습해 팬들의 외면을 막아야 한다.

선수들에게 폭력적인 제스처를 한 일부 팬들의 반성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희생하며 돌아온 선수에게 모욕감을 준다면 그 어떤 선수도 팀에 돌아올 수 없다. 훗날 유럽에서 성공한 권창훈이 이 모습을 보고 수원삼성에 돌아올 마음이 생길까. 명예롭게 은퇴해야 할 이정수도 한 번 더 신중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계약을 했으면 끝까지 이 계약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불화의 원인인 구단 프런트와 코치진도 반성해야 한다. 날씨 좋은 주말에도 관중이 5천명 밖에 안 온다는 건 인기 구단 수원삼성에는 수치다. 지금은 어느 한 쪽만의 잘못도 아니다. 이정수가 이렇게 은퇴해 수원의 레전드가 아니라 알사드의 레전드가 된다면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참 가슴이 아플 것 같다. 수원삼성이 K리그 챌린지로 떨어져 텅텅 빈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참 가슴이 아플 것 같다.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선수와 팬, 구단 모두 노력해야 한다. 어쩌다 ‘축구 수도’가 이 지경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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