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오늘 칼럼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성남FC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금껏 언론과 축구 전문가라는 이들은 수도 없이 K리그를 위기라고 했다. 아마 내 기억으로는 이렇게 위기설이 흘러나온 것도 20년이 넘은 것 같다. 위기가 아니었던 순간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 그들은 마치 금방이라도 K리그가 망할 것처럼 지적질을 해댔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단 한 번도 동의한 적이 없다. 아마 내 칼럼을 꾸준히 봐 온 독자들은 잘 알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늘 K리그가 위기라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 반박했고 K리그는 여전히 희망적인 리그라고 했다. 단 한 번도 K리그 위기설에 동의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K리그가 위기라고 주장하려 한다. 구단의 운영이나 흥행, 마케팅에 대한 부수적인 문제는 거론할 필요도 없다. 최근 급격한 경기력 저하가 우려스러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요즘 K리그는 정말 재미없다.

한숨만 나오는 경기들이 늘어간다

구단의 운영이나 팬 관리, 홍보, 심판 판정, 연맹의 운영, 잔디 상태 등 산적한 문제를 다 떠나서 경기력만 놓고 이야기 해 보려 한다. 나는 요즘 K리그를 취재한다는 것에 대해 조금씩 회의감을 느낀다. 솔직히 말하면 나를 가슴 뛰게 만드는 경기를 볼 수가 없다. 과거에는 주말마다 경기장에 갈 때면 ‘오늘은 또 어떤 멋진 경기를 볼 수 있을까’라고 기대했지만 요즘에는 의무적으로 경기장엘 간다. 그러면서 ‘골 다운 골을 90분 동안 단 한 번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경기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경기력 진짜 개판이네. 내가 이걸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내가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면서 애정이 떨어져서일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요즘 K리그는 경기력이 너무 형편없다.

K리그 1강이라는 전북현대 정도가 그래도 볼 만한 축구를 한다. 그 외에 다른 팀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재미없는 축구로 일관하고 있다. K리그 클래식이나 K리그 챌린지나 마찬가지다. K리그 개막 후 주말마다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를 적어도 현장에서 두 경기씩은 지켜봤는데 경기력은 한숨이 나오는 수준이다. 패스다운 패스가 3~4번 연결되는 것도 90분 동안 몇 번 볼 수도 없고 심지어 페널티 박스 안으로 접근조차 못하는 팀들도 있다. 전반전이 끝나고 통계를 보면 양 팀 통틀어 유효 슈팅이 한 개였는데 이 한 개도 힘없이 골문으로 향한 슈팅인 경우도 많았다. 요즘 들어 ‘잘 차고 잘 막은’ 멋진 플레이를 본 기억은 딱히 없다. 들어갈 골은 뭐 꾸역꾸역 들어가고 안 들어갈 골은 골문을 한참 벗어난다. K리그 중계에서 “선축, 선방”이라는 말을 요새 들어본 적이 있나.

특정팀을 겨냥하려는 게 아니다. 모든 팀들이 그렇다. 그나마 전북이 조금은 나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전북도 역대 K리그를 따져 봤을 때 그렇게 손꼽을 만한 경기력은 아니다. 그저 한심한 수준의 다른 팀들과 비교해 봤을 때 조금 나은, 그냥 나쁘지 않게 볼만한 수준 정도다. 내가 축구 전문 칼럼니스트이다보니 주변에 모든 스포츠를 전반적으로 다 좋아하는 친구들이 가끔 나에게 “같이 축구장에 가자”고 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러면 과거에는 재미있을 경기를 골라 친구들을 경기장으로 초대하기도 했는데 올해는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 이 친구들에게 수원삼성 경기를 보여줄까, FC서울 경기를 보여줄까. 아니면 성남FC는 어떤가. 전북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전주를 왕복한다면 그 재미가 차비 이상을 뽑을 수 있을런지도 잘 모르겠다.

이 사진은 오늘 칼럼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수원삼성

감독의 역량 부족, 가장 큰 문제

가장 큰 문제는 감독의 역량 부족이다. 이게 가장 크다. 지금 40대 감독은 대부분이 실패다. 감독의 세대 교체도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일이지만 40대 감독은 세대 교체에 실패한 것 같다. 다른 세대들에 비해 대표팀에서 더 많이 활약해 인지도만 높을 뿐 전술적인 역량은 형편없다. 누구라고 말하지 않겠다. 40대 감독 중 그나마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면서도 성적으로 능력을 증명한 남기일이나 이기형 감독 정도를 제외하면 경기력으로 보여주는 감독은 없다. 그들은 그저 선수 시절 대표팀에서 활약한 명성만 가득할 뿐 감독으로서는 수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 것도 보여주질 못했다. 파리아스 감독처럼 백패스를 하면 불호령을 내릴 정도로 철학을 가진 감독이 있나. 지지 않는 경기를 위해 ‘새가슴 스리백’, ‘쫄보 수비축구’를 하면서 “그게 전술이었다”고 핑계나 대고 있다. 기자회견장에서 만나면 화부터 난다. 속으로는 ‘그것도 축구냐’는 말이 수도 없이 나온다.

몇 번 칼럼을 통해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건 구단의 잘못이기도 하다. 말 잘 듣는 감독, 혹은 선수 시절 인지도를 방패막이로 삼을 수 있는 감독만 줄창 데려 왔으니 경기력은 점점 형편없어 진다. 얼마 전 칼럼을 통해서도 언급했는데 아니 프로리그 22개 팀 중 외국인 감독이 단 한 명도 없는 리그가 말이 되는가. 구단이 부리기 쉬운 감독을 뽑아 쓰다가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구단 수뇌부는 쏙 빠져 나가고 감독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으니 이 상황에서 신선한 외국인 감독의 등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 감독들은 지지 않으면 절반 이상은 성공한 것이라고 안전한 축구를 하고 있으니 공격적이고 과감한 경기력은 나올 수가 없다. 3~4번의 패스도 연결하지 못하는 게 무슨 프로 선수인가. 90분 내내 유효 슈팅 몇 번 때리지도 못하는 팀이 무슨 프로 팀인가. 스리백을 가장한 파이브백 잘 보고 있다.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도 예년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미안하지만 ‘갓나탄’이라고 불리는 수원삼성 조나탄을 예로 들어보자. 난 조나탄의 실력과 인성, 외모 모두 좋아한다. 그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팀마다 이 정도 해주는 외국인 선수는 한둘쯤 다 있었다. 조나탄 정도라면 지금 K리그에서는 특별한 선수지만 예년 K리그에서는 이 정도는 해줘야 외국인 선수다운 수준이었다. 심지어 인천유나이티드에는 데얀이 뛰고 성남일화에는 라돈치치가 있고 경남FC에는 까보레가 있고 뽀뽀는 부산아이파크 유니폼을 입고 있던 것도 오래된 과거가 아니다. 조나탄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그만큼 각 팀마다 외국인 선수의 전체적인 수준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공을 잡으면 기대감을 느끼게 하는 외국인 선수가 요즘 K리그에는 있나. 기대감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외국인 선수들이 K리그를 채우고 있는데 팬들이 감탄할 경기력이 나올 리가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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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기 때도 경기력이 이렇진 않았다

돈이 없어서 좋은 선수 못 데려온다고 핑계대지 말자. 인천이 돈이 많아서 데얀을 찾아낸 것도 아니고 경남이 돈을 싸들고 까보레를 모셔온 것도 아니었다. 잘 알려진 일화지만 경남은 브라질에 선수를 찾으러 갔다가 그 선수 영입에 실패한 뒤 호텔에서 텔레비전으로 축구 중계를 보다 까보레를 발탁했다. 보는 눈이 있고 의지가 있으면 구단별로 ‘갓나탄’ 같은 선수 한 명씩 모셔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건 구단의 무능력과 의지 없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필요하다. 흔히들 외국인 선수 한 명이 국내 선수 1.5명 이상의 능력을 보여줘야 제 역할을 한다고 평가하는데 지금 K리그에 국내 선수 1.5명 이상의 활약을 하는 외국인 선수가 있을까. 골을 펑펑 넣어주는 선수도 없고 미친 듯한 개인기로 중원을 휘저어주는 선수도 없다. 빅클럽에 마우링요? 매튜? 마졸라? 그냥 웃고 간다.

언론의 푸대접과 일부의 선입견, 좋지 않은 인프라 속에서도 그나마 K리그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경기력 때문이었다. 아무리 K리그가 푸대접을 받아도, K리그가 곧 망할 것처럼 위기라고 떠들어도 K리그는 아시아에서 성적으로 보여줘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꼭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가지 않는 팀이라고 해도 K리그의 전체적인 경기력 하나 만큼은 자부할 만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졸전까지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전체적인 경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K리그를 20년 넘게 봐 왔고 현장에서 취재하며 지켜본 것만 해도 10년이 넘었는데 요즘처럼 재미없는 K리그는 처음이다. 한 2~3년 전부터 시작된 경기력 저하는 지난 시즌 막판부터 더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흥행 참패를 겪던 2000년대 중반에도 경기력 만큼은 그래도 끈끈하게 유지해 왔는데 말이다.

시장이 더 큰 중국이나 중동으로 선수를 빼앗겨서 경기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1990년대 말부터 이미 대표팀을 경험한 스타 선수들은 대거 J리그로 빠져 나갔었다. 지금과 비교해 봐도 큰 차이가 없다. 최근 들어 중국 진출이 활발해 졌지만 몇몇 수비 자원들 뿐이고 오히려 K리그에서 밀려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 과거 스타 선수들이 J리그와 유럽으로 나갈 때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나질 않는다. 과거에는 선수들이 해외로 빠져 나가도 경기력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경기력이 점점 더 실망스러운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다. 승강제와도 별로 연관이 없다. 강등을 피하려는 팀들이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펼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FC서울이나 수원삼성 등은 강등과는 거리가 먼 팀인데도 경기력이 수준이하다. 이건 그냥 축구를 못하는 거다. 해외 유출이나 승강제 핑계 댈 것도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감독의 역량 부족이다.

이 사진은 오늘 칼럼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수원삼성

이런 경기력이라면 진짜 위기다

지금껏 “K리그에 무승부가 많다”, “0-0 경기가 많다”는 말 같지도 않은 언론의 비난이 쏟아질 때마다 나는 K리그 편을 들었다. 0-0 경기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는 근거를 든 칼럼도 여러 번 썼다. K리그에 수 많은 위기설이 있었지만 나는 지금껏 K리그가 위기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 굳건한 믿음의 바탕에는 훌륭한 경기력이 있었다. 관중석이 텅텅 빈 ‘하이트배 코리아리그’나 ‘아디다스컵’을 볼 때도 나의 믿음에는 이런 바탕이 있었다. 하지만 K리그의 최근 바닥까지 떨어진 경기력이라면 이걸 위기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행정이나 흥행은 위기였어도 리그 자체의 경기력이 뛰어나니 그래도 숨은 쉴 수 있었지만 경기력마저 개판이면 이건 진짜 위기다. 오랜 시간 자신의 팀을 응원한 팬들도 이 수준이면 그저 ‘팬심’으로 경기장을 찾는 것일 뿐 이 상황에서 새로운 팬의 유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스토리를 만들고 그걸 포장하는 건 경기장 밖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이건 밖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라도 하면 된다. 하지만 그라운드 안에서의 가장 본질적인 축구가 참담한 수준이라면 그걸 밖에서 어떻게 포장할 수도 없다. 아무리 스토리텔링이 좋고 포장 기술이 좋아도 선수들의 공 차는 수준이 기대이하라면 그걸 어떻게 포장하나. 그건 감독과 선수들의 역할이다. 밖에서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경기장 가는 일이 즐거웠다. 경기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까 본 선수들의 플레이가 계속 떠오르고 좋은 활약을 한 선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음 경기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요즘에는 의무감으로 축구장엘 간다. 요즘 K리그가 참 재미없기 때문이다. 부디 축구팬들이 축구장 가는 길을 다시 설레게 해주길 바란다. K리그가 위기라는 말은 정말 싫어하지만 이렇게 참담한 경기력이 지속되는 건 진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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