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FC는 K리그 챌린지에서도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성남FC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성남FC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성남은 지난 주말 열린 KEB하나은행 2017 K리그 챌린지 5라운드 서울이랜드FC와의 경기에서도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2무 3패에 머물러 있다. 이 다섯 경기에서 한 골을 넣고 다섯 골을 허용했다. 특히나 서울이랜드와의 경기에서는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슈팅이 단 한 개에 그칠 정도로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이 경기를 직접 지켜본 나로서는 도대체 성남의 문제점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지난 주 칼럼을 통해서도 성남의 문제점을 짚어봤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 한 명이 부진하고 누가 부상으로 빠지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성남은 지금 기본적인 것들조차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군대 같던 규율이 성남 이끌던 시절

그런 와중에 과거 성남에서 뛰었던 한 축구인이 슬쩍 나에게 의견을 냈다. “성남이 부진한 건 감독 스타일 때문인 것 같아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그는 익명을 요구하며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박경훈 감독님도 대단히 훌륭한 지도자죠. 하지만 지금껏 성남에는 없던 스타일입니다. 저는 아무래도 그런 변화를 선수단이 갑작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그의 의견에는 일리가 있었다. 성남은 지금껏 이렇게 온화하고 자율적인 감독과 함께 한 적이 없었다. 성남이 다시 부활하길 바라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감독 스타일의 변화가 팀에 미치는 영향을 여러 축구인에게 물었다.

지금껏 성남을 거쳐간 감독은 대부분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팀을 이끄는 스타일이었다. 말이 좋아 강력한 지도력이지 여기에는 군대 못지 않은 군기로 팀을 휘어 잡는 지도자들이 상당수였다. 김학범 감독은 부임 1기였던 2000년대 중반 팀이 패하면 흰 장갑을 끼고 숙소에 들어와 내무검사(?)를 하기도 했다. 텔레비전 뒤쪽을 쓱 닦아 흰 장갑에 먼지가 묻으면 그 방 선수에게 벌금을 내릴 정도로 규율이 엄격했다. 당시 김학범 감독을 겪었던 한 선수는 이런 말을 했다. “그런 검사에 걸리지 않으려면 무조건 이기면 됩니다.” 물론 내무검사는 1군 선수만이 대상이 아니었다. 1군이 지는 날이면 2군 선수들도 모조리 내무검사의 대상이 됐다. 물론 10년 전이니 가능했던 일이었다. 지금은 이러면 큰일 난다. 김학범 감독도 이후 많이 온화해졌다.

이 방식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성남은 그렇게 성적을 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다. 온화하게 선수들을 품고 자율성을 부여하는 감독도 그들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렇게 규율과 군기(?)를 중시한 감독도 그들 나름대로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과도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규율을 중시한 감독도 충분히 존중 받아야 한다. 선수 폭행과 욕설 등은 당연히 사라져야 하고 지금은 K리그에서 그런 일이 없다고 믿는다. 폭력과 규율을 혼동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김학범 감독이 이 정도로 깐깐하게 규율을 따지고 때로는 과할 정도로 선수들을 휘어 잡았던 스타일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거다. 2000년대 중반 성남 지휘봉을 잡았던 김학범 감독은 이후 다시 한 번 성남에 돌아온 뒤에는 이렇게까지 깐깐하게 선수들을 다잡진 않았지만 그래도 김학범 감독 특유의 규율은 여전했다.

김학범 감독은 성남 재임 시절 강력한 카리스마로 팀을 이끌었다. ⓒ프로축구연맹

성남의 전통적인 감독 스타일

폭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박종환 감독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를 수행했던 차경복 감독과 김학범 감독은 물론 안익수 감독도 규율을 중시한 지도자였다. 안익수 감독 시절을 경험했던 한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운동은 물론이고 먹는 것, 쉬는 것까지도 다 감독님의 계획대로 진행됐다. 철저하게 계획에 따라 선수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군대 같았지만 그래도 성적이 나오니 모두들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한 선수는 안익수 감독의 혹독한 훈련과 규율을 잘 알고 있었지만 ‘감독님과 함께라면 내 실력을 더 키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성남 이적을 결정하기도 했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까라면 까는’ 성남 선수들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심지어 과거 한 성남 감독은 체력 테스트에서 전날보다 시간을 단축시키지 못하면 전지 훈련장에서 숙소까지 뛰어오게 한 적도 있다. 1군 에이스고 뭐고 없었다. 여기서 잠깐. 머리를 써서 하루에 1초씩 시간을 단축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그럴까봐 이 감독은 체력 테스트 전 선수들 시계를 전부 압수했다.

물론 전부가 다 그런 건 아니다. 신태용 감독은 좀 달랐다. 신태용 감독 시절을 경험한 한 성남 출신 선수는 “신태용 감독만큼 자율적인 분은 없었다”고 했다. 심지어 술을 마시고 들어온 선수하고도 장난을 칠 만큼 신태용 감독은 선수들을 편하게 대했다. “외박 며칠 줄까?”라는 말에 “사흘 주세요”라고 답하는 선수에게는 “그래. 사흘 뒤에 보자”고 쿨하게 원하는 만큼의 휴식을 부여할 정도로 신태용 감독은 자율적이었다. 그런데 이 선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는 몰리나하고 사샤가 있었거든요. 멤버가 좋았어요. 자율적이어서 성적이 잘 나온 게 아니라 선수단 구성도 좋았고 거기에 그런 자율적인 분위기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규율이 좋은 거고 자율이 나쁜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감독의 스타일이 다른 것뿐이다.

성남에서 오랜 시간 뛰었던 한 선수는 지금 부진을 진단하면서 다소 독특한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규율과 자율을 떠나 전임 성남 감독님들은 다 기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자율적인 것처럼 보이는 신태용 감독님도 사실은 기가 엄청난 분이시거든요. 그런데 일화 시절부터 성남이라는 팀은 윗분들, 그러니까 구단 고위층 분들의 압박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압박을 이겨낼 정도로 기가 센 분만 버틸 수 있는 게 성남이에요. 지금은 구단 고위층의 압박이 전 만큼은 아니어도 구단의 전통적인 분위기라는 걸 무시할 수는 없죠. 성남 감독으로 버텨내고 목소리를 내려면 주장이 강하고 기강을 잡고 타협하지 않는 지도자가 필요할 것 같아요.”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껏 성남이 K리그 최강 전력을 유지할 수도 있었던 건 투자도 한몫했지만 카리스마로 구단을 제압하고 선수들을 휘어 잡는 지도자의 역할도 컸던 것 같다.

김학범 감독은 성남 재임 시절 강력한 카리스마로 팀을 이끌었다. ⓒ프로축구연맹

박경훈은 지금까지의 감독과 다르다

그런데 김학범 감독이 사퇴한 뒤부터 성남이 많이 변했다. 그전까지는 기혼 선수들만 숙소를 떠나 살면서 훈련장으로 출퇴근하는 게 규정이었지만 김학범 감독 이후 지휘봉을 잡은 구상범 감독대행이 전폭적인 자율성을 부여했다. “원하는 선수는 기혼이고 미혼이고 상관없이 숙소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니 자유롭게 출퇴근하라”는 방침을 내린 것이다. 이때 많은 미혼 선수들도 다들 숙소 생활을 청산하고 훨씬 더 많은 자유를 얻었다. 물론 합숙을 강조한 감독이나 자율을 강조한 구상범 감독대행이나 누가 더 나은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성남이 이때부터 과거에 비해 달라진 건 사실이다. 구상범 감독대행은 선수들에게 자율성을 더 부여하며 프로답게 성적과 그에 따른 책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구상범 감독대행과 이후 변성환 감독대행을 거치면서 성남은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고 말았다.

이 상황에 대해 지난 시즌까지 성남에서 뛰었던 한 선수는 “절반은 동의할 수 있지만 절반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선수는 “성남 선수단이 지난 시즌에 비해 절반 정도 변했는데 숙소 생활을 자율적으로 바꾸고 자율성을 부여했다고 해 팀이 한 번에 망가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성남의 규율을 경험하지 못한 선수가 절반”이라면서도 “그래도 절반이나 남은 작년 성남 선수들이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자율성을 부여받으면서 나태해져 분위기를 흐릴 상황은 유추해 볼 수 있다”고 굉장히 조심스럽게 밝혔다. 일화가 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면서 투자가 부족해지고 이미 성적이 떨어질 상황에서 그나마 규율로 겨우 겨우 선수단을 끌고 갔던 건 아닐까. 그러다 다른 구단과 비슷한 자율성을 부여받으며 원래 찾아야 했던 하위권 자리로 내려간 건 아닐까. 지금껏 규율을 가장한 군기(?)로 성적을 멱살 잡듯이 끌고 온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박경훈 감독이 부임한 뒤에도 성남은 구상범 감독대행 시절부터 정한 대로 자율적인 숙소 생활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숙소에 남아 있는 이는 몇 없고 어린 선수들도 대부분이 숙소를 떠났다. 훈련량도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박경훈 감독은 늘 선수들에게 책임 의식을 강조하고 프로답게 자율적인 관리를 맡기는 편이다. 그가 그러면서 제주에서 이룬 성공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율성을 강조한 박경훈식 축구는 제주에서 바람을 일으켰고 2010년 K리그에서는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제주 선수들이 군기가 빠져서 축구를 못한다고 지적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박경훈 감독은 제주에서 성공했고 그의 지도력에 의심을 갖는 사람도 없다. 나 역시 그의 매력적인 축구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이다. 박경훈 감독이 성남 지휘봉을 잡았다고 했을 때 그가 성남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변화시킬지 기대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김학범 감독은 성남 재임 시절 강력한 카리스마로 팀을 이끌었다. ⓒ프로축구연맹

규율과 자율, 그 어딘가 즈음

박경훈 감독과 제주 시절 함께 했던 한 선수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프로 감독이 경기 준비를 대충하는 법은 없다. 박경훈 감독님 역시 훈련과 경기 준비 등은 철두철미하고 확실하게 준비하는 감독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전적으로 선수들에게 맡긴다.” 자꾸 강조하는 건 ‘자율’이 ‘대충’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율 안에도 확실한 준비와 관리는 당연히 있다. 다만 일부 사적인 영역까지도 깐깐하게 규율을 매기는 감독이 있는 반면 축구 외적인 부분에는 절대적인 자율을 부여하는 감독도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내가 오늘 칼럼을 쓰면서 이게 박경훈 감독의 지도 스타일이 잘못됐다고 괜한 오해를 하는 이가 있을까봐 자꾸 강조하는 거다. 또 반대로 쌍팔년도 식으로 선수들을 줘 패는 걸 규율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까봐 이 부분도 반드시 제대로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박경훈 감독은 축구 외적으로는 자율적인 분위기를 추구하는 스타일의 감독이다.

성남이 끝없이 추락하니 별에 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특정 선수의 부진이나 특정 선수의 부상 등이 끊임없이 논란이 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보고 싶었고 성남, 혹은 박경훈 감독을 경험했던 축구인의 의견에 귀 기울여 보니 이렇게 자율과 규율에 대해서도 한 번은 되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성남은 지금 뭐라도 해야 한다. 굿을 하건 백일기도를 하건 전술을 바꾸건 감독의 지도 스타일을 바꾸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으로 군기(?)가 바짝 들었던 성남 선수단 분위기가 한꺼번에 풀어진 건 아닌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게 비정상적인 군대 스타일의 팀이 정상적인 팀으로 가는 과정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성남이 예전의 성남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니 한 번쯤은 탁 터놓고 이야기할 필요도 있다. 성남의 부진이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그들의 자율성을 얻은 시기와 때를 같이하는 게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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