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KEB하나은행 FA컵 3라운드 포천시민축구단 vs 서울 이랜드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지난 29일 저는 포천에 다녀왔습니다. 2017 KEB하나은행 FA컵 3라운드 포천시민축구단과 서울 이랜드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죠.

양 팀의 경기는 오후 3시에 열렸습니다. 평일 낮에 열리는 경기라 많은 축구팬이 경기장에 오지 못했습니다. 원정 온 서울 이랜드 팬은 손에 꼽을 정도였죠. 경기는 굉장히 흥미롭게 흘러갔습니다. 치열한 공방전을 주고받던 양 팀은 결국 후반 막판 포천의 선제 결승골에 의해 승부가 갈렸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저는 SNS에 자랑스럽게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이 경기 본 눈 팝니다'.

K3리그 팀이 내셔널리그도 아닌 K리그 챌린지 팀을 꺾는 것은 쉽게 보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를 현장에서 봤다는 것은 정말 진귀한 경험이겠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경기를 많은 사람들이 '직관'으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죠. 가장 큰 이유는 학업이나 생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찾기 어려운 시간대에 경기가 열렸다는 것이겠죠.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겁니다" 부천의 한탄

3라운드가 끝나고 나서 FA컵은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32강전(4라운드)에서 흥미로운 매치업이 성사됐기 때문이죠. FC서울과 FC안양이 만나는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뜨거울 매치업을 비롯해 전주시민축구단과 전남 드래곤즈의 또 다른 호남 더비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부천은 K리그 최강으로 꼽히는 전북과 2년 연속으로 FA컵에서 만나며 다시 한 번 반전을 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천의 팬들 중 많은 분들이 이 경기를 보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시간 때문입니다. 전북과 부천의 맞대결은 4월 19일 오후 3시 전주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평일 낮입니다. 게다가 부천과 전주의 거리는 상당합니다. 200km가 넘습니다.

이 경기에 참석할 수 있는 부천 팬은 얼마 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직장인이라면 휴가를 써야 하고 학생이라면 조퇴 또는 결석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전주에 사는 전북 팬들 역시 참석이 쉽지 않은 시간대거늘 부천 팬들이 이 시간 경기를 찾아온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미션입니다.

'꿀잼'이 보장된 경기를 놓쳐야 하는 현 상황에 부천 팬들은 격하게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한 부천 팬은 스포츠니어스에 "관중석이 텅텅 비는 것은 안봐도 뻔하다"면서 "대한축구협회가 FA컵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먹는 것 아닌가"라고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이 팬의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단순히 부천 만의 상황이 아닙니다. 서울 이랜드의 많은 팬들도 지난 라운드 포천과의 맞대결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축구 경기는 축구가 전부일 수 없다

축구 경기라는 것은 선수단과 심판진으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잘 만들어진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경기장 시설과 스토리텔링, 그리고 마지막으로 뜨거운 열기의 관중이 있어야 합니다. 관중 없이 텅 빈 경기장은 아무리 봐도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치열한 경기와 꽉 찬 관중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있을 때 '가보고 싶은 축구 경기'라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EPL이나 독일 분데스리가를 보며 부러워하는 이유가 여기 있겠지요. K리그와 한국 축구도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축구 경기라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죠.

그래서 부천과 전북의 경기 시간은 더욱 아쉽습니다. 괜찮은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셈입니다. 물론 경기 시간을 옮겨도 찾아올 부천 팬들이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직접 관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대한축구협회 역시 고민이 많을 겁니다. 흥행을 위해서는 시간 변경이나 경기장 변경 등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해야 하지만 추첨을 통해 홈 팀으로 지정된 전북의 권리 또한 생각해야 합니다. 오후 3시 경기는 홈 팀의 사정을 고려한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북 역시 경기장 보수공사 등으로 난감한 상황인 것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한 번쯤은 머리를 맞대고 일정 재조정 등을 논의하는 것은 어떨까요? 협회와 양 팀이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K리그도 그렇지만 FA컵 역시 팬들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대회가 돼야 할 것입니다. 만일 논의 끝에 오후 3시 경기가 그대로 진행돼도 팬들의 불만은 이 정도로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팬들의 불만 중에는 경기 시간의 문제도 있겠지만 일정 조정의 여지를 남기지 않은 소통의 부재도 만만치 않게 크지 않을까요?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