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 사이 바스크지역을 상징하는 깃발도 종종 찾을 수 있다ⓒ프리메라리가 홈페이지

[스포츠니어스 | 배시온 기자] 같은 지역 내 구단끼리 펼치는 스포츠 경기를 흔히 더비라고 한다. 축구는 여러 역사, 종교, 경제 차이나 갈등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 같은 연고지의 구단은 이런 사회적 이유가 더 많이 충돌할 수 밖에 없고 이는 축구에 더 열광하는 요소가 된다. 팬들이 자신의 연고 팀을 응원하는 더 확실한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팬들이 감정을 이입하며 열기가 더해진 대결은 무수한 역사가 쌓여 더욱 격렬하고 열정적인 더비가 된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1928년 출범했다.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엘 클라시코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기들이 90여년 동안 역사를 만들어왔다. 여러 감정이 얽힌 더비는 경기를 더욱 치열하게 했다. 17개의 자치지방이 있는 만큼 사람들의 연고의식과 지역 자부심 역시 크다. 오랜 역사와 치열함을 갖춘 프리메라리가의 더비를 하나씩 살펴보자. 갈리시아 더비에 이어 아틀레틱 빌바오와 레알 소시에다드의 바스크더비를 소개한다.

EUSKAL DERBIA

EUSKAL DERBIA(에우스깔 데르비아)는 바스크어로 바스크 더비를 뜻한다. '바스크 더비'는 바스크지역의 오사수나, 알라베스, 레알 우니온, SD 에이바르 등 바스크 지역 프리메라리가 팀을 포함해 세군다 디비시온A, B 팀들 간의 모든 경기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규모가 가장 큰 경기인 빌바오와 소시에다드 간의 만남을 칭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규모가 더 커진 것은 왜일까?

이는 양 팀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레알 우니온과 함께 바스크 지방을 대표하는 프리메라리가 창립 구단이다. 특히 빌바오는 프리메라리가 초창기 강팀으로 군림했다. 지금까지 한 8번의 프리메라리가 우승 중 4번이 40년대 전에 차지한 기록으로, 코파 델 레이 역시 꾸준한 성적을 유지하며 강팀의 면모를 보였다. 이에 소시에다드는 성적엔 못 미쳤지만 알폰소13세에게 '레알' 칭호를 받으며 바스크 지역에서 이름을 알렸다. 1909년 소시에다드 창단 후 첫 강등을 당하는 1935-36시즌전까지 바스크 지방 사람들은 양 팀의 경기를 바스크더비라 부르며 열광했다. 그러는 사이 레알 우니온은 1900년대 초 코파 델 레이에서 강한 모습을 보인 것과 달리 프리메라리가 출범 후엔 2,3부리그를 전전하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바스크 더비 전 모인 양팀의 팬들ⓒ레알 소시에다드 홈페이지

언쟁 없는 더비, 바스크 지역의 축제

첫 공식적인 만남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거슬러 올라간다. 양 팀은 1913년 12월 6일 13-14시즌 바스크 지방 선수권 대회에서 맞붙어 1-1로 비겼다. 이후 1929년 4월 28일 치른 첫 프리메라리가 경기에선 빌바오가 4-2로 승리했다. 소시에다드는 그로부터 조금 후인 1933년 3월 5일 2-1로 더비에서 첫 승리를 챙기며 균형을 맞춰갔다. 지금까지 총 127번의 바스크 더비 중에 빌바오가 73승, 소시에다드가 53승, 46무로 빌바오가 앞서고 있다.

이렇게 100년 넘게 유지된 더비는 평화롭기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지역 더비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만 이들은 비교적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초창기 독재 정권에 대응하는 바스크인끼리의 끈끈한 유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팬들도 바스크 더비를 하나의 축제로 생각하며 서로를 적대시하기보단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바스크 지역에 헌신한 선수들

평화로운 더비는 선수 영입에 관해서도 이어졌다. 보통 더비라하면 서로에게 주요 선수가 이적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팬들 역시 가만있지 않고, 라이벌 팀으로 이적한 선수는 배신자 취급을 하기 일쑤다. 하지만 바스크 더비는 조금 달랐다. 서로가 어려운 상황일 때 최고의 선수가 서로의 팀에서 활약하는 것을 허락했다. 모든 팬들이 인정하진 않았겠지만 이들은 이런 선수 교류가 새로운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시도로 우라

이시도로 우라는 1936년 19세의 나이로 빌바오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빌바오의 전설 텔모 사라와 함께 36,42-43시즌 두 번의 리그 우승, 42,43,45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끌었다. 그 후 46-47시즌부터 소시에다드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소시에다드는 막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프리메라리가로 승격한 상태였다. 여기에 이시도로 우라를 영입해 자신감이 한층 더해진 상태였지만 그 시즌 13위로 다시 강등당하고 만다. 우라는 1950년까지 소시에다드에 뛰면서 49-50시즌 프리메라리가 복귀를 도왔다. 우라는 바스크 더비 두 팀에서 모두 뛴 첫 번째 선수였다.

-페드로 우랄데

페드로 우랄데는 소시에다드의 황금기를 빛낸 공격수 중 한 명이다. 1980년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데뷔했고 소시에다드는 이날 4-0으로 승리했다. 81-82, 82-83시즌 2연속 우승의 핵심 멤버기도 했다. 우랄데는 86-87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거쳐 87-88시즌 빌바오로 갔다. 우랄데는 이적 첫 시즌에서 15골을 기록하는 등의 활약을 한 후에 90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이적해 선수 생활을 마쳤다.

폭력과 거친 언행이 참사로까지 이어지는 더비가 있는가 하면 이렇게 평화롭고 친밀한 관계가 유지되는 더비도 있다. 더비라고 무조건 대항하는 성격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끈끈한 연고의식으로 도와가며 평화로운 역사를 만드는 더비도 있다. 그렇다고 경기 내용 마저 미지근한 것은 아니니 치열한 더비는 치열한대로, 평화로운 더비는 평화로운대로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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