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욱이 실려나간 후 감정을 추스르는 이승우 ⓒ KBSn 중계화면 캡쳐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27일 천안종합운동장. 아디다스 4개국 축구대회 대한민국과 잠비아의 U-20 대표팀 경기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이 순조롭게 앞서가던 후반 35분,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수비수 정태욱이 잠비아의 케네스 칼룽가와 볼 경합 중 머리를 부딪혀 의식을 잃었습니다.

위험한 상황임을 직감한 팀 동료들은 곧바로 정태욱에게 달려갔습니다. 빠르게 기도를 확보하고 인공호흡을 실시했습니다. 응급처치를 하는 도중 구급차가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차를 세우느라 구급차가 잠시 미적대는 순간 이승우가 격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빨리 하라고, 빨리 하라고 XX!".

이승우의 욕설, 인성의 문제다?

경기 후 정태욱의 쾌유를 기원하는 반응과 함께 이승우의 욕설에 대해서 지적하는 반응이 꽤 있었습니다. 중계로 들릴 정도로 꽤 크게 욕설을 뱉었던 것이 문제였죠. '중계가 되고 있는 마당에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적어도 국가대표라면 뱉는 말을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구급요원들에게 버릇없는 행동이었다'는 등 여러 의견이 올라왔습니다.

특히 과거 이승우의 인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번 이승우의 한 마디에 더욱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승우의 인성이 어떤지 잘 모릅니다. 가끔 경기장에서의 모습이나 인터뷰를 보면서 '보통 선수보다 자신감이 상당하구나'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승우의 욕설은 인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말이죠.

다시 짚어보는 이승우의 욕설 상황

당시 상황으로 한 번 돌아가 보겠습니다. 정태욱이 의식을 잃은 채 쓰러졌고 선수들이 모여들어서 응급 처치를 하는 가운데 구급차가 들어왔습니다. 이승우는 들어오는 구급차를 보고 선수들에게 "나와, 나와"라고 말했습니다. 전문 요원이 빠르게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모여있는 사람들을 비키라고 한 것이죠.

구급차가 한 번 멈추자 이승우는 시선을 정태욱에게 돌렸습니다. 동료가 괜찮은지 확인한 것이죠. 그 때 구급차가 다시 움직였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승우의 시선은 다시 구급차로 향했고 구급 요원을 가리키며 빨리 내릴 것을 독촉했습니다. 결국 분노한 이승우는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내뱉은 것이죠.

이후 이승우는 안절부절 못하며 계속 정태욱을 지켜봤습니다. 때로는 눈물이 나는듯 손으로 눈가를 찍거나 유니폼으로 얼굴을 닦기도 했습니다. 정태욱이 실려나간 뒤에는 감정을 추스르는듯 심호흡을 했습니다. 이후 인터뷰에서 정태욱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말을 못하겠다"며 동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감정이 너무 격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안절부절 못하던 이승우(붉은 원 안)는 동료 옆에 앉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 KBSn 중계화면 캡쳐

욕설, 인성이 아닌 동료애에서 나오는 것

그렇다면 이승우가 정말로 인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욕설을 내뱉은 것일까요? 저는 결코 아니라고 봅니다. 동료를 살리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다급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상황은 1분 1초를 다투는 긴박한 것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뇌손상이 발생해 선수 생활은 물론 정상인의 삶조차 살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 늦은 대처로 선수를 잃은 적도 있었죠.

물론 경기 중에 이승우가 자신 또는 동료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큰 소리로 욕설을 했다면 이야기는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승우가 내뱉은 욕설이 오직 동료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구급차의 투입은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꽤 늦었습니다. 자칫하면 이승우의 욕설보다 더 큰 사건이 일어날 뻔 했습니다.

저는 이승우의 행동에서 '참 순수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료의 긴박한 상황에 앞뒤 가리지 않고 욕설을 내뱉으며 재촉하는 그의 모습에서 동료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U-20 대표팀의 결속력이 정말 좋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이승우의 멀티골보다 이 장면에서 저는 U-20 대표팀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이승우의 인성이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관적인 시선으로 평가하는 것이 '인성'이기에 누군가의 눈에는 이승우가 자신감이 넘쳐보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버르장머리 없는 선수'라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모두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이승우의 인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소년의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빠른 대처가 정태욱을 구했다. 구급차 빼고

마지막으로 이승우의 욕설 논란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며 칼럼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사실 지금은 이렇게 무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정태욱이 쓰러진 것은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정태욱이 쓰러지자 그라운드 안에 있던 모든 구성원들이 민첩하게 행동했다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특히 상황이 발생하자 빠르게 의료진을 호출하고 선수의 상태를 확인했던 김덕철 심판과 먼저 나서서 인공호흡을 한 이상민은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 것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또한 정태욱과 충돌했던 잠비아 선수 케네스 칼룽가는 눈물을 흘리면서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라운드의 모든 구성원들이 정태욱을 위한 마음으로 가득했던 것 같아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병원으로 실려간 정태욱이 1차 검사 결과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으면서 경기 도중 일어난 급박했던 상황은 잘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대처가 늦었던 구급차에 대해서는 굉장히 아쉽습니다. 구급차가 그라운드에 도착한 것은 상황 발생 후 1분여가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심지어 선수들이 손짓을 하고 소리를 치며 구급차를 부르고 나서도 30여초가 지났습니다. 정태욱은 1분 1초를 다투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선수와 심판진의 기민한 응급 처치 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경기장 내에서 대기하고 있는 구급차의 빠른 대처는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다시 한 번 경기장 내 의료 지원 인력들이 응급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주길 바랄 뿐입니다. 아무쪼록 정태욱의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