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에서 심판의 불신은 점점 더 쌓여만 가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K리그에서 이미 심판은 언급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과시하고 있다. 감독이나 선수 등이 경기 종료 후 심판 판정에 문제를 제기할 경우 프로축구연맹에서는 이에 대해 제재금 등의 징계까지 내린다. 심판의 권위를 살려주기 위한 규정이다. 실제로 신태용 감독과 최강희 감독 등은 심판 판정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제재금 징계를 받은 적이 있고 이후 여러 감독들은 심판 판정에 불만이 있어도 징계를 당할까 침묵하게 됐다. 또한 심판으로부터 혹여 보복성 판정을 당할까봐 억울할 때가 있어도 참는다. 심판은 이미 K리그 그라운드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심판은 정말 ‘신의 영역’이 되려 하는가

그런데 심판이 이제는 ‘신의 영역’이 되려는 것 같다. 지난 19일 서울-광주전에서 나온 주심의 핸드볼 페널티킥 선언 오심과 관련해 연맹이 해당 경기 주심에게는 무기한 배정 정지 처분을 내렸고 부심을 퇴출한 것과 관련해 심판들이 집단 행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전국심판협의회 소속 아마추어 및 프로 심판들은 24일 대한축구협회와 연맹에 박치환 회장 명의로 공문을 보내 “징계 처분이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상황이 바로잡힐 때까지 심판 활동을 잠정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황에 따라 전면 보이콧 등 강수를 둘 가능성도 열어뒀다. 심판들이 이렇게 단체 행동을 통해 연맹을 압박하는 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초유의 일이다.

상황이 커지자 조영증 연맹 심판위원장은 오늘(28일) 심판협의회 관계자를 만나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로 했다. 연맹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의 상황을 설명하겠다고 했지만 심판협의회에서는 “단순 오심에 대한 징계가 과거 사례에 비해 가혹하다”면서 징계 수준을 조정해 줄 것을 요구할 게 뻔하다. 그런데 나는 연맹이 심판의 보이콧 위협에 대해 절대 숙이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미 많은 권위를 누리고 있는 심판들이 이번 사태에서도 자신의 뜻을 관철할 경우 축구계에서는 심판이 아예 침범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 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심판 징계가 과하다는 항의가 합당할 경우 연맹은 징계를 경감한 경우도 꽤 있는데 심판협의회가 이렇게 공문을 보내 언론 플레이까지 하는 건 연맹과 싸우자는 거고 연맹을 길들이자는 행위다. 심판협의회 측은 "징계가 대면조사가 아닌 전화 통화 이후 이뤄졌는데 이걸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이해해도 이 과정을 문제 삼아 보이콧까지 언급하는 건 너무 무리한 행동이다.

심판협의회는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단순 오심에 징계가 너무 가혹하다는 입장이지만 이건 단순 오심이 아니다. 경기 도중 주심에게 “페널티킥이 맞다”고 이야기했던 부심은 경기가 끝난 뒤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면서 거짓말을 하다가 적발됐다. 이건 심판의 신뢰 의무를 완벽히 위반한 중대한 일이고 중징계는 피할 수가 없다. 심판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심판의 거짓말은 실수라고 넘어갈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판정을 내려 놓고 “나는 그런 일이 없다”며 거짓말을 하는 심판을 가볍게 넘긴다면 징계를 당해야 하는 심판은 없다. 심판협의외가 주장하는 바대로 단순 오심에 대한 징계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연맹은 이 문제에 대해 조금도 물러서면 안 된다. 거짓말 한 심판을 계속 믿고 쓰면 이건 팬들에게 완전히 신뢰를 잃는 일이다.

K리그 심판들은 과연 발전하고 있을까. 오심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프로축구연맹

심판협의회, 심판 매수에 대한 사과가 먼저

만약 연맹이 협상(?) 테이블에서 심판협의회의 입장에 따라 양보할 경우 심판은 축구계에서 힘이 너무 강해진다. 오심 이후 말 바꾸기까지 한 심판 한 명 징계도 압박에 밀려 철회하면 이후부터는 ‘심판 세상’이 된다. 연맹이 도입을 준비 중인 비디오 판독도 향후 심판의 입김이 더 강해지면 그 활용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혹여 추후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외국인 심판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라도 생긴다면 심판협의회는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해 또 집단 행동을 할 게 뻔하다. 심판들의 단체가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그들이 선의를 가지고 한 행동이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밖에 되질 않는다. 심판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신의 영역’이 되는 순간 K리그는 위험해 진다.

대화를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렇지 않아야 될 일도 있다. 그런데 이건 협상(?)의 가치가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그만이다. 심판들의 모임 대표를 불러 “사실 징계가 왜 이랬냐면요”라고 설명하는 것도 이상하고 보이콧 움직임에 발을 빼 징계를 완화시키는 건 더 이상한 일이다. 어떤 식의 결론이 나건 연맹이 심판협의회를 만나는 건 결론이 다 이상하다. 얼굴을 마주대고 앉아서 심판협의회 대표와 대화할 이유는 전혀 없다. 연맹도 강경한 입장을 취해 연맹 위에서 군림하려고 압박하는 이들과는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 정 대화를 하려거든 심판협의회가 보이콧을 철회한 상태에서 해야 한다. K리그를 인질로 잡아 놓고 협박하는 이들과 대화로 합의점을 찾을 필요는 없다. 연맹이 심판협의회에 굽히면 심판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은 사라지고 만다. 그러면 심판이 도덕적 결함이 없기만을 그들을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다. 그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시스템상 그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는 세력은 조금씩 부패하기 딱 좋다.

심판협의회의 행동은 황당하다. 그들이 해야할 건 연맹에 항의 공문을 보내는 게 아니라 축구팬들에게 오심과 거짓말에 대한 사죄를 보내는 것이었다. 아무리 심판이 경기가 끝난 뒤 판정에 대한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지만 불리할 때는 이런 심판의 권위를 내세워 노코멘트로 일관하며 빠져 나가고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집단 행동을 해 보이콧 운운하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오심의 피해자 광주FC와 K리그 팬 전체에게 먼저 사죄해야 한다. 그리고 관리하는 심판이 거짓말을 해 상황이 이렇게 커졌으니 연맹에도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게 먼저다. 자기 반성은 하나도 없이 집단 행동을 한다는 건 적반하장이다. 이번 일은 그렇다고 쳐도 경남FC와 전북현대의 심판 매수 당시 심판협의회는 축구계에 사과 한 번 한 적이 있나. 잘못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보이콧 운운하는 건 협박이다.

K리그 심판들은 과연 발전하고 있을까. 오심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프로축구연맹

‘오심 퇴출’이 아니라 ‘거짓말 퇴출’이다

심판협의회가 쓴 ‘오심 퇴출’이라는 표현도 잘못 됐다. 이건 ‘오심 퇴출’이 아니라 ‘거짓말 퇴출’이다. 오심을 범해서 퇴출된 게 아니라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퇴출된 것인데 여기에 “심판도 사람이니 오심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징계 수준을 낮춰달라는 건 맥락에 맞질 않는다. 나는 이 기회에 국내 심판을 다 잘라버리고 외국인 심판을 부르자는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 외국인 심판도 얼마든지 오심을 저지를 수 있고 외국인 심판을 데려오는 것도 현실적인 일은 아니다. 또한 그 나라의 축구 수준이 높아지려면 선수들뿐 아니라 심판의 수준까지도 함께 높아져야 한다. 당연히 심판은 존중 받아야 하고 그들의 고난도 충분히 이해해 줘야 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렇게 단체 행동도 불사하는 그들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또한 심판협의회는 "언론의 문제를 가지고 심판이 다치면 안 된다"고 한 뒤 “이 언론의 문제를 지금 언급할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무슨 의도인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지금 심판협의회는 언론까지도 압박하고 통제하려는 모양새다. 심판의 권위가 지금도 기세등등한데 얼마나 더한 권력을 휘두르려고 ‘언론의 문제’를 운운하는지는 모르겠다. 심판협의회가 언론까지 컨트롤하려 든다면 그 거만함을 가만둬선 안 된다. 심판이 연맹에 보이콧 카드를 꺼내고 ‘언론의 문제’까지 들먹일 정도면 심판은 이미 ‘신의 영역’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심판이 이렇게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신의 영역’이 돼 가고 있다면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이런 심판들의 이기적인 움직임에 이제는 옐로우 카드를 꺼내야 한다. 그들의 거친 행동에 계속 ‘인플레이’를 선언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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